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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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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여자고등학교
東萊女子高等學校
DONGNAE GIRLS' HIGH SCHOOL
파일:동래여자고등학교_로고.png
<colbgcolor=#202E75><colcolor=white> 개교 1895년 10월 15일[1]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여학교
형태 사립
학교법인 학교법인 동래학원
교장 제26대 이헌주
교훈 겨레의 넋은 국어에 있다.
사람의 값은 지식에 있다.
나라의 힘은 통일에 있다.
교화 철쭉
교목 향나무
학생 수 427명[기준]
교직원 수 53명[기준]
관할 교육청 부산광역시교육청
주소 부산광역시 금정구 체육공원로 20 (구서동)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학교 연혁
2.1. 상세역사
2.1.1. 초량동 부산진일신여학교2.1.2. 복천동 구 교사
3. 상징
3.1. 교표3.2. 교화3.3. 교목3.4. 교훈3.5. 교육목표3.6. 교가
4. 특징5. 학교 시설
5.1. 본관5.2. 본관 외 시설
6. 학교 생활
6.1. 주요 행사
7. 운동부8. 출신 인물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10. 사건 사고
10.1.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 및 지정취소 논란
11. 기타

[clearfix]

1. 개요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위치한 여자 일반계 고등학교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학교라고 할 수 있으며 부산 지역의 근현대사를 관통했던 학교이다.

2. 학교 연혁

<colcolor=white><colbgcolor=#202E75> 날짜 연혁
2022.09.01 제 26대 이헌주 교장 취임
2022.02.09 제 122회 졸업식 거행(총 졸업생 수 31,255명)
2015.05.29 개교 제 120주년 기념식 거행
2014.03.01 일반고로 전환
2009.07.14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지정
2005.05.30 개교 제 110주년 기념식 거행
2004.11.01 옥샘헤럴드(영자 신문)창간호 발행
2003.10.22 구산관 준공
1995.05.30 개교 100주년 기념식 거행
1995.05.12 예절관 [벽연재] 개관
1995.02.28 [동래학원 백년사] 간행
1987.03.02 학교를 현 위치인 금정구 부곡동 산 7 1번지의 신축 교사로 발전 이전하여 입교식을 거행
1960.04.01 교무를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 운영
1952.07.19 재단법인 명칭을 동래학원으로 변경
1951.09.01 동래여자중학교(3년)와 동래여자고등학교(3년)로 분리 편성
1946.09.01 동래여자중학교로 명칭 변경, 수업 연한을 6년으로 변경
1940.04.20 민족혼을 기리는 애국유지들이 재단법인 구산학원(현,학교법인 동래학원)을 설립하여
학교 경영권을 인수,동래고등여학교라 개칭하고 동년 5월 30일에 개교식을 거행
1940.03.30 일제의 종교탄압정책으로 동래일신여학교 폐쇄(본 신사참배 거부)
1925.06.10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를 동래구 복천동 500번지의 신축 교사(기숙사 설치)로 이전하고 동래일신여학교라 칭함
1919.03.11 3.1 독립만세운동으로 교사 2명, 학생 11명이 투옥됨
1915.08.07 수업 연한 3학년의 소학과와 고등과를 각각 4년으로 변경
1909.08.09 구한국 학부대신의 인가를 얻어서 수업연한 3개년의 고등과를 병치
1895.10.15 호주 여자 장로교 여선교회에 의해 부산진 좌천동 소재의 삼간초옥에서 수업 연한 3개년의 소학과를 창설하고 사립일신여학교로 칭함

