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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寧市 / Hoiryŏng City
회령시 會寧市 / Hoiryŏng City | ||
국가 | 북한 | |
광복 당시 면적 | 1,255㎢ | |
광역시도 | 함경북도 | |
광복 당시 행정구역 | 1읍 6면 | |
시간대 | UTC+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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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2013년 초의 회령시 내부
▲ 2019년 북중 국경에서 촬영한 회령시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마주보고 있어서 중국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이며, 1628년부터 청나라와 회령개시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연 적이 있다. 원래는 동해와도 접한 군이었으나 1914년 관해면을 부령군에 떼어주게 되면서 내륙군이 되었다. 광복 당시에는 1읍 6면을 관할하고 있었으며 면적 1,256km²였다. 현재 북한에서의 면적은 1,748km²으로 보인다.
인구 153,532명(2008)
중국 룽징시 싼허(三合)와 마주보고 있으며 이곳에 회령세관이 있다. 동만주와 청진 사이를 오가는 차량물동량은 대부분 회령을 거치는데, 북한 도로의 사정이 좋지 않아 상태가 양호한 중국 도로를 조금이라도 더 타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정숙의 고향(생가 : 회령고향집)이라고 나름 밀어주는 도시인지라, 북한의 지방도시 치고는 나름 구색을 갖추고 있다. 온갖 음식점을 모아놓은 회령 음식점거리는 북한의 단골 선전거리 중 하나다.
국경에 가깝고 인구가 비교적 많아 탈북민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탈북민의 고향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시·군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16년 수해로 탈북 루트가 되던 마을의 주민들을 통째로 이주시켜 이곳을 통하는 탈북이 어려워졌다.
2. 역사
남북국시대까지는 고구려와 발해 등 예맥계 국가의 영토였으며 발해가 요나라에게 멸망한 이후로는 고려 왕조 내내 회령을 비롯한 지금의 두만강 영역은 여진족의 영토였다.고려 말 공민왕 대에 동북 9성 이후 중단된 북진정책을 재개하면서 쌍성총관부를 비롯한 길주 이남의 영토를 수복하였고 고려를 계승한 조선 역시 태조 이성계의 조상의 영토를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북진정책을 이어갔는데 1398년 두만강 이남 지역을 수복하고 경원부를 설치하였으나 여진족의 준동으로 인해 1409년 경원부를 경성부로 후퇴시켰다. 그후 경성부 이북 지역은 조선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무주공산이 되었는데 1423년 오돌리 부족의 추장 아이신기오로 먼터무[1]가 부족을 데리고 지금의 회령 지역에 정착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 회령은 여진어로 와무허(斡木河)라고 불렸다.
1433년 우디거족이 와무허의 오돌리족을 기습해 먼터무가 살해당하고 부족은 두만강 너머로 도망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 기회를 틈타 세종은 다시 두만강으로의 북진을 개시하였다. 1432년 석막(石幕)[2]에 설치한 영북진(寧北鎭)을 1434년 백안수소(伯顔愁所)[3]로 이동시키고 이를 종성(鐘城)이라고 하였다. 또한 석막과 백안수소의 중간지점이자 두만강 코앞에 있어 여진의 내습이 쉬운 와무허에 새로 진을 설치하였는데 와무허의 한자 음역인 '오음회(吾音會)'의 '회(會)'에 '영북진'의 '녕(寧)'을 따 '회령진(會寧鎭)'이라 하고 그해 가을에 회령진을 회령도호부로 승격시켰다.
1895년 23부제 시행과 동시에 전국 행정구역을 일괄적으로 군으로 개편하면서 회령도호부는 회령군이 되었고 1914년 동해와 접하고 있던 월경지인 관해면이 부령군으로 이관되었다. 1931년 회령면이 회령읍으로 승격하였고 1943년 봉의면과 운두면을 합쳐 보을면이 되면서 1읍 6면을 관리하게 되었다.
