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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08:19:32

다리아 드미트리예바

<colbgcolor=#094949><colcolor=#ffffff> 다리아 드미트리예바
Дарья Дмитриева | Daria Dmitrieva
파일:다리아 드미트리예바.jpg
본명 다리야 안드레예브나 드미트리예바
Дарья Андреевна Дмитриева
Daria Andreyevna Dmitrieva
출생 1993년 6월 22일([age(1993-06-22)]세)
러시아 이르쿠츠크 주 이르쿠츠크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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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리듬체조
신체 173cm, 51kg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평가4. 수상 기록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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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前 리듬체조 선수이며 2012 런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다. 2013년 9월에 은퇴한 이후 2020년까지 리듬체조 심판과 웨딩 플래닝 사업을 병행했었다.

2. 선수 경력

2.1. 2008년

주니어 유럽선수권에 출전해 단체전과 리본에서 우승했다. 당시 러시아는 종목별로 각각 다른 선수를 출전시켰기 때문에 본인은 리본 경기만 참가가 가능했다.

2.2. 2009년

시니어에 데뷔했지만 다른 러시아 새내기 선수들처럼 결선 통과는 커녕 대회 출전 기회조차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예브게니야 카나예바다리아 콘다코바가 부동의 1, 2위를 지키고 있었고 올가 카프라노바도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러시아 주력 선수들이 불참한 그랑프리나 월드컵에 출전해 이름을 알렸고 2009 세계선수권에 러시아 팀으로 출전하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2.3. 2010년

전년도처럼 그랑프리와 월드컵에 간간히 출전하였고, 세계선수권 팀 종목 금메달에 기여했다. 공 결선에서는 예브게니야 카나예바에 이은 2위, 리본에서는 다리아 콘다코바를 제치고 우승을 했다.[1]

2.4. 2011년

명실상부 러시아의 대표 선수로서 거의 모든 국제대회를 예브게니야 카나예바다리아 콘다코바와 함께 출전했다.[2] 민스크에서 열린 유럽선수권에서도 단체전 우승에 기여했고 공에서도 동메달을 땄다.

여태까지 읽은 사람들은 한 가지를 눈치챌 수 있다. 드미트리예바는 2011년까지의 수상 경력은 항상 단체전 금메달+가끔 한 번씩 종목별 메달이 전부였다. 그 말은 즉슨 한 번도 메이저 대회 개인종합 결선에 나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못해서가 아니라 다른 러시아 선수들의 실력이 좋아서이다. 2009년에는 시니어에 올라왔을 때니 그렇다고 쳐도, 2010년부터는 비러시아 선수들에 비해 월등한 기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예브게니야 카나예바다리아 콘다코바에게 밀려 쿼터제[3]에 의해 예선에서 탈락을 해야만 했다. 아마 쿼터제에 의한 가장 막대한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그 둘이 안 나간 그랑프리나 월드컵 대회들에서는 양민학살을 하고 우승을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겼는지 이리나 비녜르2011 선전 하계 유니버시아드예브게니야 카나예바에 이어 드미트리예바를 내세우고[4] 카나예바에 이어 은메달을 따면서 드디어 메이저 대회 개인종합 포디움에 섰다. 뿐만 아니라 본인의 주종목인 리본 결선에서 카나예바를 또다시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5] 그 외에도 또다른 주종목인 공 결선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2011 세계선수권에선 드디어 다리아 콘다코바를 제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팬들이 하게 만들었으나, 하필 그 해에 주니어에서 올라온 자신의 충복 애제자 알렉산드라 메르쿨로바에게 메이저 대회 출전 기회를 주고 싶었던 비녜르가 곤봉 출전권[6]을 메르쿨로바에게 내주면서 개인종합 결선 출전 기회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7]

정말 팬들로서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 상황이었다. 비녜르를 죽입시다 비녜르는 나의 원수[8]문제는 이 대회에서 신내림을 받은 콘다코바가 예선 전종목에서 카나예바에 이어 2위를 차지해버린 덕에 이전 대회들과는 달리 종별 결선에조차도 나가지 못했다. 쿼터제도 죽입시다 쿼터제는 나의 원수 사실 이 경기에서 드미트리예바가 치명적 실수를 몇 번 하긴 했으나[9] 다른 나라 선수였다면 결선도 못 나갈 정도의 점수는 아니었다. 정말 쿼터제가 원수인 상황이였다.

