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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고원 蓋馬高原 | Kaema Plateau | |
개마고원 전경 | |
■ 동개마고원의 위치. | |
지도 | |
<colbgcolor=#363><colcolor=#fff> 위치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자강도 동부 량강도 일대 함경북도 서부 함경남도 북부 |
높이 | 평균 1,200m 700m - 2,500m 내외 |
분류 | 융기 준평원, 용암 대지[1] |
형태 | 고원 |
지질학적 형성 | 신생대 네오기(신제3기) 마이오세, 제4기 초[2] |
면적 | 약 40,000km² (개마고원) 약 14,300km² (동개마고원) |
쾨펜의 기후 구분 | 냉대 동계 건조 기후 (Dwb, Dwc)[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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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개마고원(蓋馬高原)은 한반도 북부에 위치한 고원 지대로, 오래 전 태백산맥 형성과 같은 메커니즘의 움직임과 백두산의 화산 폭발로 형성된, 융기 준평원과 용암 대지를 통틀어 일컫는다. 흔히 한반도의 지붕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백두산이 있는 지역에서는 고위평탄면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경동지괴[4] 운동으로 융기가 된 지역의 면적이 더 넓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지리산 정도나 그보다 약간 더 산세가 험준한 곳이 더 많고, 간혹 평평한 곳이 있다는 것이다. 기반암은 캐놀랜드 시절(27 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개마(蓋馬)라는 명칭은 산해경에서 전국시대 연(燕)나라 남쪽에 위치한 개국(蓋國), 고조선을 무너뜨린 한나라가 기원전 107년에 설치한 현도군 서개마(西蓋馬)현 등에서 처음 나타날 만큼 오래되었다.「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북사 열전」에서는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한원 번이부」에서는 '고구려에서 가장 높은 산이 마다산(馬多山)'이라고 하였는데, 이또한 개마대산, 개마고원을 일컫는 것으로 본다.
중생대 구조운동 후 준평원으로 되어 있다가 신생대 제3기 마이오세 말에 일어난 경동지괴 운동에 의해 융기되어 고원이 되었다. 일부 지역은 제4기 초 용암이 분출되어 용암대지를 형성하였다.
넓은 의미에서 개마고원은 자강도 장강군, 자성군, 중강군, 화평군, 랑림군, 량강도 삼수군, 김형직군, 김형권군, 갑산군, 혜산시, 풍서군, 함경남도 신흥군, 장진군, 영광군, 부전군, 허천군, 함경북도 무산군, 연사군, 길주군, 어랑군, 경성군[5] 일부에 걸쳐 있다. 이 경우 개마고원의 면적은 약 4만 km²로 한반도 면적의 20%에 달한다. 낭림산맥을 경계로 동개마고원과 서개마고원으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서개마고원은 해발고도가 비교적 낮기 때문에 고원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동개마고원만 개마고원이라고 부를 때가 많고, 북한에서는 동개마고원만 분류하여 인정한다. 이 경우 면적은 약 1만 4300 km².[6]
교통로는 대한민국이 지정한 5번 국도, 9번 국도가 있으나, 당연히 북한은 대한민국의 도로 체계를 인정하지 않고, 북청-혜산 2급도로, 길주-혜산 2급도로, 함흥에서 장전과 부전으로 가는 2급도로가 있다. 고속도로는 물론 1급도로라는 북한 최상급 도로가 지나지 않는다.
2. 기후
삼수갑산(三水甲山)[7]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 나니 기험(奇險)[8]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疊疊)이라 아하하
김소월, <차안서선생 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 三水甲山韻)>
위도가 높고 대부분의 지역이 산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상, 개마고원 일대는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보다 평균 10℃ 정도 기온이 낮고, 겨울은 최대 15~20℃의 차이가 난다. 그리고 계절을 불문하고 일교차가 상당히 심한데, 하루 사이에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이 20℃ 이상 차이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오고 나니 기험(奇險)[8]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疊疊)이라 아하하
김소월, <차안서선생 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 三水甲山韻)>
2.1. 겨울의 극악한 추위
위도와 격해도(隔海度)가 높은 데다가[9] 해발 고도까지 높아서(평균 1,500m 가량) 겨울에 정말 끔찍하게 춥다. 다음은 개마고원 주요 지역들의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을 비교한 표이다.[10] -17℃ 이하인 지역들은 볼드 처리했다.지역 | 1월 평균 기온(℃) |
대홍단군 | -18.5℃ |
삼수군 | -18.2℃ |
보천군 | -18.0℃ |
삼지연시 | -17.2℃ |
혜산시 | -16.4℃ |
중강군 | -16.1℃ |
장진군 | -15.5℃ |
풍산군 | -15.0℃ |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대략 Dwb~Dwc에 해당한다.
