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23:51:16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즉위식


1. 소개2. 배경3. 즉위식4. 기타

1. 소개


은하영웅전설에서 등장하는 사건. 이 일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은하제국 황제로 즉위해 로엔그람 왕조를 건국한다. 이 일에 대한 특별한 이름은 없다.

2. 배경

2.1. 골덴바움 왕조의 몰락

골덴바움 왕조는 루돌프 대제 이래 38대 490년간 이어져왔다. 하지만 말기로 갈수록 장기화된 제국-동맹 전쟁문벌귀족들의 횡포로 엉망이 되어갔고 여기에 암군프리드리히 4세의 치세가 길어짐에 따라 나라 자체가 분권화되는 성향이 짙어져갔다.

이 때 나타난 인물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다. 본디 가난한 하급귀족인 뮈젤가에서 태어났지만 누나인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가 황제의 후궁으로 끌려가면서 황제에 대한 복수심과 골덴바움 왕조에 대한 환멸심과 야망으로 은하제국 유년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 군인이 되어 황제를 몰아내고 자신이 새 황제가 되고자 했다.

공훈으로 승진을 거듭하던 라인하르트는 20세에 대가 끊어졌던 로엔그람 가문에 입적되었고 아스타테 회전에서의 승리로 제국원수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하고 제국이 추축파와 연합파로 분열되어 연합파 귀족들이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결성하여 반기를 들고 라인하르트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내전이 일어난다.(립슈타트 전역)

내전의 결과 연합파 귀족들이 몰락했고 뒤이어 리히텐라데도 끌어내림으로서 라인하르트는 제국의 실권을 쥐게 된다. 이 때도 라인하르트는 제국재상이긴 했으나 황제는 엄연히 프리드리히 4세의 손자인 에르빈 요제프 2세였으므로 골덴바움 왕조가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라 해도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황제인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몰아내고 즉위할 수는 없었기에 황제 납치 사건을 벌였고 문벌귀족 잔당들이 자유행성동맹과 함께 납치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내세워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세우자 이를 빌미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폐위하고 카타린 케트헨 1세를 옹힙하였으며 자유행성동맹에게 전쟁을 선포한다.(제1차 라그나로크 작전)

제1차 라그나로크 작전은 은하제국의 승리로 끝났고 바라트 화약이 맺어져 자유행성동맹은 제국의 속국으로 떨어지다시피 했다. 그리고 동년 6월 20일, 결국 섭정이던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로부터 양위를 받아내어 골덴바움 왕조가 멸망하고 로엔그람 왕조가 건국되었다.

3. 즉위식

즉위식은 6월 22일, 노이에 상수시에서 거행되었다. 즉위식의 왼편에는 관료들이 오른편에는 장교들이 서 있었지만 라인하르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라인하르트는 두 사람을 찾는듯 좌우를 돌아봤지만 결국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옥좌로 눈을 둘렸을 때 옥좌 옆에 두 사람이 있는 환상을 보았지만 곧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옥좌에 올려져 있는 왕관을 머리에 쓰고 연호하는 "지크 카이저 라인하르트" 를 들었다.

그런데 사실 라인하르트의 즉위식은 굉장히 간소하게 치러졌다.[2] 이유는 낭비를 혐오하는 라인하르트의 성향 때문으로, 국무상서인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역시 최대한 간소하게 준비했다. 이는 이후에 열린 축하연도 마찬가지였는데 라인하르트는 축하연에서 마린도르프 백작의 준비에 만족스러워하며 예전처럼 성대하게 하는 건 예산낭비에 지나지 않는다며, 국가가 있는 이상 의식이나 식전을 안 할 수는 없지만 필요 이상으로 할 필요는 없으니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은 후대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4. 기타

라인하르트의 즉위식에서 그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심지어 한 명이 자리에 오르게 만든 계기가 되었고 다른 한 명그런 자신을 충직하게 모셔온 사람이지만 장직 즉위식에는 라인하르트 자신의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반다이남코판 게임에서는 키르히아이스 생존 시 두 사람 모두 즉위식에 참석한다.
파일:external/pds19.egloos.com/e0063488_4c4be3ce665eb.jpg
[1] 등장하긴 하나 즉위식 자체는 각 편의 끝과 시작에만 등장해 별 비중이 없고 축하연이 더 비중이 높다.[2] 예시로 프리드리히 4세는 신하들과 정식으로 접견할 때 보석으로 추정되는 걸 박아넣은 반지를 끼고 있는데, 라인하르트가 즉위식에 입은 건 군복 위에 걸친 망토 하나가 전부로 반지니 뭐니 하는 것도 없었다. 그나마 왕관은 구 제국 시절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일부러 만들어 예산 낭비하느니 그냥 있는 걸 쓰는게 낫다고 생각한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