2.1. 상세역사

그 시초는 1895년[4]개신교 선교단체인 호주장로교 선교회[5]가 초량동에서 설립한 부산 최초의 사립학교이자 미션스쿨인 일신여학교[6]이며 한강 이남 최초(!)의 사립 여성 중등교육기관이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가한 학생들과 교사 일부가 체포되는 일도 있었으며 부산·경남지역 3·1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1925년에 동래구 복천동으로 이전하였으나 1940년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일제에 의하여 폐교되었다. 일신여학교가 폐교되었을 때 지금의 마산창신중고등학교 재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에서 이 학교를 인수하기를 희망했으나[7], 호주선교회는 개신교 선교라는 건학이념은 포기하더라도 신사참배를 주도한 개신교 장로교 세력들에게 넘길 바에는 학교를 더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당시 부산 최대 재력가이자 애국유지 중에 하나인 오태환에게 학교를 넘기게 되었다.[8]
1940년에 오태환이 설립한 구산학원(이후 동래학원으로 개명) 재단에서 동래고등여학교라는 이름으로 재개교 하였다. 1951년에 학제 변경으로 6년제 동래고등여학교에서 동래여자고등학교와 동래여자중학교로 분리 되었으며 1987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2009년에 부산의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 유일하게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지정되면서 2010학년도부터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운영되었고, 그렇게 부산의 유일한 여자 자사고로 오래오래 이어갈 줄 알았으나. 2013년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인가를 자진하여 반납하면서 2014년에 다시 일반계 고등학교로 환원되었다.

2.1.1. 초량동 부산진일신여학교

부울경 지역 대다수의 장로교 미션스쿨의 뿌리가 된 학교
사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1동 768-1번지.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시초가 되는 부산진일신여학교가 처음 설립된 곳이다. 1909년 8월 9일에는 3년제 고등과를 설립하였고 병설하였고 1919년 3월 11일에 부산에서 제일 먼저 3.1운동을 일으킨 곳이며 고등과는 1925년 6월 10일에 동래구로 이전하였고, 보통과는 이후에도 좌천동에 남아 운영되었으나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고등과 보다 먼저인 1939년 7월 31일에 일제에 의해 폐쇄되어서 건물들만 남게 되었다. 1946년에는 일신여학교의 방계후신이었던 금성중고등학교가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에 의하여 여기서 처음 설립되었으며, 고신대학교[9]의 전신인 고려신학교도 1946년에 이곳에서 설립되었으며 한때 부산장신대학교의 모체가 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부산신학교가 1965년 부터 2000년 까지 있었던 적도 있었다. 현재는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제 55호로 등록되어 있으며, 부산장로회 신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부산지역의 수많은 장로교 미션스쿨의 뿌리가 된 학교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초량동 부산진일신여학교의 건물은 사진에 있는 보존된 건물 1채 외에도 더 있었다고 한다. 그 건물은 1987년에 복천동의 동래여자중고등학교 구 건물들(동래일신여학교 건물들)이 모두 철거된 이후에도 한동안 금성중학교 건물로 남아있었다. # 1989년 기준으로 80년 정도 지난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었으나, 1989년 10월 16일에 현재의 금성중학교 콘크리트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 철거해 버렸다(...) 당시의 근대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 동래일신여학교나 부산진일신여학교나 지금까지도 완전하게 잘 보존되었으면 귀중한 근대 문화유산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나마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일부라도 남은 것이 천만 다행.

2.1.2. 복천동 구 교사

복천동 시절 초기의 일신여학교 모습 철거 직전의 사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0-1. 일신여학교 고등과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1925년 6월 10일에 조성되어 1987년 1월 19일까지 62년간 사용하였는데, 1950년 6.25 전쟁때 징발되어 1950년 8월 15일 부터 1951년 9월까지 1년간 육군종합학교로 쓰이기도 했고#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도 이곳에서 임관하였다. 지금은 해체된 306 보충대의 시초인 제2보충대 5중대 또한 1952년 2월에 여기서 처음으로 창설되었다.

1987년에 동래여고가 구서동으로 이전되면서 당시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그냥 철거되고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 용지로 써먹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곳이 육군종합학교보충대로 쓰였다는 사실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잊혀지고 말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역사적 가치가 높았던 곳이기에 철거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매우 귀중한 근대 문화유산이 되었을 것이다. 철거 직전의 모습을 보면 62년된 건물 임에도 불구하고 보존상태가 상당히 좋다보니 철거된 사실이 너무나도 아쉽다. 당시의 대한민국 역사인식이 참으로 아쉽다. 다만 일신관이라고 하여 이 건물의 외형을 본떠서 만든 건물이 현재의 교정 내에 있다.[10]

3. 상징

3.1. 교표

파일:동래여고교표.png
교표
방패 모양에 ㄷㅗㅇ고 라고 적혀있으며, 동래학원 계열 학교들의 공통적인 교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3.2. 교화

파일:external/sjgbloom2012.files.wordpress.com/img_0073.jpg
교화
교화는 철쭉이다.