1909년에 안중근 의사가 주도했던, 회령 전투가 있었다. 영웅(뮤지컬)에서 대사로만 언급되지만, 영웅(2022)에서 본격적으로 전투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에 따르면, 안중근이 이끄는 군대는 앞서 진행한 전투에서 일본군 포로를 잡지만, 만국 공법을 준수하기 위해 이들을 풀어주었다. 석방된 일본군은 훗날 안중근의 군대에 야습을 시도했고, 포로 중 한 명이었던 '와다'는 안중근의 총알을 맞아 얼굴에 상처가 남았다. 이를 계기로 일본 경찰로서 안중근을 쫓아다녔다.
북한 치하에서 1952년 유선군이 분리됐다가, 1974년 다시 병합됐다. 1991년 7월 시로 승격되었다. 종성군 지역에서 일부지역을 편입했는데 그곳에 회령 수용소가 있었으나 폐지되었다고 한다.
3. 기후
기후대는 냉대기후에 속하며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12.6℃로 매우 춥다.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와 같은 위도에 있는데[4] 포드고리차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5.5℃로 북위 33도에 있는 제주시와 비슷하고 회령보다는 거의 18℃나 더 따뜻하다. 회령이 비슷한 위도인 포드고리차에 비해 매우 추운 이유는 바다와 떨어진 내륙 지방이고 찬 바람이 수시로 부는 두만강 가 삼림지대에 있기 때문이다.거의 비슷한 위도에 있는 라선시와 비교해 보면 라선시의 1월 평균기온은 -7.1℃로 위도에 비해선 꽤 추운 편이지만 그래도 회령시보다 5.5℃나 더 따뜻하다! 회령과 라선이 거의 비슷한 위도에 있는데도 온도 차이가 이렇게 나는 이유는 라선이 수심이 깊은 동해에 연해 있고 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이 북서풍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도가 비슷한 곳인데도 온도 차이가 5℃ 이상 나는 것이다. 영서 지방보다 영동 지방이 더 따뜻한 것과 같은 이유인 것이다.
고도가 그리 높은 곳이 아니기에 최난월인 8월 평균기온은 21.1℃로 함경도 내에선 비교적 높은 편이다. 연교차가 커서 1977년 7월 30일에는 40.5℃를 기록한 반면, 1956년 1월 22일에는 -35.6℃를 기록했다고 한다. 또한 한반도에서 강수량이 가장 낮은 편인데 600mm 정도.
3.1. 2016년 두만강 유역 대홍수
2016년 두만강 유역 대홍수로 특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이며, 이곳에서만 200여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고.4. 북한 기준 행정구역
교외를 포함한 관내도 |
회령시 소재지 일대 |
회령시 유선동 일대 |
총 19동 28리로 구성되어 있다.
- 관할 동 : 강안동, 계림동, 궁심동, 남문동, 동명동, 망양동, 보을동, 산업동, 새마을동, 성천동, 세천동, 수북동, 신천동, 역전동, 오산덕동, 유선동, 중도동, 중봉동, 칠월팔일동
- 관할 리 : 계상리, 계하리, 굴산리, 금생리, 남산리, 대덕리, 덕흥리, 낙생리, 용천리, 무산리, 방원리, 벽성리, 사을리, 성동리, 성북리, 송학리, 신흥리, 영수리, 오류리, 오봉리, 원산리, 인계리, 창태리, 창효리, 풍산리, 학포리, 행영리, 홍산리
기존 회령군에 종성군 남산면 일부와 행영면, 무산군 풍계면이 합쳐졌다. 다만 군 동부에 있던 용흥면 일부 지역은 경흥군으로 넘어갔다.
5.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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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E2743><colcolor=#ffffff> 군청 소재지 | 회령읍 일동 | |||||
상위 행정구역 | 함경북도 | |||||
하위 행정구역 | 1읍 6면 | |||||
면적 | 1,255km² | |||||
인구 | 69,497명[5] | |||||
인구밀도 | 55.38/㎢ | |||||
명예군수 | 오진호 | |||||
명예읍면장 | 7석 | |||||
홈페이지 | 이북5도위원회 회령군 소개 |
이북5도위원회 기준으로는 시 승격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여전히 회령군이다.
