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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9:41

델리 알리/플레이 스타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델리 알리

1. 개요2. 전성기 시절3. 전성기 이후4. 멘탈5.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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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델리 알리의 플레이스타일을 정리한 문서.

2. 전성기 시절

전성기 시절 알리는 유연성이 돋보이는 신체와 움직임, 퍼스트 터치를 이용한 공격 전개에 강점을 드러냈었다. 알리는 190에 가까운 큰 신장을 보유하였음에도 몸이 상당히 유연하였으며,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통해서도 공을 쉽게 받아냈다. 유연한 신체능력과 더불어, 공을 다루고 조종하는 데 상당히 자유로웠다. 특히, 알리의 퍼스트 터치는 부드러우면서도 정교하였으며, 기본적으로 내재된 창의성까지 뛰어났다. 공을 오래 소유할 필요 없이 한 번의 터치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타이밍에 패스를 찔러주고, 생각치도 못한 방향으로 드리블을 칠 수 있었다.[1]

일반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는 3선으로 내려와서 공을 받아준 이후, 중원에서 공을 운반하고 배급하면서 적군의 파이널 서드는 물론, 아군의 파이널 서드에서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플레이메이커 혹은 찬스메이커 유형이 많다. 그러나, 20대 초반의 알리는 조금 더 공격적인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느낌으로, 왕성한 활동량으로 전방까지 침투하여 자신이 직접 골에 관여하는 미들라이커 기질을 가졌었다. 뛰어난 지능을 필두로 하는 순간적인 센스가 돋보이는 연계와 공간 침투를 통해 공격을 전개하는 링커의 역할도 두루 소화했다.

이러한 역할에 수행하는 데 있어, 알리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혔던 능력은 바로 그의 천부적인 오프 더 볼과 뛰어난 축구 센스. 패스 길을 보는 시야와 빠른 판단, 빈 공간으로 시의적절하게 침투해 들어가는 움직임, 페널티 박스 안팎에서의 연계 능력까지 축구 지능과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인 플레이를 자주 보여줬다. 알리가 DESK 라인의 일원으로 활약했을 때에는 나머지 3명의 선수들과 함께 공격을 풀어내고 스위칭도 활발하게 가져가면서 상대 수비의 분산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해리 케인이 연계 플레이를 위해 자신의 위치보다 내려오면, 직접 최전방으로 이동해서 침투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은 물론, 본인이 중앙에 있을 때 측면으로 빠지거나 내려와서 손흥민이 수비진 사이로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으며, 에릭센의 패스 길이 막혀있을 때에는 본인이 공을 받고 빠른 템포의 키패스를 보내주었다.[2] 이러한 스위칭 플레이는 왕성한 활동량이 없으면 이행하기 어려운데, 알리는 활동량이 뛰어나고 체력도 좋아서 중원과 상대 진영을 누비면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알리의 뛰어난 기동력은 그가 공미로서 경쟁력을 잃어버린 뒤 맞이한 누누 체제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알리의 롱패스와 슈팅 정확도가 좋지 못한 것과는 별개로 볼 트래핑과 발리 슈팅의 퀄리티는 매우 좋았다. 이는 그의 뛰어난 퍼스트 터치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데, 후방에서 날아온 토비의 롱볼과 알리의 트래핑에 이은 슈팅은 포체티노 체체가 절정에 달했을 때 토트넘이 자랑했던 공격옵션 중 하나였으며 페널티 박스에서 위치를 잡은 뒤 롱패스를 완벽히 컨트롤해 수비수를 따돌리고 간결하게 골을 넣는 알리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3]

3. 전성기 이후

알리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한창 기량을 발전시켜야 할 나이에 불우한 과거와 멘탈 문제에서 기인한 훈련량 부족으로 퇴보를 거듭하다 현재는 특색이 없는 무장점 미드필더로 전락했다. 재능은 확실했으나 멘탈 문제로 인한 훈련량 부족 등 여러 악재를 겪으며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기량이 크게 하락한 케이스로 꼽힌다.