개마고원 일대는 1월 평균 기온이 -15~-20℃에 달할 정도로 매우 춥다. 한겨울이 되면 최저기온이 -30℃ 이하는 기본이고 때때로 -40℃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기상청 발간 <북한기상연보 2016>에 따르면 개마고원 지대에 해당하는 지역의 최저 기온은 -31℃(풍산)~-39℃(삼지연)를 기록한다고 하며, 이보다 높은 산지로 가면 -40℃가 나올 수 있다. 참고로 같은 해 혜산은 -31.0℃, 중강은 -30.5℃가 최저 기온 기록이었다.
공식 기록으로는 1933년 1월 13일에 중강 기상대에서 -43.6℃가 관측되어 한반도 역대 공식 최저기온을 기록하였다. 1977년 1월 2일에는 비공식적으로 삼지연에서 -45.1℃가 관측된 바 있으며, 1943년 1월에는 삼지연에 위치한 백두산 정상에서 -47.5℃를 기록했다. 1997년 1월 2일에는 같은 백두산 정상에서 -51.0℃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비공식적으로 백두산 일원에서 -54.7℃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빙하는 볼 수 없고, 상당수 지역에서는 감자 정도는 생산이 가능하며, 백두산 정상 조차도 여름에는 눈이 녹는다.
이렇듯 생존하기에 만주나 한반도 나머지 지역에 비해 혹독한 환경이지만, 사실 북극해 연안이나 러시아의 오이먀콘, 베르호얀스크 등에도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개마고원에도 어떻게든 사람들은 산다. 물론 현지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이 있다. 일교차가 미친 듯이 큰 사하라 사막에서도 투아레그족들과 베두인들이 어찌어찌들 살고 있고 하얼빈, 노보시비르스크 같은 인구 150만 명 이상인 대도시도 겨울이 개마고원에 버금갈 정도로 춥다. 특히 하얼빈은 개마고원과 비슷한 겨울 날씨를 보이는 곳인데 남한 면적의 절반에 인구 1,000만 명이 산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은 서부 평야 지대, 동해안 정도이지 대부분의 지형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극도로 추운 개마고원에는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다. 인구 20만 명 남짓한 중소도시 혜산이 개마고원에서는 가장 큰 도시일 정도다.
이렇게 추운 기후 덕분에 통일이 이루어지면 이 곳이 동계스포츠의 메카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빙상 종목은 몰라도, 스키 같은 설상종목은 강원도 지역보다 입지 조건이 그렇게 우월하지는 않은데, 이는 개마고원처럼 혹한인 지대가 설질이 적당히 추운 곳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지나친 추위로 인해 선수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너무 고생하고 각종 장비가 고장날 수도 있기 있으며, 산이 많고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된 곳인 만큼 야생동물들로 말미암은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
한편 통일 이후에 이 지역을 데이터 센터 부지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 추운 기후 덕분에 온도 관리도 원활한데다 통일로 전쟁이라는 정치적 리스크도 사라지기 때문에 해외 기업의 데이터 센터 유치도 충분히 노려볼 만한 지역이다.
부전호 동쪽 운택리 풍경(1950년 11월 14일 촬영).[11] 11월 중순인데도 눈이 저렇게나 쌓였다.
압록강변에서 촬영한 혜산시 교외 지역. (2분 30초~40초경은 시내가 촬영되어 있다.) 10월 30일경이면 남한에서는 북한산 같은 곳이 단풍 절정일 시기다.
6.25 전쟁 당시에 미군도 여기서 고생을 했다. 병사들은 병사들대로 동상과 질병이 속출했고 워낙 추위가 강해서 장비의 상당수가 동파되었는데, 배터리가 얼어 터지거나 냉각수가 얼어 터지는 식으로 고장나버려서 자동차도 움직이지 못했을 정도다. 오죽하면 시베리아에서 추위를 수입했다는 농담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12]
특히 장진호 전투는 미합중국 해병대 역사상 최악의 전투였다. 농담이 아니라 미 해병대 1개 사단이 전멸당할 뻔한 전투는 과달카날 전투와 장진호 전투뿐이다.[13] 그 정도로 전투가 어려워진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미칠 것 같은 추위. 날씨가 하도 추워서 무기 등에 바르는 윤활유가 얼어버리고 기관총이 연사가 안되고 소총도 일정 시간마다 한 발씩 쏴서 얼지 않게 해야 했다고 한다.[14] 참고로 알류샨 열도 전역과 함께 미군이 제대로 된 극한지 전투를 겪어본 유이한 사례.[15]
한편 대한민국 국군은 천하의 미군도 추위 앞에 장사 없음을 옆에서 확인한 후, 혹한기 훈련을 상당히 큰 훈련으로 진지하게 임하는 편이고 주한미군은 알래스카 주둔군 수준의 방한장비를 지급받는다고 한다. 여기서 겪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생존해 있는 한국전 참전 미군 용사 어르신들은 코리아 하면 남북한 안 가리고 그냥 매우 추운 곳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16]
