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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9 20:48:38

로버트 브루스(리데스데일 기사)

이름 로버트 브루스
Robert Bruce
출생 1293년 또는 1300년
스코틀랜드 왕국 브루스 가문 영지
사망 1332년 8월 11일
스코틀랜드 왕국 더플린 무어
아버지 로버트 1세
어머니 미상
직위 리데스데일 기사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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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로버트 1세사생아로, 에드워드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내세우며 쳐들어온 잉글랜드 귀족들에 맞섰으나 더플린 무어 전투에서 전사했다.

2. 생애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을 진두지휘해 잉글랜드군을 몰아내고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등극한 로버트 1세사생아다. 아머니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1314년 로버트 1세가 지휘하는 스코틀랜드군이 에드워드 2세의 잉글랜드군을 격파한 배넉번 전투를 묘사한 프랑스 연대기 작가는 이름없는 왕족이 기사 군대에 입대했음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 인물이 로버트 브루스이며, 기사 작위의 최소 연령은 21세이므로 1293년생이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로버트가 스코틀랜드 정부 문서에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1321년인데, 일각에서는 그가 이해에 성년이 되었고 1300년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1321년 록스버러셔에 있는 스프라우스턴 영지를 아버지로부터 수여받았고, 이듬해 윌리엄 2세 드 소울이 로버트 1세에 대한 반란에 가담한 이유로 압수된 리데스데일 영지를 수여받았다. 리데스데일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국경지대에 위치했으며, 중심지는 스코틀랜드의 상당히 중요한 국경 요새였던 허미티지 성이었다. 또한 그는 앵거스에서 일부 영지를 받았다. 1323년에서 1328년 사이에 아버지의 헌장 8개에 증인으로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우리 아들"로 기재되었다. 1328년 로버트 2세는 아들에게 500마르크를 수여했다. 한편, 로버트 1세는 배넉번 전투를 치를 때 성자에게 승리를 거두면 성당을 세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글렌도차트의 인차프리 수도원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염원을 이루기 전에 사망했고, 아들 로버트가 그를 대신해 성당을 세웠다.

1329년 로버트 1세가 사망한 후, 5세의 어린 아들 데이비드 2세가 스코틀랜드 왕위에 올랐다. 1332년 7월 31일 [에드워드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내세운 잉글랜드 귀족 헨리 드 보몽, 헨리 퍼시, 월터 매니, 토머스 우트레드 등이 1,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스코틀랜드로 쳐들어오자, 그는 이들을 격퇴할 임무를 맡았다. 스코틀랜드 호국경 돔놀 2세는 군대를 두 부분으로 나눴다. 본인은 포스만 북쪽 부분을 경비했고, 포스만 남쪽 부분은 마치 백작 패트릭 5세 드 던바가 맡았다. 에드워드 발리올은 이전에 마르 백작과 서신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편이 되기를 바라며 8월 6일 포스만 북부의 웨스터 킹혼(현재 스코틀랜드 번티스랜드) 인근 해안에 상륙했다.

잉글랜드군이 한창 상륙하고 있을 때, 로버트는 파이프 백작 던컨 4세와 함께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이들을 물리치려 했다. 잉글랜드 연대기는 최소 4,000명, 최대 24,000명으로 기술했는데, 역사가 클리퍼드 로저스는 4,000명이 가장 사실에 근접할 거라고 본다. 스코틀랜드인들은 하선 중이던 잉글랜드군을 공격했지만, 잉글랜드 장궁병들의 화살 세례와 지원 보병을의 공격을 받은 후 격퇴되었고, 잉글랜드군은 상륙에 성공했다.(킹혼 전투)

돔놀 2세는 잉글랜드군이 상륙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군대를 퍼스로 철수한 뒤 킹혼 전투의 생존자들과 합류하면서 전국에 파발을 보내 지원을 요청했다. 에드워드 발리올과 헨리 드 보몽은 승리의 기세를 이어가 덤펌린으로 이동해 식량을 확보하고 무기고를 확보한 뒤 퍼스로 진격했다. 이에 돔놀 2세는 퍼스에서 남쪽으로 3km 떨어진 에르네 강 북쪽 기슭에 군대를 배치하고 다리를 파괴했다. 당시 스코틀랜드 군대는 연대기 상에서는 20,000명에서 40,000명으로 기술되었는데, 역사가 클리퍼드 로저스는 15,000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스코틀랜드군의 대다수는 보병이었다. 8월 10일, 잉글랜드군은 에르네 강 남쪽 강둑에 도착했다. 당시 그들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다. 스코틀랜드군은 잉글랜드군의 10배 이상이었고, 강 건너편에 유리한 방어 위치에 있었으며, 스코틀랜드 지원군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강을 건너려는 잉글랜드군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양군은 해질 무렵까지 에르네 강 반대편에 나란히 주둔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자신들이 이길 게 분명하다고 여겼다. 한 연대기에 따르면, 그들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즐겼으며, 배넉번 전투에서의 승리를 회상하고 잉글랜드인에 대한 외설적인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파괴된 다리 인근에 경비원이 배치되었지만 다른 예방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그들은 다음날 해가 뜰 때 강 건너편으로 일부 병력을 보내 적의 측면을 요격하여 혼란을 일으킨 뒤, 적이 패주할 때 추격하여 섬멸해버리기로 했다. 한편, 잉글랜드군은 계속 대치하고만 있으면 승리할 기회가 없다고 판단하고, 어둠을 틈타 강을 건너기로 했다.

