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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5:26:41

마마스 앤 파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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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스 앤 파파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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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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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마스 앤 파파스
THE MAMAS & THE PAPAS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캐스 엘리엇, 미셸 필립스, 데니 도허티, 존 필립스
입성 연도 1998년
후보자격 연도 1992년
후보선정 연도 1997년, 19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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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1960년대 아티스트
7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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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C6C6C><colcolor=#fff> 마마스 앤 파파스
The Mamas & the Papas
파일:external/m.wtae.com/OTD-March-18---John-Phillips-jpg.jpg
결성 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전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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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 도허티 (1940~2007)
캐스 엘리엇 (1941~1974)
존 필립스 (1935~2001)
미셸 필립스 (1944~)
질 깁슨 (1942~)
스콧 매켄지 (1939~2012)
장르 포크 록, 사이키델릭 팝, 선샤인 팝
활동 1965년 ~ 1968년
1971년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2. 경력3. 멤버
3.1.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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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표곡 California Dreamin'

1965년 캘리포니아에서 결성된 4인조 혼성 포크 록 그룹.

여성 멤버인 캐스 엘리엇, 미셸 길리엄(미셸 필립스), 그리고 남성 멤버인 데니 도허티와 존 필립스로 구성됐다. 1965년 말에 <California Dreamin'>과 <Monday, Monday>, 그리고 1966년에 <I Saw Her Again>을 던힐(Dunhill) 레코드사에서 발표해 크게 히트시켰다.

2. 경력

이들은 마마스 앤 파파스를 결성하기 전에 각자가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고 활동을 했었는데, 캐스 엘리엇과 데니 도허티는 함께 더 머그웜프스라는 그룹에서 활동을 했고, 존 필립스는 쟈니 맨(Johnny Man)이라는 그룹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미셸 길리엄은 모델로 독자적인 활동을 벌이던 인물이다.

매끄러운 포크 록 사운드와 항상 강한 인상을 주는 보컬 하모니가 이들의 성공 비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존 필립스의 작곡 솜씨는 수준급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스콧 매켄지가 히트시켰던<San Francisco(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와 비치 보이스의 <Kokomo>를 작곡한 장본인이다.

이러한 그들의 명성은 존과 미셸의 애정 문제로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그룹이 데뷔하기 전인 1962년 12월 31일, 존 필립스와 미셸 길리엄은 결혼을 하였으나 1964년 갈라졌다가 다시 재결합하여 마마스 앤 파파스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그룹 활동을 하면서 미셸 길리엄의 연속된 불륜으로 두 사람은 파경에 이르렀다.[1] 1965년 미셀은 같은 그룹의 멤버 데니 도허티와 불륜을 저질렀고[2] 데니와의 관계가 마무리 된 직후 미셸 길리엄은 다시 버즈의 멤버 진 클라크와 불륜을 저질렀다. 결국 이에 폭발한 존에 의해 미셸은 2집 레코딩과 앨범 커버 촬영이 완료된 직후 밴드에서 쫓겨났다. 이후 그룹은 미셸 대신 프로듀서 루 애들러의 여자친구인 질 깁슨을 고용하였으나 얼마 못가서 질이 그룹에서 나가고 2집 앨범 발매 일주일 전인 1966년 8월 23일에 미셸이 그룹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존과 미셸의 관계는 이미 끝난것이나 다름없었다. 존 필립스는 대놓고 그루피들과 불륜을 저질렀으며 미셸을 폭행해서 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하였으며 결국 미셸은 존이 작곡한 3집의 수록곡 "String Man"의 작사와 리드 보컬을 맡아서 대놓고 존의 이러한 행각을 비난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이 시기에 마마스 앤 파파스 활동으로 번 돈으로 최신식인 8트랙 녹음기를 설치한 자신의 개인 스튜디오를 만든 존 필립스는 4집 녹음을 해당 스튜디오에서 진행하였는데 앨범을 녹음하면서 1곡의 보컬을 녹음하는데만 1달을 소비하는 등 완벽주의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나머지 멤버들은 이에 크게 반발한다. 여기에 4집의 리드 싱글 <Dream a Little Dream of Me>의 단독 보컬을 맡은 캐스 엘리엇이 호텔에서 담요 2장을 훔친 혐의로 체포되어 4집 활동이 무산되자 빡친 존 필립스가 캐스 엘리엇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밴드는 파국을 맞는다.