미국에 나온 한인들에게 "남한은 따뜻하고 더운 곳도 많다"라고 들으면 깜짝 놀라거나 "농담하지 마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미군이 여름에 38선 이북을 거의 점령하지 못했고, 남한도 잘 몰라서 그렇지 북한조차 평안도, 황해도 같은 곳은 최근 섭씨 39도를 기록할 정도로 여름에 남한에 근접한 수준으로 꽤 더워서 이 사람들이 충격 받을 요소가 꽤 있다...라고는 하지만 낙동강 전투가 8월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때 미군은 국군에게 다부동 전투 등에서 고지 위 더운 날씨 속에 썩어가는 시체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진지 인수를 거부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2.2. 여름의 서늘함
이렇게 겨울에는 매우 혹독하게 추운 반면, 여름에는 서늘하여 기후가 상당히 쾌적하고 사람이 살기에 좋다. 다른 지역들은 8월 평균기온이 7월보다 조금 더 높지만, 중강진 일대 및 대부분의 북한 지역은 7월이 최난월이다. 8월 평균기온이 삼지연시 15.8℃, 풍산군 17.2℃, 장진군 17.8℃이다. 이 동네는 7월이 최난월이긴 한데 별 차이는 없다. 서울의 5월 평균기온이 17.8℃, 8월 평균기온은 25.7℃이니 개마고원의 여름은 서울의 5월 날씨와 비슷한 셈이다. 5월에도 여전히 밤에는 싸늘한 편이라는 걸 생각하면, 개마고원에선 여름에도 긴팔이 필요하다는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여름철 개마고원의 강수량은 서울의 5월보단 약간 많은 편. 여름철 평균 기온은 네덜란드, 북부 독일, 스코틀랜드 등 북서유럽과 비슷하다.기상청 발간 <북한기상연보 2016>에 따르면 개마고원 지대의 고도 1,000m 이상인 삼지연, 장진, 풍산 지역은 기온 최고기록이 31.1℃(장진)~32.2℃(삼지연)였고, 일 최고기온이 30℃를 넘는 날은 1년을 통틀어 장진 2일, 삼지연과 풍산은 3일에 불과했다.[17] 단, 혜산(해발 714m)이나 중강진(해발 332m) 쪽은 개마고원 주변을 둘러싼 지역은 해발고도가 비교적 낮아 폭염이 가끔씩 찾아오기도 한다. 북한기상연보 2016에 따르면 혜산은 8월 5일 최고기온이 38.3℃를 기록했고 중강진은 2018년 7월 30일 무려 40.2℃를 기록한 바 있다.
3. 농축산업
분명히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혹독하기는 하다. 다만 티베트, 몽골, 로키산맥 수준의 극한의 오지는 아니다. 알프스[18], 북유럽의 북쪽의 산맥 지대[19]보다도 조금 낫다. 분단 직전에는 감자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은 강원도가 아니라 개마고원 일대였고, 숲속에 들쭉 같은 것이 자라서 수렵채취가 예로부터 가능했다. 다만 감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벼농사는 물론 보리 같은 것도 키우기 힘들어서 농사로 얻을 것은 별로 없었다. 추운 곳이라도 풍경은 북유럽의 숲과 비슷하며, 실제로 임업이 발달한 스웨덴과 연간 강수량이 비슷한 편이다. 참고로 스웨덴도 노르웨이와의 국경 지대의 쵤렌 산맥 일대는 고도가 한라산보다 높기에 혹독하다. 다만 북한의 극악한 경제 사정으로, 개마고원에서 무언가 경제활동을 안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심한 오지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인식을 낳을 뿐이다. 장진호 전투와 관련된 밈이나 개마고원보다 가기 쉬운 여러 해외의 고원의 이미지도 이런 이미지 형성에 한몫했다. 물론 예로부터 삼수갑산이라고 하여 오지는 맞긴 한데, 개마고원의 풍산이 원산지인 풍산개에 얽힌 설화에서 알 수 있듯 다소 간의 경제활동은 가능했었으나 북한이 지나치게 가난하여 경제활동을 잘 못할 뿐더러, 북한의 폐쇄성으로 그나마 있는 경제활동이나 내부 사정도 잘 알려지지 못하는 것이다. 윤선도가 70대에 소빙기가 절정인 시기에 여기로 귀양을 간 적이 있지만 살아서 돌아오기도 했다.무상일수(無霜日數)가 150일 미만이다. 벼농사의 한계선에 다다른 지역으로, 벼농사가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기후가 너무 춥고 온난해도 강수량이 밀을 재배해야 할 정도로 적어서(600~700 mm) 사실상 사람이 먹고 살 만한 벼농사는 불가능하다.[20] 함경도 해안지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온난한 함경도 해안지역에서도 함흥평야 같은 남부를 제외하고 벼농사는 짓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옥저는 바다를 껴 해산물은 얻을 수 있고 개마고원보다는 따뜻해서 콩, 보리 등 오곡 정도는 생산할 수는 있었다. 고려가 처음 여진 정벌을 할 때 여진족은 함경도 해안은 매우 탐내서 수년 만에 다시 땅을 고려가 빼앗기는 일은 있었다.
