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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3:50:28

노수진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svg 대한축구협회 임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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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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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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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이사
Korea Football Association
파일:노수진축협.jpg
<colbgcolor=#00145a><colcolor=#fff> 이름 노수진
魯壽珍 | Noh Soo-Jin
출생 1962년 2월 10일 ([age(1962-02-10)]세)
전라북도 군산시
(現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군산구암초등학교 (졸업)
군산제일중학교 (졸업)
영등포공업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
신체 177cm, 69kg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체육교사
소속 <colbgcolor=#00145a> 선수 유공 코끼리 (1986~1993)
지도자 영등포공업고등학교 (1993~2003 / 코치)
영등포공업고등학교 (2005~2013)
국가대표 27경기 5골 (대한민국 / 1985~1990)
병역 예술체육요원[1]

1. 소개2. 유소년 생활3. 유공 코끼리 입단과 활약4. 국가대표팀 경력5. 은퇴 이후6. 플레이 스타일7. 경력8. 지도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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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86년부터 1993년까지 K리그에서 맹활약한 선수이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국 대표팀의 유일한 골을 넣은 선수이다.[2]

현재 모교 영등포공고 교사이자, 대한축구협회 이사직을 맡고 있다.

2. 유소년 생활

국민학생 시절 부모님에 반대에 부딪혀 클럽 활동으로만 축구를 하던 노수진은 중학교 3학년 시절 비로소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은사였던 채금석 선생의 도움을 받아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간 노수진은 영등포공고를 거치면서 에이스로 성장해갔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축구 명문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고려대학교 축구부 시절에도 노수진은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 대표팀 상비군에도 발탁되며 승승장구 하였다.

3. 유공 코끼리 입단과 활약

1986년 대학 졸업 후 유공 코끼리에 입단한 노수진은 입단 첫해 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에 뽑혔고, 불가리아 전에 선발 출전하기도 하는 등 전성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국가대표에 차출된 탓에 리그에서는 13경기에 나와 4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신인 시즌은 다소 아쉽게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87년부터 소속팀에서 노수진은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당시 포항제철 소속이던 최상국과의 득점경쟁이 노수진에게는 자극제가 되어, 노선수는 30경기 12골 6어시스트로 미친 활약을 하였던 것. 3년차를 맞이한 88년은 서울 올림픽대표 차출로 소속팀에서는 개점휴업 상태였으나, 1989년 노수진은 다시 한번 날아오르게 된다. 이번에는 털보 스트라이커 조긍연 선수가 노선수에게 자극제가 되었고, 조윤환 선수의 볼배급 아래 노수진 선수의 득점 행진은 그칠줄 모르고 이어지며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골 (16골)을 기록하며, 소속팀 유공 코끼리의 창단 후 첫번째 우승을 안겼다. 이듬해인 1990년 발목 부상 탓에 부진한 모습을 보인 노수진은 1991년과 1992년 5골씩을 득점하면서 암흑기 유공의 한줄기 빛이 되었고, 1993년 많은 박수를 받으며 은퇴하였다.

4. 국가대표팀 경력

1985 ~ 1991년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1985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표
1986년 아시안게임 대표
1988년 서울 올림픽 축구대표
1990년 FIFA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대표

5. 은퇴 이후

은퇴 후 모교인 영등포공고의 축구부 감독으로 방승환, 정재희, 김동수, 박인혁 등 어린 선수들을 조련했다.

2013년부터는 김재웅 코치에게 감독직을 물려주며 교사직만 수행하게 됐다.

2023년 5월 1일, 승부조작범 날치기 사면 파동 후 이사진이 일괄사퇴한 대한축구협회의 새 청소년분과 이사로 선임되었다.

6. 플레이 스타일

중앙에서의 볼배급이면 볼배급, 득점이면 득점. 못하는게 없었던 만능 자원이었다. 황보관과 함께 유공의 공격진을 진두지휘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 때 유공이 공격수 복이 터졌던 탓(?)인지는 몰라도 이후 부천 SK는 고질적인 공격수 부재에 시달려야 했다. 만약 노수진 씨가 선수 생활 정리 후, 부천 SK의 공격 코치로 활동하며 공격수들을 조련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

7. 경력

1986 ~ 1993 : 유공 코끼리 / K리그
1987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1989년 K리그 MVP, K리그 시즌 베스트 11 수상

8. 지도자 프로필

1993 ~ 2003 : 영등포공고 축구부 코치
2005 ~ 2013 : 영등포공고 축구부 감독


[1]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금메달[2] 경기는 1:2로 한국이 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