1. 작명의 배경
1. 작명의 배경
아래에 서술된 정당들의 정식 명칭은 모두 '민주당'이었다. 꼬마민주당은 그저 속칭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들 당이 꼬마민주당으로 불렸거나 분류된 것은 당의 존속 당시 민주당계 정당 중에서도 다른 정당에 비해 당세가 심하게 약하고 의원의 숫자도 적었다는 점 때문에 '꼬마'라는 접두어가 붙어 꼬마민주당으로 불렸다.1.1. 1990년에 창당한 민주당의 속칭
민주당(1990년) 항목으로. 보통 꼬마민주당이라고 하면 이 당을 이야기한다.1990년 1월 3당 합당에 반대했던 노무현, 김정길, 이기택, 장석화, 김광일 등 통일민주당의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1990년 창당했으나 1991년 신민주연합당과 통합해 새로운 민주당이 됐다.
1.2. 1995년에 창당한 민주당의 속칭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낙선 이후 정계를 은퇴했던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 1995년 5월 돌연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지원 유세 활동에 나섰다. 이후 김대중 이사장의 정계 복귀가 확정되면서 민주당 내 동교동계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기 위해 줄줄이 탈당했다. 동교동계 탈당 이후 잔류한 과거 꼬마민주당 의원들 대부분은 통합민주당으로 남았다.이 당은 노력과 선전에도 불구하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의 참패(15석, 11.2% 득표) 후 둘로 나뉘었다. 노무현을 포함한 일부는 국민회의로 가고, 제정구를 포함한 나머지는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을 이룬다. 가끔 헷갈려 꼬마민주당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당의 약칭 및 별칭은 '민주당'이고, 꼬마민주당으로 부르는 것은 1번 항목뿐이다. 바로 아래 새천년민주당 잔당 역시 마찬가지다.
1.3. 2005년에 개칭된 민주당의 별칭
새천년민주당이 2004년 꼬마 정당으로 전락하여 1번 항목에 비유한 이름이다. 노무현계 세력이 탈당한 직후에는 한나라당에 이어 제2정당으로 열린우리당보다 의석이 많았지만[1],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자초하고 역풍으로 몰락하여 전남 지역구 5석과 비례대표 4석, 총 9석에 그치게 되었다.[2]
추미애처럼 선전한 후보도 있었고, 명색이 2당에 유명 정치인이 많아 여러 지역에 후보를 냈는데, 열린우리당,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의 3자 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면서 한나라당에 의석을 넘긴 지역도 많았다. 2005년에 로고를 바꾸고 "민주당"으로 개칭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에서 열린우리당을 앞지르며 승기를 올렸다. 2007년 재보궐선거로 의원직을 늘려가다가 열린우리당의 분당 과정에서 김한길파가 창당한 중도개혁통합신당과 합당하여 중도통합민주당이 되면서 소속 의원 34명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다. 그러나 다시 기존 민주당 소속 지역구 의원과 김한길파 19명의 탈당으로 다시 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합당 이전보다 더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인제가 습격을 해와서 출마했으나 군소후보나 다름없는 0.7%의 득표율을 얻었다.[3] 결국 2007년 17대 대선이 끝나고 대통합민주신당과 함께 통합민주당으로 합쳐졌다.
1.4. 2014년에 창당한 민주당의 별칭
이쪽은 원외 인사였던 김민석이 창당했던 탓에 원외 민주당이라는 별명이 있었고 꼬마 민주당이라는 별명보다 원외 민주당이라는 별명이 더 유명했다. 19대 국회 말에 현역 의원이었던 신기남이 들어가서 잠시나마 원내정당이 되었으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석도 얻지 못해 임기가 끝나자 다시 원외정당이 되었고, 이후 더불어민주당하고 통합하였다.[1] 다만 전국구를 뺀 지역구로 한정하면 전원이 지역구이던 열린우리당보다 의석 수가 적었다.[2] 당시 이미 유명 정치인이었던 추미애를 비롯하여 다른 지방(비호남권)에 출마한 후보들 모두 낙선한다.[3] 심지어 허경영보다도 득표 못한 지역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