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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30 22:37:26

로버트 로즈

로버트 로즈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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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YokohamaBaystars98champion.pn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1998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1993년 센트럴리그 최다 타점
1992년
래리 시츠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100타점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히로사와 카츠미
(야쿠르트 스왈로즈)
94타점
1994년
타이호 야스아키
(주니치 드래곤즈)
107타점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1999년 센트럴리그 최다 타점
1998년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100타점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53타점
2000년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108타점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1997년 센트럴리그 최고 출루율
1996년
에토 아키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431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444
1998년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421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1999년 센트럴리그 수위타자
1998년
스즈키 타카노리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337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369
2000년
킨죠 타츠히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346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1999~2000년 센트럴리그 최다 안타
1998년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74안타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2안타(1999년)
168안타(2000년)
2001년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71안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등번호 6번
조 레드필드
(1988)
로버트 로즈
(1989~1992)
J.T 스노우
(1993~1996)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등번호 23번
R.J 레이놀즈
(1991~1992)
로버트 로즈
(1993~2000)
오가와 히로후미
(2001~2004)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4번
사카이 타다하루
(1997~2002)
로버트 로즈
(2003)
맷 프랑코
(2004~2006)
}}} ||
파일:external/iwiz-spo.c.yimg.jp/201404250007-spnavi_2014042500034_view.jpg
<colbgcolor=#fff> 로버트 리처드 "바비" 로즈
Robert Richard "Bobby" Rose
출생 1967년 3월 15일 ([age(1967-03-15)]세)
캘리포니아 주 코비나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85kg
출신학교 샌디머스 고교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5년 MLB 드래프트 5위
소속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89~199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3~2000)
치바 롯데 마린스 (2003)

1. 개요2. 선수 시절3. 기타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일본프로야구 선수.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소속으로 뛰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짧은 전성기를 이끈 외국인 선수.

2. 선수 시절

1985년 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121순위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입단하여[1] 1992년까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콜업 기회가 줄어들자 1993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입단했다.

일본프로야구의 외국인 야수로서는 드물게 2루수[2][3]로 8년을 뛰면서, 통산 .325의 고타율과 4할 이상의 출루율로 베스트나인 6회에 선정되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머신건 타선[4]의 중심에서 요코하마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입단 초창기엔 같은 시기에 요코하마에 입단한 신시내티 레즈1990년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였던 글렌 브랙스가 거물 용병으로 더욱 주목을 끌었으나, 그럼에도 브랙스와 함께 주전 중심타자 자리를 지키며 요코하마 타선을 이끌면서 이적 첫해인 1993년 94타점으로 타점왕을 수상하였고[5], 이후 브랙스가 1996년 부상 및 성적부진으로 은퇴하자, 바로 붙박이 4번 타자 자리를 꿰차며 요코하마 전성기의 중심타자로써 대활약을 펼쳤다.

파일:external/art63.photozou.jp/106965575.jpg
몬스터 시즌이었던 1999년의 성적이 적힌 야구 카드.

요코하마의 일본시리즈 우승 시즌인 1998년 .325/.413/.516 19홈런 96타점을 기록하며 1998년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더불어 그의 커리어에서 유일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요코하마가 팀타율 .291을 기록한 '머신건 타선'의 절정을 찍은 해였는데, 로즈는 그 해 타율 .369/OPS 1.093[6] 192안타 37홈런 153타점의 맹활약을 펼치며 수위타자와 타점왕, 최다안타 타이틀을 차지한다. 이 해 기록한 192안타는 2005년 아오키 노리치카가 202안타를 칠 때까지 센트럴리그 단일시즌 최다안타 기록이었으며, 153타점은 1950년 쇼치쿠 로빈스[7]의 코즈루 마코토[8]가 기록한 161타점을 잇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역대 2위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괴물 같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당해 MVP 투표에선 주니치 드래곤즈 선수진의 우승 버프에 밀려 1위 표를 고작 1개만 받은 채 5위에 그쳤다.[9] 투표 출처

2000년에도 타율 .328/168안타로 최다안타, 타율 2위[10]를 기록하는 등 여전한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시즌 후 재계약 협상에서 연봉 5억 엔+다년 계약을 요구한 로즈와 단년 계약을 제시한 요코하마 구단[11]과의 의견 차이로 협상이 결렬되어 8시즌간 뛰어온 요코하마를 떠나게 되었다. 요코하마 퇴단 직후 로즈를 영입하려는 일본 내 타 구단의 러브콜도 있었으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며 은퇴를 선언, 미국으로 귀국해버린다.