2.5. 2012년

2011년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신내림을 받았던 다리아 콘다코바가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몇 프로 부족한 경기력으로 시즌 초의 경기들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덕분에 드미트리예바와 메르쿨로바에게도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사실 2012 유럽선수권은 올림픽 전초전과 비슷한 양상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대회의 로스터가 올림픽 로스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가 나갈지 주목하는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즌 중반에 무릎 부상을 입어버린 콘다코바 때문에 2인자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많은 팬들이 비녜르 버프를 받는 메르쿨로바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결국 메르쿨로바가 예브게니야 카나예바와 함께 유럽선수권에 발탁되었다.[10] 게다가 메르쿨로바가 그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드미트리예바의 입지는 더 좁아지게 된다.

이후에도 이리나 비녜르는 6월에 열리는 포어아를베르크 그랑프리와 7월에 열리는 민스크 월드컵 경기의 결과를 통해 출전 선수를 결정하겠다고 했고 2012 유럽선수권 우승자로서 그리고 리듬체조 신으로서 올림픽 자동출전자가 된 카나예바[11]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에게 희망고문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월 말에 열린 포어아를베르크 그랑프리의 로스터에 콘다코바는 빠져있었고 기자회견에서 비녜르는 콘다코바는 부상으로 인해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함을 알렸다. 그리하고 남은 한 자리를 향한 메르쿨로바와 드미트리예바의 경쟁은 시작되었다.

예선에서 전 종목을 여유 있게 통과한 카나예바[12]와 함께 드미트리예바는 후프를 제외한 전 종목의 예선 통과에 성공하고 공과 곤봉에선 카나예바에 이은 2위를, 리본에선 실수를 한 카나예바를 제치고 우승하며 선전한다. 이 경기에서 리본을 심하게 말아먹은 메르쿨로바를 보고도 아직 애제자에 대한 희망을 못 놓은 비녜르에 의해 로스터는 정해지지 않았다.

사실상 올림픽 전초전인 7월 중순의 민스크 월드컵 대회에 세사람은 나란히 출전하고 드미트리예바는 곤봉을 제외한 전 종목 2위의 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메르쿨로바가 곤봉만 빼고 전종목에서 삽질을 하며 예선 광탈을 해버린 덕이 승부의 결과는 나온 듯 했다.

그러나 이쯤 되면 포기할 만도 한데 자신의 애제자를 너무 사랑한 비녜르는 아직도 결정이 나지 않았다고 간을 보고 있었다. 팬들은 정말 열불이 뻗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다. 당시 올림픽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리듬체조 예선 참여 선수 명단에 메르쿨로바가 껴있었다. 경기 전만 해도 메르쿨로바와 드미트리예바 둘 다 공항에서 보였다고 해서 희망을 잃지 않았던 팬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고 다들 비녜르를 저주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라면 재미 없어했다.

불과 며칠 뒤 알렉산드라 메르쿨로바가 부상으로 은퇴했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비녜르가 그것을 인정하는 인터뷰를 함으로서 드미트리예바는 드디어 올림픽 참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린다.[13]
파일:다리아 드미트리예바3.jpg
2012 런던 올림픽
그리고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듯 드미트리예바는 예선 첫날 후프를 떨어뜨린 카나예바를 제치고 1위를 하는 선전을 하였으나 예선 둘째날 곤봉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하며 원래 자리 2위로 돌아가고 결선에서도 2위를 유지하며 은메달을 딴다. 정말 장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올림픽 이후에는 카나예바가 경기를 참여하지 않는 리타이어 모드에 들어갔고 드미트리예바는 카나예바 대신 양민학살을 하며 참여한 대회들의 금메달을 쓸어담았다.

