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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울 곤살레스의 클럽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2. 데뷔 이전
평범한 노동자 집안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지역 라이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서포터였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틀레티코의 유스 클럽에 입단했으나, 12세 때 아틀레티코가 재정 문제로 유스 클럽을 일시 해체하면서 다른 마드리드의 연고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게 된다. 이 아틀레티코 유스의 붕괴는 레알 마드리드 창단 이래 가장 운이 좋았던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2.1. 레알 마드리드 CF
자세한 내용은 라울 곤살레스/클럽 경력/레알 마드리드 CF 문서 참고하십시오.
2.2. FC 샬케 04
라울이 변방 리그의 여러 클럽으로부터 고액 연봉을 바탕으로 한 러브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샬케에 합류한 이유는 챔피언스 리그 출전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많은 샬케 팬들의 기대를 받은 라울이었으나, 데뷔 후 첫 7경기에서 약 1달간 침묵하며 '퇴물인가', '역시 원 클럽 맨이라 적응이 힘든가' 등 부정적인 추측이 쏟아졌다. 그러다 보니 이 시기에는 클라스얀 휜텔라르가 골을 쏟아 내며 샬케를 지탱했다.2.2.1. 2010-11 시즌
그러다 9월 25일에 리그 6R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한 이후 10월 말부터 골이 하나 둘 쏟아지더니 어느새 분데스리가에서 무서운 능력을 과시했다. 특히 11월과 12월의 활약상이 어마어마했는데, 13R SV 베르더 브레멘전과 17R 1. FC 쾰른전에서는 해트트릭을 뽑아냈을 정도다. 그 반대로 훈텔라르는 무서운 침묵을 유지했다. 어쨌든 설마 하던 챔스도 조별 리그를 1위로 뚫어내고,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월에는 평범한 모습을 보이다, 챔피언스 리그의 사나이 아니랄까 봐 2월 중순에 챔스 16강 발렌시아 원정에서 득점을 기록한 이후 다시 골 행진을 이어갔다. DFB-포칼 준결승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 결승골을 넣어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며, 챔스에서도 16강을 넘어 8강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를 상대로 2경기에서 모두 득점을 뽑아내 합산 점수 7-3으로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그러나 토너먼트 성과를 대가로 리그에서 샬케는 극초반부터 극심한 부진을 겪었는데, 중반부터 살아나며 유로파 티켓까지 노려볼 수 있었으나 리그 마지막 4경기에서 모두 패배해 14위로 마쳤다. 그런 상황에서 챔스 준결승에서도 맨유에게 거하게 털리며 홈, 원정 모두 패배, 최근 6경기 모두 패배라는 참담한 상황에서 포칼 결승을 치르게 되었다. 다행히 결승 상대는 2부 리그의 MSV 뒤스부르크였기에 이 경기에서는 승리 가능성이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5-0 완승을 따내며 시즌의 대미를 포칼 우승으로 장식하게 되었다. 샬케로서도 9년 만의 우승이고 유로파 진출권도 따냈기에 뜻깊지만, 생애 최초로 국가 내 컵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라울에게도 감격스러운 우승이었다.[1] 특히 헤더 한 방으로 FC 바이에른 뮌헨을 침몰시킨 4강전 경기는 라울의 진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율공상축구탐구만화에서는 라울을 두고 "이제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골을 넣는 것 정도입니다."라고 평했다.
