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우승자 | ||||
유승민 (2004) | → | 마린 (2008) | → | 장지커 (2012) |
이름 | 마린(马琳, Mǎ Lín) |
국적 | 중국 |
출생 | 1980년 2월 19일([age(1980-02-19)]세) 랴오닝성 선양시 |
학력 | 상하이체육학원 석사 |
종목 | 탁구 |
전형 | 오른손 / 중국식 펜홀더 이면타법[1] |
특기 | 서브, 포핸드 플릭, 포핸드 드라이브 |
소속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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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前 남자 탁구 선수이며, 왕리친, 왕하오와 함께 2000년대 중국 탁구 트로이카 중 한 명이다.1990년대 중반부터 2013년 후반까지 프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커리어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세계랭킹 4위 안에 들던 선수였다. 마린의 2000년 이후의 최저 세계랭킹은 은퇴시즌인 2013년 말 잠깐 동안의 11위이며, 기량이 하락하기 전인 2012년 전에는 2000년 부터 2012년까지의 12년이라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세계랭킹 7위 밑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는 세계 최고의 선수중 한 명이었다.
또한 최고의 복식 선수 중 한 명이다. 그의 복식 파트너였던 첸치[2]와 함께 각종 복식 대회 우승컵을 쓸고 다녔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후 복식 최강자 타이틀은 같은 중펜 선수인 쉬신에게 갔다.[3]
2013년 12월 은퇴하였고 중국 여자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다가 2023년 후반기부터 감독이 되었다.
2. 플레이 스타일
하이라이트 영상 |
백핸드 같은 경우엔, 같은 이면타법을 사용하는 왕하오나 쉬신과의 차이점은 왕하오, 쉬신은 이면기술을 백핸드 모든 기술에 적용시키는데 반해 마린은 수비에서는 전면 쇼트를 구사하고 이면타법은 보조무기 형태로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마린은 왕하오처럼 이면 백핸드 드라이브를 주무기로 사용하기보다는, 주로 돌아설 시간이 없을 때나 백쪽으로 떨어진 커트볼에 대해 백드라이브를 하며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정도로 이면 백핸드를 활용했다. 그리고 전진공수형이지만 일반적인 선수들과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데, 전형적인 전진공수형은 정석적인 양핸드 드라이브와 카운터를 주로 하지만 마린은 블록을 하는 동시에 하회전을 섞는 커트블록과 롱커트 등 상황에 따라 다른 기술을 자주 섞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린은 닥공 오펜시브 스타일인 동시에 올라운더이다. 또한 체중이동보다는 허리와 팔의 유연한 힘을 중심적으로 쓰기 때문에 정석과 사뭇 다른 자세가 자주 나오는데,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사파 탁구선수로 오해를 받는다.[5] 하지만 마룽 같은 교과서적인 자세에 비하면 아무래도 뭔가 룩이 아마추어스러워보이는지라 특별히 미남이거나 몸짱이 아닌 외모[6] 포함해서 동네 아저씨 초고수를 보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다.[7]
서브 실력이 프로 선수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었다고 평가받으며[8], 서브 이후에 이어지는 무지막지한 3구 공격도 당대 최고급이었다. 여기에다가 기본적으로 탁구 센스와 탁구 지능이 매우 뛰어나서 비교적 랭킹이 낮은 선수들을 상대로는 특유의 "읽기 어렵고 쉽사리 낮게 리시브하기가 까다로운" 서브와 정신나간 수준의 3구 공격, 그리고 뛰어난 심리전과 센스플레이만으로도 이미 거의 승기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최상위권 플레이어들을 상대로도 과감한 공격으로 속전속결로 점수를 따며 경기를 마무리짓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그의 이런 플레이 성향과 압도적이진 않은 피지컬 때문인지 마린은 여타 중국 최강 선수들에 비해 7경기까지 갔을 때 막바지에 패배하는 일이 자주 나왔다. 경기가 아주 길어지면 파괴력과 날카로움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지능과 전술은 굉장히 뛰어나지만 멘탈, 즉 정신력은 조금 아쉽다. 경기가 자기 방식대로 잘 풀리고 상대가 거기에 동요하면 스무스하게 승리하지만, 자신이 원하는대로 경기가 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며 멘탈과 경기력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세계선수권 결승전같은 무대에서는 긴장을 상당히 많이 하고 평소에 비해 소극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술적으로만 봤을 때는 결코 질 판이 아니었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침착하게 플레이하지 않고 허무하게 점수를 잃어 뚝심있는 플레이의 상대방에게 아까운 경기를 내 준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는 그가 3번이나 세계선수권 단식 결승에 올라갔으나 모두 준우승을 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만약 마린이 왕리친급의 육체능력과 조금 더 뛰어난 멘탈을 가졌다면 마린은 분명 더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것이다.[9] 테크니션인 대신 체력은 상대적으로 딸리는 것인지 수비선수를 그냥 압살해버리다시피 했던 왕하오나 왕리친과는 달리 랠리와 경기 스코어를 길게 끈 경기가 많았으며 주세혁과 싸우다가 진 적도 있었다.
