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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2-18 13:23:17

말린체(멕시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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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말린체는 매국노인가?4. 대중매체에서


La Malinch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39px-Malinche_Tlaxcala.jpg

1585년에 디에고 카마르고 신부가 쓴 채색필사본 《틀락스칼라의 역사》에 그려진 삽화. 의자 옆의 긴머리의 사람이 말린체다.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는 에르난 코르테스.

1. 개요

대항해시대 당시 에르난 코르테스의 통역사이자 정부였던 여자. 관사를 붙인 라 말린체(La Malinche), '코르테스의 말린체'라는 뜻의 말린체 데 코르테스(Malinche de Cortés), 스페인인들이 지어준 이름인 도냐 마리나(Doña Marina) 라고도 불린다.

2. 생애

파일:external/7069-presscdn-0-30.pagely.netdna-cdn.com/DON%CC%83A-MARINA-.jpg

말린체는 대략 1501년에 멕시코 만에 있는 코아찰코알코스(Coatzalcoalcos)라는 도시로부터 대략 24마일 정도 떨어진 파이날라(Painala)라는 소읍[1]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말린체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힌 베르날 디아스의 기록에 의하면 집안 내 유산분쟁으로 친어머니 손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고 한다. 친아버지가 사망하고 재가한 어머니는 새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말린체를 히칼랑고(Xicalango) 원주민에게 팔아넘기고, 대외적으론 사망한 걸로 알려 장례식을 치뤘다.

어머니에 의해 하루 아침에 죽은 사람이 되어 팔려간 말린체는 유카탄 반도에 있는 타바스코 지방 토호의 노예가 되었다. 노예생활 중에 1519년 멕시코로 정복에 나선 에르난 코르테스가 타바스코인들과 접촉하면서 운명이 전화점을 맞는다. 타바스코인들이 코르테스에게 화평의 선물로 20명의 여자 노예를 바쳤는데 이 중 한 명이 말린체였다. 말린체는 용모가 뛰어난 미녀에다 똑똑해서 코르테스를 한눈에 사로잡았다. 말린체는 1519년 부활절 1주일 전 일요일, 코르테스 일행의 마야어 통역사 아길라르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때부터 말린체는 도냐 마리나(Doña Marina)가 되었다. 스페인 인들은 말린체를 부를 때 항상 기독교도 여성이나 원주민 귀족(caciques)의 부인에게 존경의 표시로 붙이는 '도냐'라는 존칭을 붙였다. 틀락스칼라와 텍스코코 등 협력한 원주민 지배층과 투항한 아즈텍 지배층을 지칭할 때 남성형 '돈', 여성형 '도냐'를 꼬박꼬박 사용했는데 정작 원정대 수뇌부는 모두 이달고 신분이라 대장인 코르테스조차도 오하아카 후작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돈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었으니 코르테스보다도 높여부른 것이다. 말린체는 일개 노예 출신이 귀족들만 받는 존칭으로 불렸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말린체는 대단히 총명했다고 한다. 스페인어를 빨리 익혀 스페인인들과 프리토킹할 정도가 되어 코르테스의 통역관이 되었다. 특히 아즈텍인들의 공용어인 나와틀어를 비롯, 아즈텍 제국 치하에 있는 부족들의 언어와 풍습, 사고방식, 종교적 전통에 박식했다. 이런 고급정보들은 그대로 코르테스에게 제공되었고 코르테스는 말린체의 정보를 바탕으로 아즈텍 제국에 반감을 품고 있던 토토카나족, 틀라스칼라족을 동맹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코르테스는 그녀에게 최대한 진실하게 통역해 줄 것을 부탁하며 그렇게만 해준다면 그녀를 보호하고 예우해 줄 것을 약속했다. 처음에는 말린체(나와틀어, 마야어)가 현지 주민들의 말을 마야어로 통역해주면, 아길라르(마야어, 스페인어)가 다시 스페인으로 통역하는 2단계를 거쳤으나 언어감각이 뛰어났던 말린체가 이내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어 과정이 크게 간소화되었다.

