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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6 03:26:51

마누엘 펠레그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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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835> 이름 <colbgcolor=#fff,#191919> 마누엘 펠레그리니
Manuel Pellegrini
본명 마누엘 루이스 펠레그리니 리파몬티[1]
Manuel Luis Pellegrini Ripamonti
출생 1953년 9월 16일 ([age(1953-09-16)]세)
칠레 산티아고수도주
국적
[[칠레|]][[틀:국기|]][[틀:국기|]]
신체 184cm | 체중 78kg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008835> 선수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1973~1986)
감독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1988~1989)
CD 팔레스티노 (1990~1991)
오히긴스 FC (1992~1993)
CD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 (1994~1996)
CD 팔레스티노 (1998)
LDU 키토 (1999~2000)
CA 산 로렌소 (2001~2002)
CA 리버 플레이트 (2002~2003)
비야레알 CF (2004~2009)
레알 마드리드 CF (2009~2010)
말라가 CF (2010~2013)
맨체스터 시티 FC (2013~2016)
허베이 화샤 싱푸 (2016~2018)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8~2019)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20~ )
국가대표 1경기 (칠레 / 1986)
1. 개요2. 선수 생활과 비야레알 CF 이전까지의 감독 생활3. 이후의 감독 생활
3.1. 비야레알 CF, 노란 잠수함의 전설3.2. 레알 마드리드 CF3.3. 말라가 CF3.4. 맨체스터 시티 FC
3.4.1. 2013-14 시즌3.4.2. 2014-15 시즌3.4.3. 2015-16 시즌
3.5. 허베이 화샤 싱푸3.6.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3.6.1. 2018-19 시즌3.6.2. 2019-20 시즌
3.7.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3.7.1. 2021-22 시즌3.7.2. 2022-23 시즌3.7.3. 2023-24 시즌
4. 감독으로서의 재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이야깃거리

[clearfix]

1. 개요

칠레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20년부터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의 감독을 맡고 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을 맡았다. 후안 로만 리켈메, 마르코스 세나 등과 함께 비야레알 C.F.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감독이다.

부임 첫 해에 맨시티의 더블을 이루었지만, 단기적인 성과에만 치중하고[2] 어린 선수들을 내치며 보수적인 선수 기용과 로테이션의 부재 등 전술적 문제점이 많은 감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성적에 명성이 있는 편이다. 비야레알에서 4강, 말라가에서 8강을 찍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선 16강에 그치며 주춤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두 시즌은 16강에서 그치더니 세번째 시즌에서 죽음의 조에서 조별 1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결국 PSG를 꺾고 4강을 기록했다.

2. 선수 생활과 비야레알 CF 이전까지의 감독 생활

파일:external/golregate.files.wordpress.com/manuel-pellegrini-universidad-chile.jpg
선수 시절. 참으로 얼굴이 한결같다.

성에서도 대충 알 수 있지만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다. 우니베르시다드 칠레의 레전드급 선수 중 하나로, 유스 때부터 쭉 우니베르시다드 칠레 소속으로, 프로에서 13년 간 뛰면서 리그와 컵을 통틀어 451경기를 출전한 원 클럽 맨이다.[3] 수비수이고, 또 남미 선수기도 해서 돋보이는 선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노력파 선수로 이름이 높았다. 또한 국가대표도 승선했고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다만 월드컵 스쿼드에는 커리어 중 칠레가 진출한 두 번의 월드컵 중 한 번도 승선하지 못했다. 그래도 선수시절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벵거, 무리뉴 등 보다는 선수시절 이력을 많이 남겼다. 추가적으로 선수시절 전체를 통틀어 받은 카드가 단 7개라고 한다.

33세라는 나이에 빠르게 은퇴한 후, 다른 일을 잠시 하다가 우니베르시다드 칠레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3/14시즌 스티븐 제라드가 당장 은퇴하여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과 같은 사례다.

그 이후 남미의 여러 클럽을 전전하며 10년간 명성을 키워나간다. 주로 자국 칠레의 여러 빅클럽에서 컵대회와 리그 우승컵을 간간히 뽑아주었고, 이때도 현재의 전술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1999년 LDU 키토를 자국리그에서 우승시킨 데에 이어, 남미의 챔피언스 리그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16강에 진출시키며 더욱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아르헨티나로 이동, 이름있는 명문들인 산 로렌소와 리버 플레이트를 맡게 된다. 산 로렌소에선 후반기 리그 우승, 그리고 당시 유럽의 UEFA 유로파 리그와 비견될 수 있었던 코파 메르코수르에서 우승을 시키면서 더블을 달성. 이후 아르헨티나 최대우승팀인 리버 플레이트로 이동, 다시 후반기 리그를 우승으로 끝맺는다. 하지만 선수 유출로 더이상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고 2003/04시즌 전반기를 끝으로 사임하게 된다.

아르헨티나 시절에 이후 다시 만날 마르틴 데미첼리스, 파블로 사발레타를 처음으로 지도해보게 되고, 더불어 리버 플레이트 시절, 현재까지 15년 가까이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오른팔 루벤 쿠시야스를 만나게 된다.

3. 이후의 감독 생활

3.1. 비야레알 CF, 노란 잠수함의 전설

파일:external/s.libertaddigital.com/pellegrini-champions-060409.jpg

펠레그리니는 2003/04시즌이 끝난 즉시 스페인의 비야레알 C.F.에 합류하게 된다. 당시 비야레알은 2001/02 시즌에 15위, 2002/03 시즌에도 역시 15위로 겨우 강등을 모면했다가 03/04 시즌에는 리그 8위를 거두던 중하위권 팀이었다.[4]

펠레그리니는 이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먹튀를 하고 돌아온 디에고 포를란을 영입하게 된다. 후에 보게 되지만, 이 영입은 신의 한 수가 된다.

비야레알은 그 시즌 폭발하고 펠레그리니는 명성을 얻게 된다. 인터토토컵에서는 오덴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함부르크라는 인터토토컵 치고는 어려운 대진을 이겨내고 우승으로 그 다음 시즌의 UEFA컵 진출권을 따낸다. 그 이후 UEFA컵에서는 8강에 진출, AZ에게 져서 탈락한다.

