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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22 21:01:16

로스 백작 윌리엄 2세

파일:로스 백작 윌리엄 2세.jpg
이름 로스 백작 윌리엄 2세
William II, Earl of Ross
출생 미상
스코틀랜드 왕국 로스 백작령
사망 1323년 (향년 미상)
스코틀랜드 왕국 로스 백작령 델니
아버지 제2대 로스 백작 윌리엄 1세
어머니 조앤 코민
배우자 유페미아 드 버클리
형제 휴, 존, 월터, 이사벨라, 도로시
직위 제3대 로스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시기 잉글랜드 왕국에 맞섰다.

2. 생애

제2대 로스 백작 윌리엄 1세와 바데녹 영주 윌리엄 코민의 딸 조앤 코민의 유일한 아들이다. 1274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하이랜드의 로스 백작령을 물려받았다. 1284년 스콘에 소집된 스코틀랜드 의회에 참석한 뒤, 알락산더르 3세의 요청에 따라 다른 스코틀랜드 귀족들과 함께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를 스코틀랜드 왕위 후계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1290년 마르그레트가 노르웨이에서 스코틀랜드로 가던 중 병사하자, 1291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를 스코틀랜드 왕위를 결정할 중재자로 인정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왕위를 주장하던 존 발리올과 제5대 애넌데일 영주 로버트 브루스 간의 재판에서 감사관으로 선출되었다.

1292년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존 발리올이 선임되었지만, 1295년 에드워드 1세의 지나친 간섭에 질린 나머지 프랑스 왕국과 동맹을 맺고 에드워드 1세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에드워드 1세는 1296년 3월 불충한 가신을 토벌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스코틀랜드를 침공했다. 3월 30일, 잉글랜드군이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국경지대 요충지 중 하나인 베릭을 공략한 뒤 학살을 자행했다. 이에 윌리엄 2세와 멘티스 백작 알렉산더 스튜어트, 아솔 백작 존 드 스트라스보기가 이끄는 스코틀랜드군이 제드버러에서 출격해 헥섬을 포함하여 노섬벌랜드의 수많은 마을, 교회, 수도원을 불태움으로써 베릭에서 잔학행위를 저지른 잉글랜드인들에게 보복했다.

이어진 던바 전투에서, 윌리엄 2세는 스코틀랜드군을 지휘한 장성 중 한 명이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뒤, 그는 잉글랜드군에 사로잡혀 런던 탑으로 보내졌고, 6년간 옥고를 치렀다. 1303년 9월 석방되어 스코틀랜드로 돌아가는 걸 허락받았다. 같은 해 12월, 퍼스에 도착한 뒤 웨일스 공 에드워드 왕자가 1304년 2월 런던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와 함께 그곳에 머물렀다. 1304년 후반, 덤번린에서 에드워드 1세에게 말, 갑옷 및 기타 선물을 받았으며, 스페이 강 너머의 스코틀랜드 영지 관리자로 선임되었다.

1306년 로버트 1세의 아내 엘리자베스 드 버러와 딸 마조리 브루스는 브루스 왕조의 추종자들과 함께 잉글랜드군의 추적을 피해 로스 백작령의 테인에 있는 생 두타크 예배당으로 피신했다. 윌리엄 2세는 손님을 잘 대접해야 한다는 관습을 무시하고, 그들을 체포해 잉글랜드군에 넘겼다. 이들은 잉글랜드에서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가, 1314년 배넉번 전투 이후 포로 교환을 통해 스코틀랜드로 돌아갔다. 그는 브루스 가족과 추종자들을 잉글랜드로 넘겼기 때문에, 로버트 1세의 원한을 샀다.

1306년, 로버트 1세는 로스 백작령을 남쪽에서 침공했고, 로클런 맥루아이드리가 서쪽에서 로스 백작령으로 진격해 약탈과 파괴를 자행했다. 1308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는 로스 백작에게 서신을 보내 그의 봉사에 감사를 표하고 지원을 야곳갷ㅆ다. 그러나 1308년 10월 로버트 1세가 로스 백작령을 침공한 후, 윌리엄 2세는 그에게 복종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하지만 여전히 로버트 1세에게 승복하지 않은 그는 에드워드 2세에게 몰래 서신을 보내 로버트 1세에게 굴복한 것을 사과하고, 로버트 1세가 로스 백작령을 침략하는 걸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별다른 응답을 받지 못했고, 배넉번 전투가 로버트 1세의 승리로 돌아가자, 결국 그는 로버트 1세에게 진심으로 복종했다.

1320년, 다른 영주들과 함게 잉글랜드에 절대로 복종하지 않고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아브로스 선언서에 서명한 8명의 스코틀랜드 백작 중 한 명이었으며, 교황 요한 22세에게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단의 일원을 맡았다. 1323년 로스 백작령의 델니에서 사망했다.

3.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