알리의 몰락을 알기 전에는 그의 단점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으며, 20대 초반의 공격형 미드필더 알리는 장점만큼 단점도 확실한 명암이 있던 선수였다. 본인의 센스에 비해 패스 선택이 좋은 선수가 아니었으며, 짧은 스루 패스를 제외하면 이외의 패스 정확도에 있어서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속도가 빠르거나 공을 간수하는 개인 기술이 뛰어난 편도 아니라 3선에서 내려와 오랜 시간 공을 운반하는 것은 물론, 빌드업 상황에서 경기를 조율하고 공격의 방향을 설정하는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아쉬웠다. 어디까지나 해리 케인, 손흥민, 크리스티안 에릭센 등과 연계해 박스 근방에 만들어진 공간에 침투해 골을 노리는 스타일로, 경기를 조율하는 창의적인 플레이보다는 자신이 득점에 관여하기 위한 창의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플레이에 능했다.[4]

또 하나의 문제는 골 결정력. 세컨 톱 유형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프리미어 리그 최정상급의 기량을 선보일 때조차도 슈팅이 빗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슈팅 수 대비 득점 기록이 좋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알리의 슈팅을 보면 좋은 트래핑 후 결정짓는 모습이나 발리 슛 등으로 상상하지 못한 어려운 상황에서 멋진 골을 꽤나 보여주긴 했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골키퍼의 정면으로 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발리 슈팅을 즐겨하는 선수임에도 슈팅 임팩트의 정확도가 아쉬울 때가 많았으며, 그냥 발만 가져다대는 느낌의 슈팅이 대다수였다. 이 문제는 밸런스와 약발과도 관련되어 있는데, 왼발을 잘 못 써서 왼발 각이 나와도 오른발 각을 찾으려고 애쓰다 뺏기거나 억지로 오른발로 때리려다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며 힘없이 골키퍼의 정면으로 가는 것이다. 중거리 슛팅을 즐겨하는 선수가 아니라서 뛰어난 박스 침투를 통해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자주 만들어내는 알리의 플레이 특성상 이러한 부분은 더욱 두드러졌다.

그의 은사이자 최전성기를 보낸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가 임기를 보낸 동안에는 많은 선수들이 알리의 단점을 커버해 주었다. 우선 알리의 부족한 운반 및 경기 조율 능력은 중원에서의 에릭센과 무사 뎀벨레, 후방에서의 벨기에 듀오가 커버해줬다. 후방에서 공을 잘 다루는 알데르베이럴트와 베르통언이 있었기에 라인을 높이면서 공을 운반해야 하는 거리가 줄어들었으며, 3선에서 공을 받아줘서 압박을 벗겨내는 뎀벨레와 공을 받아서 전방으로 뿌려주는 에릭센의 존재가 있었기에 알리는 본인이 가장 잘하는 박스 침투를 통한 득점과 적은 수의 터치를 이용한 간결한 연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공격 상황에서의 골 결정력에 있어서는, 당시 최전방 공격수로서 월드클래스급의 케인이 전방에 버텼으며, 좌측면에는 적은 수의 슈팅을 가져감에도 어마어마한 골 결정력을 보여주는 손흥민이 알리의 득점력 분담을 메꾸어주었다. 이렇듯 후방과 중원, 공격 진영까지 많은 선수들이 알리의 단점을 메꾸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알리는 본인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18-19 시즌부터 조금씩 기량이 하락하는 징조를 보이며 본격적으로 알리의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2018-19 시즌의 알리는 벌크업을 한 이후로 유연성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으며, 부상까지 당해 경기력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여기에 더해 중원에서 혼자서 공을 몰고 적진을 뚫어내는 탈압박에 능한 뎀벨레의 시즌 아웃급 부상과 이적으로 인해 포체티노 체제의 시스템에서 공을 운반하는 역할을 또 다른 미드필더들이 분담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정확히는 팀의 빌드업 전술 그 자체였던 뎀벨레가 시즌 아웃을 당한 2018-19 시즌부터 급추락했다.[5] 특히 프리미어 리그에서 상위권의 피지컬을 갖춘 무사 시소코가 본인의 투박한 발밑으로 인해 3선에서 공을 운반하는 능력이 떨어지자 공격 전개의 과정에서 공을 부드럽게 다루면서 전방으로 보내주는 에릭센의 비중이 너무 무거워졌고, 이 때문에 에릭센은 본인이 공을 운반하고 배급하며, 파이널 서드에서 키패스도 건네주는 등 너무나 많은 역할을 소화하게 되면서 다음 시즌에 과부하에 걸리게 되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뎀벨레를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이 본연의 임무를 잘해줬기에 알리의 기량 하락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알리의 경기력 하락이 본격적으로 비춰진 2019-20 시즌에는 후방에서의 벨기에 듀오, 중원에서의 에릭센까지 아약스에서 건너온 트리오의 기량이 점차 떨어지면서 단순히 알리뿐만 아니라 토트넘 전체의 빌드업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러한 1차 빌드업의 문제는 포체티노의 경질 후 선임된 주제 무리뉴 체제에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가면서 1,600억이라는 막대한 보상금을 얻고 시작한 2019-20 시즌에서의 이적 시장에서의 대실패도 알리의 몰락, 토트넘의 몰락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뎀벨레의 이적 후 포체티노는 그의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탕기 은돔벨레를 영입했지만, 은돔벨레는 느린 템포와 낮은 에너지 레벨로 인해 프리미어 리그 적응에 실패하였고 온 더 볼과 오프 더 볼에 모두 능해서 알리와 에릭센의 역할을 분담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지오바니 로셀소는 잔부상으로 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실패했다. 아끼고 아꼈다가 크게 지를 타이밍에 토트넘이 이런 식으로 헛돈을 쓰게 만든 포체티노는 결국 경질되었고, 무리뉴는 후벵 디아스브루노 페르난데스라는 토트넘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선수들을 추천했지만 위 3명에 스티븐 베르흐베인, 잭 클라크까지 헛돈을 너무 많이 쓴 다니엘 레비는 돈을 더 쓰기 싫어서 주저하다 결국 둘 다 놓쳤다.