- 회령읍(會寧邑)
- 벽성면(碧城面)
- 보을면(甫乙面)
- 관할 동 : 유선(遊仙), 남산(南山), 성남(城南), 성동(城東), 성북(城北), 오류(五柳), 운기(雲基), 운연(雲淵), 홍산(鴻山)
- 본래 회령군 봉의사(鳳儀社, 남산·오류·운기·홍산동)와 운두사(雲頭社, 유선·성남·성동·성북·운연동)로 각각 봉의면(鳳儀面)과 운두면(雲頭面)으로 이어지다 1943년에 합병되어 형성되었다. '보을'은 홍산동의 옛 이름이다.
- 면소재지인 유선동은 1930년경 석탄광이 생겨나 5,6년 만에 회령읍보다 더 번성하게 되었는데, 전형적인 광산촌이었는지 채만식에 따르면 신선이 노닌다(遊仙)는 지명과 다르게 살풍경하여, 신선이 유배 왔다면 두만강에 투신자살했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행정구역상 한때 존재했던 유선군 소재지이기도 했다. 회령탄광선이 유선역(구 계림역)에서 시종착한다. 유선역에서 1.1km 북쪽으로 신계림역이 있었으나 폐역되었다.
- 용흥면(龍興面)
- 관할 동 : 세곡(細谷), 신흥(新興), 어운(魚雲), 용성(龍城)
- 본래 회령군 용성면(龍成面)와 신흥면(新興面)로서 1914년에 병합되어 용흥면으로 되었다.
- 창두면(昌斗面)
- 팔을면(八乙面)
- 화풍면(花豊面)
6. 대중매체에서
이머전시(웹툰)에서 1부 후반부에 나온다.[스포일러]7. 여담
- 미인이 많다는 주장이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있었다. 이는 태어난 곳이 회령인 이순재 씨가 증언하는 내용이다. # 여미(女美), 행미(杏美), 토미(土美)의 회령3미라고 하여 미녀, 백살구, 백토가 유명하다고 했다. # 분단 이후에도 이런 설이 남아 있는지 회령 출신인 탈북민인 배우 김아라 씨도 이를 증언하기도 했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이효석도 《모던걸 멜론》이라는 소설에서 '물 맑은 두만강을 끼고 난 곳이기 때문인지 회령에는 살빛 고운 미인이 많다.'라고도 묘사했다.
- 일제강점기 나운규가 아리랑을 찍은 곳이라고도 한다.
- 북중국경에다가 평양에서의 통제가 비교적 약한 지역인 만큼 북한이탈주민의 수도 많은데 회령 출신은 특히나 많아서 두만강 바로 옆 유선로동자구에 위치한 유선중학교 출신 탈북민들은 한국에서 선생님과 함께 동창회를 열 정도라고 한다.
8. 출신 인물
- 김아라
- 김영춘
- 김정숙
- 나운규
- 오일남
- 이순재 [8] - 사극에서 김종서 장군 역을 2번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고향을 개척한 사람을 연기하니 기분이 새로웠다고 한다.
- 지성호 - 대한민국 21대 국회의원
- 최부일
- 최인훈
[1] 훗날 청나라를 세우는 숭덕제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의 6대조이다.[2] 지금의 부령군 석막면[3] 지금의 종성군 행영면.[4] 회령시와 포드고리차 두 곳 다 북위 42°26' 일대에 있다.[5] 1944년 인구총조사[6] 12.42km2로, 남한 지역까지 통틀어도 세 번째로 작다. 읍(행정구역)/목록 참조. 읍 크기가 작은 것은 이북오도의 많은 읍들의 특징이다. 해방 이후 읍의 확장이 없고 해방 당시 행정구역으로 두었기 때문. 그런데 정반대로 넓은 읍들도 이북오도에 많다.[스포일러] 북한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홍수가 난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8] 우리가 아는 그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