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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9 10:28:05

라인하르트 체제


<colbgcolor=#ddd,#222> 라인하르트 체제[1]
존속기간 서기(A.D.): 3597. 9. ?? ~ 3599. 6. 20.
우주력(SE): 797. 9. ?? ~ 799. 6. 20.
제국력(RC): 488. 9. ?? ~ 제국력 490. 6. 20
제국재상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
주요 사건[2] RC 489 ~ 490 황제 납치 사건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RC 490. 6. 20. 카타린 케트헨 1세의 퇴위
골덴바움 왕조의 멸망
이전 추축파[3]
이후 로엔그람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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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등장하는 체제. 작중에서의 특별한 이름은 없다.

2. 상세

은하영웅전설에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하제국의 실권자로 집권하고 황제로 즉위하기 전까지 제국재상으로서 실권을 휘두른 시기의 총칭.

3. 구성원


그 외에 라인하르트 원수부의 인사들이 이 체제의 실세였고 칼 브라케오이겐 리히터 같은 진보파들이 체제에 속하여 민중을 위하여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로엔그람 왕조의 초대 인사진이 된다. 차이점은 아직 라인하르트가 황제가 아닌 관계로 제국군 3대 장관은 라인하르트의 손에 있었고 제국재상이 남아 있다는 점, 그리고 제국원수는 라인하르트 1명뿐이라는 점 정도.[7]

4. 구조

명목상의 군주인 황제, 실질적인 통치자인 제국재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당시에는 아직까지 골덴바움 왕조는 공식적으로 멸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목상의 통치자는 여전히 황제였지만, 제국의 실권을 잡은 건 제국재상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그의 부하들이므로 골덴바움 왕조는 실질적으로 이 시기에 멸망했다. 골덴바움의 마지막 황제 카타린 케트헨 1세 시기에는 아예 군인들이 라인하르트를 향해 지크 카이저라 외쳤을 정도.

다만 이렇게 명목상으로나마 라인하르트가 절대지존인 황제가 아니다 보니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는 제국 원수라는 라인하르트의 계급을 반영하여 제국의 쌍벽인 로이엔탈이나 미터마이어가 나서지 못하고 그 아랫단계인 칼 구스타프 켐프가 나서기도 했다.

5. 분위기

전체적으로 많이 자유로워졌다. 라인하르트의 개혁은 제국 자체와 제국민 모두에게 효과가 있어서 자세한 분위기는 묘사되지 않지만 지나가듯이 라인하르트에 대한 열렬한 제국민들의 지지가 나타나며, 황제 납치 사건 이후 일제히 은하제국 정통정부의 타도를 외치며 제국민들이 열렬히 군대에 입대하는 모습을 보면 라인하르트의 개혁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그 자신이 황제가 되는데 필요한 민심을 확보하였다.

다만 황실 및 귀족층의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았는데 립슈타트 전역으로 주축이었던 문벌귀족이 대거 갈려나갔고 황제인 에르빈 요제프 2세도 더 이상 실권자가 아니다 보니, 정무는 거의 재상부에서 이뤄졌으며 궁궐인 노이에 상수시도 이러한 변화로 인해 북원과 서원은 폐쇄되고 동원과 남원도 절반이나 폐쇄되었으며 궁녀 및 내관도 대다수 해고되었다.[8] 거기다 귀족들간의 파티와 야유회 같은 것도 대거 감소하여 노이에 상수시에서는 일부 형식적인 국가행사만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반대로 라인하르트의 권위는 크게 상승하였는데 이미 에르빈 요제프 2세 때부터 앞에 말한대로 황실의 위신은 크게 추락했고 그 위신은 전적으로 라인하르트에게 돌아갔다. 이 때 라인하르트는 공작 작위, 제국원수 계급. 제국군 3대 장관, 제국재상을 모두 한 손에 쥐었고 황제는 어리고 근왕세력도 없어졌기에 사실상 에르빈 요제프 2세는 장식이고 본인이 황제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기조는 카타린 케트헨 1세때 더 강해져 아얘 페잔 점령 작전 당시 제국군은 엄연히 황제가 따로 있음에도 라인하르트를 향해 카이저라 불렀고 라인하르트는 이르다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6. 역사

6.1.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전까지

프리드리히 4세는 적법한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고 이에 제국에서는 황제의 손자인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지지하는 리히텐라데-라인하르트 연합의 '추축파'와 이를 반대하는 브라운슈바이크-리텐하임 연합인 '연합파'간의 내전인 립슈타트 전역이 터진다. 내전은 리히텐라데-라인하르트 연합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 둘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에 라인하르트측 세력이 좀 더 재빠르게 움직여 순식간에 리히텐라데마저 몰락시키고 제국의 권력을 쥐게 된다.