당시 비야레알을 빛낸 것은 리그에서의 성적. 리그에서 3위를 기록했다. FC 바르셀로나와 당시 갈락티코 끝물이던 레알 마드리드를 따라잡진 못했지만 굉장히 가열찬 경쟁을 하던 중상위권 여러 팀들을 따돌리고 팀 역대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거머쥔다. 이 때 포를란은 사무엘 에투와 함께 라리가 득점왕에 올랐고[5] 리켈메는 15골을 집어넣으며 대활약[6]. 이때부터 비야레알은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2005/06시즌에 비야레알은 뎁스가 얇은 스몰클럽에서 챔스를 뛰느라 리그성적은 많이 떨어지고, 포를란의 부진도 겹쳐 7위에 그치게 된다. 하지만 이 때, 비야레알 전성기에서 제일 많이 기억되는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4강 진출이 일어난다. 3차 예선에서 에버튼 FC를 2승으로 간단히 이기고 올라온 비야레알은 조별리그에서 벤피카, 릴 OSC,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진출한다. 일반적으로는 벤피카와 맨유의 진출이 점쳐졌지만, 피터지는 접전 끝에 비야레알은 맨유에게 2무를 포함 2승 4무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다.

16강에선 레인저스를 만나 역시 2무에 원정골 원칙으로 8강까지 진출한다. 8강에서의 상대는 인테르. 밀라노에서의 1차전에서 1분내에 포를란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당시 기량이 절정이던 아드리아누의 동점골과 오바페미 마틴스의 역전골로 인테르가 승리. 하지만 비야레알 홈에서는 달랐고, 비야레알은 인테르를 후안 파블로 소린이 폭발하며 경기내내 털면서 기회를 만들지만 스코어 자체는 1:0으로 승리. 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이번에도 원정골로 비야레알은 챔스 4강에 진출하게 된다. 4강에선 아스날 FC를 상대로 1차전에서 콜로 투레의 골로 패배. 2차전에선 이번에도 주도하는 경기였지만 리켈메의 페널티킥 실축 등의 불운으로 패배, 결국 결승진출엔 실패한다.

2006/07시즌엔 리그 5위를 기록. 포를란이 부활했지만, 챔스진출엔 실패한다. 인터토토컵에서도 광탈하면서 실패한 시즌으로 기록되었다.

2007/08시즌엔 다시 부활한다. FC 바르셀로나를 무려 10점차로 따돌리고 리그 2위를 기록한다. 스몰클럽으로서는 역대급의 업적. 포를란이 떠났지만, 주포 니하트 카베시를 중심으로 훌륭한 성적을 이룬다. UEFA컵(유로파 리그)에선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게 패하며 32강에 그친다.

2008/09시즌은 다시 리그 5위. 시즌 초엔 2위를 다퉜지만. 중반부터 챔스 영향인지 성적이 좋지 않아 순위가 떨어져 챔스진출에 실패한다. 이 때 리켈메는 떠난 뒤였고, 피레스와 세나, 그리고 주세페 로시의 활약으로 챔스에서 다시 좋은 성적을 내게 된다. 챔스에선 다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만나, 또다시 2무를 기록한다. 다른 점은 이번엔 맨유에 이은 2위로 진출했다는 점. 16강에서는 파나티나이코스를 만나 1승 1무로 진출. 8강에서 만난 상대는 다시 아스날이었다. 1차전 홈에서 세나의 선제골로 1:1로 비겼지만, 어웨이에선 마르코스 세나산티 카솔라가 부상으로 빠진 상태로 관광당했다. 그리고 이 시즌 뒤에 펠레그리니가 떠나면서, 펠레그리니의 비야레알 시대는 끝나게 된다. 비야레알은 그 뒤로도 몇 년간 강팀의 포스를 유지했으나, 로시가 부상으로 드러눕고 카솔라가 팀을 떠나자 바로 강등당하고, 세나도 떠나 사실상 펠레그리니 시절과는 연결이 단절되게 되었다.

이때부터 당연히 펠레그리니는 이름이 높아졌다. 헌데 제일 잘 기억되는 선수인 후안 로만 리켈메와 펠레그리니의 사이는 꽤나 유명할 정도로 좋지 않았으며, 결국 계속 불화가 나오다가 2006/07시즌 초반 이후 펠레그리니가 플랜에서 리켈메를 빼버렸고, 리켈메는 계속된 압박으로 결국 비야레알을 떠나게 된다. 단 여기서 펠레그리니가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리켈메를 내친 것은 아니다. 리켈메는 원래 자존심이 대단히 강한 선수였기도 하고, 또 항목에도 있지만 리켈메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리켈메에게 모든 경기운용을 맡겨야 제대로 경기가 돌아가는 타입이기도 하다. 즉, 의존도가 높았다. 하지만 펠레그리니는 리켈메가 나간 자리를 로베르 피레스산티 카솔라같은 선수로 완벽히 대체하여 리그 2위라는 성적을 내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3.2. 레알 마드리드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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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레알에서의 전적을 본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는 갈락티코 2기의 시작에 맞춰 그것을 가동할 감독으로 후안데 라모스를 버리고 펠레그리니를 데려오게 된다. 펠레그리니는 비야레알을 떠날 일이 없을 것이라며 부정했지만, 레알의 계속된 구애로 결국엔 비야레알을 떠나게 되었다. 스몰클럽에서 클래스 낮은 선수로도 훌륭한 성적을 만들어낸 감독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처럼 월드클래스 선수들과 카림 벤제마, 사비 알론소 등의 A급 선수들을 영입하였다. 이때 레알은 정말로 역대급으로 돈을 풀었다.[7]

결국 결과는 밍숭맹숭했다. 시즌 자체의 성적만 보면 아주 실패한 시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펠레그리니가 이 때 기록한 96승점은 무리뉴가 우승시즌에 경신할때까지 역대 최다승점이다. 하지만 챔스에서 올랭피크 리옹에게 패한 데 이어, 국왕컵에서 3부리그의 알코르콘에게 패해 탈락하며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 리그 성적은 FC 바르셀로나가 워낙 대단했을 뿐 준수한 성적이었으나, 챔스와 컵 광탈은 즉 (갈락티코 스탠다드에서는) 실패한 시즌을 의미했고, 펠레그리니는 그대로 잘려버린다.

