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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7 00:22:25

말보로 맨


파일:attachment/말보로 맨/malboroman.jpg
1. 개요2. 등장 비화
2.1. 이미지 쇄신을 위한 캠페인2.2. 현직 카우보이의 기용2.3. 잭팟
3.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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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람과 같은 자유를 즐기며, 영원히 광할한 대자연을 누비는 강인한 독립정신을 가진 자

미국담배 회사인 필립 모리스가 자사의 담배 브랜드 말보로를 홍보하기 위해 진행한 광고 마켓팅을 일컫는다. 현재까지도 담배업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남긴 마케팅으로 평가받을만큼 말보로의 미국 내 입지를 급상승시켰고, 경쟁 브랜드나 타 업계에서도 벤치마킹할만큼 영향을 끼쳤다. 말보로의 패키지가 변경된 1954년부터 담배 광고 규제가 시행된 1999년까지 말보로 맨을 기용한 광고를 진행했다.

말보로의 패키지를 상징하는 빨간 셔츠와 흰색 카우보이 모자[1]를 입은 남자가 자유, 자연, 독립 등 도전적인 단어들과 함께 등장해 말보로를 홍보한다. 여타 광고에서 이런 스타일의 마케팅을 본다면 말보로맨을 벤치마킹 한것이라 보면 된다.

2. 등장 비화

2.1. 이미지 쇄신을 위한 캠페인

1924년 필립 모리스가 내놓은 말보로는 초기만 해도 여성용 담배로 홍보하였다. 광고에도 여성이 등장하였으며, 막바지에는 어린 아기와 엄마를 광고에 동원해 여성들을 위한 브랜드라고 홍보하였다. 문제는 20세기 중반만 해도 여성들의 흡연이 터부시되던 시절이라 말보로는 흡연자의 대다수인 남성들에게 외면당하면서 담배시장 내 유의미한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했다. 실제로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는 카멜럭키 스트라이크였고 같은 필립 모리스 제조 상품들 중에서도 채스터필드나 벤슨 & 헨지스, 폴 몰 등이 잘 팔렸을 뿐 말보로는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담배의 유해성이 조금씩 연구를 통해 밝혀지면서 담배업계는 사상 처음으로 침체기에 들어가게 된다. 말보로는 이런 상황에서 “필터가 없는 담배가 유해하니, 필터 있는 우리 담배는 피워도 된다“는 홍보를 하여 필터 담배의 안전성을 부각하는 방식의 홍보를 진행했다.[2]

말보로의 이런 마케팅은 어차피 몸에 안 좋은 걸 피워야겠다면 그나마 차악을 선택하라는 자포자기에 가까웠다. 이 광고를 지식층들에게 어필해 여러 사설과 인터뷰에서 언급되었고, 이 후 판매량이 소폭 증가하긴 했지만 당시 업계 1위였던 카멜을 필두로 한 유력 담배 회사들은 "말보로는 어린아이나 여자아이들이나 피우는 담배"라는 견제전략을 펼쳐 말보로의 판매율 상승을 막으려했다. 이게 먹혀들어가면서 총 판매량은 오히려 감소하였으며 카멜과 럭키 스트라이크는 의사들을 광고에 등장시켜 자신들의 담배를 의사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마케팅을 펼쳐 대성공했다.

여러 마케팅에도 판매량이 여전히 제자리걸음 수준으로 머물자, 필립 모리스는 필터 궐련이 여성용이라는 대중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흡연자의 대다수인 남성들로부터 선호도를 얻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초기에는 마초 이미지가 강한 배우나 모델들에게 협찬을 주어 스폰싱을 진행했지만, 당시 광고를 받던 배우들이 사석에서 필립 모리스를 비난하며 “돈 몇 푼 쥐어주며 여자들이나 사는 담배를 피라고 강요하는 회사”라는 뒷담화를 했고 이게 언론을 통해 스캔들이 터지면서 말보로의 브랜드 가치는 또 다시 하락하게 된다.[3] 미국 사회와 흡연자들 사이에서 말보로의 이미지는 2류나 B급, 심한 경우 말보로를 피우는 남자들은 게이나 다름 없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나왔다.