2.6. 2013년

6월에 예브게니야 카나예바가 은퇴했고 카나예바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뒤이어 은퇴해 버린 다리아 콘다코바, 아직도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알렉산드라 메르쿨로바, 그리고 자국 주니어 선수 풀을 생각했을 때 향후 1-2년 간 드미트리예바의 미래는 매우 밝은 걸로 예상되었다.[14] 다만 룰이 바뀐다는 게 문제였다. 그녀는 원래 할 수 있는 기술이 그다지 다양하지 않은지라 난도는 하향 평준화 되면서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게 유도하는 다음 시즌 규정에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같은 기술이라면 러시아 선수가 더 실시가 안정적인 편이니 시즌이 시작되기 전엔 어떻게 될 지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즌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고 결국 그 해 9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여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7. 은퇴 이후

국제체조연맹 심판 시험에 합격하였고 2014년 2월 초에 있었던 러시아 국내대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심판직을 맡기 시작했다. 2015년 7월에 부다페스트 주니어 월드컵에 시상자로 나왔고, 인터뷰에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2017년 6월, 이혼 사실을 밝혔다. 남편인 알렉산더 라둘로프가 NHL의 유명 선수인데다가 기존 팀에서 타 팀으로 옮기는 계약문제가 이혼 시기랑 겹쳐서 북미 언론에 화제가 되었다. 기존 팀인 카나디앵 드 몽레알에서 댈러스 스타스로 옮기는 계약 과정이 길어졌는데 라둘로프가 부인에게 계약금 안 뜯기려고 이혼 먼저 하고 새 계약을 하려고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실제로 이혼이 마무리 된 이후 댈러스와 재계약을 하였다. 드미트리예바는 본인 인스타그램에서 결혼할 때 프리넙(Prenup)[15]을 썼기 때문에 돈과 관련된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하였다. 일단 양육비도 지불하고 아들을 위해 간간히 가족끼리 모이기도 했다. 가장 큰 이혼 원인은 남편의 건전하지 못한 생활이라고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간접적으로 표현 되었다. 미국 하키 팬들 사이에도 라둘로프가 매일 밤 클럽에 가서 마리화나 피고 논다는 말이 많았다.

이혼 이후로도 틈틈히 고향에 내려가서 어린 학생들의 훈련을 도와주면서 개인적으로는 웨딩 플래닝 사업을 하고 있다. 본인의 결혼식을 그리스 신화를 테마로 아주 삐까번쩍하게 했는데[16] 본인의 의견이 많이 들어갔다고 하는걸 보니 이런쪽에 안목이 나름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혼 후에도 라둘로바 성은 그대로 가지고 가는 듯 하다. 남편이 유명하다 보니 러시아 일반인들은 '리듬체조 선수 다리아 드미트리예바'보다 '라둘로바의 전처 다리아 라둘로바'로 더 많이 기억한다. 이혼 후에 여러모로 깨달은 게 많은지 의미심장한 글을 자주 올리고 있다.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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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티드 링 피봇
다리아 콘다코바와 함께 견고한 피봇으로 유명한데 특히 프론트+파세 복합피봇과 백스플릿 피봇, 서포티드 링 피봇으로 유명하고 팡셰 자세도 좋은 편이다. 그러나 피봇이 주특기면서도 를르베가 낮아 콘다코바랑 같이 까였다. 이런 점에서도 콘다코바와 비슷하다.