이후 2년간 소속팀 없이 트레이닝만 계속하면서 지내오다가, 2003년에 치바 롯데 마린즈와 연봉 8천만엔의 단년 계약을 맺고 재차 일본으로 왔다. 하지만 2년간 야구에 손을 놓았던 데다 당시 나이도 36세로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연습시합에서 계속 무안타에 머무르는 등 스프링캠프 시작 때부터 노쇠화가 뚜렷한 모습을 보였고, 때마침 가족들까지 외지 생활을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결국 입단한 지 채 1개월도 안되어 돌연 "야구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버렸다"란 말을 남기고 캠프 도중 퇴단, 역대 최단기간 퇴단 기록(28일)만 남긴 채 그대로 다시 은퇴하고 만다. 치바롯데 팬들에게는 먹튀로서 기억되는 원인. 여담으로 로즈가 퇴단을 선언하면서 주포 자리가 비워지게 된 치바 롯데는 로즈의 대타로 황급히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호세 페르난데스를 영입하게 된다.

3. 기타


Come on Rose Victory
Hustle Bobby Go Go Go
Come on Rose Victory
Hustle Bobby Go Go Go

4. 관련 문서



[1] 드래프트 동기들을 보면 배리 라킨(1라 4순위), 배리 본즈(1라 6순위), 라파엘 팔메이로(1라 22순위), 랜디 존슨(2라 36순위), 데이비드 저스티스(4라 94순위), 채드 크루터(5라 109순위), 디온 샌더스(6라 149순위), 알 마틴(9라 198순위), 브래디 앤더슨(10라 257순위), 보 잭슨(20라 511순위), 존 스몰츠(22라 574순위), 짐 애보트(36라 826순위) 등이 있다. 심지어 볼티모어 오리올스로부터 14라운드 359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다음해 NBA로 간 델 커리도 있다.[2] 일본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용병 2루수로는, 로즈 이외에도 쿠바 출신으로 50~60년대 한큐 브레이브스에서 빠른 발과 화려한 수비로 활약한 로베르토 바르본,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전신인 타이요 훼일즈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거친 거포 2루수 존 시핀, 한큐 브레이브스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활약한 베네수엘라 출신의 바비 마르카노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2루수유격수 등 센터 내야수로서 데뷔한 외국인 선수들은 많았으나, 대부분은 일본프로야구에서 커리어를 거치면서 타격을 살리거나 자국인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다는 이유로 3루수, 1루수, 코너 외야수지명타자 자리로 이동하였다.[3] 1996년에 신임 감독으로 취임한 오오야 아키히코의 내야 수비진 변혁 구상에 의해 3루수로 포지션을 옮기기도 했으나, 3루 수비에서 필딩률 .962에 그치는 등 난조를 보이면서 본래 2루수를 맡을 예정이었던 신도 타츠야에게 3루 자리를 내주고 2루수로 돌아왔다. 대신 3루수-유격수 포지션을 서로 맞바꾸게 된 이시이 타쿠로신도 타츠야가 새로운 포지션에 잘 정착하면서 이 구상은 성공을 거두었다.[4] 당시 요코하마 타선은 이시이 타쿠로 - 하루 토시오호타준족 리드오프, 스즈키 타카노리 - 로버트 로즈 - 코마다 노리히로의 출중한 장타력, 교타력을 겸비한 중심타선, 그 뒤를 받치는 하위타선사에키 타카히로, 나카네 히토시, 타니시게 모토노부, 신도 타츠야와 같이 상위타선으로 가기엔 아쉽지만 그래도 나름 쓸만한 타격을 갖춘 선수들이 자리잡는 등, 전 타순을 막론하고 타격이 좋은 선수들이 포진해있었다. 이들은 컨택이 나빠서 주로 8번에 선 신도 타츠야를 빼면 대부분 3할 초중반대의 고타율을 노릴 수 있는 컨택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한 시즌 10여개 언저리의 홈런을 날릴 수 있는 적당한 장타력과 안타 머신으로써의 연타력까지 지닌 교타자들이었으며, 이 타자들이 머신건(기관총)처럼 안타를 연발하며 상대팀을 날려버리는 것이 당시 요코하마의 공격력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1997~2000년까지 센트럴리그 수위타자(2000년 수위타자는 위의 중심멤버보다는 뒷 세대인 재일교포 스위치 히터 킨죠 타츠히코였다.)