레알에서의 실패의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지목되고 많은 키배가 이루어지는데, 레알의 팬들은 펠레그리니를 까는 입장이 많고, 타팀 팬들은 펠레그리니를 옹호하는 입장이 많다. 하지만 갈락티코의 실패는 1기와 같이, 제대로 감독에게 선수영입 자유도를 부여하지 않았고, 선수기용에 관해선 알아서 하던 델 보스케와 달리[8] 선수기용에 대한 자유도도 부여하지 않았다. 펠레그리니가 기용하길 원하던 웨슬리 스네이더아르연 로번을 페레그는 상품성이 적다고 팔아버렸고, 펠레그리니가 원하지 않고, 비싼 선수를 굳이 데려왔다.[9] 거기에 페레즈가 선수 선발에 간섭했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데, 카카와 알비올 등의 폼이 좋지 않았음에도 기용을 강권했다는 말이 굉장히 많다. 펠레그리니는 이후 기자회견에서 갈락티코 2기를 상징하는 말로 회자되는 마드리드에서 나는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최고의 기타리스트만 10명이 있다고 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게는 피아니스트나 드러머가 없었다는 말을 남긴다. 심지어는 언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이후 세계최고의 감독이라 할 수 있는 주제 무리뉴도 더 다듬어진 레알에서 슈퍼코파를 뺄 시 3년간 컵 1개, 리그 1개의 트로피를 드는 데에 그친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단순히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단, 펠레그리니가 1년에 걸쳐 결국 제대로 스타 선수단을 휘어잡고 경기력을 향상시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 레알에서의 1년이 성공한 1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3.3. 말라가 CF

이후 펠레그리니는 멕시코 대표팀으로부터 제안을 받지만 거절했고, 당시 중동 석유재벌이 소유하게 되며 제 2의 맨시티의 포부를 높이던 말라가 CF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첫 시즌엔 시즌 중간, 이적시장 때도 아닌 정말 중간에, 순위가 강등권에 쳐져 있을 때 취임했고 당시 영입선수도 별 게 없었기에 거의 시즌 후반까지 강등권에서 고전을 했지만, 최후반 줄리우 밥티스타의 대활약으로 기적적으로 생환, 후반 연승으로 11위로 중위권에 안착한다.[10]

2번째 시즌은 본격적인 말락티코의 시작이었다. 전에 같이 있었던 카솔라를 필두로 뤼트 판니스텔로이, 호아킨 산체스 등 호화로운 스쿼드를 구축, 2위 바르셀로나의 절반도 안되는 득점수에도 불구하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추격을 뿌리치고 레반테를 제치며 4위, 승점 58점으로 챔스에 진출한다.[11] 국왕컵에선 16강에서 레알을 만나 탈락. 산티 카솔라가 에이스 역할을 했고, 이스코가 부상한 것이 이 시즌이다.

그런데 2012/13시즌, 말라가 구단주가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이 드러나면서 팀내 최다득점자 살로몬 론돈, 카솔라, 마타이센, 부오나노테, 그리고 나초 몬레알까지 주전 라인 중 반이 뜯기면서 위기를 맞는다. 선수들 주급도 제대로 못 주는 상황에서 말라가는 그래도 순항했고, 이그나시오 카마초를 터뜨리고, 맨시티가 버린 로케 산타 크루즈벤피카가 버린 하비에르 사비올라 등의 한물 간 선수들을 적당히 이용하며 챔스에서 AC 밀란을 제치고 조 1위를 달성하고, 리그에서는 주급을 안 줘서 유럽대회 진출이 막힌 이후 설렁설렁 하다가 순위가 떨어졌지만(6위) 후반기까지 챔스'권' 경쟁을 했다.[12]

챔스 16강에서는 FC 포르투를 만나 어웨이에서 1:0, 홈에서 0:2로 이겨 8강에 진출.

8강에서는 분데스리가 2연패에 주가가 다시 폭발하고 있는 위르겐 클롭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난다. 보루센이 쉽게 이길걸로 예상되었지만, 홈에서 0:0으로 비긴 데에 이어 어웨이에선 2:3으로 져서 탈락. 도르트문트는 홈인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90분 이후 2골을 넣으며 엄청난 극장승을 거두었다 그런데 여기서 도르트문트의 세 번째 산타나의 골이 어딜 봐도 명백한 오심이었지만 말라가의 둘째 골도 당연한 오심이라 그냥 넘어갔다. 도르트문트가 레알을 4:1로 대승을 거두고 바르셀로나를 7:0으로 제압한 바이에른 뮌헨에게도 긴장감을 주는 경기를 하다 1:2로 지면서 말라가의 저력이 새삼 부각되게 되었다.

3.4. 맨체스터 시티 FC

2013년 5월, 맨체스터 시티 FC의 감독이었던 로베르토 만치니가 리그에서 2위에 그치는 것이 확정되고, FA컵에서 위건 애슬레틱한테 관광당하면서 만치니의 경질설이 폭발했고, 만치니가 결국 경질되자 펠레그리니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말라가 구단은 일단 부정했지만 사실상 기정사실로 인정되는 분위기가 되었고, 펠레그리니가 이번 시즌이 끝이라고 발언하면서 확정되었다. 이후 오피셜 취임기사는 6월 15일에 떴다.

3.4.1. 2013-14 시즌

파일:external/www.premierleague.com/manuel-pellegrini-lsh-1.jpg

부임하자마자 이적사가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자신이 데려와 터뜨린 유망주 이스코를 맨시티에 같이 데려오는 것으로 취임 루머가 나올 때부터 상당한 예측이 있었고, 또 이스코 자신도 어느 정도 이런 쪽으로 발언을 했었는데 레알 마드리드에서 끼어들어 이스코를 낚아챘다. 맨시티 팬들은 애통해하면서도 레알이라 이해한다는 분위기인데, 펠레그리니 자신은 꽤나 부아가 났다.

