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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남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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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위치3. 기타

1. 개요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는 발해의 다섯 중요 도시였던 5경 중 하나로 5경 중 만주에 있었거나 만주설이 존재하는 다른 4경과 달리 유일하게 한반도 안에 확실하게 있었던 도시이다.[1] 발해에서 신라로 가는 길에 있던 교통의 요지였다. 신당서 발해전에서 '옥저의 옛 땅'으로 옥주 정주, 초주 3주를 관할하고 있다고 나온다. 특산물은 곤포(昆布, 다시마)였다고 한다.

2. 위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며 여러 가지 비정설이 존재한다.

3. 기타

대한민국 교과서에서는 발해에서 신라로 가는 길 신라도→남경남해부, 일본으로 가는 길 일본도→동경용원부로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 일본으로 갈 때도 남경남해부 루트로 간 적도 있다. [2]

[1] 다만, 서경압록부동경용원부는 일반적으로 현 중국 영토 쪽으로 비정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확실치 않고 북한 영역 안쪽에 있었다는 설도 있다.[2] 속일본기 777년 1월에 등장하는 9차 견일본사. 사도몽(史都蒙)을 대사로 하는 이들 발해의 9차 견일본사 선단은 776년에 남경남해부의 토호포(吐虎浦)라는 항구를 출발해 규슈 방면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하필 바람을 잘못 만나서 46명만 살아남고 다 죽었다. 토호포에 대해 남한에서는 북청군이라거나, 함흥시의 옛 포구 가운데 도련포(都連浦)라는 포구가 있음을 들어 함흥으로 비정하기도 하고, 북한 학계에서는 지금의 북청군 신창항(新昌港)에 해당한다고 비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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