이 시즌부터 토트넘은 전방에서 주로 활약하던 공격수들, 그 중에서도 특히 케인이 내려와서 공을 받아주고 전방으로 뿌려주면 손흥민이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을 통해 득점을 마무리하는 패턴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무리뉴도 토트넘의 이러한 상황을 인지했는지 토트넘의 주 전술을 손케 듀오의 역습 전개를 주무기로 하는 전술을 사용했고, 라인을 높인 상태에서 상대 박스 안으로의 침투를 통해 득점을 노리는 알리의 플레이 방식은 무리뉴의 역습 전술에 어울리지 않다는 평가와 함께 교체 자원으로 전략하게 되었다.

4. 멘탈[6]

몰락 부분에서 서술한 여러 단점들이 있지만, 많은 팬들이 추측하는 알리의 가장 큰 단점이자 몰락 원인으로 그의 불성실한 워크 에식과 멘탈 문제를 비롯한 경기 외적인 이슈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에버튼 이적 후 동료인 알렉스 이워비는 알리는 훈련을 대충 해서 감독에게 신뢰를 못 받는다고 팩트폭력을 시전하기도 했다. 즉 노력 부족이 프레임이 아니라 사실임이 밝혀졌던 것. 그런데 주제 무리뉴 말고는 알리의 게으른 태도에 관련해서 디스한 사람이 없었는데, 아마 동료들은 알면서도 실드를 쳐준 것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토트넘은 락커룸 분위기가 좋기로 유명하다.

다만 경기를 보는 팬들 중에서는 알리는 단순히 불성실해서 망한 게 아니라 진짜로 번뜩이던 센스 자체가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져 버려서 망한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보통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잃어버린 축구 선수들은 피지컬의 하락세나 멘탈 문제로 망하더라도 잘 나가던 시절의 날카로운 센스를 종종 보여주곤 하는데, 알리는 피지컬이나 멘탈 이슈가 심각하게 터지지 않았는데 그런 센스가 실종되어 추락했다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전 동료들 덕분이라기에는 알리는 전성기 끝물 시절조차 부진할지언정 타고난 센스를 바탕으로 한 건씩은 해주거나 주 포지션이 아닌 중앙 미드필더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이는 등 지금처럼 어디에 있어도 아무것도 못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강점을 희생해 동료들을 돕는 포지션으로 나와도 제 몫은 해내던 게 그 시절의 알리였다.