이것이 함경도 지방에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한 옥저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 민족은 물론이거니와 여진족 중 근방의 모든 민족은 아주 높은 곳이 아니면 숲이 우거진 이 지역을 군사적 통로로 삼는 경우는 있어도, 정주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이민족 또한 만주를 비롯한 중국 방면 진출이나 평안도 지역, 함경도 해안에 관심이 많은 이유였다. 공민왕 무렵에는 고려사에 함경도 남부는 물론 심지어 '이산'이라고 불린 압록강변 초산군처럼 개마고원 바로 옆 좀 오지까지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들어오던 기록이 있지만, 갑주만호부를 설치하며 여기를 점령하려던 시절에는 이민족의 침입을 막느라 고생했다. 그러므로 전란으로 황폐했다. ### 게다가 당시에는 감자도 옥수수도 호밀도 없었고 귀리, 메밀 정도를 재배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삼수군 기준 기장·피·조·귀리·보리·콩·메밀·뽕나무가 토산물이고, 인삼과 잣도 난다고 하였다. # 사실 옥수수는 수입을 하고 나서도 평안도 쪽에서 재배했지 여기서는 잘 재배하지 않았다.
더 북쪽인 연변, 만주,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벼농사를 짓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중앙아시아를 제외하면 이쪽 지역들의 기후가 개마고원보다는 벼농사 짓기가 훨씬 수월하단 것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만주 쪽은 위도는 더 높을지언정 평균 고도가 훨씬 낮고 강수량도 상대적으로 많은 데다, 벼농사가 가능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여름의 기온과 강수량이다. 이 부분에서 개마고원의 경우 7~8월에도 밤에는 10도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잦기 때문에, 여름 기온 한정으로 한중일 벼농사 주요 재배지역과 거의 차이가 없는 연변, 만주 일대는 벼농사를 짓기가 훨씬 수월한 것이다. 게다가 연변이나 만주는 한반도에서 북상한 한국인들이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성공시키고 나서야 벼의 농사가 가능해졌으며, 중앙아시아 역시 소련 시절 이주해 간 고려인들이 갖은 노력과 고생 끝에 일궈낸 케이스라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남쪽의 화전민을 이주시키거나 감자를 들여오거나 광산을 개발하며 조금씩 개발하기는 했다. 그래서 현재는 세계적인 오지에 비하면 그나마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다. 양강도 같은 개마고원의 가장 오지 지역이 미국, 이란보다 약간 인구밀도가 높다. 참고로 사투리는 '슴다'와 같은 말투를 쓰는 두만강가보다는 '슴메'라고 하는 함흥 같은 함경도 남쪽 해안의 말투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이쪽의 주민들과의 교류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를 '-지비'라고 하고 '했어?'를 '했음?'으로 말하는 등 함흥 일대와도 말투가 비슷하다. #
쌀 농사는 상당히 까다로운 기후 때문에 농본국가인 고려 공민왕의 진출 이전에는 극히 소수의 야인이 드나들던, 전란 피해도 심히 입어 황량해진 사실상의 무주지로, 감자 등이 들어오기 전에는 농업보다는 수렵에 의존하는 문화가 짙었다. 고구려는 개마고원 옆에 더 관심이 많았으며, 인터넷 밈으로는 약탈만 하는 이상한 나라라는 오해가 많으나 광개토대왕보다 훨씬 이전인 태조대왕 때부터 약탈보다 정복에 집중하고, 함경도 해안의 옥저 같은 나라도 차지하고 더 이후에는 황해도 이북은 잃지 않으면서 약간의 수렵이 있는 농경이 주된 국가로 탈바꿈했다. 고구려/경제 문서 참조. 훗날 유럽의 영향으로 도입된 목축업에는 나름대로 잘 맞는 기후여서, 소와 돼지, 양의 목축이 타 지역에 비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대관령의 삼양목장, 양떼목장 같은 곳이 개마고원에는 제법 널려 있는 편이지만, 동물들도 매우 추운 겨울 기온을 버티지 못하고 얼어 죽는 경우가 다반사라 한다.
전 지구의 동위도대에서 가장 추운 지역답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작물들은 대부분 재배가 불가능하다. 냉대성 기후에서 주로 자란다는 사과조차도 개마고원에서는 재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포도, 감, 복숭아, 배의 생산이 없는 것은 물론 수박, 참외, 멜론, 토마토 같은 초본 열매조차도 재배할 수 없다. 벼 뿐만이 아니라 보리의 재배도 매우 극소량의 한정적인 재배만 가능하며, 기후 특성상 밀, 호밀, 귀리, 조, 감자, 메밀, 대마, 홉 등의 내한성(耐寒性) 작물을 주로 재배한다. 과일은 북유럽, 러시아처럼 야생딸기, 블루베리(들쭉나무), 월귤, 시로미(crowberry) 등 베리류가 자라는 걸 볼 수 있다. 들쭉 따기에 동원되는 북한 중학생들. 다만 감자는 강원도 이상으로 재배되었으며, 이 지역에서는 주식 급이었다. # 1930년대의 감비천불붙이라는 작품에서는 홍수로 개마고원에 정책한 화전민들이 감자를 지게로 시르는 장면이 묘사되기도 한다.