맨시티는 11월까지 리그에서만 4패를 할 정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시즌 초반 리그 선두 경쟁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내 페이스를 되찾으면서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뮌헨을 꺾고 20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갔다. 이에 펠레그리니는 2013년 12월에 프리미어 리그 이 달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14년 1월까지 맨시티는 모든 대회에서 총 115골을 기록하는 등 화끈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순항한다. 이후 3월 선더랜드를 3-1로 꺾고 리그 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맨시티 부임 후 처음으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시즌 막바지에는 리버풀이 첼시를 상대로 2-0 패배를 당하고, 크리스탈 팰러스 경기에서도 비기면서 맨시티는 리그 최종 라운드 경기에서 승리할 시에 자력으로 리그 우승이 가능했다. 그리고 5월 11일, 프리미어 리그 38라운드 웨스트햄 전에서 나스리와 콤파니의 득점으로 2-0 승리를 거두면서 맨시티를 2년만에 다시 리그 왕좌로 올렸다.

이렇듯 펠레그리니는 2013-14 시즌 맨체스터 시티를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시켰으며 풋볼 리그 컵을 우승시켰다. 그리고 리그도 우승시키면서 부임 첫 해만에 시즌 2관왕에 올랐다. 게다가 비유럽인 감독으로 처음으로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란 기록을 세웠다.

3.4.2. 2014-15 시즌

2014년 7월, 칠레 일간지 '엘 메르쿠리오'의 보도에 의하면 16일(한국 시각) "펠레그리니 감독이 브라질 축구 협회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며 "대신 맨시티에 계속 남아 있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엉망이 된 브라질이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 영입을 하기로 하면서 주제 무리뉴와 같이 국대 감독 후보로 올랐다는 말이 있지만 둘다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15 시즌 초반에는 맨시티가 전 시즌에 비해 부진했던 데다 야야 투레의 별로인 활약, 경직된 전술과 챔스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고 심지어는 경질설이 돌기까지 했으나 이후 팀이 챔스에서 기적적으로 16강에 진출하고, 리그에서도 12월이 오면서 급격한 상승세와 훌륭한 경기력으로 첼시를 따라잡으면서 이 부분에서는 비판이 거의 들어갔다. 단 일부 팬들은 유스의 기용이라던가, 이적시장의 활용 등에 있어서는 아직 비판하는 중이가.

그리고 1월 야야 투레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차출된 이후 한달 넘게 공식전 무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눈앞까지 추격했던 첼시는 승점 7점차로 다시 저만치 멀어진 상태. 거기에 센터백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데려온 망갈라가 별다른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자신이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나스타시치샬케 04로 쫓겨나듯 임대 이적하자마자 대폭발하며 맨시티 서포터들의 속을 새까맣게 태우기도 했다. 이후에는 나스티도 딱히 특기할 만 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잊혀졌다.

그리고 이후 챔스에서 바르샤에게 홈에서도 지고, 원정에서도 하트가 아니었으면 5골은 먹혔을 퍼포먼스를 보이며 탈락하고, 리그에서도 리버풀에게 발린 데 이어 번리한테 경기력에서 밀리면서 패배하는 등 팀이 망조를 보이면서 다시 경질설이, 이번엔 매우 진지하게 돌기 시작했다.

4월에 접어든 시점에선 리그에서 4등까지 떨어지는 등 시즌이 붕괴할 조짐을 보인다. 컵대회도 모두 일찍 탈락했고 시즌 무관에 처랬기에 그의 경질설은 정설같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질 가능성이 안 보인다. 대체할 만한 감독은 사실상 없으며, 안첼로티와 클롭 모두 휴식한다고 선언했기에, 당분간 펠레그리니 체제로 갈 수밖에 없을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2014-15 시즌을 말아먹었으므로 팬들의 실망감은 큰데, 맨시티 보드진은 펠레그리니를 유임할 것으로 보인다. 만수르가 펩한테 꽂혀서 몇 년째 구애 중이었는데, 펩과 펠레그리니 모두 계약 기간이 16 시즌까지이다. 그래도 리그 최후반에는 4-3-3으로 포메이션을 바꾸면서 연승을 달리고 경기력도 괜찮아지긴 했었다.

3.4.3. 2015-16 시즌

그리고 2015년 8월 8일, 맨시티 측은 펠레그리니와 2년 계약을 연장하면서 그대로 맨시티 감독으로 다음 시즌도 이어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유벤투스-웨스트햄-토트넘에게 패하면서 경질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다들 안첼로티나 클롭을 원했다.

묀헨글라트바흐전에서 1-0으로 그대로 패했다면 경질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팀은 1-2로 역전승했다. 그리고 8R 뉴캐슬전에서 뛰어난 용병술을 보여주며 또 다시 팬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있다.

허나 11월 들어 A매치 기간에 직격을 맞고, 빌라를 상대로 졸전 끝에 무득점 무승부를 거두고, 클롭의 리버풀을 상대로 망갈라-데미첼리스 센터백, 야야 투레-페르난두 중원이라는 처음부터 불안했던 포메이션을 내세운 끝에 저번 시즌에 보인 문제를 그대로 보이며 1-4로 개털리면서 다시 불안감을 주고 있다.