말린체는 결코 타의로, 강압에 의해서 코르테스를 도운게 아니었다. 그녀는 아즈텍에게 강한 증오를 품고 있었고 아즈텍과 그 동맹을 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아즈텍의 동맹도시 촐룰라에서 콩키스타도르들이 코르테스의 명에 따라 3천여명을 죽인 사건은 코르테스가 직접적으로 관여한 유일한 학살인데 현재 남아있는 기록에서는 코르테스에게 가장 중요한 협력자였던 말린체와 틀락스칼텍이 중간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부추긴 정황이 확인된다.

사전에 몬테수마 2세의 사자를 맞이했던 코르테스는 촐룰라에 들어가 물자를 보충할 계획이었지만, 틀락스칼텍인들은 아즈텍을 절대 믿지 말라며 경고한다. 또한 몬테수마의 사절이 말했던 바와는 달리, 도시의 지도자는 코르테스를 환영하러 나오지 않았고, 촐룰라의 장로들이 몬테수마의 사자들과 뜻모를 대화를 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쐐기를 박은 건 말린체였다. 말린체는 코르테스에게 촐룰라 귀족여성 한명이 자신에게 다가와 이방인들과 함께 있으면 위험에 처하게 될 테니 자기 집에 피신했다가 자신의 아들과 결혼하라는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결심을 굳힌 코르테스는 촐룰라의 족장들을 소환해 총으로 쏴버리는 걸 시작으로 3천여명을 죽였다.

촐룰라는 케찰코아틀 신앙의 본산과도 같았던 도시로 코르테스 원정대가 근접해오자 그들의 신에게 원정대를 벌해주길 기도하는 등 절대 우호적인 분위기가 아니었고, 원정대가 도시에 진입한 이후 수상한 모습을 보여준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습격계획이 있었는지, 말린체의 증언이 사실인지는 코르테스가 따로 검증을 하지 않고 바로 행동에 들어갔기 때문에[2] 현재로선 진위를 가릴 수가 없다. 확실한 건 그녀는 스스로의 의지로 아즈텍의 멸망을 바라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엔 평범한 귀족소녀였던 그녀가 왜 그렇게 간절히 아즈텍의 멸망을 바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상상력을 발휘해 끼워맞춰 볼 수 있을 뿐이다. 멕시코 중부 고원에서 아즈텍에 우호적인 부족은 아무도 없었으니 변방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대다수 원주민들의 정서를 공유하게 되었을 수도 있고, 코르테스에게 협력하며 그와 목표를 공유하기로 결심했을 수도 있으며, 어쩌면 어머니에 의해 노예로 팔려간 생애 가장 비참했던 시절의 원한일 수도 있다. 당시 가장 거대한 노예시장은 아즈텍의 아스카포찰코(Azcapotzalco)에 있었다.

이후 말린체는 코르테스와 가까워져 그의 애인이 되었는데 이때 코르테스의 서정남 돈 마르틴 코르테스를 낳게 되었다.[3] 그 후 얼마간은 코르테스의 비공식적인 부인으로 행세했으나, 코르테스가 스페인으로 돌아간 1529년 이후의 자세한 행적은 매우 불분명하다. 사망 연대도 기록에 따라 1529년과 1550/1551년으로 엇갈리고 있다.

확실한 것은 코르테스가 떠나고 나서 1526년과 1527년 무렵에 후안 하라미요(Juan Jaramillo)라는 콩키스타도르와 결혼한것이다. 남편 후안 하라미요와의 사이에서는 마리아 하라미요(Maria Jaramillo)라는 딸을 낳는다. 말린체와 코르테스의 아들인 돈 마르틴 코르테스와 정식 남편인 후안 하라미요의 딸인 마리아 하라미요는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최초의 생물학적인 '메스티소(백인+원주민 혼혈)'로[4] 기록되었다.

코르테스는 해당 사생아들을 적자로 인정받게 하려고 교황청에게 탄원하기도 했다고 하며, 이들 중 네 명은 적자로서 상속권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코르테스는 유언에서도 이들과 이들의 어머니를 보필하라고 했으며 묘지도 멕시코 일대였다. 그 때문에 코르테스는 메스티소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3. 말린체는 매국노인가?

파일:external/www.personal.psu.edu/cortesmalinche.jpg
멕시코 화가 호세 오로스코의 1926년 작 《코르테스와 말린체》. 알몸의 코르테스와 말린체가 손을 잡고 인디오를 발로 지근지근 밟고 있는 모습이다.

