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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게라 후국 Fürstentum Reuß-Gera / Reuß jüngerer Linie | ||
국기 | 국장 | |
Ich Bau Auf Gott 나는 신에 의해 지어졌다 | ||
위치 | ||
1806년 ~ 1918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로이스게라 백국 | 바이마르 공화국 | |
역사 | ||
1806년 성립 1918년 멸망 | ||
지리 | ||
위치 | 독일 튀링겐 | |
수도 | 게라 | |
인문환경 | ||
언어 | 독일어 | |
종교 | 루터파 개신교, 가톨릭 | |
민족 | 독일인 | |
정치 | ||
정치체제 | 입헌군주제 | |
국가원수 | 후작 |
[clearfix]
1. 개요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후국(Fürstentum)이었으며 수도는 게라(Gera)였다. 독일어 이름 Reuß jüngerer Linie을 따서 소로이스 후국이라고도 하는데 로이스 가문의 작은집 격이었다.[1]1905년 기준으로 면적 827 km², 인구 14만 5천 가량.
2. 약사
한 뿌리였던 로이스그라이츠 후국과 함께, 하인리히 6세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공가의 모든 남자 구성원이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썼다. 로이스 백작가가 다스려온 백국이었으나, 1806년에 로이스게라, 로이스로벤슈타인, 로이스슐라이츠, 로이스에베르스도르프, 로이스쾨스트리츠 백작들이 각각 후작(Fürst)으로 승격되었다. 1848년까지 이들 제후들이 다스리던 영토는 슐라이츠 계통으로 통합되었다.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의 구성원이 되었다.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로이스게라 자유주로 개편되었다가 1919년 4월에 로이스그라이츠와 합쳐져 로이스 인민주(Volksstaat Reuß)가 되었고, 1920년 5월 1일 신설된 튀링겐에 흡수되었다.
2022년 12월에 이 가문의 방계 출신인 하인리히 13세가 쿠데타를 모의하다 발각돼 체포되었다.
3. 후사(候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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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42세 | 하인리히 62세 | 하인리히 67세 | 하인리히 14세 | |
하인리히 27세 | ||||
게라 백작 | }}}}}}}}} |
로이스 공가는 모든 남자 구성원이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사용하되, 넘쳐나는 동명이인을 구분하기 위해 이름 뒤에 숫자를 매기는 가례(家例)가 있다. 보통은 군주나 군주급 인물들만 이름 뒤에 숫자를 매기므로, 로이스 가문의 가례는 서양 기준으로도 매우 특이하다. 로이스 공가 내에서도 파에 따라 숫자를 매기는 방식이 다른데, 로이스-게라의 경우에는 가문 내의 하인리히들이 태어나는 순서대로 숫자를 매기되,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마다 숫자 매김을 1세로부터 다시 시작한다.[2] 따라서 아버지 하인리히보다 아들 하인리히의 숫자가 더 적을 수도 있다.
- 하인리히 42세 (1806-1818)
- 하인리히 62세 (1818-1854)
1785~1854. 1848년 혁명으로 퇴위한 로이스-로벤슈타인 및 에베르스도르프[3]의 하인리히 72세의 영토를 흡수했다. 미혼으로 사망했다. - 하인리히 67세 (1854-1867)
1789~1867. 북독일 연방에 가입했고 프로이센 왕국과 가깝게 지냈다. 지성적이었으며 노련한 상업적 경험으로 많은 인기를 받았다. - 하인리히 14세 (1867-1913)
1832~1913. 1913년에 로이스그라이츠 후국의 섭정을 맡았다. - 하인리히 27세 (1913-1918)
1858~1928. 1918년 퇴위했다.
3.1. 후작위 요구자
- 슐라이츠 계통
- 하인리히 27세 (1918-1928)
1927년 로이스-그라이츠 가문의 마지막 수장이 사망하자 로이스 공가의 통합 수장이 되었다. - 하인리히 45세(1895~1945)
나치당원이었다. 미혼인 채로 소련군에 납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어 1962년 법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으면서 슐라이츠 계통이 단절되었다. - 쾨스트리츠 계통[4]
- 하인리히 4세(1919~2012) - 하인리히 45세의 15촌 조카.
- 하인리히 14세 (1955~) - 하인리히 29세를 포함 슬하 2남 2녀
- 하인리히 29세 (1997~) 후계자.
[1] 그러나 영토는 큰집보다 컸다.[2] 다른 파인 그라이츠 계통은 100세까지 채우면 1세로 돌아가는 방법을 쓰기로 되어 있었으나 24세까지밖에 채우지 못하고 단절되었다. 그라이츠 계통이 단절된 현재는 게라 계통에서 사용하는 방식만이 쓰이고 있다.[3] 레오폴드 1세의 어머니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외할머니인 아우구스타(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 프란츠의 공비)가 이 가문 출신이다.[4] 정작 이 가문의 본가는 오스트리아에 있다. 진첸도르프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성을 그 대가 끊기면서 19세기 초에 상속해서인데, 게다가 로이스 가문이 다스리던 영지에 있던 성들이 소군정에 의해 몰수되고 동독이 되어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