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더라이어스 바셀 Darius Vassell | |
본명 | 더라이어스 마틴 클라크 바셀 Darius Martin Clarke Vassell | |
출생 | 1980년 6월 13일 ([age(1980-06-13)]세) | |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 미들랜즈주 버밍엄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70cm | |
포지션 |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 |
소속 | 선수 | 로믈루스 FC (?~1996 / 유스) 아스톤 빌라 FC (1996~1998 / 유스) 아스톤 빌라 FC (1998~2005) 맨체스터 시티 FC (2005~2009) MKE 앙카라귀쥐 (2009~2010) 레스터 시티 FC (2010~2012) |
국가대표 | 22경기 6골 (잉글랜드 / 2002~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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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2. 플레이 스타일
100m 11초대를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와 민첩성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흔들어 놓는데 탁월했던 선수였으며, 이로 인해 후반에 상대 수비진이 힘이 빠진 상황에 조커로 투입되어 슈퍼 서브로서 위협적인 모습을 발휘했다. 탄탄한 체격으로 단신임에도 몸싸움에 잘 밀리지 않았다. 다만 골 결정력은 아쉬운 편이라 스트라이커가 아닌 윙어로 종종 기용되기도 했다.3. 클럽 경력
3.1. 경력 초기
웨스트 미들랜즈 주의 버밍엄 출신으로, 지역 유소년팀인 로믈루스 FC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지역 명문팀인 애스턴 빌라 FC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3.2. 아스톤 빌라 FC
1996년, 빌라 유소년 팀에 입단한 뒤 2년만에 1군으로 콜업되어 1998년 8월 미들즈브러 FC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여느 유망주들처럼 컵대회 출전으로 경험을 쌓으며 실력을 다진 뒤 빠른 주력과 민첩성을 기반으로 슈퍼 서브로 활약했다. 그러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 주전 멤버로 도약했고, 한일 월드컵을 앞둔 2001-02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12골을 몰아치며 어린 나이에 월드컵 최종명단에 승선하는 기염을 토했다.월드컵을 마친 뒤에도 팀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선보이며 2005년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기 전까지 202경기동안 45골을 기록했다.
3.3. 맨체스터 시티 FC
2005년 7월, 200만 파운드에 맨시티에 입단한 그는 첫 시즌 노장인 앤디 콜과 호흡을 맞추며 리그 및 컵대회 포함 41경기 10골, 알짜배기 활약을 선보였다.그러나 2008-09 시즌 호비뉴, 숀 라이트필립스 등 선수들에게 주전 자리를 밀려 리그 8경기 출전에 그치며 입지가 크게 좁아지자 결국 시즌을 마친 뒤 팀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3.4. MKE 앙카라귀쥐
계약만료로 팀을 떠난 그의 다음 행선지는 터키 쉬페르리그의 앙카라귀쥐였다.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다소 꺾인 모습을 보여주며 부침을 거듭하고 있지만, 대표팀 출신에 잔뼈 굵은 EPL 공격수였기에 그가 공항에 도착했을때 무려 3,000명에 달하는 팬들이 그를 반겨주었다.하지만 2009-10 시즌 동안 25경기 4골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하고 한 시즌만에 팀을 떠났다.
3.5. 레스터 시티 FC
2010년 10월 20일, 그는 자신을 대표팀에 데뷔시켜준 스벤 예란 에릭손이 부임 중인 레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계약기간은 2011-12 시즌까지로, 2년 계약이다.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활약하다가 2011년 10월 29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전방 십자 인대 파열을 당하면서 조기에 시즌을 마감했다. 이후 시즌이 끝난 뒤 어떠한 계약 제안을 받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팀을 떠난 뒤 무소속 신분으로 팀을 찾다가 2016년 1월 28일 35세의 나이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4. 국가대표 경력
2002년 2월 13일, 네덜란드와의 친선전에 데뷔하여 경기 내내 뛰어난 움직임을 선보이더니 후반 15분에는 환상적인 바이시클킥으로 동점골이자 자신의 대표팀 데뷔골을 기록하는 등 만점짜리 활약을 선보인 덕분에 데뷔전에서 경기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이후 4차례 평가전에서 보여준 뛰어난 모습과 클럽에서의 활약도 훌륭했던 덕에 22살의 나이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최종엔트리에 포함되는 행운을 얻었다. 또한 본선 첫 경기인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전하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 외 나이리지아와의 3차전,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는 교체로 출전했다.
월드컵 이후에도 에릭센 감독의 신임을 받아 대표팀에 자주 모습을 보였으며, UEFA 유로 2004에도 참가하였다. 그리고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 교체로 투입되었으나,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실축하면서 준결승 탈락의 역적으로 몰려 자국 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1]
결국 이 대회 이후 소속팀에서의 활약도 미미해지면서 더 이상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5. 은퇴 후
은퇴 이후에는 종종 언론과의 인터뷰나 방송에 출연하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6. 여담
- 스벤 예란 에릭손과 인연이 참 깊다. A대표팀에 데뷔시켰으며, 두 번의 국제 메이저대회에 데려갔고, 이후 클럽 팀에서도 맨시티, 레스터 시티에서 사제지간으로 있었다. 이러한 행보에 인맥축구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
7. 같이 보기
1 제임스 · 2 G. 네빌 · 3 A. 콜 · 4 제라드 · 5 테리 · 6 캠벨 · 7 베컴 ⓒ · 8 스콜스 · 9 루니 10 오언 · 11 램파드 · 12 브리지 · 13 로빈슨 · 14 P. 네빌 · 15 킹 · 16 캐러거 · 17 버트 18 하그리브스 · 19 J. 콜 · 20 다이어 · 21 헤스키 · 22 워커 · 23 바셀 |
스벤예란 에릭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