집권한 라인하르트는 개혁을 실시한다. '공평한 재판과 공평한 세금 제도'라는 모토아래 법 집행을 공정하게 개선시켰으며 기존까지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던 귀족들의 특권을 폐지했으며 내전에서 패배한 측 귀족들의 재산을 몰수해 재정을 확보하였고 그들이 소유한 저택들은 평민들을 위한 병원이나 복지시설로 개조되었으며 귀족 소유 미술품들은 공공 미술관으로 보내졌고 장원을 해체하여 농민들에게 나눠주고 농노는 해방시켰다. 그리고 귀족 전용 특수 금융기관이 폐지되고 농민들을 위한 농민금고가 신설되었다.

행정조직과 정치 또한 손을 보아서 사회질서유지국을 폐지시키고 내국안전보장국을 신설했지만 내국안전보장국은 사회질서유지국과는 달리 순수 정치범만을 다루는 기관으로 변모했고 급진 공화주의자나 테러범 같은 극히 위험한 이들을 뺀 사상범이나 정치범도 석방되었으며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던 신문과 잡지도 일부 재간되었다.

이런 개혁정책으로 제국의 상황은 급격해 개선되었으나 당연히 이러한 개혁은 라인하르트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이 정책으로 인한 인기는 골덴바움 왕조가 아니라 라인하르트가 얻게 되었고 이 시점에서 골덴바움 왕조는 허울로 전락한 셈이었다.[9]

6.2.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이러한 와중에 샤프트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그것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사용해 이제르론 요새를 상대하다는 것. 그 의도야 뻔했지만 어쨌거나 라인하르트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기에 실행되었다. 그러나 원래는 로이엔탈이나 미터마이어가 맡는게 좋았겠지만 라인하르트는 제국군 원수 계급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는 상급대장 계급이므로 이 공로로 승진한다면 둘 중 하나는 라인하르트와 동급이 되어야 하는 정치적인 이유로 켐프가 맡게 된다.

이 전투 자체가 페잔 자치령의 뒷공작이 있었으므로 갑작스런 대형 요새와 싸우게 될 줄 몰랐던데다 양 웬리마저 수도로 소환된 상태의 양 함대 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여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예상외로 양 함대는 잘 버텼고 여기에 켐프의 승진 욕심으로 싸움은 질질 끌렸고 그 사이에 양이 복귀했고 복귀한 양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파괴하였으며 결국 제국군은 지휘관인 켐프는 전사하고 전 병력의 90%가 소멸하는 참패를 겪는다.

참패를 겪긴 했지만 동맹의 제국령 침공작전처럼 꼴아박은 아니었던 만큼 제국의 군사력 변화 같은건 없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샤프트가 저지른 불법이 드러나 샤프트는 체포되었다.

6.3.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제1차 라그나로크 작전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패배해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손실비는 커도 전체 제국군 숫자에서는 큰 수치도 아니었기에 그렇게 큰 손해를 본 것은 아니어서 라인하르트의 위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라인하르트에게도 한 가지 문제점은 있었다.

당시 황제인 에르빈 요제프 2세는 어린아이였으며 때문에 라인하르트가 제국재상이라는 이름 하에 자신의 뜻대로 정치하기에 편했지만 반대로 그의 최종점인 찬탈에는 장애물이었다. 아직 어린아이다 보니 적법한 방식으로 황제 자리를 얻을 방법이 요원했을 뿐더러 그의 직계 친족들도 모두 일찍 죽어 그를 대신해서 황위를 양도해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접근해온 이들이 있었으니 페잔이었다. 페잔 자치령은 흑막의 의도로 그간 제국과 동맹간의 전쟁에서 서로의 국력을 일정 비율로 유지해서 전쟁을 질질 끌었는데 제국의 개혁으로 제국의 국력이 상승하고 동맹은 내전으로 국력이 추락해 더이상은 국력의 비율을 맞출 수 없게 되자 제국을 도와 동맹을 멸망시키고 이렇게 통일된 제국을 자신들이 먹어치운다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기 때문이고 이를 위해 이미 동맹이나 문벌귀족 잔당과 망명정부 계획을 세워둔 뒤였다.