그리고 게리 네빌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러한 태만의 원인이 어릴 적의 불우한 가정사[7] 탓일 가능성이 조명되었다.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불행한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일시적인 쾌락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주변에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손길도 있었지만 문제를 숨기고 항상 괜찮은 척 했다고 한다.[8] 또한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제를 복용했으며 이로 인해 생체 리듬에 문제가 생겨 기량 하락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불행한 가정사가 사람을 어디까지 망쳐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알리에게 꼬리표처럼 붙은 "게으르다"는 편견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본의 아니게 이 편견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무리뉴는 정작 알리에게 게으르다고 지적한 일주일 뒤 자기가 잘못 본 것 같다며 알리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고 한다.[9] 하지만 토트넘 다큐멘터리에는 무리뉴가 그를 게으르다고 쿠사리를 주는 장면만 실리고 사과하는 내용은 영상에 실리지 않아서 알리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겨버리고 말았고, 미디어의 잘못된 묘사로 인해 사람들이 자기한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그저 쉽게 게으름이라는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5. 총평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PFA 영플레이어상과 올해의 팀에 2번 드는 등 한때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폴 스콜스를 잇는 잉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미드필더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은 특급 유망주였지만, 타고난 축구 센스를 가졌음에도 결국 좋지 않은 가정사에서 기인한 최악의 멘탈과 이에 따른 부족한 자기 관리로 인해 본인의 장점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근본론의 또 다른 훌륭한 예시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다.[10] 알리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후배들인 주드 벨링엄, 데클란 라이스가 어린 나이에 재능을 만개하고 제 기량을 펼치는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

토트넘 초창기 시절의 알리는 센스 있는 침투와 볼터치를 이용한 간결하면서도 독창적인 플레이로 수비를 벗겨내거나 상대팀의 주의를 끄는 역할을 맡았지만,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체제 이후 잦은 감독 교체에 따른 전술 변화와 부상에 이어 나이가 들면서 어린 선수 특유의 대담함과 감각이 옅어졌으며, 멘탈과 태도 문제가 겹치면서 성장 그래프가 급격히 하향곡선을 그렸다. 특히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이런 센스마저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문제는 알리의 플레이 스타일이 독창적인 만큼 전술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 이런 감에 의존한 플레이를 제외하면 혼자 중원에서 플레이메이킹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슈팅력도 기복이 심한데다 약발 문제가 두드러지면서 알리는 점차 머릿수를 채우는 체력 좋은 선수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진의 원인을 토대로 알리를 평가하자면 사실상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뛰는 느린 포처라고 볼 수 있다. 알리는 이때까지의 행보를 봤을 때 빌드업이 탄탄하고 킬패스를 찔러줄 플레이메이커가 있는 강팀에서 세컨톱으로 뛸 때에만 좋은 폼을 보여주는, 매우 한정된 롤에서만 뛰어난 폼을 보이는 선수였었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한 후 거짓말처럼 폭망한 에덴 아자르와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케이스다. 아자르는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 잦은 부상과 체중 관리 실패, 첼시 시절의 혹사로 인한 여파가 겹쳐지는 등 태만으로 인한 자기관리 실패라는 보다 명확한 이유로 인해서 자멸한 반면, 알리는 사생활 이슈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및 유리 멘탈, 2018-19 시즌 부상당한 이후의 무리한 벌크업, 본인의 단점을 가려주고 역할을 분담해주던 팀 동료들의 이적 등 여러가지 상황이 겹쳐졌다는 점에서 대충이나마 원인을 알 수는 있지만 이유가 다소 모호한, 소위 말하는 '축구력' 자체가 사라진 케이스이다.[11] 종목은 다르지만 조시 해밀턴과도 유사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12]


