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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13 15:49:02

드루수스


1. 고대 로마의 성(姓), 가명(家名)2. 고대 로마 시대 남성 이름3. 주요 인물

1. 고대 로마의 성(姓), 가명(家名)

드루수스(Drusus)는 고대 로마의 리비우스(Livii) 일족에 기원을 둔 가문 중 하나이다. 공화정 시대때 리비우스 일족에 속했던 드루수스를 시작으로 하는 가문으로 리비우스 일족 내 “첫번째 드루수스”가 일대일 전투에서 용맹한 적군 족장 드라우수스를 죽이고 얻은 존칭 “드루수스”가 그 시작이었다.

그라쿠스 형제개혁 당시 이를 확고하게 반대했던 원로원 의원 대(大) 리비우스 드루수스와 그의 아들이자 동맹시 전쟁 당시 이탈리아 내 자유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개방하는 법안을 냈다가 암살당한 소(小) 리비우스 드루수스 그리고 소 리비우스 드루수스[1]양자로 들어간 대 리비우스 드루수스[2]의 외손자이며 소 카토와 혈연상 외사촌인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클라우디아누스가 이 가문 출신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소 카토의 외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인 리비아 드루실라의 친정으로도 유명하며,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인 리비아 드루실라의 차남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를 비롯해 아우구스투스의 일가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내 남성 황족들이 대대로 세습해 사용했다.

2. 고대 로마 시대 남성 이름

위에서 언급된 남성 개인 이름으로 리비우스 일족 중 드루수스 가문에서 기원을 둔 이름이다. 여성형 이름은 드루실라(Drusilla).

리비우스 일족 내 남성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투스의 가족들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남성 황족들의 개인 이름으로도 많이 쓰였다.

일대일 전투로 용맹함을 증명한 상대방에 대한 경의, 이 이름을 얻게 된 첫번째 드루수스에 대한 존경심 외에도 아우구스투스와 그 남녀 황족들의 상징성을 보여준 개인이름이라서 쓰고 싶어도 황제의 직접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자기 아이에게 지어줄 수 없었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와 그 직계 후계자들의 허락 외엔 다른 가문들이 쓰고 싶어도 마구잡이로 사용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당대부터 유명했다. 이런 비슷한 예로는 서기 2세기 말 세베루스 왕조에서 독점적으로 쓴 안토니누스, 서기 4세기 이래 로마 황제와 그 후계자들이 사용한 플라비우스가 있는데, 드루수스 역시 황실의 정통성 상징 같은 개인이름이었던 셈.

그래서 스크리보니우스 가문 내 리보 가문은 이 이름을 자랑스럽게 쓸 수 있는 특권을 보장받음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렇지만, 이는 서기 14년 아우구스투스 서거 직후 터진 티베리우스, 리비아 드루실라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지고 리보 가문 출신의 루키우스 리보와 그 이란성 쌍둥이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스크리보니아누스가 그 주동자로 황제와 그 모후 외에도 주동자의 양부였던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까지 죽이려고 한 것이 드러나, 해당 가문이 큰 처벌을 받고 멸족 직전까지 갈 때 드루수스 이름 사용권도 영구금지됐다.

하여 서기 14년 이래, 다른 가문에선 그 이름이 허락되지 않았고 이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문을 닫은 뒤 사장된 이름이 되게 된다.

3. 주요 인물

3.1.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클라우디아누스

로마 최초의 황후 리비아 드루실라의 아버지.

3.2. 대(大) 드루수스

풀네임은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

3.3. 소(小) 드루수스

풀네임은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대(大) 드루수스의 조카, 사위로 로마 제국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친아들, 황태자이다.

3.4. 드루수스 카이사르

풀네임은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 대(大) 드루수스의 손자, 게르마니쿠스의 차남, 로마 제국 제3대 황제 가이우스(칼리굴라)의 둘째 형.
[1] 혈연상 외삼촌[2] 혈연상 외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