그날 밤, 잉글랜드군 전체가 몰래 강을 건넌 뒤 자정 무렵에 스코틀랜드 숙영지에 도착해 공격을 퍼부어 닥치는 대로 살육했고, 스코트랜드인들은 급히 도주했다. 잉글랜드군은 주력군을 패주했다고 믿었지만, 새벽에 스코틀랜드군이 자기들을 향해 2개 대열을 결성한 채 접근하는 것을 보고 사기가 떨어졌다. 이때 한 장성이 그들에게 죽음을 각오하고 사력을 다해 싸우라고 연설했다. 이 장수의 이름은 연대기마다 다르게 기술되었기 때문에 정확히 누구인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아무튼 잉글랜드군은 말을 타고 싸우는 40명의 용병 기사를 제외하고 전원이 도보로 대열을 결성하고 전투를 준비했다. 보병은 3개의 조밀한 대열로 줄을 섰고, 장창을 든 나머지 보병은 4번째 대열에 위치했다. 보병대는 언덕이 많은 지형으로 좁아지는 계곡 중앙을 점령했고, 장궁병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언덕에 나뉘어 측면에 배치되었다. 기병대는 후방에 남겨졌다.

스코틀랜드인들은 2개의 조밀한 그룹으로 나뉘어 쉴트론[1]을 결성했다. 돔놀 2세는 잉글랜드군에 항복을 권유하려 했지만, 쉴트론 한 부대를 이끌고 있던 로버트가 "당신이 잉글랜드군과 내통하고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몰아세웠다. 그가 에드워드 발리올과 서신을 주고받는 정황을 알고 있으며, 잉글랜드군이 몰래 강을 건너는 걸 일부러 허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돔놀 2세는 결백을 호소하면서, 이글랜드군을 공격하는 첫번째 사람이 되어 충성심을 입증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브루스는 상대보다 앞서 나가기로 했고, 그 결과 두 쉴트론은 상대보다 먼저 적에 접근하여 무찌르려고 경쟁했다.

이렇게 스코틀랜드군이 적에게 빨리 달려가려고 경쟁하다 보니, 속도가 느린 전사들은 뒤쳐졌고 대열이 흐트러졌다. 이윽고 로버트 브루스와 800명만이 적진에 도착해, 잉글랜드군 중앙 보병대를 10야드(9m) 뒤로 밀어냈다. 그러나 잉글랜드군은 무너지지 않고 계속 버텼고, 측면에 배치된 장궁병들이 스코틀랜드 장병들을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스코틀랜드 전사들은 일반적으로 투구를 착용하지 않았거나 바이저(안면 보호대)가 없는 투구를 착용했기 때문에, 머리가 화살에 취약했다. 이에 스코틀랜드인들은 화살을 피하기 위해 중앙으로 밀집했고, 이로 인해 쉴트론의 이동 반경이 제약되었고, 중앙에 몰린 스코틀랜드인들은 무기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으며, 균형을 잃고 넘어진 자들은 즉시 짓밟혔다.

한편, 마르 백작 돔놀 2세가 이끄는 쉴트론 역시 문제가 생겼다. 그들 역시 서두르는 바람에 조직력이 흐트러져 구불구불한 평야의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횡대열로 이동해야 했고,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브루스의 쉴트론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한 자들이 뒤엉키면서, 스코틀랜드군의 혼란은 한층 더 심해졌다. 잉글랜드보병대는 그런 그들을 손쉽게 해쳤고, 장궁병들도 화살 세례를 퍼부었다. 일부 연대기에 따르면, 잉글랜드 보병들은 아직 살아있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시체 산더미를 넘어야 했다고 한다.

결국 스코틀랜드군의 저항은 무너졌다. 살아남은 귀족은 말을 타고 도망쳤고, 나머지 스코틀랜드인은 도보로 달아났다. 후방에 배치되었던 잉글랜드 기병대는 말을 몰아 해가 질 때까지 추격해 도망치는 적병들을 살해했다. 이때 로버트 브루스는 돔놀 2세, 제2대 머레이 백작 토머스 랜돌프와 함께 전사했다. 그는 생전에 결혼하지 않아 자식이 없었다.


[1] Shiltron: 최전방에 창병이 있는 조밀한 원형 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