맨시티에서 가장 변화가 필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답이 없는 투레 사랑과 수비 불안은 두 시즌째 이어지고 있다. 공룡 클럽이 되고자하는 맨체스터 시티에게는 한계가 명확한 감독이라는게 중론. 팬들은 경질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실패도 그렇고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그렇고, 빅클럽의 감독이라는 자리에 한참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14R 스토크 시티 원정경기에서 또 패배를 당하였다. 11~12월에는 패가 승보다 많다. 시티즌들은 빨리 경질하라고 열을 올리고 있다. 16라운드 아스날전 패배로 3위로 떨어진 상황이라 이런 말도 많고 펩 과르디올라가 새로운 감독이 온다는 이야기가 외신에서 자주 나오는 터에 이제 본인도 과르디올라가 온다면 환영이라고 하며 그만둘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전번 시즌에 과르디올라가 받아줄려다가 그가 뮌헨에 남겠다고 하여 펠레그리니를 일단 놔둔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덕분에 확실하게 뮌헨을 곧 그만둔 과르디올라를 보면 그 자신도 포기한 듯하다. 그래도 펩과 관련된 전망에 대해 대답하는 자세와 내용은 꾸준히 칭찬을 받고 있다. 본인이 감독인 상황에서 뒤에 올 감독에 대해 묻는 것은 쉬 자존심이 상할 만하지만 덕장답게 클래스 있는 대응을 보이는 중이다.

그 후 리빌딩의 시간과 함께 유임되느니 우승하고 경질 당하겠다 라는 식의 인터뷰을 했다. 캐피탈 원 컵을 우승하여 체면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왓포드전은 가까스로 이기긴 했지만 경기 내내 전술적으로 밀린 경기였고, 그 후 주중에 에버튼과의 캐피털 원 컵 경기에서 패하면서 국내와 해외 가릴 것 없이 까이고 있다.

선발 기용부터, 선수 교체 (특히 3번째의 페르난두 IN, 덕배 OUT), 단조로운 전술 등 모든 면에서 비판 받는 중. 이젠 모든걸 내려놓은 멘탈의 감독이 태업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심지어 경기 후 인터뷰에서 "푸네스 모리의 첫 골은 오프사이드였고[13], 나바스는 페널티킥을 얻었어야 했다"라는 오심 드립을 치며 더욱 까이는 중. 그걸로 끝이 아니라 홈에서 1-0으로 이기면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도 했다.[14] 시즌 후 경질이야 뭐 이미 기정사실화 된 것이지만, 시즌 중 경질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점점 올라온다.

여기까지는 맨시티 팬들이 느끼고 있는 바지만, 제 3자 입장에서 봤을때 스쿼드의 절반이 부상으로 나가리된 상황에서 4개 대회 모두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멀쩡한 다른 팀들이 한두개 많으면 세 개의 대회에서 탈락한 마당에 이정도로 한 건 거의 기적과도 같다. 그러나 이를 이루기 위한 감독의 무리한 주전 기용은 팀 스쿼드 초토화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이런 스쿼드의 얇아짐으로 인해 FA컵 16강-챔피언스리그 16강-캐피탈 원 컵 결승으로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에서 뒤의 두 대회에 선택과 집중을 했다. FA컵 16강 첼시전에서 2군+유스 선수들을 대거 기용한 것이다. 그리고 풀 주전으로 나온 첼시 FC에게 1-5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뭐 챔피언스리그는 이전 2번의 조별리그를 조 2위로 통과하는 바람에 FC 바르셀로나를 2번 연속 만나 탈락하다 이번에 극적으로 조 1위로 진출해 디나모 키예프라는 할만한 상대를 만났기에 구단 첫 챔스 8강 진출을 노릴 절호의 기회고, 캐피탈 원 컵 결승전 리버풀 FC 전은 우승컵이 걸려있으니. 과연 이 결단이 성공할지 궁금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디나모 키예프와의 1차전 원정에서 3:1로 승리하고 리버풀전에서 우승하며 도박에 성공하였다. 특히 리버풀과 결승전에 골키퍼로 주전 조 하트 대신 윌리 카바예로를 투입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카바예로가 승부차기에서 네 번 중 셋을 막으며 신들린 모습을 보여주어 이 모험수도 훌륭하게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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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피탈 원 컵에서 우승했지만 이후 리그 경기에서 1승 1무 2패를 기록하며 1위 레스터 시티와의 승점 격차가 15점, 2위 토트넘과의 격차는 10점이 되었다. 4위 맨시티가 두 팀보다 1경기를 덜하긴 했지만 레스터시티, 토트넘이 7경기 남겨둔 상황인지라 리그 우승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졌다. 오히려 5, 6위에 있는 웨스트햄맨유가 맨시티를 승점 1점차로 쫓고 있는 상황이라 챔스권 수성도 장담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디나모 키예프와의 챔스 16강 2차전에서 뱅상 콤파니가 다시 부상을 당해 한달 아웃된데다 A매치 기간전 마지막 경기인 리그 맨체스터 더비에서 조 하트라힘 스털링마저 부상당해 최소 3주 아웃이 예상되고 있다. 챔스는 8강에 올라가면서 구단의 새 역사를 썼지만 8강 상대가 파리 생제르맹이라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8강 1차전에서 파리를 상대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심지어 원정에서. 거기에 페르난두의 삽질만 아니었다면 승리를 노려볼수도 있을법 한 경기였다. 이로서 원정에서 무재배를 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원정 다득점에서도 2점을 얻었기 때문에 상당히 유리해졌다. 결국 2차전 홈경기에서 케빈 더브라위너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맨시티는 구단 역사상 첫 4강 진출을 이룩했다. 펠레그리니 감독 본인 기준으로는 2005-06 시즌 비야레알 CF 시절 이후로 10년만에 챔피언스리그 4강 무대를 밟아보는 것이다.