연예인들까지 마케팅에 사용했지만 또 다시 실패를 경험하자 말보로는 필립 모리스 내에서도 골치덩어리로 전락하게 된다. 주주들은 주주총회에서 겉멋만 든 입, 가벼운 엉덩이를 가진 연예인들에게 돈을 쓸 바엔 깡촌에서 목장일로 먹고 사는 카우보이를 광고모델로 고용해 소몰이 쇼를 하는 게 오히려 나을 지도 모른다고 비꼬기도 했다.

2.2. 현직 카우보이의 기용

필터 담배는 출시 초기만 해도 여자나 허약한 인간들이나 피는 종류라는 인식이 만연하여 흡연자들에게 외면받고 있었다. 필립 모리스는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적어도 10년 이상의 대대적인 마케팅과 언론플레이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심심하면 스캔들을 내거나 사고를 쳐서 장기기용하기 어려운 연예인을 대신해 마초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새로운 인물상을 모색하게 된다.

초창기에 거론된 후보는 경찰, 파일럿, 군인 등 남성성을 강조하는 직업군들이었다. 실제 2차 대전 당시 카멜과 럭키 스트라이크가 미군들을 광고에 사용하여 큰 이득을 봤던 것을 감안하면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그러나 경찰은 공무원이라서 상업광고에 나올 수 없었고, 파일럿은 비행규정상 흡연을 하며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없어 촬영이 불가능해 기용을 포기했으며 군인은 당시 사회분위기와 여론의 불호로 역시 기용을 포기했다.

사실상 알맞은 광고모델을 찾는 기획이 엎어질 즈음인 1953년, 카우보이 영화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셰인이 큰 히트를 치게 되어 미국 사회에서 카우보이의 인기가 치솟았다. 필립 모리스는 이를 놓치지 않고 진짜 카우보이를 모델로 쓰겠다는 계획을 내놓게 된다. 이 계획을 사전에 입수한 주주들은 미쳤냐고 따졌지만 회사 측은 과거 이들이 했던 조롱을 기억해내어 ”니네가 카우보이 뽑으라면서?“로 받아쳤고 이에 대주주 일부가 건곤일척이라도 최후의 수단이니 도전해보자는 의사를 내비쳐 이 마케팅은 주주들의 지지를 얻게 된다.

이 후 필립 모리스는 본격적으로 광고에 출연할 카우보이로 고용하기 위해 물색작업에 들어갔다. 물론 인지도 없는 듣보잡 카우보이를 모델로 내세울 경우 흡연자들이 못 알아본다는 주주들의 의견이 만만치 않아 영화에서 카우보이 역을 맡았던 주요 배우들 일부를 모델로 발탁하는 플랜 B도 동시에 진행했다.

2.3. 잭팟

1954년, 필립 모리스는 말보로맨이 등장하는 캠페인을 신문에 처음으로 개재했고 셰인의 빅히트를 등에 업고 엄청난 유행을 타게 된다. 필립 모리스는 기존 여성용 담배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 서부시대를 연상시키는 카우보이를 광고에 내세우고 입에 담배를 물렸으며 현재까지 사용중인 빨간 지붕이 들어간 말보로 패키징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 때의 마케팅이 대성공하면서 말보로의 이미지는 기존 여성용 담배에서 남성들의 취향을 자극하는 마초적 담배로 변하게 된다.

말보로맨 광고가 시작된 뒤 기존 여성 흡연자들은 이탈하여 팔리아멘트던힐 등으로 갈아탔지만 남성 흡연자들은 폭발적으로 유입되었다. 여성 흡연자의 비율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이들의 이탈은 작은 손해 정도로 여겨졌고, 오히려 흡연자의 대다수인 남성들이 열성적으로 말보로를 찾기 시작하면서 판매량과 매출은 폭발적으로 올라갔다.

말보로 맨의 인기를 등에 업고 1955년, 필립 모리스의 매출은 4배로 증가하였으며 당시 미국에서 갓 흡연을 시작한 신규 흡연자들의 30%는 말보로를 입문담배로 피운다는 설문조사가 나올 정도로 대중적인 위치에 올라선다. 필립 모리스 내의 기타 브랜드를 모두 제쳤으며 1960년대 후반에 이르서서는 기존 미국 시장 1/2위였던 카멜과 럭키 스트라이크마저 누르게 된다.

