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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9-17 00:24:54

동양텔레비전/프로그램/보도·시사·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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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보도
2.1. 정규 프로그램
2.1.1. 종합뉴스2.1.2. 시사뉴스
3. 시사
3.1. 정규 프로그램
4. 스포츠
4.1. 정규 프로그램4.2. 중계방송

1. 개요

2. 보도

2.1. 정규 프로그램

2.1.1. 종합뉴스

2.1.2. 시사뉴스

3. 시사

3.1. 정규 프로그램

4. 스포츠

4.1. 정규 프로그램

4.2. 중계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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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일반 뉴스 프로그램으로, 당시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TBC 뉴우스'로 표기되었다. 1960년대식 아나운서의 뉴스 캐스터식 진행 방식을 유지했다. 평일에는 저녁 7시에 20분 동안 방송했으며,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아침, 오전, 오후에는 10분 동안 짧은 분량으로 편성했다.[2] 아침 7시에 방송하였던 아침 종합뉴스 프로그램. 1973년 12월 오일 쇼크로 인해 아침 방송이 폐지됨과 동시에 종영되었다. 현재는 JTBC 뉴스 아침&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3] 평일 아침에 방영한 모닝 와이드쇼 프로그램. 당시에 일본이나 미국의 와이드쇼를 베낀 프로그램인 듯 하다. 이 시간에는 대담을 진행하거나 정보를 전달했다. 심지어는 중간 중간 초대 가수들이 나와서 건전가요를 부르기도 했다. 김동건 아나운서도 TBC 아나운서 시절 이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으며, 1970년 기준으로 제작비가 2만 5천원이었다고 한다.# 시사 분야 뿐만 아니라 자사 연속극 출연 배우들을 불러서 인터뷰를 하는 등 TBC 홍보 역할도 했다. 위의 조간과 마찬가지로 아침 방송 중단 후에는 당연히 종영했으며, 이후 저녁 시간대의 '굿이브닝쇼'와 심야 시간대에 'TBC 파노라마'등을 신설해 공백을 어느 정도 막았다.[4] 1972년 10월 5일부터 방송되어 1980년 11월 30일에 종영되었다. JTBC가 동양방송의 사실상 후신이라면 이 뉴스 프로그램은 JTBC 뉴스룸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으며 KBS2로 친다면 KBS 뉴스비전 - KBS 뉴스파노라마(구 8시 뉴스파노라마 - 뉴스투데이 - KBS 뉴스 7 - KBS 뉴스 8 - KBS 8 뉴스타임의 전신이기도 하다. 시간대가 메인 뉴스라는 점도 그렇고...(TBC 석간도 MBC뉴스데스크와 마찬가지로 아나운서가 제공 자막을 설명한다.) 여담으로 이 프로그램은 이건희 당시 이사의 제안으로 탄생했는데, 기자가 뉴스 앵커를 맡아 진행하는 상당히 파격적인 포맷을 선보였다. 앵커 진행 - 리포트라는 기본 형식에 짧은 코멘트나 인물 인터뷰, 일기예보, 그리고 기획물 형식의 장편 리포트(이 때는 1분 30초 포맷이 자리 잡기 이전이어서 리포트 호흡이 지금보다 긴 편이었다.), 그 외 단신을 정리해 전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에는 시청자 만화나 팬터마임도 뉴스 시간에 보여준 모양. 참고로 영상 맨앞 두 시기는 동시기 소련 국영뉴스 브례먀의 오프닝과 매우 흡사하다는 평을 받는다.[5] 해외 토픽 프로그램. 매일 5~10분 단위로 편성되었는데, 짧은 프로그램을 매일 편성해 광고 수익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한 프로그램에 편성할 수 있는 광고의 양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광고로 수익을 올리는 민영방송 입장에서는 프로그램 시간을 토막내듯이 쪼개어 광고를 집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평일의 경우 방송 시간도 5시간 30분밖에 안되었다. 때문에 당시에 방영 시간이 긴 프로그램은 제작이 가능해도 편성을 하기가 어려운 구조였다.[6] 스포츠뉴스 프로그램. 이후 해당 명칭은 SBS의 스포츠뉴스 프로그램에 사용되었다.[7] 우리나라 1세대 기상캐스터인 김동완 당시 중앙기상대 통보관이 진행한 일기예보 프로그램. 당시 백지도 위에 기상도를 직접 그려가며 날씨를 해설하던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 김동완 통보관은 언론통폐합 이후 MBC로 자리를 옮겨 1990년대 중반까지 뉴스데스크의 일기예보를 맡았다.[8]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대망의 70년대'라고 했는데, 백기완이 ''아파트가 무너지고 노동자가 죽어나가는데 무엇이 대망의 70년대냐"고 말했다.[9] 당시 뉴스전망대, 2시 취재현장, TBC 석간, 동서남북, 봉두완입니다까지 거의 모든 시사프로그램은 다 진행한 스타 앵커였다. 이 인기에 힘입어 청와대에 초청되기도 하고 육영수 여사에게서 넥타이도 선물받았다고 한다.[10] 때에 따라서 금요일, 토요일 등으로 시간대가 달라지긴 했지만, 폐국당시에는 금요일 7시대에 방송했다. 참고로 당시 경쟁 프로그램이던 MBC 권투는 일요일 밤 시간대를 유지했다. 캐스터는 박병학 아나운서, 해설은 지금은 고인이 된 노진호 기자였다. 당시에 중앙일보 요새 말하는 스포츠부 기자 출신이었다. 향후 빙그레 이글스 단장을 통해 장명부를 영입했으며 단장 이후엔 1995년 이후부터 한국스포츠TV 해설을 맡았었다. 지금도 1990년대 해태타이거즈등을 검색하면 프로야구 중흥이라는 영상이 존재한다. 공교롭게도 동양방송 출신이었던 이장우 캐스터(당시 TBC 아나운서)랑 한국스포츠때 호흡을 맞추었다. 아무튼 노진호 기자랑 해설을 비슷하게 한 당시엔 1980~1990년대는 한보영 기자도 MBC에서 복싱해설을 맡았었다. 한보영 기자도 초반에는 연예부 기자였다[11] 가장 유명한 중계는 1977년 11월 27일 홍수환 VS 카라스키야의 WBA 주니어페더급 결승전 경기, 일명 홍수환의 4전5기 경기다.#
WBC 슈퍼라이트급 타이틀 매치 무앙수린 VS 김상현 - 1978년 12월 30일, 김성준 VS 양홍준 라이벌전 - 1980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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