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국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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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ACD32> 노(魯)나라 15대 국군 환공 桓公 | ||
성 | 희(姬) | |
씨 | 노(魯) | |
휘 | 윤(允), 궤(軌) | |
아버지 | 노혜공(魯惠公) 희불녈(姬弗涅), 희불황(姬弗湟) | |
아내 | 문강(文姜)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731년 ~ 기원전 694년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711년 ~ 기원전 69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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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나라의 15대 군주. 노혜공의 적장자이며, 노은공의 이복아우, 노장공의 아버지다. 사기에서는 이름이 희윤이라고 하며, 달리 희궤라고도 한다. 그는 형인 노은공을 죽이고 노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제양공의 동생 문강과 결혼했는데, 그녀와 간통하는 사이인 제양공이 노환공이 제나라를 방문했을 때 공자 팽생을 시켜 죽여버린 뒤 더러운 일을 도맡은 공자 팽생을 토사구팽한다. 참고로 노장공을 제외한 나머지 세 아들의 후손을 삼환이라 한다.2. 재위 기간
노환공은 공자 휘와 함께 서형인 노은공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노환공 3년(기원전 709년), 노환공은 제양공의 여동생 문강(文姜)[1]을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이것이 노환공 인생의 화근으로 작용한다.
노환공 6년(기원전 706년), 문강은 세자 동 즉 노장공을 낳았다. 그러나 노환공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환공 18년(기원전 694년), 노환공은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제나라로 갔는데, 문강과 그 오빠인 제양공은 사랑하는 사이여서 서로 간통했다. 옛말에 좋은 소문은 느리게 퍼지고, 나쁜 소문을 빠르게 퍼진다고 했던가? 노환공은 그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해 문강을 꾸짖었다. 그런데 문강은 제양공에게 이 일을 알렸다. 이에 제양공은 야비하고 더러운 계책을 냈다. 노환공이 돌아가는 길에 공자 팽생을 시켜, 노환공이 돌아가는 수레를 습격해 그의 뼈를 접었다. 노환공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2] 이에 노나라에서는 그 일로 항의하니 제양공은 공자 팽생을 죽여 사죄했다.[3]
장공을 제외한 나머지 아들 세명 경보(慶父),[4] 숙아(叔牙),[5] 계우[6]의 후손을 삼환이라 하는데 훗날 노나라의 국정은 삼환이 장악한다. 그리고 이것이 노나라 약체화의 원인 중 하나이다.[7]
3. 미디어 믹스
고우영 열국지에서는 살 날 얼마 안 남은 늙은 군주로 나오며 문강이 근친하던 버릇 못 버린 이유 중의 하나도 비실비실한 늙은이에게 시집을 가서 욕망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 노환공이 암살당한 것은 한창 팔팔할 나이인 37세 때다.[1] 이름이 아니라 시호를 앞에 두고, 성을 나중에 둔 형태의 이름이다.[2] 춘추좌씨전에서는 이를 그대로 적지 않고, '임금이 수레 안에서 돌아가셨다'라고만 기록되었다. 환공이 워낙 비참한 최후를 맞아서 차마 그대로 쓰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3] 비슷한 사례가 바로 위나라의 사마소의 수하 가충이 조모를 죽였는데, 직접 손을 쓴 성쉬, 성제를 죽인 일이다.[4] 맹손씨의 조상[5] 숙손씨의 조상[6] 계손씨의 조상[7]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해도 전국시대까지는 살아남았지만, 결국 초나라의 고열왕에게 망해버렸다. 그래도 고열왕 치세는 전국시대 후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