3.3. 교목

파일:Miryang_juniperus_chinensis.jpg
교목
교화는 향나무이다.

3.4. 교훈

겨레의 넋은 국어에 있다.
사람의 값은 지식에 있다.
나라의 힘은 통일에 있다.

3.5. 교육목표

미래 사회를 선도하는 창의적인 역량과 건강한 품성을 지닌 애국·애족·애향하는 민주 시민을 기른다.

3.6. 교가

파일:동래여고교가.png
교가
하늘에 높이 솟은 저 금정산은
배달 혼과 한가지 새 빛이 나네
굳센 기운 잠긴 힘 겹겹이 쌓이어
이 학원의 꽃으로 피어났도다.

4. 특징

한때는 부산여고, 경남여고와 더불어 부산의 3대 여고로 불리었다. 1974년 고교 평준화 이전에도 부산시내 사립학교 중에서는 명문으로 평가를 받던 몇 안되는 곳이었다. 과거 3대 여고로 불리던 학교답게 평준화 이전에는 집안이 넉넉하고 공부 잘 하는 여학생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라는 인식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국민의 생활수준이 많이 낮았고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했기 때문에 많은 여학생들이 여자상업고등학교나 야간제 여고로 진학하는 데에도 감지덕지 해야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산은 세계 최대 신발생산 도시이자, 대구와 함께 국내 최대 섬유산업 도시로 노동집약적인 산업들이 정말 잘 발달하였다. 이들 산업체들은 저렴한 노동력을 쓰기 위해서 중고등학생 연령대의 근로청소년들을 주로 고용하였기 때문에 부산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근로청소년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특히 당시 금정구에는 태광산업, 태창기업, 현대모직을 위시한 섬유산업이 잘 발달해서 여공들이 많았던 덕분에 부산의 어지간한 사립 고등학교들은 2부 야간학급으로도 쏠쏠하게 재미를 봤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동래여자고등학교는 명문이미지를 철저히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 유혹을 뿌리치고 2부 야간학급을 아예 운영하지 않았을 정도였는데, 이러한 선택은 상당히 현명한 선택이었다. 학교를 금정구로 이전하자마자 근처에 있던 태광산업의 산업체 부설학교인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개교 및 생활수준의 급격한 향상으로 근로청소년들이 급감하여, 대다수의 2부 야간 학급들이 사실상 문제아 수용소로 추락해버린 상황이었다. 동래여자고등학교가 2부 야간 학급을 운영했었더라면 학교 이미지를 엄청 깎아 먹어서 큰 손해가 되었을 것이 거의 확실했기 때문이다. 정말 가까이에 있는 모 사립 여자고등학교가 본래는 연산동에 있었던 근로청소년들을 위한 2부 야간제 전용학교에서 출발해서 1990년대 후반 부산에서 마지막까지 2부 야간학급이 운영되던 것과 대조되기도 한다.

5. 학교 시설

5.1. 본관

5.2. 본관 외 시설

6. 학교 생활[17]