챔피언스리그 4강 상대는 공교롭게도 자신 커리어의 가장 아쉬운 시기를 보냈던 레알 마드리드. 1차전에서 수비적인 운영으로 초반에는 경기를 잘 풀어나갔지만, 다비드 실바가 부상당하자 4-4-2로 전술을 바꾸었다가 경기력이 똥망하면서 간신히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날 아구에로의 폼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음에도 너무 고착화된 교체 카드만을 사용했고, 결국 중원이 밀리면서 경기력이 압살당한 것. 그나마 2차전에 레알을 어떻게 상대할지에 대한 예방접종은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2차전 원정 경기에서 전반전 페르난두의 자책골로 0-1 패배하며 다시 4강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물론 다비드 실바의 결장과 뱅상 콤파니의 조기 부상 교체라는 불운도 있었고 레알 원정 경기 패배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0-1로 지고 있고 원정골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15]임에도 90분까지 계속 소극적으로 운영한 것은 매우 아쉽다는 평. 그것을 본 레알 역시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1-0을 유지하는 방향쪽으로 운영해나갔고 결국 경기는 그대로 끝나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리그 역시 위태로운 4위를 유지하다가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매우 불투명해지고 말았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스 4강 2차전을 대비하기 위해 리그 36라운드 사우스햄튼 원정에서 로테이션을 돌렸으나 2-4로 패배하고 말았고, 37라운드 아스날과의 홈 경기에서는 우세한 경기를 펼쳤음에도 2-2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맨유가 꾸역꾸역 쫓아오면서 승점 2점차가 되었고, 맨유가 맨시티보다 한경기 더 남았기 때문에 자력 진출 가능성을 맨유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맨유가 남은 2경기인 웨스트햄 원정, 본머스와의 홈 경기를 전부 승리로 장식할 경우 맨시티는 사실상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에 출전해야한다. 그나마 맨유와 관계없이 4위를 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있다면 맨시티와 승점 3점차의 3위인 아스날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패배하고 맨시티가 마지막 라운드를 승리하여 골득실로 4위 이상을 확보하는 것인데, 아스날의 마지막 경기는 압도적 최하위 아스톤 빌라와의 홈 경기라 맨유가 미끄러지는걸 바라는것이 훨씬더 현실적이다.

이후 맨유가 웨스트햄 원정에서 3:2로 패하며 펠레그리니의 맨시티의 4위 가능성은 다시 높아졌고, 최종전 스완지 전에서 비기며 승점 1점을 추가하는 데 그쳤으나 맨유가 맨시티의 순위를 역전하려면 연기된 최종전 본머스 전에서 +19의 득실 마진을 내며 승리해야 하기 때문에 16-17 시즌 챔스 진출은 어찌어찌 지켜내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맨유가 본머스전에서 이기긴 했지만 3:1로 이겨 골득실을 +16까지밖에 줄이지 못하며 펩의 맨시티가 유럽 대항전을 유로파에서 시작하는 불상사는 다행히 면하게 하고 맨시티 감독직을 마쳤다.

펠레그리니의 맨시티 임기 성패 여부는 논란이 많고 찬반이 갈린다. 선임될 때부터 시한부 감독이었던 상황에서 챔스에서 4강까지 진출하며 위닝 멘탈리티를 만들고, 국내에서도 우승컵 세 개를 따냈으며 결국 마지막 시즌에도 챔스권을 수성하여 가시적인 성과 면에서는 크게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3년 동안 쭉 이어졌던 경기력의 저하, 양아들들의 영입과 기용, 그리고 극심해진 스쿼드 노쇠화 등으로 절정의 성과를 내야 할 펩 임기 3년 중 최소 1년은 스쿼드를 갈아엎고 리빌딩을 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악평도 받고 있다.

무직자인 현재 에버턴 FC, 발렌시아 CF 등과 강하게 링크되고 있다. 본래 발렌시아행이 점쳐졌으나, 감독 본인이 잉글랜드 생활에 만족한다는 느낌의 인터뷰를 해서 알 수 없게 되었다.

3.5. 허베이 화샤 싱푸

헌데 갑자기 뜬금포로 허베이 화샤 싱푸 감독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팬들은 또다시 황사머니의 힘을 실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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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시절 적장이었던 상하이 상강 감독 안드레 빌라스보아스와 다시 만난 펠레그리니

허베이는 2015년 갑급리그에서 승급했는데 [16], 2016년 8월부터 펠레그리니가 지휘봉을 받아 7위를 했고, 2017년에 강팀으로 거듭나서 슈퍼리그 3위를 달리고 있다.
2017년 시즌 내내 3위를 달렸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펠릭스 마가트가 이끄는 산둥 루넝에 5-4로 패했고, 4위로 허베이를 바짝 뒤쫓던 파비오 칸나바로톈진 취안젠이 광저우 헝다를 2-1로 이겨 순위가 역전, 허베이는 4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때문에 아쉽게도 3장의 티켓이 걸린 2018년 아챔 티켓은 얻지 못했다.

2018년에는 마스체라노라는 특급선수를 데려오고도 10경기까지 3승 3무 4패로 중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인데, 그런 와중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에서 그를 노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디 마르지오, 스카이스포츠의 기사로 보아 데이비드 모예스의 후임으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로 가는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5월 20일 충칭 리판과의 경기를 2-1로 승리한 후, 허베이 화샤 공식 웨이보에서 마누엘 펠레그리니가 5월 20일부로 팀을 떠난다고 발표했고, 21일 중국을 떠났다. 이후 스카이스포츠에서도 마누엘 펠레그리니가 허베이 화샤와 계약을 해지했다고 발표했다. 5월 20일은 월드컵 브레이크 전의 마지막 경기이다. 마스체라노를 데려오고도 좀처럼 중하위권을 전전하는 성적에 불만을 품은 구단측과 웨스트햄의 오퍼가 오자 EPL로 복귀하고 싶은 펠레그리니의 뜻이 맞아 협상이 급물살을 탄 것으로 보인다. 발표는 갑작스러웠지만, 귀국날짜를 볼 때, 해지협상은 상당기간 이전부터 벌여온 듯 하다. 어쨌든 CSL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해 팀 순위는 정중앙인 8위로 맞춰놓은 후 유종의 미를 거두고 팀을 떠났다. [17]

허베이 후임은 의외로 2017/18시즌에 선덜랜드 A.F.C.를 3부로 강등시킨 크리스 콜먼이다. (물론 선덜랜드 감독 하기 전에 웨일스 황금세대 이끌고 유로2016에서 4강까지 가긴 했다.) 350만 파운드의 연봉으로 2.5년 계약이다.

