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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22:33:42

레온하르트 폰 블루멘탈


파일:독일 제국 전쟁기.svg 1890년~1900년대 독일제국군의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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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하르트 폰 블루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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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6> 독일 제국군 육군 원수
레온하르트 폰 블루멘탈
Leonhard von Blumenthal
파일:1200px-Generalfeldmarschall_Leonhard_Graf_von_Blumenthal.jpg
이름 Karl Konstantin Albrecht Leonhard Graf von Blumenthal
카를 콘스탄틴 알브레히트 레온하르트 폰 블루멘탈 백작[1]
출생 1810년 7월 30일
프로이센 왕국
사망 1900년 12월 21일 (향년 90세)
독일국
복무 프로이센군 (1827 ~ 1871년)
독일 제국군 (1871 ~ 1896년)
최종 계급 육군 원수(Generalfeldmarschall)
주요 참전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주요 서훈 백엽 푸르 르 메리트
1. 개요2. 생애
2.1. 초기2.2.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2.3.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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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온하르트 폰 블루멘탈은 독일 제국군의 군인으로 최종계급은 원수이다.

2. 생애

2.1. 초기

레온하르트 폰 블루멘탈은 1810년 프로이센 왕국에서 프로이센 왕국군 대위 루트비히 폰 블루멘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데네비츠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는 할아버지의 영지인 레데친에서 자랐고, 블루멘탈은 이후 첼름노과 베를린에 있는 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았다. 1827년 블루멘탈은 근위대에 소위로 임관되었다. 이후 프로이센 전쟁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라인에서 복무한뒤, 장군참모 과정을 밟기 시작하였으며, 1848년 혁명 당시 진압을 도왔다. 동시에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는 에두아르트 폰 보닌의 참모장교로 복무하였다.

1850년 블루멘탈은 헤센 선제후국 티첸 휘하의 기동 사단의 참모장교가 되었다. 이후 여러차례 영국에 파견되었다. 1859년 그는 중령이 되었고,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의 부관이 되었다.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는 대령으롯 3군단의 참모장으로 활동하였다. 블루멘탈은 이 전쟁에서 그의 군사적 역량을 보여주었다.

2.2.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블루멘탈은 프리드리히 왕태자가 지휘하는 제2군의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블루멘탈은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만든 계획으로 오스트리아 제국군을 이겨냈다. 프리드리히 3세는 그에게 "나는 내 군대의 지휘를 누구에게 빚진 것인지 알고 있다." 라고 말할 정도로 꽤나 큰 공을 세웠다. 블루멘탈은 곧 푸르 르 메리트에 백엽을 추가하였고, 중장으로 진급과 동시에 기사가 되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전까지 그는 뒤셀도르프에서 14사단을 지휘하였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그는 다시 한번 프리드리히 3세와 함께 3군을 지휘하였다. 블루멘탈의 군사적인 능력은 이곳에서 굉장히 크게 드러났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도 그가 헬무트 폰 몰트케 다음으로 공이 많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블루멘탈의 이름은 신문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블루멘탈은 독일 제국의 선포식에 참여하였다.

2.3. 그 이후

블루멘탈은 군사 임무로 여러 번 해외로 파견되었다. 1883년 그는 프리드리히 왕세자와 함께 스페인으로 갔다가 이후 백작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1888년 3월 12일 원수가 되었으며, 4육군 감찰단의[2] 사령관으로 부임하였다. 1892년부터 3육군 감찰단의 사령관으로 부임하였으며 1896년 전역하였다. 이후 1900년 독일 제국에서 죽었다.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블루멘탈'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바이에른 왕국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