가 모두 요코하마에서 배출된 것은 당시 요코하마 타선의 특징을 가장 잘 알 수 있던 일화. 자세한 설명은 참고[5] 같은 해 브랙스도 타율 .345/OPS 1.051에 28시합 연속 안타로 외국인 선수 연속안타 신기록을 세우고 1979년 타카하시 요시히코가 수립한 33시합 연속안타 기록까지 넘보는 대활약을 펼쳤지만, 전반전 종료 직전에 새끼손가락 골절상으로 시즌아웃되며 기록 갱신에 실패한 채 아쉽게 데뷔 시즌을 마쳤다.(그런데 전반전 시즌아웃임에도 19홈런으로 로즈와 팀내 공동 1위를 기록했다!) 대신 다음 해인 1994에 건강하게 돌아와 35홈런, OPS 1.023으로 건재를 과시하며 베스트나인을 수상했고 이후 1996년까지 요코하마의 4번 타자로 활약했다.[6] 당해 센트럴리그 OPS 1위는 44홈런으로 홈런왕을 수상한 로베르토 페타지니(1.146)였다.[7] 1952년에 요코하마의 전신인 타이요 훼일즈와 합병했다.[8] 1922~2003. 호타준족의 외야수로 시즌 최다타점(161) 기록 외에도 시즌 최다득점(161), 시즌 최다루타(376), 10경기 연속 타점 기록 등을 보유하고 있다. 앞의 기록들은 그의 커리어하이 시즌인 1950년에 기록했으며 이 해 51개의 홈런을 날리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50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타율 0.355, 51홈런 161타점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고. 홈런왕, 타점왕, MVP를 차지했으나 타율 0.362를 기록한 후지무라 후미오에 밀려 타격 3관왕엔 실패하고 말았다.[9] 당해 센트럴리그 MVP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에이스 투수 노구치 시게키가 수상했는데 이 시즌 노구치의 성적은 29등판 203.2이닝 19승 7패 145K ERA 2.65으로, 뛰어난 성적임에는 분명했지만 앞서 서술한 로즈와 더불어 MVP 투표 2위이자 당해 센트럴리그 신인왕이었던 우에하라 코지가 25등판 197.2이닝 20승 4패 179K ERA 2.09로 다승왕, 평균자책점 1위, 탈삼진 1위를 기록하며 노구치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올렸던 것을 고려하면 주니치의 우승 버프가 MVP 고득표에 크게 작용했음이 자명했다. 실제로 당해 MVP 투표에서도 노구치는 우에하라보다 1위 표를 21개나 적게 받았으나 대신 2위 표를 배로 받으면서 총합 점수에서 우위를 차지해 MVP 수상에 성공했으며 MVP 득표수 상위 5위 중 3명을 주니치 선수진(노구치, 세키카와 코이치, 레오 고메스)이 차지했다.[10] 당해 센트럴리그 수위타자는 앞 각주에서 상술한 같은 팀의 킨죠 타츠히코(.346)가 수상했으며, 이 해 킨죠는 스위치 히터 타율 최고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리그 신인왕도 수상했다.[11] 당시 요코하마는 마루하에서 TBS테레비로 모기업이 바뀌면서 수뇌진들이 잇달아 교체되는 등 다소 어지러운 시기였고, 애시당초 구단 자체가 본래부터 재정에 여유가 별로 없던 데다 로즈의 나이가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언제 하락세가 올 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다년계약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12] 성(姓)도 다르다. 로버트 로즈는 Rose, 터피 로즈는 Rhodes.[13] 현역 당시 팀 동료들이었던 이시이 타쿠로, 스즈키 타카노리, 코마다 노리히로의 응원가들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명곡들로 칭송받는다.[14] 주자가 득점권에 나가거나 역전, 끝내기가 기대되는 상황일 때 응원단이 트는 노래/구호이다.[15] 포수는 1998년 당시 요코하마의 주전 포수이자, 前 주니치 드래곤즈의 감독인 타니시게 모토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