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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7 20:40:21

라도슬라프 그라디슈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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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0522D><colcolor=#fff> 두클랴 크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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Радослав Градишнић}}}
출생 1125년
사망 1163년
재위 두클랴 크냐지
1143년 ~ 1163년
아버지 그라디냐
형제 로바르, 블라디미르
자녀 미하일로 3세
가문 보이슬라블예비치 왕조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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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두클랴 제6대 크냐지. 국왕 칭호를 버리고 동로마 제국의 가신으로서 명맥을 유지했다.

2. 생애

두클랴 제9대 국왕 그라디냐의 아들이다. 형제로 로바르, 블라디미르가 있었다. 1143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동로마 제국 황제 마누일 1세의 승인을 받고 계승했지만, 국왕 칭호를 버리고 크냐지를 택했으며, 형제 로바르, 블라디미르와 함께 영지를 분할했다. 그러나 그가 보유한 영역은 두클랴와 교외 지역 뿐이었고, 세르비아 대부분은 라쉬카 대공 우로시 1세가 통치하다가 두 아들 우로시 2세, 데사로 분할되었다. 데사는 1143년에서 1149년 사이에 동로마 제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하려는 두클랴 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라도슬라프와 그의 형제들을 밀어내고 두클랴 시를 점거했고, 라도슬라프와 두 형제는 코토르 주변으로 이동한 뒤 동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으며 명맥을 유지했다.

1149~1150년, 동로마 황제 마누일 1세가 세르비아를 향한 2차례 원정을 단행해 우로시 2세를 복종시켰다. 뒤이어 데사를 압박해 두클랴를 떠나게 한 후 라도슬라프를 다시 두클랴의 크냐지에 앉혔다. 이후 세르비아 전역이 우로시 2세와 데사 간의 패권 다툼에 휘말리는 동안, 라도슬라프는 두클랴에서 조용히 지냈다. 1163년경 사망했고, 아들 미하일로 3세가 뒤이어 크냐지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