이렇듯 마린은 세계선수권 단식 우승은 아쉽게 해내지 못했지만 이외 대부분의 부문에서 훌륭한 커리어를 기록한 선수다.[10] 또한 마린은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굉장히 높은 선수이기도 하다.
3. 사용 용구
전면 스카이라인 2 블루스펀지, 후면 버터플라이 브라이스 하이스피드. 블레이드는 야사카 마린 엑스트라 오펜시브(MEO)[11]4. 수상 기록
올림픽 | ||
금메달 | 2004 아테네 | 남자 복식 |
금메달 | 2008 베이징 | 단체전 |
금메달 | 2008 베이징 | 단식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99 에인트호번 | 혼합 복식 |
금메달 | 2003 파리 | 혼합 복식 |
금메달 | 2007 자그레브 | 남자 복식 |
은메달 | 1999 에인트호번 | 단식 |
은메달 | 2005 상하이 | 단식 |
은메달 | 2007 자그레브 | 혼합 복식 |
은메달 | 2007 자그레브 | 단식 |
은메달 | 2011 로테르담 | 남자 복식 |
은메달 | 2013 파리 | 남자 복식 |
동메달 | 2001 오사카 | 단식 |
동메달 | 2003 파리 | 남자 복식 |
동메달 | 2005 상하이 | 남자 복식 |
동메달 | 2009 요코하마 | 단식 |
세계 팀선수권 | ||
금메달 | 2001 오사카 | 단체전 |
금메달 | 2004 도하 | 단체전 |
금메달 | 2006 브레멘 | 단체전 |
금메달 | 2008 광저우 | 단체전 |
금메달 | 2010 모스크바 | 단체전 |
금메달 | 2012 베스트팔렌 | 단체전 |
은메달 | 2000 쿠알라룸푸르 | 단체전 |
아시안 게임 | ||
금메달 | 2002 부산 | 단체전 |
금메달 | 2006 도하 | 단체전 |
금메달 | 2006 도하 | 혼합 복식 |
금메달 | 2010 광저우 | 단체전 |
은메달 | 2006 도하 | 단식 |
은메달 | 2010 광저우 | 남자 복식 |
동메달 | 2002 부산 | 혼합 복식 |
동메달 | 2002 부산 | 남자 복식 |
월드컵(단식) | ||
금메달 | 2000 광저우 | 단식 |
금메달 | 2003 장인 | 단식 |
금메달 | 2004 항저우 | 단식 |
금메달 | 2006 파리 | 단식 |
동메달 | 2005 리에주 | 단식 |
5. 기타
- "머리를 밀고 강해졌다"라는 말이 항간에 떠돈다.
실제로 머리를 밀고 더욱 강해졌다.동양인 빡빡이 기믹 때문에 류궈량과 함께 탁구계의 사이타마와 비슷한 포지션을 가지게 됐다. - 왕하오의 올림픽 3연속 은메달이 임팩트가 강해서 그렇지 이분도 2등을 해 본 적이 많다. 1999 세계선수권에서 前 중국 국대 감독인 류궈량에게 져서 은메달, 2005년 상하이 & 2007년세계선수권에서는 왕리친 선수에게 져서 두 대회 연속 은메달을 획득했다. 왕하오는 올림픽이, 마린은 세계선수권이 각각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전성기 트로이카 세 명은 아무래도 너무 잘 하다보니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았던 것도 있고, 마린은 올림픽에서 콩하오를 잡고 탁구 선수 최고의 영예인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차지했기 때문에 콩라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 2005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중국 선수들을 차례대로 무너뜨렸던 덴마크의 미카엘 메이즈를 상대로 참교육을 시전했다. 메이즈는 로빙을 무기로 앞세웠는데 마린은 드롭샷을 로빙의 파훼법으로 제시하며 후배들의 패배를 설욕했다.