이미 자신의 솔로 1집 녹음을 끝마친 바 있던 캐스 엘리엇은 존 필립스와의 불화가 심해지자 미련없이 팀을 탈퇴했고 1968년 마마스 앤 파파스는 공식적으로 해체를 발표했다.

이후 존 필립스는 작곡가 겸 음반 프로듀서로, 미셸 길리엄은 영화 배우로, 캐스 엘리엇과 데니 도허티는 솔로 가수로 각각 활동하다가 1971년에는 잠시 재결합하여 「People Like Up」이란 앨범을 발표, 결성 초창기에 누렸던 인기를 만회하려 하였지만 결국 예전 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다.

1974년에는 성공적인 솔로 커리어를 걷고 있던 캐스 엘리엇이 런던에서 비만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1988년에 쓰여진 데이비드 크로스비의 자서전에 따르면 캐스 엘리엇은 마마스 앤 파파스 시절부터 이미 아편, 코카인에 중독되어 있었고 런던에서 솔로 활동을 했을 무렵에는 헤로인 중독에 빠져있었다고 밝혔다.

1990년대에 들어서 영화 중경삼림이 히트하여 데니 도허티와 존 필립스, 그의 딸과 함께 재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2009년에 존 필립스의 딸 매켄지 필립스가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다.[3] 사실이면 클라우스 킨스키의 사례와 유사한 막장부모.[4] 이외에도 존 필립스는 마약 중독이 굉장히 심각했던걸로 유명하다. 존 필립스에게 헤로인을 전파한 장본인인 키스 리처즈마저 존에게 너무 마약을 남용한다며 나무랐을 정도였다고 하니...

2001년에 존 필립스, 2007년에는 데니 도허티가 차례로 사망하면서 현재 생존 멤버로는 미셸 필립스와 나중에 들어온 질 깁슨 두 명이 있다.

3. 멤버

3.1. 여담



[1] 다만, 실질적인 이혼은 1969년에 했고 미셸은 1968년, 존의 딸인 매켄지 필립스도 낳았다.[2] I Saw Her Again이 이 때의 일을 바탕으로 존 필립스와 데니 도허티가 공동으로 작사를 맡아 완성한 곡이다.[3] 존 필립스는 딸 매켄지 필립스(당시 19세)와 마약에 취한 채 동침을 했고, 이후에 메켄지는 아버지와 함께 '뉴 마마스 앤 파파스'라는 밴드로 투어 활동을 하며 합의하에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4] 일단 매켄지의 어머니인 미셸 필립스, 존의 세번째 부인과 세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딸 비주는 부정했다. 반대로 매켄지의 이부 여동생인 시나와 데니 도허티 장녀 제시카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제시카의 주장에 따르면 데니 도허티도 사실을 알아차리고 충격을 받았다고. 워낙 민감하고 충격적인데다 교차 검증도 불가능한 사항이라 이후 언급은 없는 상태.[5] 참고로 영화 대부로 유명한 미국의 저명한 배우인 말론 브란도와 동기라고 한다. 나이는 말론 브란도가 한참 위였으며 그로부터 항상 인상이 거칠다는 평판을 받았다.[6] 스콧 매켄지, 딕 웨이즈먼을 주축으로 결성하였다.[7] 비치 보이스의 경우에는 객원멤버로 아주 잠시동안 활동했다.[8] 더 머그웜프스의 질 야노프스키, 리처드 번, 팻 라크로이스 (1938.8.4~)등으로 구성되어 있다.[9] 데니 도허티는 오지 않았고, 존 필립스는 작곡가로 활동 무대를 옮겼으며 미셸 필립스는 아예 음악을 그만두고 배우로 전업했기 때문이다.[10] Will You Love Me TomorrowSoldier Boy를 부른 미국의 R&B 걸그룹 더 셔렐스의 곡을 커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