말린체에 대한 현대 멕시코의 인식은 상당히 좋지 못하다. 멕시코에서 말린체의 이명은 칭가다(La Chingada) 즉 침략자에게 '범해진 여자'라고 통하며 한국의 이완용처럼 매국노의 대표주자로 통한다. 현대 멕시코 스페인어에서는 말린치스모(malinchismo)라는 말이 있는데 사전에는 '외국 것을 좋아하는 사상'이라고 나와있지만 사대주의 비슷하게 나쁜 의미로 쓰인다. 전설에서도 코르테스가 스페인으로 돌아간 이후 버려진 말린체는 죽어서 라 요라나(La Llorana, 흐느끼는 여자)라는 귀신이 되었다고 한다. 흰 옷을 입고 강가와 길가를 배회하면서, 술집을 나온 남성을 유혹하여 시름시름 앓게 하여 죽이거나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남자아이를 채간다고 한다.[5]

하지만 말린체의 입장에서 배신자, 매국노라는 말은 뜬금없는 소리이다. 말린체는 아즈텍인이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멕시코만 인근 소읍의 나우아족 귀족 가문 출생이고, 커서 코르테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타바스코족의 노예였다. 아즈텍과의 접점은 나와틀어를 쓸 줄 아는 것과 아즈텍의 정보를 잘 아는 정도밖에 없었다. 당시 아즈텍과 주변의 원주민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라는 동질감 없이 적대하고 있었다. 오히려 아즈텍은 자신들의 종교 풍습을 위해 주변 부족민들을 인육 가축으로 대하면서[6] 툭하면 꽃 전쟁으로 주변 부족들을 학살하고 잡아먹었기 때문에 주변 부족들의 철저한 증오의 대상이고 공공의 적에 가까웠다. 이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스페인이 구원의 대상이었던 셈. 비록 중남미인들이 유럽인들의 식민지가 된 이후 많은 고통을 겪기는 했지만, 아즈텍 주변 부족 입장에서는 최소한 유럽인들은 아즈텍처럼 농사 잘 되라고 사람 피를 뿌리거나, 산채로 태워서 심장을 뽑거나, 사람가죽으로 옷을 해입거나, 만단위 인신공양 후 식인은 안했다. 말린체의 행동은 비난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고, 반대로 타바스코족을 구원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앙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수많은 부족으로 각기 나뉘어 있었으며 당연히 서로 부족 간에 다툼도 있었다. 만약 아즈텍이 주변 부족을 가축으로 취급하지 않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 연합해 코르테스와 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즈텍 제국 멸망 당시에는 수많은 아즈텍인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다. 또한 언어적 능력이 탁월했던[7] 말린체가 담당했던 두 문명(아메리카 원주민-스페인) 사이의 중재역으로 인해 세계의 다른 문명들의 침략과 몰락 과정에서 벌어진 조직적 학살이 벌어지지 않은 면이 분명하게 있다. 말린체가 국민X년 이미지로 통하게 된 것은 은광 노역으로 인한 반스페인 정서와 이로 인한 중남미의 독립 이후 생긴 현상이다.

멕시코가 불법 이민자를 쏟아내며 백인과 히스패닉들이 좋든 싫든 수시로 부대끼게 된 2000년대 이후로는 백인과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하는 미국 내 히스패닉들이 말린체에게 주목하기 시작하여 멕시코 밖에서는 조금씩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스스로의 의지로 코르테스를 도와 아즈텍 정복에 협력했다는 점 때문에 페미니스트들도 관심을 보내고 있다.

스페인인이지만 원주민들을 도와 스페인과 맞서 싸운 곤살로 게레로와 비교되기도 한다.

4. 대중매체에서

대항해시대 3에서는 도냐 마리나(Doña Marina)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산제물로 바쳐지려는 참에 일기토로 구출하면 고용할 수 있다. 동료가 4명 다 있을 경우엔 선택지에서 고용한다를 선택할 경우 기존의 통역을 자르고 통역에 앉히게 되니 얻기 전엔 미리 동료배치를 제대로 해두자. 이벤트는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한번 자르면 다른 항해사와 달리 다시 얻는 것이 불가능하고, 중남미 토착어 말고는 볼 게 없기 때문에 고용하는 시기는 중남미 토착어 습득 항해사가 전무한 극초반~중반이나, 항해사 씨 자체가 말라가는 극후반부가 바람직하다. 물론 중남미어를 자력습득하면 그냥 이벤트만 보고 버려도 된다 게다가 이벤트 발생 장소는 아즈텍이 아닌 마야 문화권의 도시인 메리다. 아즈텍 문화권은 내륙도시만 있어서 접근성 때문에 설정한 것일지도.