[1] 다만, 전면과 이면을 백핸드에서 번갈아가며 활용했다.[2] Chen Qi. 1983년생 중국 탁구선수. 2004아테네 올림픽, 2007년 세계선수권, 2009년 세계선수권 복식 우승자.[3] 2011년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마린&첸치 조를 꺾고 우승한 팀이 바로 쉬신 & 마룽 조였다.[4] 티모 볼은 마린의 게임 스타일을 더럽다고 표현했다.(...) 정확히는 마린을 상대하는 느낌을 더럽다고 표현했다.[5] 사파라고 오해받는 탁구 선수들의 거의 대부분은 엄밀히 말하면 정파이다. 대부분의 기술을 이론적으로 살펴보면 정파와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6] 신 트로이카 멤버인 마룽이나 장지커 등을 떠나서 같은 세대 라이벌인 왕하오나 왕리친에 비해서도 쳐지는 부분이다. 왕하오야 몸무게 관리 못하는 문제가 종종 거론되곤 했지만 여기 저기서 잘생겼다는 말 제법 들은 외모이고 왕리친은 186cm 장신에 자기관리에 철저해 군살 없이 다듬어진 근육질 신체를 가진데 비해 마린은 평범한 아저씨 그 자체였다.[7] 얼핏 보기에 그렇다는 거지, 마린의 효율적인 플레이와 모션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고 그의 탁구 실력과 클라스를 따지면 마린에게 동네 아저씨 초고수는 얼토당토 않는 표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보이는 비주얼은 어쩔 수 없다. 흔히들 마린을 감각이 뛰어난 감각파, 일명 "재능파" 탁구 선수로 알고 있고 실제로 재능이 매우 뛰어난 선수였던 것도 맞지만, 사실 마린은 선수 생활 동안 아주 철저하고 세밀한 방식으로 훈련을 하고 탁구에 대해 깊이 연구를 했다고 한다. 편한 자리에서나 방송 인터뷰 등에서는 예능스러운 유쾌한 모습이 자주 나오지만 탁구에 있어선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하고 프로페셔널한 선수가 마린이었다고 한다.[8] 특히 서브 훼이크 모션이 굉장히 빠르고 화려한 편이다. 참고로 서브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얀오베 발드네르의 후기에 따르면 마린은 서브 후에 이어지는 공격이 좋았던 거지 서브 자체의 바리에이션은 그렇게 많진 않았고 거의 항상 일반적인 커트서브와 너클서브 중에 하나를 넣었다고 한다. 발드네르는 오히려 마린보다 유승민의 서브를 칭찬했다. 반면 역대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선수 중 한 명으로는 마린을 뽑았다. 다른 한 명은 류궈량.[9] 사실 마린은 운동능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굉장히 탁구에 적합한 좋은 움직임과 빠른 풋워크를 가진 선수였다. 마린의 아쉬웠던 점은 운동능력 그 자체보다는 지구력과 뒷심같은 부분이 컸고, 하필 그 지구력과 뚝심 면에서 매우 강했던 왕리친을 세계선수권에서 3번이나 연속으로 만난 것이다. 마린은 펜홀더이기도 하고 화/백 전환시 백핸드쪽으로 공이 올 때 다양한 잔기술을 섞는 게 그의 스타일이었는데, 이런 마린의 플레이를 잘 아는 자국 동료 왕리친에게는 해외 선수들을 상대할 때에 비해서 기술이 통하는 경우가 비교적 적었다. 물론 마린이 아무래도 왕리친에 비해서는 운동능력이 떨어졌던 건 사실이다.[10] 월드컵 4회 우승, 올림픽 단식/복식/단체전 금메달, 세계선수권 남자복식 1회 우승, 혼합복식 2회 우승을 기록했다. 또한, 복식 우승을 포함시 마린은 모든 탁구선수들 중 가장 많은 ITTF 월드 투어 우승 횟수를 보유한 선수다.[11] 중국 최상위 선수들의 경우 모종의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DHS, 버터플라이, 스티가 3사 외에는 보통 스폰서를 하지 못한다.(이로 인해 마린의 포핸드 러버가 729의 러버에서 DHS로 바뀌었다.) 마린의 어머니가 업무로 야사카와 교류를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