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수아레스 2011-2014 | |
▲ 2011년 계약 당시 | |
소속팀 | <colbgcolor=#ffffff,#191919>리버풀 FC (프리미어 리그) |
등번호 | 7 |
기록 | |
110경기 69득점 23도움 | |
8경기 4득점 | |
9경기 5득점 2도움 | |
6경기 4득점 4도움 | |
합산 성적 | |
133경기 82득점 29도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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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이스 수아레스의 리버풀 FC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2. 이적
3. 2010-11 시즌
2011년 3월 6일 안필드에서 벌어진 맨유와의 홈경기에서는 골대 근처에서 반 데 사르 포함 5명을 개인기로 농락하며 카윗에게 어시스트를 하는 명장면을 연출해 준다. 그리고 3번째 골도 수아레스의 프리킥을 반 데 사르가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을 카윗이 차 넣었다. 그야말로 수아레스가 맨유를 탈탈 턴 경기. 달글리시 체제의 리버풀의 최전방을 완벽하게 책임지며 한때 리버풀을 중상위권까지 끌어 올리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현재까지의 활약으로는 3지선다 중 1번에 가깝다.
리그 35라운드 뉴캐슬과의 홈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하여 팀을 3대0 승리에 기여하였다
2010-11 시즌(리버풀): 13경기(선발 12경기) 4골 3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13 | 12 | 1 | 4 | 3 |
합계 | 13 | 12 | 1 | 4 | 3 |
4. 2011-12 시즌
2011년 8월 24일 4부 리그 팀과 경기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했다.
2011년 10월 26일 스토크시티와의 리그컵 16강전에서 엄청난 궤적의 인프런트 슈팅과 골키퍼의 허를 찌른는 헤딩슛으로 동점과 역전골을 기록하여 팀의 모처럼만의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25라운드 맨유전은 이번시즌 들어 최고로 뜨거운 더비매치였다. 우선 작년에 일어난 수아레스와 에브라의 인종차별건으로 인해 두팀간의 사이가 더욱 험악하게 변했고, 애초에 이 두 팀이 붙는 노스웨스턴 더비는 정말 전쟁이 따로없다. 게다가 시간대가 한국시간으로 9시 45분이니 그야말로 시청자들에게는 최고의 경기. 그리고 만회골을 넣는 데 성공했으나, 팀은 2-1로 패배했다.
2012년 2월 26일 리그컵 결승전 카디프시티와의 경기에서 수비수 스크르텔에게 어시스트를 하여 동점골에 기여하였다.
2012년 4월 28일 노리치시티 원정경기에서는 리버풀에서의 첫 해트트릭을 하였다.
2012년 5월 5일 첼시와의 FA컵 결승전에 선발출전하였지만 2대1로 패배 아쉽게 준우승을 하였다.
2011-12 시즌: 39경기(선발 37경기) 17골 8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31 | 29 | 2 | 11 | 3 |
FA컵 | 4 | 4 | 0 | 3 | 1 |
칼링컵 | 4 | 4 | 0 | 3 | 4 |
합계 | 39 | 37 | 2 | 17 | 8 |
5. 2012-13 시즌
경기력 면에서 아쉬운 소리를 듣고 있으나 리버풀은 수아레스의 개인 돌파 말고 공격에 있어서의 마땅한 대안이나 도와주는 선수도 딱히 없으니. 애초에 수아레스가 수비진을 휘저어 주면 그걸 골로 연결시켜 줄 선수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리버풀 스쿼드에 그런 선수가 없다. 그러니 스스로가 드리블 돌파를 시도할 수 밖에. 괜히 시즌 초반부터 이런 저런 공격수들하고 링크가 뜨고 있는게 아니다.[1] 그래도 프리미어리그 6라운드 노리치 시티 FC 원정에서는 해트트릭까지 달성했고, 리버풀 팬들에게만큼은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복덩이이자 토레스가 떠난 마당에 팀 공격을 리드하는 영웅이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지역예선에서는 아르헨티나와의 원정 경기에서 "아르헨티나 따위는 수비가 약하니까 얼마든지 쳐 바를 수 있다."라며 호언장담했으나 막상 경기 당일에 수아레스는 리오넬 메시가 주인공인 드라마의 엑스트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로 그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루가노와 카바니만 쩔어 줬을 뿐, 수아레스는 디에고 포를란과 같이 공기화되고 말았다. 농담이 아니고 후반 60분에 디에고 루가노가 부상으로 교체되자마자 리오넬 메시에게 선제골을 당했으며 그렇게 3골을 내리 실점했다.
한편으로는 10월 들어서 다이빙 논란에 휩싸였는데, 10월 말 머지사이드 더비 경기에서 자신의 슛이 상대 수비를 맞고 자책골로 연결되자 자신을 다이버로 비난했던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 앞으로 달려가 다이빙 세레머니를 했다. 대신 그 경기에서 자신의 골이 오프사이드 오심으로 날아가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1월 6일 FA컵 3라운드 경기로 5부리그 팀인 맨스필드 타운 원정에서 골을 넣었는데, 그 과정 중 공이 분명히 수아레스의 손에 맞는 모습이 나와 2010년 월드컵 때에 이어 또 한 번 신의 손을 보여주었다.