2.2.2. 2011-12 시즌
2011-12 시즌, 직전 시즌 중간에 감독이 펠릭스 마가트에서 랄프 랑닉으로 바뀐 이후 전술적 변화에 따라 프리 롤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제한된 역할을 부여받고, 그 역할을 주전으로 소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까지 겹쳐 말라가 CF, 파리 생제르맹 FC 등 신흥 강호에서 비드가 쏟아졌다. 하지만 라울은 프로답게 계약을 준수하겠다고 선언하여 잔류가 결정되었다.그렇게 샬케에서의 두 번째 시즌, DFL-슈퍼컵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2-0으로 꺾고 샬케 소속으로 2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공미로 포지션을 바꾼 라울은 팀의 중추로 활약하며 베르더 브레멘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뽑아내는 등 전반기에 리가에서만 무려 17경기 10골을 꽂아 넣었다. 샬케 팬들은 "레알 마드리드? 그게 뭔가요? 라울은 우리 레전드!"라며 날뛰었을 정도다. 2R 쾰른과의 리가 경기에서는 그림같은 칩샷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 골은 훗날 2013년에 선정한 분데스리가 최고의 골들 중에 하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후반기에도 매 경기 선발 출전하였고, 2월 19일 경기에서는 프로 통산 400번째 골을 기록했다. 한편, 유로파 리그에서는 16강까지 리그에서보다 아쉬운 9경기 1골을 기록 중이었는데, 8강 아틀레틱 클루브전에서 2경기 3골을 넣으며 노장의 무서움을 보였으나, 샬케는 합산 점수가 밀려 탈락했다. 그러다 4월 19일에 기자 회견을 통해 계약 기간이 끝나는 6월에 샬케를 떠날 것임을 밝혔고, 시즌 막판까지 클라스얀 훈텔라르와 함께 공격진을 이끌며 샬케를 리그 3위에 안착시켰다.
샬케 구단에서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라울의 작별식을 치러주었고, 라울과의 계약이 만료된 뒤 라울의 등번호 7번을 임시 결번으로 지정하였다.
2.3. 알 사드 SC
그렇게 2011-12 시즌 종료 후, 샬케 04를 떠나 5월 12일에 알 사드 SC로 이적을 하게 된다. 계약 기간은 1년 계약으로, 직전 시즌에 알 사드가 리그 4위에 머무르면서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얻지 못해 K리그 팀과 대결할 일은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울은 총 34경기 12골을 기록하며, 알 사드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2013년 8월 22일에는 알 사드가 트로페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2]에 참여하며 친정 팀인 레알 마드리드를 만났다. 라울은 전반에는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임해 득점을 기록했고, 후반에는 알 사드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3] 그리고 경기 전에는 자신이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 들어올린 트로피와 함께 마드리디스타들에게 인사를 건넸으며, 경기 중에는 현재 7번을 달고 있는 선수에게 직접 7번을 건네주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계약 기간을 연장하며 한 시즌 더 뛰게 되었다. 그러면서 AFC 챔피언스 리그 무대도 밟게 되었다. 다만 K리그 팀을 상대로는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경기력도 예전만 못해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2014년 3월에 알 사드를 떠남과 동시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4년 레알 마드리드가 라울의 복귀를 추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거기에 코칭 스태프가 아닌 스포팅 디렉터나 구단 스태프 자리를 약속한다고. 라울 측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2.4. 뉴욕 코스모스
그러던 2014년 10월 30일에 은퇴 번복과 동시에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하였다. ESPN에 따르면 연봉을 비롯해 정확한 계약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년 계약 가능성이 높다고 하며, 2015년에 창설되는 유스 아카데미로 지도한다고 한다.2015 시즌 NASL 봄 시즌에 9경기 출전 4득점으로 6월 13일 뉴욕 코스모스를 NASL 봄 시즌 5승 5무 무패 우승으로 이끌었다. 6월 17일에는 FA컵에 해당하는 US 오픈 컵 32강전에 출전, 뉴욕 시티 FC를 상대로 승부차기 승리를 하는 데 일조했다. 가을 시즌에도 19경기에 출전하며 팀을 이끌었고, 포스트시즌에는 오타와 퓨리를 상대로 3-2 승리를 거두며 미국에서도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 11월 15일 오타와 퓨리와의 경기를 끝으로 동료 마르코스 세나와 함께 현역에서 은퇴했다.
[1]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단 한 번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는 불운이 있었는데, 1992-93 시즌 우승 이후 18년 간 우승이 없다가 라울이 떠나자 마자 우승을 거두었다.[2] 레알 마드리드가 매 프리시즌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를 기념하여 개최하는 친선 대회이다.[3]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의 5-0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