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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2세 | }}}}}}}}}}}} |
<colbgcolor=#D2DEFF><colcolor=#000> 앙주 공작 루이 3세 Louis III d'Anjou | |
출생 | 1403년 9월 25일 |
프랑스 왕국 앙제 | |
사망 | 1434년 11월 12일 (향년 31세) |
나폴리 왕국 코센차 | |
재위 | 앙주 공국의 공작 |
1417년 4월 29일 ~ 1434년 11월 12일 | |
배우자 | 사보이아의 마르게리타 (1432년 결혼) |
아버지 | 앙주 공작 루이 2세 |
어머니 | 아라곤의 욜란다 |
형제 | 마리, 르네, 욜랑드, 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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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3대 앙주 공작. 아라곤 왕국, 시칠리아 왕국, 예루살렘 왕국, 그리고 나폴리 왕국의 국왕을 자칭했다.2. 생애
1403년 9월 25일 앙주 공국의 수도 앙제에서 제2대 앙주 공작 루이 2세와 아라곤 국왕 추안 1세의 딸인 아라곤의 욜란다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마리[1], 르네, 욜랑드[2], 샤를이 있었다. 그의 부모는 아라곤 왕국, 시칠리아 왕국, 예루살렘 왕국, 키프로스 왕국의 국왕을 자처했다.1410년 5월 31일, 아라곤 국왕 마르틴 1세가 명확한 후계자를 두지 못한 채 급사했다. 이에 어머니 욜란다는 자신이 전임 아라곤 국왕 추안 1세의 딸인 점을 근거로, 아들이 아라곤 국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2년간 루이 3세를 포함한 6명의 후보가 아라곤 왕위를놓고 경쟁한 끝에, 1412년 6월 25일 카스페 선거 결과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국왕 후안 1세와 아라곤 국왕 페로 4세의 딸인 레오노르의 아들인 페란도 1세가 아라곤 국왕이 되었다. 하지만 욜란다와 루이 3세는 자신들을 합법적인 상속자로 여기고, 아라곤 국왕 칭호를 계속 칭했다. 1417년 4월 29일 아버지가 사망한 뒤 앙주 공작이 되었다.
1420년, 교황 마르티노 5세는 명목상 나폴리 왕국의 주권자임을 근거삼아 나폴리 여왕 조반나 2세에게 교황군을 재건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조반나 2세는 애인인 조반니 카라촐로의 부추김을 받고 이를 거부했다. 마르티노 5세는 이에 분노해 루이 3세를 나폴리 왕으로 삼아 나폴리를 공격하게 했다. 루이 3세는 지난날 아버지 루이 2세가 나폴리 왕위를 놓고 조반나 2세의 남자형제인 라디슬라오와 전쟁을 치렀지만 끝내 패했던 아픔을 자기 대에서 씻어내기로 마음먹고, 교황의 요청에 응했다.
루이 3세의 군대가 캄파니아 해안에 상륙한 뒤 나폴리로 진군하자, 조반나 2세는 이에 맞섰지만 여의치 않자 1421년 아라곤 왕국-시칠리아 왕국의 국왕 알리폰소 5세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당시 코르시카 섬에서 보니파치오 시를 포위 공격하던 중이던 알리폰소 5세는 보니파치오 시 포위를 풀고 나폴리로 진군해 나폴리를 포위 공격하고 있던 루이 3세를 몰아냈다. 당시 아들이 없었던 조반나 2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알리폰소 5세를 양자로 받아들이고 칼라브리아 공작에 지명했다.
그러나 몇년 후, 알리폰소 5세의 권세가 갈수록 강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조반나 2세는 그를 후계자로 지명했던 것을 철회하려 했다. 알리폰소 5세는 낌새를 눈치채고 1423년 5월 잔니 카라촐로를 체포하고 여왕 역시 체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조반나 2세는 밀라노 귀족 아텐돌로 스포르차에게 아라곤인들을 몰아내달라고 요청했다. 스포르차는 군사를 일으켜 아라곤군을 기습공격해 크게 격파했고, 알리폰소 5세는 나폴리의 요새인 카스텔 누오보로 피신했다. 그 후 조반나 2세는 카스텔 누오보를 포위 공격했지만 아라곤군의 반격으로 패배한 뒤 아베르사 요새로 퇴각했고, 알리폰소 5세를 양자로 들였던 것을 취소하고 루이 3세를 새로운 후계자로 지명했다.
알리폰소 5세는 라퀼라에서 조반나 2세의 군대를 포위하고 있던 브라초 다 몬토네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별다른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카스티야 내전이 동생 후안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일단 귀국하여 전열을 가다듬기로 했다. 그는 함대를 이끌고 바르셀로나로 귀환하던 중 루이 3세가 소유한 마르세유를 습격해 약탈을 자행함으로써 분풀이를 했다. 1423년 말, 제노바 공작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는 반 알리폰소 동맹에 가담한 뒤 남부 티레니아 해로 진군해 가에타, 프로키다, 카스텔람마레, 소렌토를 공략했다. 형 알리폰소 5세를 대신하여 나폴리 내 아라곤 영토를 지키고 있던 페드로는 1424년 제노바와 나폴리 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카스텔 누오보에서 저항했지만, 1424년 8월 요새가 함락되려 하자 시칠리아로 철수했다. 이리하여 아라곤군은 나폴리 왕국에서 완전히 축출되었다.
아라곤 왕국군을 축출한 후, 후계자로 지명된 루이 3세는 왕위에 오를 날을 기다리며 칼라브리아 영지에서 살았다. 그러나 1434년 11월 코센차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했다. 루이 3세는 생전에 사보이아 공작 아메데오 8세의 딸 마르게리타와 결혼했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고, 동생인 앙주의 르네가 앙주 공작이 되었다. 이에 조반나 2세는 자신이 죽으면 나폴리 왕위를 르네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1435년 2월 2일 조반나 2세가 병사한 뒤, 르네는 나폴리 왕이 되었지만 알리폰소 5세와의 전쟁에서 끝내 패해 왕위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