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5px -11px; padding: 5px 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03E22, #B25530 20%, #B25530 80%, #803E22);"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0px;" | 정통 제피리노 | 정통 갈리스토 1세 | 정통 우르바노 1세 | 정통 폰시아노 |
vs. | vs. | |||
대립 나탈리오 | 대립 히폴리토 | |||
정통 고르넬리오 | 정통 루치오 1세 | 정통 스테파노 1세 | 정통 식스토 2세 | |
vs. | ||||
대립 노바시아노 | ||||
정통 에우세비오 | 정통 리베리오 | 정통 다마소 1세 | 정통 보니파시오 1세 | |
vs. | vs. | vs. | vs. | |
대립 헤라클리오 | 대립 펠릭스 2세 | 대립 우르시노 | 대립 에울랄리오 | |
정통 심마코 | 정통 보니파시오 2세 | 정통 세르지오 1세 | 정통 스테파노 3세 | |
vs. | vs. | vs. | vs. | |
대립 테오도로 | ||||
대립 라우렌시오 | 대립 디오스코로 | vs. | 대립 콘스탄티노 2세 | |
대립 파스칼 | ||||
정통 스테파노 3세 | 정통 세르지오 2세 | 정통 베네딕토 3세 | ||
vs. | vs. | vs. | ||
대립 콘스탄티노 2세 | 대립 요한 8세 | 대립 아나스타시오 | ||
vs. | ||||
대립 필립보 | ||||
정통 레오 5세 | 정통 세르지오 3세 | 정통 베네딕토 6세 | 정통 베네딕토 7세 | |
vs. | vs. | |||
대립 크리스토포로 | 대립 보니파시오 7세 | |||
정통 요한 14세 | 정통 그레고리오 5세 | 정통 베네딕토 8세 | 정통 니콜라오 2세 | |
vs. | vs. | vs. | vs. | |
대립 보니파시오 7세 | 대립 요한 16세 | 대립 그레고리오 6세 | 대립 베네딕토 10세 | |
정통 알렉산데르 2세 | 정통 그레고리오 7세 | 정통 빅토르 3세 | 정통 우르바노 2세 | |
vs. | vs. | |||
대립 호노리오 2세 | 대립 클레멘스 3세 | |||
정통 파스칼 2세 | ||||
vs. | vs. | vs. | vs. | |
대립 클레멘스 3세 | 대립 테오도리코 | 대립 아달베르토 | 대립 실베스테르 4세 | |
정통 젤라시오 2세 | 정통 갈리스토 2세 | 정통 호노리오 2세 | 정통 인노첸시오 2세 | |
vs. | vs. | vs. | ||
대립 그레고리오 8세 | 대립 첼레스티노 2세 | 대립 아나클레토 2세 | ||
정통 인노첸시오 2세 | 정통 알렉산데르 3세 | |||
vs. | vs. | vs. | vs. | |
대립 선대 빅토르 4세 | 대립 후대 빅토르 4세 | 대립 파스칼 3세 | 대립 갈리스토 3세 | |
정통 알렉산데르 3세 | 정통 요한 22세 | 정통 우르바노 6세 | 정통 보니파시오 9세 | |
vs. | vs. | vs. (서방교회 대분열) | ||
대립 인노첸시오 3세 | 대립 니콜라오 5세 | 대립(아비뇽) 클레멘스 7세 | ||
정통 보니파시오 9세 | 정통 인노첸시오 7세 | 정통 그레고리오 12세 | ||
vs. (서방교회 대분열) | ||||
대립(아비뇽) 베네딕토 13세 | ||||
vs. (서방교회 대분열) | ||||
대립(피사) 알렉산데르 5세 | ||||
정통 그레고리오 12세 | 정통 마르티노 5세 | |||
vs. (서방교회 대분열) | vs. | |||
대립(아비뇽) 베네딕토 13세 | 대립(아비뇽) 클레멘스 8세 | |||
vs. (서방교회 대분열) | vs. | |||
대립(피사) 요한 23세 | 대립(아비뇽) 선대 베네딕토 14세 | |||
정통 마르티노 5세 | 정통 에우제니오 4세 | 정통 니콜라오 5세 | ||
vs. | vs. | |||
대립(아비뇽) 클레멘스 8세 | ||||
vs. | ||||
대립(아비뇽) 후대 베네딕토 14세 | 대립 펠릭스 5세 | }}}}}}}}}}}} |
교황명 | 디오스코로(Dioscorus) | ||||||||||
세속명 | 없음 | ||||||||||
출생지 | 실전됨 | ||||||||||
사망지 | 로마 | ||||||||||
생몰년도 | ? ~ 530년 10월 14일 | ||||||||||
재위기간 | 530년 9월 22일 ~ 530년 10월 14일 |
[clearfix]
1. 개요
교황 보니파시오 2세에 대항한 대립교황.2. 행적
본래 알렉산드리아 성당의 집사로, 단성론을 단호히 배척하는 입장을 취했다가 506년 단성론 지지자들의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로마로 피신했다. 당시 로마에서는 교황 직을 놓고 심마코와 라우렌시오간의 대립이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단성론과 칼케돈파간의 화합을 꾀하고자 동로마 황제 제노가 반포한 헤노티콘(Henoticon)을 받든 라우렌시오보다는 이를 배격하는 심마코 쪽이 교황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라벤나에서 이탈리아 전역을 통치하고 있던 테오도리크 대왕을 찾아가서 심마코를 유일한 교황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했다.마침 테오도리크 대왕은 동로마 제국을 적대하고 있었기에, 그의 의견에 따라 라우렌시오를 로마에서 영구 추방했다. 그 후 심마코의 뒤를 이어 교황에 오른 호르미스다의 중용을 받았고, 콘스탄티노폴리에 있는 동로마 황제 유스티누스 1세에게 사절로 찾아가서 아카키오스 분열을 해소시키는 데 공헌했다. 교황 펠릭스 4세의 재임 기간 동안에는 친 동로마 정파의 수장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펠릭스 4세는 전임 교황 요한 1세가 동로마 제국과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반감을 품은 테오도리크 대왕에 의해 강제 퇴위된 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일을 떠올리고, 자신이 죽으면 이 일로 인해 교회가 분열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보니파시오 2세를 차기 교황으로 내정했다. 그러나 다수의 로마 교구 사제들은 고트족 출신인 보니파시오 2세가 교황이 되는 것에 반감을 품었다. 530년 9월 22일 펠릭스 4세가 사망한 후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선거가 열렸을 때, 대다수 사제들이 디오스코로를 새 교황으로 세웠다. 이에 보니파시오 2세의 지지자들은 바실리카 율리아 성당에서 보니파시오 2세를 교황으로 선출했다.
이리하여 로마 교황직을 놓고 두 정파간의 갈등이 불거졌지만, 디오스코로가 3주 후인 10월 14일에 사망하면서 논쟁이 종식되었다. 보니파시오 2세는 공의회를 개최한 뒤 디오스코로를 지지했던 인사들로부터 순종 서약을 받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