피봇에 강점을 보이는 만큼 주종목은 리본으로[17] 세계선수권 등 큰 대회의 리본 결선에서 우승한 경력도 몇 번 있다. 공 루틴도 피봇 위주로 구성하고 성적도 좋은 편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점프가 약한 편이고 구사하는 기술의 다양성도 떨어지는 편이다. 수구 조작도 창의적인 수구 조작을 보여주는 콘다코바에 비해 많이 약하고 실수도 자주 하는 편이다. 그래서 곤봉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18] 모든 난도를 골고루 구사해야 하는 후프나 점프가 중요한 줄에서도 마찬가지다. 리본과 공을 제외하면 메이저 대회 종목별 포디엄에 콘다코바에게 밀리는 덕에 서본 적이 없다. 특히 줄은 시니어 대회에서 사라져서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카나예바만큼 만능이었다면 애초에 알렉산드라 메르쿨로바와의 혈전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한 번씩 수구가 아예 밖으로 나가버리는 등의 엄청난 실수를 하곤 하는데 그게 기술 다양성의 부재와 함께 러시아 3위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이다. 그래도 경력이 쌓이면서 실수도 많이 줄었고 피봇 실시만큼은 콘다코바보다도 좋아졌다.[19] 유연성이 절대 떨어지지 않지만 백벤드가 잘 안되는 걸 봐서 허리 유연성과 다리 근력이 약한 것으로 보인다.

팬들이 꼽는 드미트리예바의 영업 영상은 역시 2012 런던 올림픽 개인종합 결선에서 보여준 리본루틴으로 드미가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카나예바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종목이다.[20] 다이나믹하면서도 섹시한 안무에 음악과 혼연일체된 드미의 자신감 넘치는 연기까지 본인의 모든 장점을 다 보여준 인생 경기였다. 카나예바 팬들도 이날 리본만큼은 드미트리예바가 카나예바를 능가했다고 보고있다. 사실 카나예바가 리본에서 실수를 2번 하였다.[21] 그리고 이게 현역 마지막에서 2번째 인생경기이기도 하다.[22]