일부 주민들은 실질적인 생계를 위해서는 이런 분위기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보면 된다. 이 사투리가 개마고원 일대의 사투리다. 개마고원 곳곳에 마을이 있는데, 그 근처는 나무가 많이 베인 상황이다. 다만 워낙 넓고 마을이 드물게 있어서 아직은 숲이 남은 곳도 많다.
4. 산과 호수, 지형
양강도 두류산 부근. 사실 개마고원에서는 백두산 근처 몇 개 시와 군을 제외하면 산골이 깊은 곳이 많다.
백두산으로 가는 해발 2,160m 지점의 사진.[21] "백두다리"라는 다리가 있고, 우측의 건물은 관측소였는데 위성사진으로 보면 2014년까지는 존재했으나 2018년에는 헐리고 100m 떨어진 지점에 새 건물이 세워졌다.
흔히 한라산이 한반도에서 두 번째로 높을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우선 한라산은 한반도에 위치한 산이 아니며[22] 개마고원의 봉우리들은 대부분 한라산보다 높으므로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이 한라산이고 북한에서 제일 높은 산이 백두산이다 보니 백두산 다음으로는 한라산이 가장 높다는 오해가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최고봉 1~58위는 모두 북한에 있고, 그 중에서도 개마고원에 몰려 있다. # 한라산은 그 다음인 59위.
한반도의 최고봉인 백두산(2,744m)을 필두로 관모봉(冠帽峰, 2,541m)·북수백산(北水白山, 2,522m )·차일봉(遮日峰, 2,505m)·백산(白山, 2,476m)·남포태산(南胞胎山, 2,433m) 등 2,000m 이상 높은 산들이 수십 곳 있다. 그러나 백두산 근처의 백두고원에서는 그렇게 높은 산들도 마치 언덕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평균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낮게 깔린 듯한 구름들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점들에서 보면 알프스 고원과 유사하며 통일 후 잘 조성한다면 산악열차를 깔거나 트레킹의 관광명소로도 활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고속도로를 비롯해서 트래킹 코스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산길을 잘 닦아놔야 한다.
삼지연시(구 삼지연군)과 무산군 사이의 간백산 근처에서 촬영한 백두고원.
고개로는 금패령(1,676m, 함경남도 풍산군)을 비롯해 황초령(1,200m, 함경남도 장진군), 부전령(1,445m, 함경남도 신흥군), 후치령(1,335m, 함경남도 풍산군) 등이 있다. 이 영상은 부전령 입구에서 촬영한 것이다.
호수는 삼지연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으나 장진호와 부전호, 황수원 저수지[23]가 일제강점기 이후 조성되었다.
백암 대택역 부근에는 간장늪[24]이라는 고원습지가 존재한다. 고원 아래쪽은 활엽수와 이깔나무 등 낙엽침엽수로 구성되고 자작나무도 자생한다. 부전고원에서 백두대간 방향으로는 수목한계선을 넘기 때문에 삼림대신 광활한 관목지대가 존재한다.
고원 중턱은 낙엽송·잎갈나무·전나무·가문비나무·잣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침엽수 원시림이 울창하다.
부전군 옥련산 기슭에는 돌강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5천 년 전 형성된 지형으로 돌무더기 아래로 강물이 흐르는데, 하천의 유량이 적어 바위 밑까지만 차오르기 때문에 물소리만 들릴 뿐 정작 강물은 볼 수 없다고 한다. ## 여러모로 한반도 타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경관들이 많다. 북한에서는 개마고원의 축산업을 중심으로 한 다큐를 만들기도 했다. 북한영상(주의)
5. 지정학적 가치
이곳은 역사적으로 옥저를 복속한 이후의, 신라 진흥왕 이전의 고구려를 제외하면 여러 세력의 경계이자, 방벽으로 취급되던 곳이었다. 그래서 전란이 많던 곳이었고, 아예 고려시대 공민왕이 이곳의 상당부분을 점령했을 때는 오랜 전란 끝에 사람이 살지 않는 빈 고장에 큰 강이 있다고 하여 '허천'이라는 지명이 있을 정도였다.개마고원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 국가에게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다. 군사적으로 개마고원은 만주를 내려다보는 위치로 북방세력을 막는 천혜의 방어막 역할을 한다. 이런 낙후되고 험난한 산악지형은 필연적으로 병력과 물자의 전개를 방해하기 때문에 적이 침공해서 들어오기가 굉장히 어렵다. 반면 차지한 쪽은 평시에 시간을 좀 더 넉넉히 들여서 병력과 물자를 배치할 수 있으므로 방어하기에 굉장히 유리하다. 만약 한반도 국가가 개마고원을 잃는다면, 골란 고원에서 이스라엘을 내려다보며 이스라엘에 굉장한 안보 부담을 안겨주었던 시리아처럼 평안도 지방을 위시한 핵심 도시/곡창지역에 굉장한 안보부담이 걸리고 함경도 해안 지역을 지키는 데도 막대한 부담이 된다. 사실 고려가 이 문제 때문에 북방개척 정책을 지속했다. 고려 초기 천리장성을 이 위치에 세웠던 여러 이유중의 하나는 개마고원을 동북방향으로 앞세워 짓고 서북방향을 압록강을 경계로 지어서 방어적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요전쟁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강동 6주가 개마고원을 오른쪽에 등지고 있어서 요나라와 통하는 유일한 관문이나 다름없었고 그렇기에 요군이 2차, 3차 전쟁에서 강동 6주를 점령하려고 애를 쓴 것이다. 