3.6.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3.6.1. 2018-19 시즌

5월 22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구단과 3년계약했다. 연봉이 1,000만파운드(약 145억원)으로 안토니오 콘테 첼시 감독, 위르겐 클롭보다 더 높다. 허베이에서 1,200만 유로 (160억원)을 받았는데, 조금 깎였지만, 그래도 상당히 예우해 준 셈이다. 그리고 웨스트햄은 2018년 여름 펠레그리니 감독을 지원하기 위해 폭풍영입을 단행했다. 워낙 큰 규모의 이적 지출을 한지라 웨스트햄이 유로파 리그 진출에 실패한다면 큰 손해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초반에 리버풀, 본머스 전에서 모두 패배하여, 암울한 리그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비슷하게 2패를 기록한 처지였던 아스날전에서도 3-1로 참패했다. 본인은 아스날전의 팀 퍼포먼스에 만족한다고 밝혔지만. #. 영국 도박사들은 웨스트햄의 3패 후 중도하차할 감독 1순위로 무리뉴를 제치고 펠레그리니를 놓고 있다. 그 다음 울버햄튼전도 져서 4연패가 되었다. 유일하게 승점을 못먹고 있는 프리미어 리그 팀이다

파리목숨인 EPL 강등권팀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펠레그리니 조기해임은 어렵다고 한다. 구단측은 펠레그리니와의 계약에서 해고에 관한 자세한 조항을 넣지 않아서 만약 해고를 하게 되면 큰 손해를 본다고 한다. 그러니까 조기경질을 하면 계약 기간까지 남은 연봉을 그대로 줘야 하는데, 이 액수만 200억원을 훨씬 넘기 때문에, 구단이 경질을 망설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5라운드 에버튼전에서 3-1로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연패와중의 인터뷰에서는 "희망적이다. 곧 좋아질 것"이라고 장담 (또는 허세)를 하긴 했지만, 심적 압박감이 심했는지, 이 경기를 이기고 나서야 펠레그리니의 웃는 모습이 처음 나왔다

에버튼 전에서 4-3-3 시스템으로 변화한 것이 성공하면서 첼시전에서도 비슷한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첼시전을 앞두고 치차리토, 아르나토우비치가 빠져 라인업은 다소 바뀌었으나 큰 차이는 없었다. 첼시전에서도 수비 상황에서 첼시 공격진들과 미드필더들이 조르지뉴를 제외하고는 딱히 합이 잘 맞지 않는 모습과 사이드 전환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며, 특히 캉테는 컨디션은 둘째치고 맞지 않는 위치였던 것 같았고 웨스트햄의 조밀한 수비와 공격지점 25m 자유?라는 펠레그리니가 예전부터 보여주던 그런 자유로운 움직임의 공격으로 오비앙-노블 등의 미드필더 진에서부터 빠르게 원-투 패스나 몇 안되는 터치 내에 빠르게 넘기고 공격진들도 자유롭게 움직이고 사발레타도 공격시 꽤나 올라오며 공격상황을 많이 만들었다. 수비상황에서 컴팩트한 간격유지를 잘하면서 실점 없이 효율적인 공수전환을 이어갔다. 적어도 4-3-3 시스템 전환 이후 연패에서 벗어나 펠레그리니가 원하는 축구를 보여주는 느낌..그리고 리그컵에서는 8-0 대승을 거두었다. 시즌 초반 무리뉴와 함께 경질 1순위에 올랐으나 7라운드 맨유전에서 3-1 승을 거두며 점차 올라오려는 분위기가 되었다.

결국 17라운드까지 리그 9위로 중위권으로 안정시키고 있는 반면에, 웨스트햄과 겨우 2점차로 6위에 처져있던 맨유 감독 무리뉴는 2018년을 넘기지 못하고 해임되어 펠레그리니와 극과 극이 되었다.

25라운드에서 리버풀과 무승부를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덕분에 친정팀이 다시금 우승경쟁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3.6.2. 2019-20 시즌

전해의 초반부는 매우 죽을 쑤었지만 EPL 복귀 2년차에서는 실력을 보여주며 초반부에 팀을 상위권에 고정시키고 순항시키고 있다.

하지만 10월부터 연패의 부진에 빠져 팀이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11월부터는 경질설이 돌고 있다. 웨스트햄이 지난 여름 중국 다롄 이팡으로 간 전 뉴캐슬 감독인 라파엘 베니테스를 불러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국 레스터전 패배를 끝으로 웨스트햄을 떠나게됐다. 웨스트햄은 곧 새 감독으로 펠레그리니의 전임 감독인 데이비드 모예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3.7.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20년 7월, 레알 베티스의 감독직을 맡게 되었음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2020-21 시즌에 부임하며 계약 기간은 2023년까지라고 한다.

19-20 시즌에는 15위였던 베티스를 20-21 시즌 최종 순위를 결국 리그 6위로 끌어올려 베티스의 2021-22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진출을 이끌어냈다.

3.7.1. 2021-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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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2 시즌에는 지난 시즌의 돌풍이 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지 리그 단독 3위를 기록하며 챔스권을 순항중이다. 4위인 승격팀 라요 바예카노와 함께 21-22 시즌 라리가 돌풍의 주역이다.

후반기에도 좋은 경기력을 이어가면서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달린 4위를 쫓는 5위로 경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편 컵대회의 경우 UEFA 유로파리그에서는 16강에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게 떨어졌으나 코파 델 레이에서는 발렌시아 CF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 함으로써 맨체스터 시티 시절 2015-16 시즌 리그컵 우승 이후 6년만의 메이저 트로피이자 베티스 감독으로서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 타이틀을 얻게 된다. 덤으로 베티스로서는 17년만에 차지하는 메이저 트로피.

2019-20 시즌에 리그에서 겨우 강등권을 벗어난 15위에 그쳤던 팀을 이끌고 2020-21, 2021-22 시즌 모두 유로파 진출 순위까지 올리고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시킴으로써 자신의 지도력을 또 한번 입증했다.

