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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2 22:52:08

로이스게라 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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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게라 후국
Fürstentum Reuß-Gera / Reuß jüngerer Li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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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Ich Bau Auf Gott
나는 신에 의해 지어졌다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German_Empire_-_Reuss_Gera_%281871%29.svg.png
1806년 ~ 1918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로이스게라 백국 바이마르 공화국
역사
1806년 성립
1918년 멸망
지리
위치 독일 튀링겐
수도 게라
인문환경
언어 독일어
종교 루터파 개신교, 가톨릭
민족 독일인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원수 후작

1. 개요2. 약사3. 후사(候史)
3.1. 후작위 요구자

[clearfix]

1. 개요

신성 로마 제국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후국(Fürstentum)이었으며 수도는 게라(Gera)였다. 독일어 이름 Reuß jüngerer Linie을 따서 소로이스 후국이라고도 하는데 로이스 가문의 작은집 격이었다.[1]

1905년 기준으로 면적 827 km², 인구 14만 5천 가량.

2. 약사

한 뿌리였던 로이스그라이츠 후국과 함께, 하인리히 6세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공가의 모든 남자 구성원이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썼다. 로이스 백작가가 다스려온 백국이었으나, 1806년에 로이스게라, 로이스로벤슈타인, 로이스슐라이츠, 로이스에베르스도르프, 로이스쾨스트리츠 백작들이 각각 후작(Fürst)으로 승격되었다. 1848년까지 이들 제후들이 다스리던 영토는 슐라이츠 계통으로 통합되었다.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의 구성원이 되었다.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로이스게라 자유주로 개편되었다가 1919년 4월에 로이스그라이츠와 합쳐져 로이스 인민주(Volksstaat Reuß)가 되었고, 1920년 5월 1일 신설된 튀링겐에 흡수되었다.

2022년 12월에 이 가문의 방계 출신인 하인리히 13세쿠데타를 모의하다 발각돼 체포되었다.

3. 후사(候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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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 왕조
하인리히 42세 하인리히 62세 하인리히 67세 하인리히 14세
하인리히 27세
게라 백작 }}}}}}}}}

로이스 공가는 모든 남자 구성원이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사용하되, 넘쳐나는 동명이인을 구분하기 위해 이름 뒤에 숫자를 매기는 가례(家例)가 있다. 보통은 군주나 군주급 인물들만 이름 뒤에 숫자를 매기므로, 로이스 가문의 가례는 서양 기준으로도 매우 특이하다. 로이스 공가 내에서도 파에 따라 숫자를 매기는 방식이 다른데, 로이스-게라의 경우에는 가문 내의 하인리히들이 태어나는 순서대로 숫자를 매기되,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마다 숫자 매김을 1세로부터 다시 시작한다.[2] 따라서 아버지 하인리히보다 아들 하인리히의 숫자가 더 적을 수도 있다.

3.1. 후작위 요구자


[1] 그러나 영토는 큰집보다 컸다.[2] 다른 파인 그라이츠 계통은 100세까지 채우면 1세로 돌아가는 방법을 쓰기로 되어 있었으나 24세까지밖에 채우지 못하고 단절되었다. 그라이츠 계통이 단절된 현재는 게라 계통에서 사용하는 방식만이 쓰이고 있다.[3] 레오폴드 1세의 어머니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외할머니인 아우구스타(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 프란츠의 공비)가 이 가문 출신이다.[4] 정작 이 가문의 본가는 오스트리아에 있다. 진첸도르프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성을 그 대가 끊기면서 19세기 초에 상속해서인데, 게다가 로이스 가문이 다스리던 영지에 있던 성들이 소군정에 의해 몰수되고 동독이 되어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