그러다 요새는 무시하고 개경으로 바로 진군하는 도박수를 두었다가 2번 고려 공략에 실패하였고 회군하는 길에 강동 6주 지역에서 2번 다 큰 피해를[25] 입었다. 그런데 정작 고려의 여진 정벌 시기에는 수로건 육로건 길이 안 통하는 곳이 없어서 고려가 동북 9성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한국 역사에서 발해가 멸망하고 만주가 온전한 한민족 영역권에서 탈락한 이후 개마고원이 완전히 한반도에 동화된 시점은 조선 세종이 1430년대에 4군 6진 개척을 한 뒤다. 세종은 고려가 동북 9성 사수에 실패한 것도 개마고원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간파했고, 당시 사민정책으로 수렵채집인[26]이 가끔씩 들르던 고원/산악지방에 정주민 개척촌을 세우게 되었다. 당연히 농사도 제대로 안 되고 추위도 엄청난 지방이다보니 어려움이 많았지만 세종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개척을 밀어붙였다. 이는 명민했던 세종이 산맥 바로 아래로 평안평야가 노출되는 함경지방의 지정학적 취약성을 파악해서 백성들이 희생되는 데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던 것이다. 그리고 임란기 가토 기요마사는 이런 동네를 통제하려고 욕심 부렸다가 북관 대첩이라는 재앙을 맞았다.
압록강은 상당히 깊고 넓은 강이라[27], 강 건너편에 수비병력을 배치하면 방어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당장 여요전쟁과 병자호란 당시 겨울철 압록강이 얼었을 때를 노려 빠르게 수도로 진격하는 전략을 택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수심이 얕은 압록강 상류의 개마고원은 그 험준함 때문에 그 쪽 방면으로 공세가 굉장히 제한되므로, 한반도 국가는 방어력을 압록강 전선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개마고원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채로는 압록강을 돌파한다 해도, 한반도 내부로 진군했다가 측면에서 공격당할 위험이 너무나 크다.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가 이런 일을 역으로 당한 것이다. 그마저도 양측모두 교전으로 인한 피해보다 혹한으로 인한 피해가 터 클 지경이었으니 말 다했다. 만약 방어측이 이 지역의 군부대를 두고 요새화까지 마쳤다면 공격측의 피해는 더 커다는질수 밖에 없다.[28] 마지막으로 개마고원 후방에는 대규모 군항과 공업지대가 있으므로[29] 유사 시 해상으로 보급받으며 개마고원에서 농성하여 시간을 벌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설사 압록강을 건넜더라도 개마고원 쪽에서 공격을 가할수 있으므로. 전선유지에 무리가 갈수 밖에 없게 된다.
만약 통일이 되어 중국 및 러시아와의 국경을 마주보게 된다면 개마고원은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군사적 움직임을 견제하는 최전선으로서 여전히 그 기능을 할 것이라는 밀덕들의 관측이 있다. 다만 당장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과 직접 대치하는 나라들이 아니기에 이 지역에 정규군을 배치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나므로[30] 주한미군이 이 둘의 동향을 견제 및 염탐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31]
또한 이 지역이 군사적 가치가 높다고 해도 한국군이 아닌 주한미군의 일부 정보부대 정도가 주둔하며 동향을 살필 것으로 보이며 한중/한러 국경선에는 정규군이 아닌 경찰 내지는 출입국관리본부 및 세관 인원들이 배치되는 만큼 이 지역에서 군복무는 현실성이 낮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는 극동 지역의 러시아 해군 극동함대의 움직임을 훤히 볼 수 있어 중요한 지역이 맞다.
6. 취락
전통적으로 개마고원의 인구밀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희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섭게 인구가 줄어드는 강원도 및 경상북도 산간지역이 개마고원의 아성을 뛰어넘었다. 참고로 인제군의 인구밀도는 20명/km², 영양군이 22명/km², 화천군이 26명/km² 정도 된다. 그런데 대체로 개마고원권이라 할 수 있는 지역[32]의 면적은 약 20,000km², 인구는 약 87만 명[33]이다. 따라서 인구밀도는 약 43명/km²이며, 비교적 큰 도시인 혜산시를 빼면 34명/km² 정도 되는 셈이다. 다만 북한의 정치적 특성상 주민의 이동통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통일 후 거주이전의 자유가 생기면 빠른 속도로 인구가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개마고원에 있는 주요 도시·취락의 해발고도는 대략 다음과 같다. 구글 어스 참조. 단, 삼지연ㆍ풍산ㆍ장진ㆍ혜산ㆍ강계는 기상청 홈페이지에 수록된 관측지점 참조.
