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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07 19:29:11

루이스 A.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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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76183><colcolor=#fff>
미합중국 제2대 국방장관
루이스 A. 존슨
Louis A. Johnson
파일:1000129273.jpg
본명 루이스 아서 존슨
Louis Arthur Johnson
출생 1891년 1월 10일
버지니아주 로어노크
사망 1966년 4월 24일 (향년 75세)
워싱턴 D.C.
묘소 엘크뷰 마소닉 묘지
재임기간 제2대 미국 국방장관
1949년 3월 28일 ~ 1950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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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76183><colcolor=#fff> 학력 버지니아 대학교 (법학 / 석사)
정당

복무 미국 육군
최종 계급 중령 (미합중국 육군)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

1. 개요2. 생애
2.1. 트루먼 행정부 임기 시절2.2. 제독들의 반란
3. 평가4. 둘러보기

1. 개요

제2대 미국 국방장관이었다. 육군 법무중령 출신이었으며, 제독들의 반란의 시발점 중 한 명이었다.

2. 생애

2.1. 트루먼 행정부 임기 시절

제임스 포레스탈이 해임되고, 루이스 존슨이 제2대 국방장관이 된 이후 트루먼과 존슨 모두 미 해병대에 대한 대우에 있어 해군에 대한 반대를 확대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트루먼의 친공군적인 성향 때문에 타군(특히 해군)과의 사이가 매우 나빴던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미국 국방부는 전쟁부(육군부)와 해군부로 나뉘어져 있었던 것을 합쳐서 통솔하는 '부 위의 부'로 창설되었는데, 초대 국방부 장관이 해군 장관 출신인 제임스 포레스탈이긴 했지만 별로 쓸모가 없었으며, 오히려 해임되었다. 되려 트루먼의 공군 위주 성향과 더불어 타군에서
"왜 미군은 해군에만 그렇게 돈을 퍼부어대나. 어차피 제2차 세계 대전 만큼 무식한 전쟁이 나지도 않을텐데 해군 예산을 확 줄여도 되지 않을까?"
라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였다. 제2대 국방장관인 루이스 A. 존슨은 육군 예비역 법무중령 출신으로, 트루먼의 성격에 딱 맞는 성향의 인물이었다.

존슨 또한 트루먼과 성향이 같은 데다가, 트루먼의 성향을 이용하여 해병대가 제출한 많은 예산안을 줄이거나 제거했다. 뿐만 아니라 존슨은 항공 자산을 다른 서비스로 이전함으로써 해병대가 보유하고 있었던 항공대를 제거하려 시도했고, 일련의 예산 삭감과 함께 해병대를 점진적으로 완전히 해체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존슨은 해병대 최고위 장교인 해병대 사령관을 군지부장 공식 명단[1]에서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더 나아가 앞으로 해병대 생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축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명시했으며, 더 불길하게도 해병대 사령관이 복무처장(해병대 준비나 배치와 관련된 회의 포함) 역할로 JCS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했다.

존슨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을 환영했는데, 아메리칸 군단 대회에서
"대통령이 국방장관의 권한과 책임을 늘리는 법안에 서명했을 때 통일을 가로막았던 문제의 80%가 즉시 사라졌다고 보고하게 되어 기쁘다."
라고 말했다. 존슨은 수정안이 추가 예산 삭감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면서, 통과 1년 후 국방부가 연간 10억 달러의 비율로 절감을 달성할 것이라고 추정했다.[2] 그의 슬로건 중 하나는 국방부가 "지출한 1달러당 1달러 상당의 방어"를 납세자가 받는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트루먼이 승인한 접근법이었다.

존슨은 예산 삭감 캠페인을 해군이나 해병대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그는 잉여가 되어버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의 전차들과 통신 장비, 인력 운반선 및 소형 무기 등 거의 모든 육군의 재고 물량을 폐기하거나 재조정 및 보관을 위해 창고로 운송하는 대신, 다른 국가에 매각하도록 명령했다. 심지어 존슨은 육군이 새로 획득한 전 해군 상륙함에 대한 소형 무기 및 대전차 탄약, 대전차 무기 또는 상륙 보병 훈련에 관련된 예비 비축량에 대한 예산 요청에도 저항했는데, 이는 적절한 정비 부족으로 연결되어 즉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미 공군(USAF)이 프로그램 취소 및 삭감에 더 직면했지만 존슨은 북한의 한국 침공 전까지 현역 공군 그룹의 2배 증가 요청을 거부하고, 전술 항공 감축을 선호했으며, 전략 핵폭격기의 전력에 유리한 준비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2.2. 제독들의 반란

이렇게 존슨은 육•해•공군 할 것 없이 줄줄이 예산을 삭감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의회의 승인을 얻어 건조 및 기공되고 있었던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급 항공모함에 대해 육군과 갓 독립한 공군이 해군에 예산을 몰아준다며 끊임없이 불평을 제기하자 정치적인 이유로 프로젝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1949년 4월 23일 항공모함의 건조 중단을 천명했다.