2013년 2월, 프리미어 리그 27라운드가 끝난 시점에서 수아레스는 리그에서 18골, 컵 대회를 포함하면 23골로 주전 공격수로 자리잡았다.[2]
위건 애슬레틱과의 PL 28차전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27경기 21골로 로빈 반 페르시를 2골차로 따돌리고 득점 랭킹에서 1위가 되었다! 위건은 생존왕의 본능을 발휘하면서 수 차례나 유효슈팅을 날렸으나 페페 레이나의 말도 안되는 슈퍼세이브의 연발에 막혔다. 수아레스와 레이나, 2도움을 기록한 필리페 쿠티뉴가 빛난 경기였으며 그 외에도 글렌 존슨의 폭풍드리블 등 볼 게 많았던 경기였다.
토트넘과의 프리미어 리그 29라운드 홈 경기에서 호세 엔리케와의 절묘한 연계를 통해 선제골을 올렸다. 이로서 득점 랭킹 경쟁에서 2위 로빈 반 페르시와의 격차를 3골 차로 벌렸다.
4월 21일 첼시와의 경기에서는 말 그대로 미친 존재감을 보여 줬다. 스터리지의 골을 돕는 어시스트와 추가시간 극적인 동점골, 핸드볼 반칙으로 PK 헌납[3], 그리고 고기뜯기였다. 경기 도중 상대 팀 선수 이바노비치의 팔을 난데없이 크왕! 하고 제대로 물어 뜯으며 그를 식겁하게 만들었다. 하필 주심이 이 상황을 못 봤고 이바노비치는 이빨자국이 남은 자신의 팔을 보여 주며 항의했지만 주심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 결국 특별한 경고는 받지 않고 넘어갔으나, 경기 후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게 되었다.
결국 수아레스는 더 이상 리그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며 2012-13 시즌을 이대로 마감하였고, 리그 득점 2위로 로빈 반 페르시를 1골차로 추격하던 그는 더 이상 득점을 추가하지 못해 로빈 반 페르시에게 득점왕을 양보해야 했다.[4] 리그 득점왕 기회가 날아가자 억울하다고 항변했지만 유튜브만 찾아봐도 드라큘라로 그를 비아냥거리며 합성한 동영상까지 줄줄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아예 수아레스를 FA 올해의 선수 후보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잉글랜드 FA는 비난을 무릅쓰고 수아레스를 후보자 명단에서 제외하지는 않았다. 4월 29일 FA 올해의 선수 시상식에서 가레스 베일이 최우수선수로 수상하고 올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지만 그의 이름이 불리워지자 시상식 당시 무수한 야유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2013년 3월 27일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와의 2014 월드컵 예선 11차전에서 심판 몰래 상대 수비수에게 주먹질[5]을 했다가 들켜서 FIFA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조국 우루과이도 이에 대하여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26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우루과이 축구 협회는 "수아레스의 출전 공백이 길어지면 우리에게 불이익" 이라고 걱정을 토로했다. 위에 나온 칠레 경기 경고 누적으로 중요한 6월 11일에 벌어지는 베네수엘라 원정에도 못 나간다. 2013년 4월 현재 남미 예선 6위라는 경악스러운 부진을 보이는 우루과이로서는 5위로 앞선 베네수엘라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러나 우루과이 안방 경기에서조차 1:1로 베네수엘라에게 비긴 걸 보면 수아레스가 절실한 판국에 그의 더티 플레이로 나오지 못하게 된 상황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거기에 6월 16일부터 24일까지 벌어진 2013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우루과이가 참여하게 되었는데 10경기 출장 정지로 수아레스의 컨디션이 떨어질 게 뻔한 지라 우루과이 축구협회나 자국 축구팬들도 덩달아 수아레스를 애증으로 바라보는 판국이다.
여기까지 쓰여진 글들을 보면 당연히 성격은 개차반에 사생활은 막장, 재능만으로 축구를 하는 선수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사생활은 깨끗하고, 경기와 훈련 중엔 누구보다도 열심이며, 팬들에게는 친절하고, 팀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그냥 경기장 안에만 들어가면 인간이 180도로 바뀐다.
