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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07:08:35

동대문 패션타운 관광특구

동대문 패션타운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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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특징4. 시설5. 교통6. 관련 문서

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1] 광희동1~2가, 을지로 5~7가, 신당동 일대에 위치한 약 586,000㎡(약 17만 평) 규모의 국내 최대 패션 관광특구. 주로 동대문시장, 동대문 패션타운 등으로 불린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패션타운 관광특구는 중구에 있지만, '동대문종합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은 도로 바로 북쪽 종로구 종로6가 지역에 위치해 있다.

2. 역사

조선시대 남성이 징집이 될 때는 군복을 스스로 준비해야 했는데, 이러한 이유로 군포를 가지고 동대문 시장 근처에서 옷을 지어 입었다.

1905년에 김종한 외 3인이 광장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동대문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상호를 등록하면서 국내 최초의 근대 시장으로 개장하였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배오개시장(또는 배우개장)으로 불렸는데, 노면전차 노선이 생기고 6.25 전쟁 이후 근처에 평화시장 등도 생기면서 상권이 더 커져 남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양대 시장으로 발전하였다.[2]

1990년대 팀 204가 들어선 이후 현대화된 복합시장단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동대문길을 따라 다수의 패션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현대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2002년 5월 23일에 동대문 패션타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동대문시장은 '동대문 패션타운'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2010년대 들어 인터넷 쇼핑몰과 SPA 브랜드가 부상하고, 대형 의류 업체들이 아울렛 매장 등으로 가격 공세를 벌이면서 용산전자상가처럼 예전보단 위세가 줄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방해받지 않고 편하게 옷을 고르고 살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과 SPA 매장으로 가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 특히 해외의 SPA 브랜드가 대거 진출한 2011년 이후부터 동대문 의류시장의 침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외 동대문 패션쇼핑몰들의 자체적인 경영, 마케팅 능력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있다. #

폐건물들이 많이 생겼었는데, 그나마 2010년대 중반 이후 대기업들이 이곳에 투자하면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가, 2017년 사드 사태로 중국인 여행객이 끊기고, 2020년~2023년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소매 상권이 몰락했다. 2020년대 현재는 두타몰과 현대아울렛 정도만이 번듯한 소매 쇼핑몰로서 성업하고 있으며, 그 외의 대형 쇼핑몰 건물들은 노후화와 공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서 현재는 소매 판매보다 중소형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도매업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2024년 DDP 일대의 재정비에 나섰으나, 문제는 동대문의 소매 쇼핑몰들이 대부분 구분상가라서 소유주가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달하기 때문에, 소유주들의 동의를 얻어 재개발이나 매장 구조 변경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3. 특징

전국으로 나가는 의류 도매시장과 현대식 복합쇼핑몰이 공존하고 있다. 총 31개 상가에는 약 3만여 개의 점포가 자리잡고 있다. 도매시장 특성에 따라 20여개의 시장은 야간에 운영한다.

원단에서부터 완성품 세트에 이르기까지 에 관련된 모든 과정들과 중간 제작물, 결과물들을 동대문시장 한 곳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 것이 특징. 온라인에서는 구하기 힘든 물건도 모두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많은 국내외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다. 하지만 일명 동팔이라는 일부 악덕 상인들 때문에 안좋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도 종종 있으며, 위 역사 문단에 기입된 것처럼 2010년대 중반 이후 확연히 쇠락했다. 2024년 현재 두타몰과 현대시티아울렛 외에 일반 소매 소비자가 굳이 동대문까지 가서 찾아갈 만한 쇼핑몰 건물은 없다고 봐도 좋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동대문역으로 이어지는 대로변에 있는 굿모닝시티, 헬로apm, 밀리오레도 공실이 상당한데, 대로변에서 멀리 떨어진 맥스타일, 디자이너클럽 등은 2024년 기준 공실이 7~80%에 달할 정도이다.

국내에서 외국인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소 중 한 곳이다. 의류 쇼핑을 하러 온 중국인, 일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남아시아 및 서양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홈페이지에서 중국어를 비롯한 외국어 안내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근처에는 1990년대부터 보따리상 같은 상인 일을 하다가 눌러앉은 러시아인몽골인,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인이 중앙아시아촌을 형성하여 일대에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음식점과 같은 중앙아시아인 대상 특화 점포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4. 시설

파일:ddm_lg.jpg

5. 교통

1호선, 4호선 동대문역2호선, 4호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이용할 수 있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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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때문에 동대문구로 오해하기 쉬우며, 실제로 언론에서도 동대문구로 잘못 나온 기사가 꽤 있다. 정작 동대문구에는 이름의 유래가 된 동대문(흥인지문)조차 없으며, 동대문구와는 좀 떨어져 있다. 다만 1970년대까지는 바로 근처가 동대문구였다.[2] 여기에 황학동 서울중앙시장까지 껴서 서울 3대 시장이라고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