* --코로나 이후 수업시간이 50분에서 45분으로 단축되었다.-- (다시 50분으로 늘어났다)
1교시 8:30~09:20
2교시 09:30~10:20
3교시 10:30~11:20
4교시 11:30~12:20
월요일 1교시는 자율활동 시간이다.
* 점심시간: 12:00~13:45 3학년이 먼저 급식을 먹고, 그다음 2학년, 1학년 순서이다. 1학년들은 위에서 줄지어 내려오는 2학년이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운이 나쁘면 12시 50분까지 줄 선채로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이를 노려서 일부러 교실에서 놀다가 천천히 나오는 학생도 있다. 수능이 끝나면 3학년은 급식을 먹지 않고 하교하거나 아예 학교에 없는 일이 더 많으므로, 타 학년 학생들은 급식 먹으러 갈 수 있는 시간이 빨라진다.
* 청소시간: 13:10~13:25. 방송실에서 선곡하거나 가끔 신청을 받아 노래를 틀어준다[18]. 한 달에 한 번은 뮤직비디오를 틀어준다.
5교시 13:45~14:30
6교시 14:40~15:25
7교시 15:35~16:20
8교시 16:40~17:40
금요일 5교시는 정규 동아리 시간이다. 그래도 3학년은 거의 자습한다.
화요일 6교시는 자율활동시간[19]이다. 부담임 교사 담당이지만, 대부분 자습한다. 설명회나 토토즐 같은 일회성 행사 등을 이 시간을 빌려 개최한다.
8교시는 방과후 시간이다. 방과후를 하는 학생들은 각자 다른 학습실로 이동하여 수업하고 방과후를 하지 않는 학생들은 교실이나 다른 학습공간에서 자습하면 된다. [칠판에 자신의 번호와 자습위치 기재는 필수다!]
석식 시간 17:40~18:40
야자 1차시 18:40~19:40
야자 2차시 19:50~21:00
야자 3차시 21:10~22:00
2022년 내부공사 이전에는 야자 3차시는 3학년만 참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독실이나 모둠학습실에서 야자 3차시를 해도 된다.
과거에는, 1학년 교실 중 1, 2층에 위치한 교실에서 창문을 넘어가서(!) 야자를 탈주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6.1. 주요 행사


이 외에도 수학 경시대회, 영어 에세이 대회, 논술 경시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많다.

7. 운동부

8.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10. 사건 사고

10.1.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 및 지정취소 논란

동래여고는 2009년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전환을 신청하여 2010학년도부터 전환이 확정되었으며, 2010년도부터 부산 최초로 일반계 고등학교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전환되어 운영되었다. 하지만 당시 동래여고는 법정 전입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 상태였는데도 자사고 전환이 졸속으로 추진되어 논란이 되었으며, 선호도가 높았던 일반계 고등학교였던 동래여자고등학교가 자사고로 전환되면서 금정구에서는 쓸만한 여자고등학교가 별로 없게 되었다.

하지만 2013년 6월 동래여고는 재정난 및 사회통합전형에서의 미충원을 이유로 갑자기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운영권을 반납하고 일반계 고등학교환원을 신청했으며 이로 인하여 학부모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언제는 재정적으로 문제가 없고 큰소리 치더니, 이제와서 재정난 드립 부산시 교육청은 '정원의 70% 이상을 모집하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유지, 70%에 미달하면 일반계 고등학교로 환원' 이라는 중재책을 내놓았지만 이것은 사실상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동래여고 재단 측에서는 학교에 대해 좋지 못한 소문을 자진해서 퍼트리거나(...) 대놓고 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입시요강에 넣는 등 학생들의 지원을 방해하여 정원 미달을 유도하였으며, 결국 정원의 70%를 모집하지 못하게(?) 되면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서 일반계 고등학교로 환원이 확정되고 말았다. 어찌보면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자진폐교 사건이 생각날 따름이다. 일반적인 사립학교라면 폐교나 지정취소를 면하려고 어떻게든 끝까지 버티며 안간힘을 쓰는데, 태광여상은 멀쩡한 학교가 재단에 의해 자진폐교 당하고 동래여고는 자사고로 계속 운영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재단이 자진해서 자사고 지정 취소를 해버렸으니 말이다.

부산시는 350만이라는 인구에 비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수가 가장 적은 편이다. 동래여고를 제외하면 자사고가 단 한 곳뿐이고, 그 한 곳 마저도 공학이 아닌 남자 고등학교이다. 덕분에 자사고를 원하는 여학생들은 다른 지역의 자사고[23]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동래여자고등학교가 자율형 사립고 자진 취소를 하지 않았으면[24] 2018년도에도 자사고로 계속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사실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써의 진학 실적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으며,# 부산시내에서 자사고 체면 치례는 충분히 하는 수준이었는데도, 동래학원이 학교법인과 학교의 이미지를 자진해서 실추시키면서까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자진 지정취소를 했어야 하는지는 미스테리다. 그래도 논란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는 얼마 되지 않아서 운 좋게도 만회(?)에 성공 했는데, 근처에 있는 다른 사학재단에서 역대급 병크[25]가 터지는 바람에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자사고 반납 논란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용히 묻히면서 이미지 실추 문제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금방 잊혀지게 되었다.