2012-13 시즌: 44경기(선발 40경기) 30골 5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33 | 33 | 0 | 23 | 5 |
유로파 리그 | 7 | 5 | 2 | 4 | 0 |
유로파 리그 예선 | 1 | 1 | 0 | 0 | 0 |
FA컵 | 2 | 1 | 1 | 2 | 0 |
캐피탈 원 컵 | 1 | 0 | 1 | 1 | 0 |
합계 | 44 | 40 | 4 | 30 | 5 |
5.1. 아스날 이적 사가
시즌이 끝난 후 찾아온 여름 이적시장, 수아레스는 이적을 선언한다. 이유는 더 이상 잉글랜드의 극성 언론들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그러나 타 리그 팀들로부터는 별 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던 상황에서 아스날이 접근해오자 잉글랜드 언론이 싫다던 수아레스는 곧장 태도를 바꾸어 아스날로의 이적을 시도하고 이적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다.이 이적 사가는 다른 선수들의 평범한 이적 건보다 훨씬 많은 논란을 이끌어내게 된다. 바로 수아레스의 바이아웃 조항 여부 때문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존재했던 조항은 바이아웃이 아니라 협상 시작 오퍼에 관련한 내용이었다.#
정확히 계약서에 적혀있던 내용은 £40m이 넘는 비드가 들어올 시, 리버풀은 의무적으로 이적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40m이 넘으면 더 이상 NFS를 때릴 수 없다는 거지, 40m에 팔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었던 것. 그런데 수아레스의 에이전트는 이걸 바이아웃으로 오해하여 이 정보를 흘렸고, 이 소식을 들은 아스날이 리버풀과 이야기를 나눴으나, 구단 수뇌부들끼리의 회담에서 바이아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스날은 일단 40m을 넘겨야 협상을 진행할 수 있으니, 40m을 최저한으로 넘기면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그 유명한 40m+1 파운드의 시작 오퍼를 넣은 것이었다.[6] 그러나 애초에 팔 생각이 없었던 리버풀 측은 이 제안을 조롱으로 받아들여 그냥 언론에 퍼트렸고 아스날은 축구 팬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결국 협상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고 그렇게 아스날은 수아레스 영입을 포기.
한편 처음에 수아레스 측이 바이아웃이 있는데도 리버풀이 안 놔준다고 호소하자 선수 협회에서 접근해 수아레스를 도와주려 했으나, 곧 이게 바이아웃이 아님이 밝혀지며 발을 뺐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리버풀이 바이아웃 조항을 무시해 아스날이 손해본 것이라 잘못 알려져 있는 이유는, 바로 리버풀의 구단주인 존 헨리가 나중에 인터뷰로 바이아웃 조항은 존재했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 헨리는 축구지식이 높은 인물이 아니고, 무엇보다 저 사실을 분명하게 컨펌해준 사람이 당시 아스날의 이적 협상 진행자로서 리버풀과 이야기를 나눈 딕 로였기 때문에 어느 쪽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는 바로 답이 나온다. 또한 나중에 아르센 벵거도 바이아웃이 아니었다고 언급했다. 즉, 정리하자면 일차적으로 계약서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수아레스 측에서 필요 이상의 소란을 피웠고, 이후 바이아웃이 아님이 밝혀지자 아스날은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40m+1 오퍼를 넣었으며, 팔 생각이 없던 리버풀은 이를 언론에 퍼트린 후 협상을 거부한 것이다.[7]
결국 기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직접 불러들이기까지 하면서 이적하겠다고 선언한 수아레스의 아스날 이적은 물거품이 되었다. 수아레스는 구단 자체 징계로 따로 개인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주장인 스티븐 제라드가 "한 시즌만 더 남아서 활약하면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로 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득한 끝에 수아레스도 마음을 다잡아 구단에 사과하였다. 이렇게 수아레스와 리버풀의 갈등은 일단락이 되었다.
6. 2013-14 시즌
[1] 겨울 이적 시장에서 다니엘 스터리지를 영입한 뒤에는 이러한 상황이 크게 개선되었다.[2] 사실 스티브 맥마나만 이후로 10여년 동안 리버풀에서 등번호 7번을 부여받은 선수는 폼이 하락하거나, 장기 부상을 끊거나, 아니면 시즌 반만에 이적되거나 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 사례로 해리 키웰은 첫 시즌을 빼고는 유리몸의 끝판왕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며 쓸쓸히 이적했고, 로비 킨은 토레스와 포지션이 겹치면서 내내 어중간한 모습만 보여주다가 6개월만에 팀을 떠났다.[3] 아자르가 PK를 성공시켰다.[4] 이 시즌에 리버풀 선수로서는 사상 12번째로 단일 시즌 30득점이라는 금자탑을 이룩한지라(득점왕은 RVP 때문에 힘들었을지 몰라도 2007-08 시즌 페르난도 토레스가 넣은 33골을 넘어설 가능성은 충분했다.) 팬들의 실망은 더 크다. 선수로서의 워크에씩 자체는 나쁘게 볼 것이 없지만 다른 방면에서 나쁘게 본다면 싸가지 또는 기행 때문에 멘탈이 폄하되고 있는 선수다. 물론 그걸 뒤엎고도 남는 진퉁 실력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원정만 가면 팬들의 공적이 되는, 리버풀의 화살받이가 되고 말았다.[5] 사실 수비수가 먼저 수아레스의 가랑이 사이를 잡아서 주먹을 날렸다고 밝혔다.[6] 물론 최종적으로 40m+1로 사겠다는 뜻은 아니고 협상을 시작하고 싶다는 의미의 오퍼였을 것이다. 원래 협상을 시작한 후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정상적이다.[7] 아스날 측은 조항의 내용과는 달리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않은 리버풀을 고소하려 했으나 소요시간이 너무 걸려서 이겨봤자 별 득도 안 될 거라 판단한 벵거가 만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