즉, 기공 5일만에 항공모함의 건조가 통째로 날아가는 공중분해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전 국방장관 포레스탈이 공화당 대선 후보와 밀착한 것을 이유로 트루먼에 의해 해임된 것이었으며, 이 때문에 미국 해군 사상 최대의 항명사태였던 제독들의 반란이 일어나 루이스 덴펠드(Louis E. Denfeld) 제독이 사임하는 사태가 일어닜다.

존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병대를 방문해 해병대 항공대의 항공 자산을 공군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해군과 해병대의 반발이 심해지자 이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설리번 장관과 덴펠드 제독이 해임되었다. 그 와중에 국방장관에서 해임된 후 우울증으로 치료받고 있었던 포레스탈이 그의 숙원이었던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급 항공모함 건조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하여 5월 22일 해군 병원에서 투신 자살하고, 갖가지 명분하에 해군을 칼질하려는 트루먼 행정부와 여기에 반발하는 해군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3] 마침내 연방 의회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존슨은 말도 안 되는 폭탄 발언을 했다.
"There's no reason for having a Navy and Marine Corps. General Bradley tells me that amphibious operations are a thing of the past. We'll never have any more amphibious operations. That does away with the Marine Corps. And the Air Force can do anything the Navy can do nowadays, so that does away with the Navy."
"더 이상 해군해병대를 운영할 이유가 없다.[4][5] 오마 브래들리 장군이 그러는데 상륙작전은 구식이 되었다더라[6]. 더 이상 상륙작전을 할 일이 없으니 해병대는 필요가 없다[7]. 그리고 오늘날 공군은 해군이 할 일을 다할 수 있으니까[8] 해군도 마찬가지다."
1949년 12월, 미국 국방장관 루이스 존슨

이 때문에 사실상 군 내부는 과열되었다.

그러나 1949년 소련의 핵개발이 성공하여 냉전이 본격화되고, 핵으로 싸우다가는 쌍방이 멸망하는 상호확증파괴의 개념이 대두되자 재래식 무기의 중요성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의회는 항공모함을 건조하겠다는 보증[9]을 해주었다. 게다가 이듬해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뒤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해군과 해병대의 맹활약이 이어지게 되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다시 인정받게 되자 군축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3. 평가

루이스 A. 존슨은 근시안적인 시선으로 군대를 바라봤으며, 그로 인해 군대 직종 간의 대립이 더 심해졌고, 결국에는 자기 직위도 잃은 걸 생각하면 확실히 국방부 장관 일에 맞지 않았거나, 심하게 말하면 무능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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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전사와 리무진을 승인하고, 의례적인 행사에서 특별 총 경례를 처방받았다.[2] 나중에 그는 이 목표를 달성했다고 주장했다.[3] 실제로 육/해/공군의 홍보와 정치적인 알력들을 전부 언급하면 책 한 권은 나온다. 한국에도 윤영식 제독이 번역한《제독들의 반란》이라는 서적이 나와 있고, 제독들의 항명을 주도했던 알레이 버크 제독의 전기에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4] 오늘날 미군에 있어 해군과 해병대의 위치를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코멘트다. 특히 미 해병대가 분쟁 지역에 급파가 가능한 '신속 대응군'의 성격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만 봐도 너무나 근시안적인 발언이다.[5] 군은 어디까지나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그러므로 설령 정말로 해군과 해병대의 필요성이 낮아졌다고 해도(정말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없애기보다는 예산을 까거나 다른 임무를 주어 평상시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6] 물론 브래들리는 이 작전이 나오리란 예측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연합군의 승리에 있어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안다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 의아하다.[7] 상륙의 의미와 개념이 달라졌다. 해군 항공대에도 자체의 수송능력이 있는데, MH-53 같은 대형 수송헬기나 V-22 같이 기동성이 높고 수용능력이 좋은 항공기를 이용해 상륙함에서 직접 띄워보내는 방식이다.[8] 활동 분야가 다르다. 공군은 일반적인 상공에서 작전활동을 펼치지만 해군은 공해상에서 작전을 실행한다. 즉 공군은 하늘이 주 작전 영역이지만 해군은 바다다. 더구나 바닷물에는 염분이 섞여 있기 때문에 바다위의 하늘에는 소금기가 섞인 바람이 늘 분다. 해군이 이용하는 항공기는 별도의 방염처리가 되어 있어 해풍을 견딜 수 있지만 공군의 항공기에는 그런 것이 없어서 바다에서는 활동하기 어렵다. 더구나 해군의 작전 가운데는 적의 잠수함을 탐지 및 감시하는 대잠초계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일반 공군의 항공기에 이 임무를 맡겼다간 얼마 못 가 염분이 있는 해풍 때문에 항공기가 고장날 수가 있다. 물론 이건 해상작전에 있어 방염처리가 된 기체를 투입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이기는 하다. 실제로 영국 같은 일부 국가는 해상초계기가 공군 소속이다. 하지만 항공기만 가지고 해군의 주력인 수상함이나 잠수함의 역할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으니 어찌되었든 틀린 말이기는 하다.[9] 특히 하원 군사위원회에 소속된 칼 빈슨 의원이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미 해군은 이 은혜를 잊지 않고, 훗날 니미츠급 항공모함에 칼 빈슨의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