11.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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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립일신여학교[기준] 2023.03[기준] [4]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 보다 10년 늦게 설립되었다.[5] 마산의 창신중고등학교도 이 단체에서 설립하였다. 1940년에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다가 해방 이후에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1952년에 일신기독병원을 세우기도 했다.[6] 부산·경남지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장로교 미션스쿨의 직·간접적인 모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부산지역에서 장로교 미션스쿨을 표방하는 사립학교 중에서 일신여학교와 연관이 없는 학교는 없다고 봐도 된다.[7] 경남노회 김길창 주도로 인수를 하려 했으나, 김길창은 신사참배를 주도한 인물이라서 호주장로교 재단에서 김길창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김길창은 일신여학교 인수를 하지 못하게 되자 그 대신에 남성여자중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부산 바닥에서 장로교 교단 치고 김길창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었다.[8] 이에 대해서는 약간(?)의 비화가 있는데,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는 일신여학교 인수를 실패한 대신 일신여학교의 형제학교인 마산의 창신학교를 호주선교회로부터 받게 되었다. 이후에 경남노회 기독교교육학원 산하로 일신여학교의 방계 후신 학교라고 할 수 있는 금성중고등학교와 건국중고등학교라는 개신교 미션스쿨을 만들었지만 부채로 인하여 학교가 파산(...)하면서 두 학교도 일신여학교처럼 개신교와는 전혀 관련없는 재단으로 넘어가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창신학교의 후신인 창신중고등학교도 다른 재단으로 넘어갔다가 어찌어찌하여 경남노회가 다시 되찾아오는데 성공하면서, 일신여학교의 건학이념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는 학교는 마산 창신중고등학교뿐이다.[9] 여담이지만 동래재단 근처에 있는 브니엘 계열 학교 중에서 브니엘고가 한때 고신대학교와 같은 계열이었던 역사가 있었다. 결국은 동래재단 계열 학교들이나 브니엘 계열 학교들이나 같은 조상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10] 일신관은 우창회관과 함께 부산예술고등학교 명의로 등록되어 있다. 동래학원 재단 사무실이 위치하며, 9월경 예고 예중 미술작품 전시회를 한다.[11] 3학년 홈베 한정으로 온돌이 있다.[12] 학교 구경을 온 중학생들이 도서관에 반해서 왔다가...[13] 배달시킨 학생들이 애용[14] 2, 3학년 교실이다.[15] 교문에서의 접근성이 좋지 않아 정문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학생도 있다.[16] 복사 및 제본도 가능하다.[17] 참고 : 이곳의 기록은 꽤나 옛날의 기록으로 현재와는 많이 다르다[18] 3학년은 해당X[19] 3학년은 진로활동시간이다. 자습을 하거나 아주 가끔 수업을 한다.[20] 그 이전에도 부산예중 신설로 인하여 동래여중 테니스 코트를 밀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부산예중 설립 과정은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제대로 골때리는 설립 과정을 보여주었다.[A] 장전역 방향만 경유[A] 장전역 방향만 경유[23] 울산 현대청운고등학교, 포항 포항제철고등학교[24] 지금의 부산 교육감도 특수목적목고등학교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를 교육청 직권으로 강제로 지정취소 하는것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25] 공교롭게도 사태의 발단이 동래여자고등학교가 자진 반납한 자사고 TO를 다른 학교도 아니고 예술고등학교가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주워먹으려다가 재단 전체가 전복되어린 사건이었다.[26] 앙드레김이 디자인했다고 소문이 자자한-사실인지는 모른다 부산예고 문서에 사실이 아니라고 나와 있다.[27] 1990년 졸업앨범(1987년 입학생)에도 그 교복이 있었던걸로 봐서 1986년 9월~1987년 3월 사이에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근처에 있는 브니엘고등학교의 죠스바 교복과도 동시에 나온 교복으로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브니엘고등학교, 부산예술고등학교와 함께 1986년 교복 부활 당시 가장 먼저 교복을 재착용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