- 대택 1,550m
- (구)백암군 1,420m
- 삼지연시 1,386m
- 부전호반 (원풍리) 1,250m
- 풍산군 1,206m
- 장진군 1,081m
- 랑림군 (동문거리) 1,000m
- 삼수군 870m
- 갑산군 800m
- 혜산시 714m
- 강계시 306m
중남부의 평야지대처럼 집촌이나 괴촌이 나타나는 대신 산촌(散村)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집들이 서로 이웃해 붙어있지 않다는 소리다.
7. 야생동물
현재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의 경우 남한은 개발/수렵, 북한은 화전 농업/땔감 채취로 인한 산림 황폐화 때문에 개마고원은 다른 지역보다는 사람이 별로 없기에 적합치 않고 인구밀도가 희박해, 북한 지역에선 그나마 생태계 보존이 잘 된 편이다. 북한이 보호지역 산림은 어느 정도 신경 쓰기 때문인 것도 있는데, 금강산이나 묘향산 등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산림이 울창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라니, 수리부엉이, 스라소니, 늑대, 우수리불곰, 반달가슴곰, 와피티사슴, 우는토끼, 붉은여우, 노란목도리담비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한다.
1999년까지는 아무르표범도 관찰되었고 종종 포획 사례도 있었으나 현재는 이곳에서도 멸절했다. 현재까지 야생동물 밀렵이 계속되는 데다 산림파괴가 심화되고 있지만, 개마고원은 북한에서 신경써서 관리하는 곳이라 그나마 낫다. 다만 개마고원 인접지역에도 화전이나 벌목이 지속되고 자원 채굴이 진행되고 있어 아주 좋다고 보긴 힘들다. 무산군 지역만 해도 과거 삼림이 울창했으나 현재는 자원 채취로 숲이 사라지고 황폐한 풍경만이 남았다. 혜산시는 산의 혜택을 입었다는 말에 무색하게 목재는 최근에도 수출하나 혜산이 있는 북중국경을 보면 역시 황폐하다.
북한은 이 지역의 야생동물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서식지 중심으로 보호한다. 자세한 목록은 여길 참조할 것.# #
8. 남북통일 이후
만약 미래에 남한 주도로 한반도 통일이 된다면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는 대한민국 최대의 국립공원[34]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 시베리아호랑이나 아무르표범 같은 과거 한반도에 살았던 대형 동식물종 복원사업도 해볼 만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구글어스를 비롯한 여러 위성지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개마고원 지역에 남아있는 고산림지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연적, 역사적 가치가 높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거나,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여름에는 피서지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9. 여담
9.1. 개마고원 관련 가짜 사진
개드립간 한반도의 스위스는 잘못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원본 링크일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개마고원 사진이라고 올라오는 것들 중에는 가짜가 있다. 스위스의 알프스산맥 사진처럼 전혀 엉뚱한 지역이 개마고원 사진이랍시고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해당 이미지는 영어 위키피디아의 Alpine tundra 문서에 스위스 알프스의 식생을 설명하는 용도로 원본이 올라와 있다. 알프스 산맥 뿐만 아니라 파미르 고원, 미국 오리건 주, 중국 윈난성 등의 사진을 들고와서 개마고원 풍경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극히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는 개마고원을 가볼 수 없다 보니 쉽게 속기도 하다.
링크된 사진은 가짜 개마고원 사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사진 아래쪽에 푸른 풀밭과 꽃이 있는데 위쪽에는 험악한 만년설이 있다? 푸른 풀밭과 꽃은 계절이 겨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개마고원은 평탄한 구릉이 융기한 준평원이어서 고도는 높은 편인데, 스페인 메세타 고원보다는 다소 험준하지만 산세가 알프스 급으로는 험하지 않다. 대중적인 이미지로는 중국, 몽골보다는 백두산 일대를 제외하면 그냥 지리산, 설악산 정도의 모습이 더 비슷하다. 위 영상과 같은 풍경이 흔하다. 강원 지방의 산보다 약간 험한 곳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개마고원은 백두산을 포함해서 여름에 눈이 없다. 요약하자면 한반도에는 만년설이 없다.
