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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도의 시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만포시 滿浦市 Manpho City |
<colbgcolor=#ED1C27,#222222><colcolor=white> 행 정 구 역 | <colbgcolor=#ED1C27,#222222><colcolor=white> 상위 | 자강도 |
하위 | 11동 15리 | |
주 요 인 물 | 대의원 |
|
시당 | 불명 (강계시당 책임비서) | |
인민위 | 불명 (강계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 |
면적 | 672.379㎢ | |
시간대 | UTC+9 | |
인구 | 116,760명 (20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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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복 직후 전 평안북도 북동부, 현 북한 자강도 북부에 위치한 도시. 중국과의 접경도시로 압록강에 닿아 있다. 탈북은 자강도 자체가 통제가 심한 지역이라 국경의 다른 지역보다는 드문 편이다.2. 상세
갈렙선교회의 만포[1] 영상(2019년 여름 추정) |
영생탑 근처[2]에서 행진하는 아이들(2017년 겨울~2019년 1월경 추정) |
만포청년역 앞 광장에서 맞이하는 [3] 조선노동당 창건일 행사. (2017~2019년 10월 10일경 추정.) |
만포진이라는 나루가 있다. 철도 만포선이 놓이면서 평안북도 신의주시, 함경북도 회령시 등과 함께 대중국 교역을 담당하는 국경도시로서 중국과의 교통, 압록강의 수운으로 흘려오던 나무들을 철도로 옮겨 싣는 지역 등이 되며 발전했다. 해당 나루를 배경으로 한 백년설의 만포진 길손이라는 노래가 있다. 지금은 그 원목들을 싣기 위하여 북부내륙선이 따로 놓여 있다.
중국을 바로보는 접경도시이기도 하다. 압록강 건너 있는 지린성 지안시는 고구려의 국내성이었던 곳이다.
2021년 현재, 북한의 핵탄두 저장고 시설이 있는 지역으로 추정된다.영상
3. 문화 및 유적
고적으로는 압록강의 90m 절벽 위에 세워진 망미정(望美亭)이 있다. 한편 세검정은 관서팔경의 하나로 손꼽혔으나 일제강점기에 소실되었다. 광복 당시 문흥(文興), 문악(文岳), 옥(玉) 등 3개 동이 있었다.4. 행정구역
- 동: 총 11동
- 리: 총 15리
강안동, 고개동, 관문동, 구오동, 군막동, 문악동, 별오동, 봉화동, 새마을동, 샘물동, 세검동
건상리, 건중리, 건하리, 고산리, 남상리, 등공리, 미타리, 삼강리, 송하리, 송학리, 십리동리, 연상리, 연포리, 연하리, 함부리
5. 교통
시내에 위치한 만포청년역이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며, 만포선, 혜산만포선, 운하선 등 국내선과 연결된다.그리고 국경도시답게 만포역은 바로 건너편 지안역과 철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중국 메이지선이 이와 연결된다.
2019년 4월 8일 북한 만포시와 중국 지안을 잇는 4차선 대교가 완공되어 양측간 물류가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관련 기사
6. 여담
- 여담으로 제2차 6.25전쟁이 터지고 평양까지 함락되어 북한정권이 이미 완전히 망해버렸다 싶거나 전시 김씨 일가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싶을 때 중국으로 탈출할 수 있는 땅굴이 평양부터 만포까지 파져있다는 소문이 있다.물론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저 소문일 뿐이지만 자강도의 폐쇄성과 만포와 중국의 지리적인 가까움을 봐서는 실제로 김씨 일가의 비상탈출구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이 625때 납치되어 납북 3개월만에 순국을 맞이한 곳이 이곳, 만포다. 1950년 9월말 당시 북한은 인천상륙작전에 당하고 서울수복까지 유엔군이 노리던 상황에서, 유엔군의 서울수복 직전 인민군을 동원하여 서울을 뒤져내서 김규식을 찾아내 그대로 납치하여 북한으로 퇴각했다. 정확한 사망원인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납북 후 3개월도 안되는 단기간에 사망한 걸로 봐서 당시 70살이던 김규식은 노인의 몸으로 과도한 이동일정을 소화하다가 급성으로 병에 걸려 순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10월까지 당시 북한은 급하게 밀리던 상황이었고 당연히 남한과 유엔군 수복 전선은 빠르게 북쪽으로 향하였기에 퇴각하던 입장에서도 쉬지 못하고 도망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북한 북부는 10월에도 눈이 오는만큼 당시가 빨리 추워지던 환절기였으니, 70살 노인이 추워죽겠는데 제대로 휴식도 못하고 빠른 속도로 서울부터 압록강까지 퇴각 대장정을 끌려다니다보니 병이 안 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안타깝게 독립운동 지도자 한명이 625 첫해의 연말 만포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