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루돌프 겔레슈 (Rudolf Gellesch) |
생년월일 | 1914년 5월 1일 |
사망년월일 | 1990년 8월 20일 (향년 76세) |
국적 | 서독 |
출신지 | 독일 제국 겔젠키르헨 |
포지션 | 포워드, 센터 하프백 |
신체조건 | 181cm | 77kg |
소속팀 | FC 샬케 04 (1931-1944) FC 뤼베케 (1946-1950) 아인트라흐트 트리어 (1950-1951) |
국가대표 | 20경기 1골 (1935-1941) |
감독 | 아인트라흐트 트리어 (1950-1952) KSV 헤센 카셀 (1952-1955) 아우스발 프랑크푸르트 (1956) 아우스발 프랑크푸르트 (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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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겔레슈는 12살이던 1926년부터 고향팀 FC 샬케 04의 유소년팀에 소속되었고 1931년에 처음 1군에 승격되었다. 겔레슈의 성인팀 데뷔전은 1933년 1월 15일에 이뤄졌는데 당시 샬케는 프리츠 스체판과 에른스트 쿠초라가 뛰던 전성기였다. 베스트팔렌에서는 그들의 우승 독주를 막을 팀이 없었고 독일 전국에서도 최강으로 꼽히던 팀이었다. 겔레슈는 스체판의 인사이드 포워드 자리를 대체, 스체판의 주포지션을 하프백으로 바꿀 수 있게 했다.1936-37 시즌은 겔레슈의 커리어와 샬케의 팀 역사상 최고의 시즌이었다. 샬케는 이 해에 독일 클럽 축구 역사상 최초로 더블을 기록했고 이는 2차 대전 전의 독일 축구 역사에서 유일한 기록이다.
1944년까지 겔레슈는 샬케에서 190경기 출전, 38골을 넣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동부 전선에서 참전한 적이 있다. 그리고 겔레슈는 헤르베르거 감독이 반복적으로 군역을 면제받길 바란 인물이기도 하다.
1944년부터 1946년까지 커리어를 중단했던 겔레슈는 1946년에 다시 FC 뤼베케(FC Lübbeke)에 합류해서 4시즌을 더 뛰었고 1950년부터 아인트라흐트 트리어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1년을 보냈다. 1951년, 겔레슈는 감독직을 내려놓고 아인트라흐트 트리어의 선수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2.1.2. 국가대표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기 전부터 겔레슈는 1935년 1월과 2월에 있었던 베스트팔렌 대표팀 경기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해 8월 18일, 룩셈부르크를 상대로 독일은 1대0으로 승리했고 이 경기가 겔레슈의 첫 A매치였다.겔레슈는 1936년 올림픽에도 참가했지만 출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독일은 8강에서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에 패배, 탈락했다.
이후 겔레슈는 1939년까지 대표팀에서 중용받았고 1937년의 브레슬라우 엘프에서 덴마크를 8대0으로 대파한 경기 멤버의 일원이 되었다.
1938년 월드컵에 참가한 겔레슈는 스위스와의 월드컵 개막전에 인사이드 라이트 포워드로 선발 출전했지만 독일은 스위스와 1대1로 비겼다. 그리고 5일 후의 재경기에서 독일은 스위스에 2대4로 일격을 맞고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겔레슈는 이 경기에 빠졌다.
1941년까지 겔레슈는 독일 대표팀에서 20경기에 출전했고 1938년 5월에 있었던 잉글랜드전에서 유일한 A매치 득점을 기록했다.
2.2. 감독
1948년부터 겔레슈는 파울 야네스 등과 함께 축구 코치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고, 1950년에 아인트라흐트 트리어의 플레잉 매니저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1952년, 선수 생활을 마친 겔레슈는 KSV 헤센 카셀에서 감독이 되었고 아우스발 프랑크푸르트에서 2차례 짧게 감독직을 맡은 후 정식 감독이 된 적은 없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1930년대 FC 샬케 04의 전성기 당시 주역 중 한 명. 시야가 넓고 기술도 뛰어났으며 어시스트에 능했던 그는 당시 샬케의 중추이자 레전드 프리츠 스체판과 플레이 스타일이 유사했다.4. 뒷이야기
- 겔레슈는 FC 샬케 04에서 뛸 동안 금속 회사의 운전 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 겔레슈는 1942년에 개봉한 영화 Das große Spiel(더 빅 게임)에 카메오 출연한 적이 있다.
- 1977년 3월 28일에 있었던 헤르베르거의 80번째 생일 축하연에 겔레슈도 참석했다.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 독일 챔피언십 우승 6회: 1934, 1935, 1937, 1939, 1940, 1942(FC 샬케 04)
- 참메르포칼 우승 1회: 1937(FC 샬케 04)
- 서부 독일 챔피언십 우승 2회: 1932, 1933(FC 샬케 04)
- 가우리가 베스트팔렌 우승 11회: 1933-34, 1934-35, 1935-36, 1936-37, 1937-38, 1938-39, 1939-40, 1940-41, 1941-42, 1942-43, 1943-44(FC 샬케 04)
- 독일 챔피언십 준우승 3회: 1933, 1938, 1941(FC 샬케 04)
- 참메르포칼 준우승 4회: 1935, 1936, 1941, 1942(FC 샬케 04)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