[1] 백두산 인근 한정[2] 백두산 일대 용암 대지[3] 백두산 정상 인근은 툰드라 기후이다.[4] 기울여서 움직인 땅 덩어리라는 뜻으로, 한쪽은 가파른 단층이 되고, 다른 쪽은 완만하게 기울어진 땅덩어리다.[5] 대한민국 이북 5도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강계군, 자성군, 후창군, 함경남도 삼수군, 갑산군, 풍산군, 혜산군, 신흥군, 장진군, 함경북도 무산군, 길주군.[6] 개마고원을 세분하여 함경북도 일대의 개마고원ㆍ자강고원ㆍ백무고원ㆍ부전고원ㆍ장진고원 등으로 나누어 정의하기도 하는데, 북한에서는 이런 구분을 따르는 듯하다.[7] 삼수갑산은 개마고원의 한복판에 있는 지명이다.[8] 무척 험하다는 뜻이다.[9] 같은 위도(북위 40~43°)인 지중해 연안이나 뉴욕 등지는 그리 춥지 않은데, 개마고원 일대는 고도가 훨씬 높고 바다와 떨어진 내륙 지역이기 때문에 동위도의 다른 국가들보다 압도적으로 추울 수밖에 없다.[10] 참고로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은 -2.0℃이고, 부산의 1월 평균 기온은 3.6℃, 대구는 1.1℃ 정도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운 강원도 산간 지역들의 1월 평균 기온은 -6~-9℃ 정도다.[11] 부전호로 진격한 미 육군 제31연대전투단(Regimental Combat Team-31, 지휘관인 돈 C. 페이스(Don C. Faith Jr.) 중령의 이름을 따 '페이스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Faith)'라고도 한다)이 촬영한 사진으로, 이 부대는 장진호 전투 당시 1950년 11월 27일부터 중공군의 집중 공격을 받아 부대원의 90%를 전사, 부상, 포로로 잃는 큰 피해를 입는다.[12] 그런데 알고 보면 이 표현은 진담이다. 개마고원이 겨울철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13] 이 두 전투 모두 해병대 1사단이 참가하였다.[14] 기온이 극도로 떨어지면 그만큼 개방된 공간에서 공기의 밀도, 즉 기압이 높아진다. 기압이 상승하면 약실 안과 밖의 압력 차이가 줄어서 실제로 발생하는 가스압량으로는 노리쇠가 완전히 후퇴되지 않아 노리쇠가 반쯤 가다가 원위치되기에 연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육군이 사용하는 K2 소총에는 혹한기에 맞춰서 가스압을 조정할 수 있는 가스마개가 있다. 단, 어찌나 추운지 가스압을 확보할 수 있을 땐 기관총을 아무리 연달아 쏴갈겨도 총열이 과열되지 않았다고 한다.[15]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벌지 전투가 있긴 하지만 두 전투보단 따뜻한 수준이다.[16] 물론 나중에 온대기후인 지역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으며, 정작 미합중국 공군은 온대기후인 대구광역시에서 근무한 분들이 대부분이라, 되려 북쪽이 춥다는 얘기를 듣고 신기해한다.[17] 이것도 2016년 여름이 평년보다 상당히 더웠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30℃ 이상인 날이 아예 없는 해도 있다.[18] 빙하가 존재한다.[19] 서구 지도에 18세기에도 표시되지 못한 곳이 있다.[20] 일제강점기 데이터에 따르면, 전체 경작지 중 논의 면적은 갑산군 2.4%, 삼수군 1.7%, 장진군 0.3%, 풍산군 0.1%. 기후조건이 극히 불리한 곳이기 때문에 수확량이 적은 조생종만 재배가능하다.[21] 사진 위쪽이 남쪽이다.[22] 한라산이 위치한 제주도는 한반도의 '부속 도서'에 해당하며, 한반도 근해의 도서(거제도, 진도, 강화도 등)와 비교해도 지질학적으로 다른 땅이다.[23] 강 이름이자 풍산군 안산면에 있는 동네 이름인 黃水院이다.[24] 그 먹는 간장이 맞다. 가을에는 맑은데 봄과 여름에는 간장 빛깔 같아서 간장늪이란 이름이 붙었다.[25] 2차 전쟁 때는 애전 전투, 3차 전쟁 때는 귀주 대첩.[26] 개마고원은 유목을 하기에는 풀만 자라는 곳이 아니라서 유목이 힘들다. 한민족은 물론 이민족도 여기서 유목을 못했다.[27] 구글 어스 등으로 보면 알겠지만 요하는 의외로 압록강보다도 강폭이 좁다.[28] 당장 중국-인도 국경분쟁이 양국이 산맥을 두고 대치하는 상황인데 고산지대라는 특성 때문에 무장이 상당히 제한된다.[29] 함흥과 흥남, 원산이 6.25전쟁 당시 이런 지역이었다. 그러나 개마고원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여 철수가 필요했다. 북한에서도 남한을 겨냥해야 하는 상황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동해함대사령부를 함흥 옆에 두고 있다.[30] 원래 직접적인 대치 상태가 아닌 국가 사이의 국경에는 군대를 배치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31] 애초에 해외 주둔 미군들의 배치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도 북한 하나 갖고 배치된 군대가 절대 아니다.[32] 북한 행정구역상 량강도+함남 장진·부전군+자강도 랑림군.[33] 2008년 북한 인구조사 기준.[34] 백두산과 개마고원이 통으로 하나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높이가 굉장히 높고 위도 또한 상당히 높기 때문에 백두산을 중심으로 국내 최고의 국립공원이자 여름철 피서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