말보로 맨은 여성들이나 피우는 2류 브랜드라는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박살내주었고,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담배시장에서 말보로를 업계 1위로 올려줌과 동시에 필립 모리스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도와준 원동력이 되었다. 필립 모리스는 해외로 진출해서도 말보로 맨 마케팅을 계속 사용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전 세계 담배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말보로 맨과 뒤이은 말보로의 부상은 필터 궐련이 대중화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필터 궐련이 대중화되기 전만 해도 필터가 달려있지 않은 양절궐련이 유행했고 파이프 담배의 영향력도 건재했다. 말보로가 필터 담배를 유행시키면서 궐련이 담배시장에서 확고한 주류로 뿌리내렸고 기존의 파이프 담배와 시가, 롤링 타바코는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나마 롤링 타바코와[4] 시가는[5] 궐련의 유행 이후에도 고정적인 마니아층이 계속 유지되며 현재까지도 살아남았지만 파이프는 궐련이 주는 편리함이라는 장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현재는 거의 몰락했다.

말보로 맨이 큰 히트를 치자 경쟁업체인 카멜은 1987년 조 카멜이라는 캐릭터를 내놓게 된다.[6] 조 카멜은 말보로맨과 마찬가지로 남성성을 뚜렷하게 강조한 캐릭터였는데, 이 마케팅도 어느 정도 성공하며 흡연자들을 끌어모았다. 다만 조 카멜은 미국 보건당국으로부터 청소년들의 흡연을 조장하고, 성적인 내용을 캐릭터에 사용했다는 경고를 받고 몇 년 안가 사용을 중지했다.

3.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말보로맨은 1954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말보로의 마케팅 캐릭터로 사용되어 왔다. 초기에는 말보로 레드만 광고로 나왔지만, 70년대에 들어 타르 함량을 낮춘 말보로 라이트(현 말보로 골드)도 말보로 맨 광고에 나왔다. 2000년대 이전까지 말보로가 메인으로 밀던 두 종류의 맛이 바로 레드와 라이트였다.

그러나 1998년 미국 내 담배 관련 법령이 개정되어, 담배 광고에 인물과 동물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순응해 필립 모리스도 1999년 고별 광고를 끝으로 말보로맨 마케팅을 종료했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 말보로맨을 지운 초원과 사막을 배경으로 한 광고를 내보냈다. 2010년대부터 담배의 상업광고가 전면 금지되면서 이러한 풍경을 이용한 광고도 만들 수 없게 되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담배갑 패키징 법이 시행되어 말보로의 기존 로고조차 사용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7]
[1] 이 후 몇 차례 디자인이 교체되었고 빨간 셔츠도 종종 바뀌었지만, 하얀 모자는 말보로맨 광고가 종료될 때까지 유지되었다.[2] 이는 말보로 뿐 아니라 여타 담배 브랜드에서도 사용하던 홍보방식이었다. BAT의 담배 브랜드인 켄트는 자신들이 개발한 필터는 담배의 모든 유해물질을 걸러낼 수 있다며 다른 담배 회사의 필터와 다르다는 차별화 전략을 사용해 폭발적으로 흡연자들을 끌어모았다. 물론 그 특별하다는 켄트의 필터는 석면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몇년 뒤 BAT는 조용히 켄트 담배의 필터를 석면에서 섬유질 성분으로 교체했다.[3] 훗날 카멜의 모기업인 R.J 레이놀즈가 필립 모리스의 스폰싱을 저지하기 위해 배우들에게 접근,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며 일부러 스캔들을 터트렸다고 몇몇 배우들이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R.J 레이놀즈는 이것을 부인했지만, 진실은 저 너머로…[4] 2000년대 이후 금연정책 때문에 담배값이 계속 오르면서 세금이 덜 붙는 롤링 타바코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서양권에서는 이미 궐련과 거의 비슷한 사용률을 보일 정도이다. 말보로도 롤링 타바코 연초를 출시했다.[5] 현재도 흡연자들의 취미로 자리잡아 있으며 서양권에서는 손님을 맞이할 때 커피, 술과 함께 접대용으로 내놓기도 한다.[6] 카멜은 말보로에게 추월당한 1960년대 이후 사양길을 걷고 있었다. 젊은 흡연자들 사이에서는 노땅 담배라는 인식까지 생겼을 정도.[7] 필립 모리스는 기존 연초의 사양화에 대비해 2010년대부터 궐련형 전자담배아이코스를 적극적으로 밀고 있다. 일본에서 팔리는 아이코스 연초에는 아예 말보로 상호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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