[1] 그의 창의적인 볼 터치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15-16시즌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의 원더골 장면인데, 그는 케인의 크로스를 에릭센이 헤더로 공중에 떨궈주자, 그 공을 공중에서 퍼스트 터치로 잡아놓고 두 번째 터치에서 트래핑해 공을 띄운 다음, 세 번재 터치에서 터닝 슛을 가져가면서 득점을 기록했다. 이 경기 이후 알리에 대한 주목도는 급격하게 올랐으며, 많은 이들이 프랭크 램파드폴 개스코인의 재림 및 후계자로 알리를 평가했다.[2] 2020-21시즌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손케 듀오의 등장 전, 2016-17, 2017-18 시즌 센스 있는 알리의 패스를 손흥민이 마무리하는 모습이 많았던 만큼 당시 둘의 호흡은 경기장 밖에서의 모습처럼 남달랐고, 둘만의 독특한 골 세리머니는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다.[3] 암스테르담의 기적 당시 루카스 모우라의 극적인 역전골은 후방에서의 롱볼을 알리가 절묘한 스루패스로 모우라에게 연결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볼을 받은 선수가 페르난도 요렌테로 약간 다른 점이 있다.[4] 공미지만 플레이메이커보다는 슈팅을 노리는 선수라는 점이 지오바니 로셀소, 에릭 라멜라와 동일하다. 로셀소는 알리와 달리 전진 패스를 통한 볼 배급, 3선에서 볼 운반 능력도 갖추고 있었기에 토트넘에 와선 메짤라나 박투박으로 기용되기 시작했고, 라멜라의 경우는 세리에 A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몸싸움 강도와 빠른 템포를 견디며 중앙에 자리잡을 능력이 없었기에 측면으로만 자리가 국한되었다.[5] 2018-19 시즌에 알리는 그동안의 활약했던 커리어 중에서의 최저점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는 뎀벨레가 사라지면서 토트넘이 빌드업을 못하게 된 것에 크게 기인하는데, 알리는 오프 더 볼 능력이 뛰어나지만 속도가 빠른 선수는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뒷공간 침투가 뛰어난 선수가 아닌, 점유율 축구에서 상대의 패널티 박스 앞에서 공이 돌고 있는 와중에 짧은 거리의 침투를 잘하는 선수라는 의미다. 뎀벨레가 있었을 당시의 토트넘은 일단 뎀벨레에게 공이 가면 뎀벨레가 월드클래스급인 드리블과 탈압박으로 상대 진영까지 공을 가져다 주었고, 상대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공을 돌리다 에릭센의 킬패스에 이은 케인의 더미런과 알리의 침투로 골을 넣을 수 있었으며 손흥민을 이용한 역습은 2차적인 득점원이었다. 그런데 그걸 가능하게 했던 뎀벨레가 사라져 버리니 팀이 전체적으로 내려앉게 되었고, 내려앉아도 빌드업이 전혀 되지 않으니 센터백 듀오의 롱패스와 에릭센의 정확한 패스를 살린 역습을 주무기로 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알리는 하프라인 아래에서의 빌드업을 도울 만한 빌드업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고, 침투를 해서 골을 노리자니 가속도가 느려 수비진에게 따라잡히고, 어떻게 수비까지 떨쳐내도 슈팅 감각이 더욱 나빠져 제대로 마무리를 못 짓는 등 역습 전술에서 효율이 0에 수렴하는 선수가 되어버렸다. 결국 경기에서 가끔씩 지공 상황이 나오면 좋은 폼을 보여주지만 빠른 역습을 위주로 팀 전술이 재편되었기 때문에 기복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거기에 시간이 흐르고 상대 팀들이 공이 있으나 없으나 에릭센을 집중 마킹하는 상황이 오자 지공 상황에서 침투를 해도 찔러줄 선수마저 사라지면서 장점을 아예 살릴 수 없고 단점만 보이는 선수로 전락한 것이다.[6] 보다 자세한 내용은 델리 알리 문서의 7-1. 멘탈 항목 참고.[7] 어머니는 홈파티를 즐기기만 했으며 알리를 돌보지 않았고, 6살 때 어머니의 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7살 때 흡연을 하고 마약을 판매했다고 한다.[8] 자신이 입양된 집의 가족들을 상당히 좋아했지만 이들도 자신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 착한 아이를 연기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절친한 친구인 해리 힉포드가 울면서 문제가 뭔지 말해달라고 해도 말하지 않았고, 토트넘 동료들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9] 추가로 무리뉴 감독 시절과 관해서는 그때가 가장 슬픈 시기였다고 한다. 감독이 자기를 기용하지 않기 시작하자 심정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당시 고작 24살밖에 안 됐을 나이였는데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리뉴를 원망하는 마음은 없고 본인의 상황 대처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다.[10] 단 근본론의 수많은 사례들은 아예 재능을 펼치지도 못하고 망한 유망주들이 태반이나, 알리는 토트넘 초창기 시절 본인의 재능을 조금이나마 펼치긴 했다.[11] 불성실한 태도나 노력 부족만으로 묶기엔 아자르 정도의 태만을 보이지도 않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비슷하게 잦은 부상과 태만으로 인해 망한 유망주 취급받았으나 파리 생제르맹 FC 이적 이후 부상을 털어내고 태도가 달라지며 거짓말처럼 부활한 우스만 뎀벨레가 있기에 오로지 태만으로만 바라보면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12] 해밀턴 역시 역대급 재능으로 평가받았으나 마약 문제 등 멘탈 문제로 인하여 재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물론 그 재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MVP 1회 수상일 정도로 실적을 쌓아올리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로 간 이후론 하락세를 타며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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