카나예바를 연상시키는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뭐니뭐니 해도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카나예바라는 절대강자와 콘다코바라는 부동의 2인자 그리고 떠오르는 신예 그리고 비녜르의 비호를 받는 메르쿨로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묵묵하고 꾸준히 훈련을 했다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3-4인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은메달 2012 런던 종합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9 미에 단체전
금메달 2010 모스크바 단체전
금메달 2010 모스크바 리본
금메달 2011 몽펠리에 단체전
유럽선수권
금메달 2011 민스크 단체전
동메달 2011 민스크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2012 브르노 종합
은메달 2010 베를린 종합
은메달 2011 브르노 종합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11 선전 리본
은메달 2011 선전 종합
주니어 유럽선수권
금메달 2008 토리노 단체전
금메달 2008 토리노 리본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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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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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예브게니야 카나예바가 예선에서 리본이 엉켜 3위를 하여 쿼터제 때문에 결선에 나가지 못했다.[2] 물론 큰 그랑프리 대회에는 카나예바와 콘다코바가 우선순위로 나가고 둘 중 하나가 빠질 경우엔 드미트리예바가 땜빵하는 식이었다.[3] 리듬체조는 결선에 각 나라당 2명의 선수밖에 나갈 수 없다.[4] 사실 러시아의 리듬체조계에서의 독주를 이어가는 것이 목표인 이리나 비녜르의 수상할 것 같은 선수가 아니면 과감하게 메이저 대회에서 빼버리는 경향을 생각했을 때 어느 정도 비녜르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5] 이 선수가 왜 이렇게 리본에 강한지는 밑에 나와있으니 참고.[6] 드미트리예바는 리본과 공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곤봉과 줄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7] 개인 종합 결선 출전은 예선에서 4종목 모두에 출전해야만 가능하다.[8] 그나마 콘다코바가 0.05점 차이로 카나예바에게 지는 등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던 덕분에 '어차피 올라갔어도 콘다코바만큼은 못 했을 거야' 라고 팬들이 자위할 수 있었다.[9] 특히 예선에서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큰 실수를 했다.[10] 사실 이건 드미트리예바의 문제도 있는 게 메르쿨로바는 지저분한 실기로도 유명하지만 쩌는 유연성으로 카나예바만큼 다양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선수다. 드미트리예바는 피봇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비녜르가 메르쿨로바를 더 마음에 들어할 만 했다. 비녜르는 2008년에도 더 경력이 많은 베라 세시나를 제치고 더 난도가 높은 예브게니야 카나예바를 내보내고 그녀가 우승하고 세계 제패를 하는 것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카나예바의 후계자로 역시 어리면서 난도가 높은 알렉산드라 메르쿨로바를 찍은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본인이 메르쿨로바를 직접 코칭 중이었다는 것이겠지만이 결정은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했고 메르쿨로바는 수많은 안티를 생성하게 된다.[11] 사실 모든 사람이 카나예바가 유럽선수권을 우승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올림픽 팀의 한 자리그리고 금메달 자리는 카나예바를 위해 비워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12] 이때 후프에서 30점 만점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13] 그나마도 이것도 비녜르의 결정이 아니라 올림픽 전에 트라이얼 형식으로 모의 대회를 치른 후 메르쿨로바가 메달을 못 딸거 같으니 모의 대회에서 더 컨디션이 좋아보였던 드미를 경기에 보내라는 상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비녜르는 끝까지 메르쿨로바를 밀려고 했던 것이다. 드미가 은메달을 땄기 때문에 현재는 그 결정에 불만이 없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비녜르에게는 속상한 경험이었는 듯하다.[14] 러시아 리듬체조계에서 1-2년은 다른 나라에선 4년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세대교체가 빠르다.[15] 재산 분할을 비롯한 결혼 조건을 명시한 혼전계약서이다.[16] 인터넷에 'Radulova Wedding'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다.[17] 각 수구마다 주가 되는 '주요 난도 그룹' 이라는 게 있는데 리본은 피봇, 줄은 점프, 곤봉은 발란스가 각 수구에서의 주요 난도이다. 후프는 모든 난도를 골고루 잘해야 한다.[18] 드미트리예바의 곤봉과 카나예바의 곤봉을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발란스와 리스크도 중요한 곤봉인데도 피봇에 의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19] 하지만 런던 올림픽 예선에선 평소에 약했던 곤봉에서 실수했다.[20] 복합피봇에서 살짝 흔들린 팡셰나 낮은 점프 정도가 실시의 흠이다사실 점프는 언제나 낮았기 때문이다.[21] 이미 마지막 수구인 리본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총점이 3점 차이였기 때문에 카나예바가 리본을 밖으로 날리지 않는 이상 우승이 확정이었다. 근데 실제로 루틴 마지막 즈음에 리본을 거의 놓칠뻔 해서 팬들은 심장 마사지를 받았다.[22] 마지막은 브르노 그랑프리에서 양민학살을 하며 전종목 금메달을 획득하며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리본만큼은 올림픽에서의 경기력이 더 돋보였다. 이온컵은 FIG에서 인정한 국제대회가 아니고 갈라에 가깝기에 제외한다.[23] 사실 우아한 갈라는 카나예바가 독식하고 다이나믹한 루틴은 콘다코바가 가져가니 팀에서 특성을 이런 쪽으로 잡은 것 같고, 실제로 끼가 넘치는 평소 성격과 잘 맞는다.[24] 러시아에서는 돈만 있으면 비싼 총이랑 사진을 찍는 것이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사실 이건 러시아만 그런 건 아니고, 중동이나 서남아시아 등에서도 부자들이 총 사진을 찍는 게 딱히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문화가 있다. 총기 소지가 흔하고, 치안이 원체 안 좋아서 부자들 중에선 총기를 가진 사람이 더 많기도 하거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처럼 학교 등지에서의 총기 난사가 고질적인 사회문제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25] 반려견을 위한 약물을 국경 지역에서 힘들게 얻었지만 일주일 후에는 이것도 없어지고 자신은 반려견이 힘겹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