블랙 라군의 작가 히로에 레이의 전작인 비취협기담에서는 전쟁과 밤의 사악한 기운을 관장하는 신인 테스카틀리포카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문화와 대기를 관장하는 신인 쿠쿨칸[8]이 테스카틀리포카를 쫒아내기 위해 코르테스를 끌어들이면서 사용한 이름이란 설정으로, 나중에야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음을 알고 후회하나 결국 엑소시스트들에게 봉인되어 그 후 주인공과 만나게 된다.

대체역사소설 아침의 나라에선 노예상인에게 팔린 후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동조선의 왕세자를 만나 아즈텍 정복을 돕고 왕세자가 왕이 된 다음 후궁이 되었다. 그녀가 낳은 아들은 장자였지만 서자였기에 조선보다는 실용적으로 변했어도 그래도 유학이 강세였던 동조선의 왕위에는 오를 수 없었던 상황에서 국내에 놔두면 아즈텍계 동조선인들이 대의명분삼아 내전을 일으킬 위험이 있었다. 장자임에도 왕위를 물려줄 수 없음을 아버지로서 내심 미안해하던 왕은 결국 아들을 만주로 보내 동조선으로 이주하지 않고 남아있던 여진족들을 복속시켜 자기 나라를 만들게 했다.[9] 최대한의 지원을 해서 보냈기에[10] 나름 성공적으로 나라를 만들어가는 시점에서 완결.


[1] 파이날라는 테우안테펙 지협에 있는, 아즈텍의 전초기지들 중의 하나였다. 이 소읍은 코아찰코알코스라 불리는 강의 두 지류가 만나는 지점에 있었기 때문에 상업의 중심지로 기능했다.[2] 그래서 이 촐룰라 학살 건은 코르테스의 정적들이 두고두고 물고 늘어지는 약점이 된다. 법대로 하면 공격하기 전에 통첩문(피사로가 아타왈파를 사로잡을때 언급되는 그거)을 반드시 읽게 되어있었다.[3] 마르틴은 코르테스의 아버지 이름이다. 1529년 코르테스는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청원해 마르틴 등 사생아 4명을 적자로 인정받는 칙서를 받아냈다. 아버지의 모국 스페인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청년기에 신대륙으로 돌아왔다. 대우가 그리 나쁘진 않아서 기사 서임도 받고, 펠리페 2세의 종자가 되어 전장에 종군하기도 했다. 코르테스의 적장남이자 이복동생인 마르틴 코르테스 수니가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는지 1562년 형제간에 작당하여 부왕을 축출할 음모를 꾸민 혐의로 체포되고 본국으로 추방되어 여생을 보냈다.[4]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 쪽에선 마르틴 코르테스보다는 순수 백인이면서도 원주민들에 동화되어 살다가 콩키스타도르에 맞서 싸웠던 곤살로 게레로(정신적으로)와 그 아들(혈통적으로)을 최초의 메스티소로 인식하는 의견이 많다.[5] 아즈텍 고유의 여자 귀신 시우아테테오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예를 들면 한국에 기존에 있던 '처녀귀신'과 '죽어서 처녀귀신이 된 A모양' 정도?[6] 아스텍 전통 요리 중에 적대 부족의 인육으로 만든 음식이 있을 정도였다.[7] 기록에 따르면 다수 부족어에 능통했으며, 에르난 코르테스에게 진상된 후 스페인어를 이틀만에 배웠다고 전해진다.[8] 케찰코아틀이라고도 한다.[9] 정비소생의 셋째 아들은 당시 유럽왕실 최대의 약속된 로또(?)인 스페인 공주 후아나와 결혼할 조짐을 보인다.형은 죽어라 싸워가며 자기 나라 만드는데 (이복)동생은 결혼 한방으로 왕 될 기세[10] 남아도는 구식병기(라고는 하지만 동아시아인들에겐 충공깽급 위력)와 군용물자는 물론, 실전배치가 막 시작된 최신병기까지 아낌없이 지원했다. 본격 쇼미더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