3.7.2. 2022-23 시즌

현재 리그에서 12R 기준 4위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유로파리그도 조별리그 1위에 성공했다.
이후 리그 6위를 기록하며 유로파리그 진출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3.7.3. 2023-24 시즌

4. 감독으로서의 재능

온화한 성격을 바탕으로 폼이 떨어진 선수들을 다시 재활시키는데 일가견이 있다. 말라가 시절에는 폼이 다 떨어져 있던 산타크루즈를 재활시켜 재미를 봤고, 2013년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만치니 시절 폼이 다 떨어져 있던 나스리를 완벽히 부활시켜 놓았다. 신사적인 성격에 걸맞게 언론플레이나 공격적인 인터뷰는 하지 않는 성격으로, 언론을 대하는 태도나 인터뷰는 가히 모범적이라고 할만하다.

주전술은 공격적인 4-2-2-2(라고 분류되는) 전술로 비야레알 때부터 때때를 제외하면 이 전술의 틀 자체는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고 자신이 주장한다. 그 외로는 전체적으로 치고 빠지는 부분전술을 아주 잘 사용하는 감독이다. 그래서 점유율을 압도적으로 많이 가져가거나, 선수비 후역습 스타일의 축구를 지향하지 않고, 수비를 할 때는 수비를 하고 공격을 할 때는 빠르고 효율적인 공격으로 상대방을 흔드는 축구를 지향하는 편이다. 사이드에서부터 빠른 원투패스로 골을 성공시키거나, 전방에서부터 패스를 간결하게 주고받는 압박으로 공격을 이끌어나가는 스타일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이런 전술적 스타일은 상황에 따라 공격과 수비가 자유롭게 왔다 갔다 타는게 큰 핵심이다. 그에 걸맞게 로테이션도 잘 돌리고 전술적으로도 유연한 편이다. 그 예로 2013년 맨시티-첼시전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야야 투레를 공미로 놓는 3미들 전술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마지막 조 하트의 삽질로 패배하고 말했지만, 전술 자체는 무리뉴의 첼시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2015-16 시즌에는 드디어 투톱을 포기했다. 여담으로, 맨시티에서는 유스를 기용 안한다고 비판하지만, 말라가나 비야레알에서는 유스 기용을 잘만 하던 양반이다. 벵거처럼 중장기 플랜을 일임시켜줘야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풀백 살리기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에메르송 로얄이 리그 내에서 베스트급 활약을 하다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자마자 급격하게 부진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18] 또한 2021/22시즌부터는 아스날에서 부진을 거듭하던 엑토르 베예린의 폼을 부활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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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페인어 발음: /maˈnwel ˈlwis peleˈɣɾini ripaˈmonti/.[2] 이 부분은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본인의 입지에 대한 불확실한 점이 한부분 차지했을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부임 직후에도 계속해서 나온 타 감독(펩과 같은)의 부임설이나 그의 부임 도중에 나온 펩 선임 발표라던지. 아래 감독으로서의 재능 부분에 서술되어있지만 그의 진면목은 중장기적 플랜을 바탕으로 했을때 드러난다.[3] 단 그가 뛰었을 때 우니베르시다드는 암흑기여서, 리그 우승컵은 한 번도 들지 못했다. 다만 이후 감독으로는 우승컵을 드는데 성공했다.[4] 비야레알은 원래 창단이후 14시즌동안만 1부리그에 있던 팀인만큼 그저 그런 중하위권팀이었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즌은 2부리그나 지역리그에서 활동했다.[5] 에투가 PK골이 3골 많아서 공식 득점왕은 포를란이다.[6] 이 때 뛴 다른 선수로는 산티 카솔라가 있다.[7] 그 돈을 풀어 펠레그리니를 지원했다고 보기엔 뒤의 내용들을 보면 미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8] 갈락티코가 막장티코가 된 것은 델 보스케가 나가고 마케렐레가 나간 시점이다. 델 보스케가 나가면서 무게있는 감독이 없어졌고, 페레즈의 기용 아래에서 갈락티코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9] 둘은 각각 인테르와 뮌헨으로 이적했는데 스네이더는 합류한 시즌인 2009-10 시즌, 로번은 2012-13 시즌 트레블의 주축이 되며 펠레그리니의 안목이 맞았음을 증명했다.[10] AS 로마에서 컵대회만 잘하고 리그에선 못하면서 팀이 팔고싶어했으나 오히려 충성심은 높은 바람에 되려 로마 팬들의 속을 썩였던 그 '밥장군' 맞다.[11] 동시에 비야레알은 강등당했다.[12] 비록 6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원래는 UEFA 유로파 리그 예선에 진출할 예정이였지만 FFP 규정 위반으로 진출권을 박탈 당했다.[13] 볼이 클리어링 된 상황에서 라인 지키러 복귀 안 하고 대인마킹에 목숨 걸던 망갈라 때문에 명백한 온 사이드였다.[14] 캐피탈 원 컵 준결승은 원정 다득점 규정이 없다.[15] 1:1로 비겨도 원정 다득점으로 인해 결승전에 간다.[16] 이때 에두를 전북에서 거액의 이적료로 데려와서 썼고, 에두는 후반기에만 맹활약하여 17골을 넣어서 허베이가 슈퍼리그로 승급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하지만, 팀이 슈퍼리그로 올라가면서 더 비싼 용병을 데려오면서 100억 원의 위약금까지 지불하며 자유계약으로 풀어주었다.[17] 중위권에 팀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이 경기를 졌다면 10위 밖으로 전락할 뻔 했다. 허베이가 무지막지하게 돈을 지르는 구단인데다가, 선수와는 달리 감독에는 중국 축협이 고액연봉에 그다지 제재를 가하지 않기 때문에, 후임 감독도 여러 명의 특급감독이 물망에 오르고 있는데, 중국 웹에서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등이 거론되고 있다.[18] 바르셀로나로 임대 복귀 후 베티스전 시절 경기력은 어디갔는지 처참한 실력을 보여주고 곧바로 토트넘으로 팔려나갔으며 거기서도 실망스러운 폼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22-23 시즌 이후 폼이 급상승하여 토트넘의 핵심 자원이 되었다.[19] 비유럽인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일궈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