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 일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성추행당한 내 어린 딸과 다른 어린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런 성도착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놓아두고자 하는 그런 이들이 있는 한 난 절대로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나는 아동 성추행범들과 싸울 것이다. 만약 나의 네 살짜리 딸조차도 보호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이다.
- 사건이 있기 얼마 전에 드라슈스 케디스가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의 일부
- 사건이 있기 얼마 전에 드라슈스 케디스가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의 일부
1. 개요
2009년 리투아니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모범시민 현실판이라고 할 수 있다.이 사건의 용의자는 드라슈스 케디스(Drąsius Kedys, 1972년 9월 4일 - 2010년 4월 28일)로 당시 37세였으며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2. 사건 과정
2.1. 딸에게 일어난 성폭행
이러한 평범한 가족의 가장이었던 그의 인생을 뒤바꿔 놓은 것은 자신의 딸인 데이만테(Deimantės)가 자기 할머니에게 구강성교 등의 이상 행동을 했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드라슈스는 라이마 스탄쿠나이톄(Laimutė Stankūnaitė)와 동거 생활을 4년간 하였으나 결별 후 데이만테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데이만테가 자신에게 이상 행동을 하던 것을 보고 놀란 할머니는 데이만테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물었다. 4살밖에 되지 않았던 아이인 데이만테가 한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드라슈스 케디스와 이혼한 아내, 즉 데이만테의 친어머니가 정부 고위 관료들에게서 돈을 받고 4살 밖에 되지 않은 딸의 몸을 팔게 했으며 그것도 상습적으로 반복되었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데이만테의 이모까지 가담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곧이어 케디스는 데이만테를 병원에 데려갔고 의사들도 데이만테가 성폭행을 당한 것이 확실하다고 진단했다.
이 사건에 공식적으로 연루된 사람은 총 7명이다.
- 드라슈스 케디스(Drąsius Kedys): 데이만테의 아버지. 2010년 4월 시신으로 발견됨.
- 데이만테(Deimantė): 피해 당사자
- 라이무테 스탕쿠나이테(Laimutė Stankūnaitė): 데이만테의 친모
- 라이무테 나루셰비치에네(Laimutė Naruševičienė): 데이만테의 이모. 2009년 10월 5일 케디스에 의해 사망
- 안드류스 우사스(Andrius Ūsas): 전 국회의장 사무관이자 사업가. 2010년 6월 늪지에서 익사.
- 요나스 프루나마비추스(Jonas Furmanavičius): 카우나스 지방 판사. 2009년 10월 5일 케디스에 의해 사망
- 아이다스(Aidas): 미상
▲ truelithuania에 게시된 사건의 주요 인물. 왼쪽부터 드라슈스 케디스, 라이무테 스탕쿠나이테, 안드류스 우사스, 요나스 프루나마비추스
2.2. 재판에서 패배
드라슈스 케디스는 경찰에 신고하고 사건에 연루된 자들을 고발했지만 대검찰청과 대법원은 요나스 판사를 보호하기 위해 제 식구 감싸기를 하면서 모조리 증거 불충분 처리를 하거나 역으로 케디스를 소아성애자로 몰아세웠다. 케디스는 정부에 진정서와 탄원서를 제출하고 아동인권보호국과 행정부, 그리고 리투아니아 대통령에게도 여러 번의 편지와 곳곳에 200여장의 DVD를 보내는 등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였으나 대법원이 두려운 모두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데이만테의 증언 영상 1[2] |
데이만테의 증언 영상 2[3] |
2.3. 살인
결국 재판 후 2009년 10월 5일 분노한 케디스는 판사와 데이만테의 이모를 총으로 살해한 뒤 그대로 잠적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0월 12일, 아동인권보호국에 폭발 테러를 감행했다.2.4. 사건 이후
- 대법원과 대검찰청은 케디스를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잡아들여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얼마 못 가 케디스를 영웅으로 추대하던 시민들의 시위와 충돌했다.#
- 데이만테의 친모는 보복을 두려워하여 검찰에 보호를 요구하였으며 사설 경호원까지 대동해 다녔다고 한다. 리투아니아 정부에서도 사건에 대해서 진상조사를 실시했다. 데이만테는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조치되었다고 한다.
드라슈스 케디스를 추모하는 더블린 시민들 |
드라슈스 케디스의 묘비 |
- 드라슈스 케디스는 러시아로 통하는 복수 여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러시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2010년 4월 28일 그의 고향 근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공식 사인은 알코올 및 기타 약물로 인한 중독이었는데 술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4] 구토물이 목에 걸려 질식사한 것이라고 한다. 시민들 사이에선 정부 기관에게 암살당한 게 아니냐는 설도 많이 돌았지만 증거는 없다. 온몸에 피멍이 있었지만 공식 사인은 질식사다. 그의 장례식에는 내무부 추산 2만 5천명의 조문객이 왔으며 국민들은 그를 영웅으로 생각했다.
- 성추행 피해자인 케디스의 딸은 고모의 집에서 보호를 받고 있었으나 법원은 또다시 아이의 친모인 라이무테 스탕쿠나이테에게 무혐의 판결을 하면서 풀어줬고 결국 2012년 5월 17일 딸의 양육권은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이미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밑바닥까지 떨어진 시민들은 반발했고 이딴 판결은 인정할 수 없다며 큰 시위가 일어났으나 경찰의 초강경 진압으로 얼마 못 가 해산되었다. 이때 구금 조치된 시민은 39명이었다.
- 데이만테의 성폭행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 중 한 명인 우사스는 2010년 6월에 늪지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3. 반응
- 살인을 저지른 것은 분명 잘못됐으나 대개 그의 행동을 이해하며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상술한 대로 그는 바로 복수를 실행한 것이 아니라 대상자들의 처벌을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준법적인 선으로 할 수 있는 가능한 최선을 다 해봤음에도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법적인 선에서 최선을 다 했음에도 좌절되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킬도저 사건과도 매칭된다.
- 반대로 딸아이에게 인터뷰하면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도록 한 것은 가혹한 짓이며 정말로 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의견도 간혹 있긴 하지만 수십명의 전문의들의 진찰 결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은 거의 없다.
4. 관련 자료
5. 관련 문서
[1]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사건을 방영할 때 사용한 제목이다.[2] 세 사람이 교대로 데이만테에게 구강성교를 시키는 동안 모친은 방관했으며 심지어 구강성교가 끝난 후 입단속을 시켰다는 내용이다. 데이만테의 모친이 '아이다스'라는 남자가 살던 호텔에 데려다 주곤 했고 그곳에 갈 때면 다른 남자 두 명이 그 집에 찾아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나열된 사진을 보고 요나스를 지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3] 호텔에서 겪은 일을 증언했다.[4] 다른 독극물에 중독된 상태였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5] 2009년 10월 15일에 작성된 기사라 드라슈스 케디스의 사망 소식은 적혀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