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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08:06:33

라이온피쉬

1. 1944년에 취역

미 해군이 태평양 전쟁 중에 건조한 발라오급 잠수함 중 한 척인 라이온피쉬(USS Lionfish SS-298)는 1942년 12월 15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Philadelphia, Pa.)의 크램프 조선소(Cramp Shipbuilding Corp.)에서 건조되어 1943년 11월 7일 진수되었으며, 해롤드 트레인(Mrs. Harold C. Train) 여사의 후원으로 1944년 11월 1일 취역했다. 라이온피쉬의 초대 함장은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의 아들 에드워드 스프루언스(Edward n. Spruance) 중령이 초대 함장을 맡았다. 뉴잉글랜드(New England)에서 출항한 라이온피쉬는 1945년 1월 8일 태평양으로 향했고, 2월 25일 키웨스트(Key West Fla.)를 거쳐 진주만에 도착했다.

3월 19일 첫 전투 초계를 떠난 잠수함 SS-298은 사이판(Saipan)에 기항한 후 분고 수도(豊後水道) 남쪽 지역으로 향하여 4월 1일에 도착했다. 4월 11일 라이온피쉬는 적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 2발을 피했고, 4월 1일에는 서해에서 순찰 중 일본 범선 한 척을 발견하고 함포를 발사해 불태워버렸다. 그날 이후 라이온피쉬의 승무원들은 상하이 앞바다에서 인명 구조 임무를 맡았다. 라이온피쉬는 5월 9일 가토급 잠수함 레이(USS Ray SS-271)와 합류하여 추락한 B-29 생존자들을 태우고 사이판으로 향하여 5월 15일 도착했다. 승객들을 하선시키고 연료를 채운 후 미드웨이로 향한 라이온피쉬는 51일간의 작전을 마치고 5월 22일에 모항에 도착했다.

다시 한 번 작전에 투입된 잠수함은 1945년 6월 20일, 코너 갠야드(Comer. B. M. Ganyard) 함장의 지휘를 받아 2차 초계를 나가 다시 분고 수도로 향했다. 7월 10일에 일본 해군의 I-162(伊号第百六十二潜水艦)을 발견하고 부상한 상태에서 어뢰를 쏘고 급속 잠항했다. 라이온피쉬가 잠망경 수심에 도달해 수면 위로 내밀고 목표물 방향을 살펴보니, 연기 구름만 보였다. 몇 초 뒤에 라이온피쉬의 승조원들은 큰 폭음을 듣고 적 잠수함이 침몰한 것으로 추정했지만 전후 기록에서 이를 다시 확인할 수는 없었다.

​라이온피쉬는 다른 2척의 일본 잠수함에 대한 공격에 실패하면서 어뢰를 모두 써버렸고, 7월 18일까지 인명 구조 임무를 수행한 후 7월 21일 사이판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뢰를 적재하고 급유를 마친 라이온피쉬는 다음 날 일본 난세이 제도(南西諸島)와 혼슈 앞바다에서 인명 경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항했다. 8월 15일 적대 행위가 끝날 때까지 이 해역에 머문 라이온피쉬는 8월 22일에 미드웨이로 향했다. 8일 후 라이온피쉬는 북미 서해안으로 출발하여 1945년 9월 11일 메어아일랜드 해군조선소(Mare Island Navy Yard)에 도착했고, 1946년 1월 16일 퇴역하여 태평양 예비 함대에 모스볼 조치되었다.

2. 재취역

라이온피쉬는 5년 뒤인 1951년 1월 31일에 아서 매킨타이어(Arthur G. McIntyre) 중령을 함장으로 삼아 재취역했다. 잠수함은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점검과 훈련을 수행한 후 4월 5일 샌디에이고를 출발해 파나마 운하를 거쳐 4월 21일 키웨스트에 도착했다. 1951년 6월 11일까지 현지에 있는 소나 학교(Fleet Sonar School)에서 훈련함으로 이용되다가 6월 16일 새로운 모항인 뉴런던(New London)으로 떠났다. 9월 25일 관타나모만(Guantanamo Bay)에서 훈련을 위해 다시 출항할 때까지 뉴런던에서 훈련함으로 복무한 라이온피쉬는 10월 31일 정비와 보스턴 근해에서 연안 훈련을 위해 뉴런던으로 돌아올 때까지 운항했다. 1952년 7월 7일, 잠수함은 버뮤다(Bermuda)와 나소(Nassau)로 순항을 시작하여 8월 7일 뉴런던으로 돌아왔다. 10월 18일에는 지중해 순항을 위해 출항하여 몰타를 방문하고 이즈미르(Izmir), 팔레론(Phaleron), 타란토(Taranto), 나폴리(Naples)를 차례로 방문한 후 NATO 훈련에 참가했다. SS-298은 12월 12일 미국으로 향했고 12월 27일 뉴런던에 도착했다.

1953년 6월 30일, 잠수함 라이언피쉬는 이번에는 진짜로 퇴역 처리를 위해 보스턴 해군 조선소(Boston Naval Shipyard)에 도착했다. 11월 3일 뉴런던으로 예인되어 1953년 12월 15일까지 전투 장비와 설비들을 해체된 후 대서양 예비함대에 합류했다. 라이온피쉬는 1960년 3월 1일 예비역으로 배치되어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Providence)로 견인되어 해병대 예비함 부두에 정박했다. 라이온피쉬는 참전 기간은 짧았으나 배틀스타 1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