아무튼 페잔이 제국에 내세운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제국이 동맹이 침공할 시 자신들이 그 길(페잔 회랑)을 열어주겠다는 것. (물론 그 대가를 달라)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페잔의 의도를 알아채고 페잔측 대표인 볼텍을 압박했고 때문에 볼텍은 되려 제국의 앞잡이가 되어버린다.

아무것도 모르던 페잔은 문벌귀족 잔당이 실행범이 된 황제 납치를 성공시키고 동맹정부의 협조를 얻어 망명정부를 세우는데 성공하고 라인하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황제를 폐위하고 카타린 케트헨 1세를 즉위시키며 동맹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6.4. 제1차 라그나로크 작전

라인하르트는 모두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일부러 이제르론 방면으로 대규모 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페잔을 향한 비밀스런 공격도 준비되어 있었고 이미 볼텍의 배신으로 인해 정보가 통제되어 있던 페잔 자치령은 허무하게 멸망하고 페잔, 그리고 페잔 회랑은 점령당한다. 이 때 제국군은 라인하르트를 향해 지크 카이저라 했다. 원래대로라면 불경죄지만 아무도 그것을 따지지 않았다.

이후 제국군은 페잔 회랑 인근의 우르바시를 점령하고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서도 승리하지만 막판에 개입한 양 함대로 인해서 완전 궤멸에는 실패하고 이후 양 웬리가 세운 계획에 따라 제국군은 수송함대가 털리고 3개의 함대가 연속으로 털리는 등 악재를 겪었고 결국 라인하르트가 이 같은 도발에 버밀리온 성역에서 양 웬리와 결전을 치른다.

버밀리온 회전에서 라인하르트는 전술적 패배를 하고 결국 죽기 직전에 이르지만 힐데가르트,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세 사람이 동맹 정부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서 전세가 역전되어 양 함대가 항복하는 것으로 버밀리온 회전은 제국군의 승리로 끝나며 이후 동맹과 바라트 화약을 맺으며 제1차 라그나로크 작전에서 제국군이 승리한다.

6.5. 로엔그람 왕조

이미 이전부터 라인하르트의 위세는 드높아져 있었지만 동맹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그가 찬탈을 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명분이었고 결국 라인하르트와 그 일파는 황제의 아버지인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공작에게 그와 그의 딸의 신변 보장, 카타린 케트헨 1세가 죽을 때까지 연 150만 제국마르크 지급 등을 약속하는 대가로 황제 자리를 받아내며 결국 양위하겠다는 서약서를 내밀었고 페크니츠 공작이 이에 서명하면서 골덴바움 왕조는 멸망하고 이틀 후 라인하르트가 황제에 즉위하면서 로엔그람 왕조가 시작된다.
[1] 정식 명칭은 없다.[2] 제국력 연호인 제국력 (RC)으로 표기함.[3] 리히텐라데-라인하르트 연합[4] 2명의 황제가 있었지만 모두 라인하르트의 꼭두각시였다.[5] 이 외에 제국군 3대 장관을 겸직했으며 제국 유일의 원수다.[6] 전 사회질서유지국장[7] 이는 정치적인 이유가 커보인다. 라인하르트는 관료나 역사깊은 명문귀족 출신이 아닌 군인 출신으로 시작했다. 때문에 제국군에서 자신과 동급의 계급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면 곤란해지므로 일부러 제국군 3대 장관을 그대로 가지고 제국원수 계급도 자신만 가진듯 하다.[8] 예외적으로 나이 든 이들은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 하여 남겨두었다.[9] 물론 이전에도 골덴바움 왕조에는 실권을 잡은 권력자들이 있었으나 그 때에는 근왕 세력이 있어서 아무도 왕조를 넘볼 수는 없었지만 이 때는 근왕 세력도 없어서 골덴바움 왕조는 정말 허수아비 신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