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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국경 전쟁 South African Border War Die Suid-Afrikaanse Grensoorlog | |
1966년 8월 26일 ~ 1990년 3월 21일 | |
장소 | |
남서아프리카 위임통치령 | |
원인 | |
나미비아의 독립운동에 대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탄압 | |
교전 국가 및 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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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약 71,000명(1988년) | 약 122,000명 |
결과 |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나미비아 철수 | |
영향 | |
나미비아의 독립 | |
피해규모 | |
약 2,400명 사망 | 약 14,355명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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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아프리카 국경 전쟁은 나미비아의 독립을 위해 나미비아 인민해방군과 남아공군 간 치러진 전쟁이다.2. 배경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는 1884년에 세워졌다. 영국을 견제할 수 있는 남아프리카의 전략적 요충지였고, 천연자원도 풍부한 매력적인 식민지였다. 이당시 3만명의 독일인들이 이민을 왔으며, 원주민인 헤레로족을 대상으로 수탈과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유럽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본국의 명령을 받은 얀 스무츠가 이끄는 남아프리카 연합 방위군이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를 침공하여 점령했다.종전 이후 남서아프리카는 국제연맹의 C급 위임통치령이 되었고, 남아프리카연방에 위임되었다. 2차 대전 종전 무렵에는 대다수의 위임통치령이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서아프리카를 5번째주로 인식한 남아프리카는 이 지역을 사실상 합병했다.
그리고 남아공에서 백인의 대다수인 아프리카너들이 앙숙인 영국계가 중심인 연합당을 누르고 국민당을 지지하자 1948년 국민당이 집권하게 되고, 1961년 공화정으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새롭게 수립된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했고, 점령했던 남서아프리카에도 적용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서아프리카의 독립을 주장하는 흑인들이 중심이 되어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가 창설된다. 이들은 남아공 당국에 의해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되자 무장투쟁 노선으로 전환했고, 이웃 로디지아와 비슷한 시기에 게릴라전과 테러로 투쟁을 시작했다.
3. 전개
4. 영향
아파르트헤이트 치하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서방권과 공산권 뿐만 아니라 이웃 아프리카 국가들과도 적대 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SWAPO를 소탕하기 위해 그들이 넘어간 보츠와나, 앙골라의 국경 너머도 수시로 거리낌 없이 침범했다. 특히 앙골라는 남아프리카 국경 전쟁을 치를 당시 내전이 진행중인 상태였고, 앙골라의 공산화를 위해 대규모의 쿠바군, 소련군이 앙골라 인민공화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되어 앙골라 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루방구나 마탈라 같은 든든한 보급거점까지 존재했다.[1] 남아공 방위군의 숙련병들은 앙골라의 공산권 군대와도 정면 승부를 치러야 했다. 전쟁은 더욱 치열해져갔고, 극심한 소모전이 이어지자 백인들마저도 전쟁에 지쳐 종전을 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냉전 종식과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으로 나미비아는 1990년에 독립하였고, 1994년에 남아공령으로 남아 있었던 웰비스베이와 펭귄섬이 반환되었다. 이웃 앙골라에서는 냉전을 끝으로 1차 앙골라 내전 종식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앙골라 내전이 발발했다. 1차 때와는 달리 RPDA를 지원하던 구 남아공 체제는 몰락했고, 지원한다고 해도 나미비아의 독립으로 육로가 단절된 상황이었다. 결국 RPDA는 힘을 잃었고 근 30년간의 기간동안 지속된 앙골라 내전의 종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