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루트비히 라이히하르트 Friedrich Wilhelm Ludwig Leichhardt | |
본명 | 프리드리히 빌헬름 루트비히 라이히하르트 Friedrich Wilhelm Ludwig Leichhardt |
출생 | 1813년 10월 23일 |
프로이센 왕국 자브로트 (오늘날의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 타우헤) | |
실종 (사망) | 1848년 4월 3일 (향년 34세) |
영국령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 마운트어번던스 (오늘날의 호주 퀸즐랜드 주 마운트어번던스) | |
직업 | 탐험가, 지리학자 |
종교 | 기독교 (개신교) |
1. 개요
독일 태생의 지리학자로, 두 차례에 걸쳐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내륙을 탐험하여, 호주 이주민들이 대륙의 서부로 진출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2. 생애
1813년에 프로이센 왕국의 자브로트[1]에서 태어난 라이히하르트는 괴팅겐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교로 진학해서 철학과 언어학, 자연과학을 익혔다. 1837년에는 영국으로 이주하고 대영박물관에서 근무하다가, 프랑스의 파리와 당시 멕시코령이었던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기도 했다.그러던 중에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뉴사우스웨일스의 총독이 대륙의 내륙 지방인 아웃백에서의 탐험에 큰 포상금을 걸자, 즉각 호주로 이주했다. 1842년에 브리즈번을 출발한 라이히하르트는 북부의 포트에싱턴[2]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하고 이듬해인 1843년에 시드니로 귀환했다. 1848년에는 총독부 측의 의뢰를 받고 두번째 탐사에 나섰으나, 동년 4월에 마운트어번던스에서 돌연히 실종되었고, 동월 3일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당대에는 탐험 도중에 기갈로 인해 아사했거나, 현지 원주민들에게 침입자로 간주되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현재까지도 그의 실종의 전말은 밝혀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