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모토로라 브랜드로 휴대폰을 출시하는 기업에 대한 내용은 모토로라 모빌리티 문서 참고하십시오.
모토로라 MOTOROLA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회사명 | 영어: Motorola, Inc. |
한글: 모토로라 주식회사[1] | |
국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설립일 | 1928년 9월 25일 |
해산일 | 2011년 1월 4일 |
소재지 | 미국 일리노이 주 샴버그 |
업종 | 휴대전화 및 통신기기 제조업 |
규모 | 대기업 |
상장 | NYSE: MOT |
직원 수 | 53,000명(2010년) |
후신 | 모토로라 모빌리티 (휴대폰 부문) |
모토로라 솔루션 (B2B 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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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통신기기 제조 업체이다. 휴대전화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상용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0년까지 휴대전화 판매량으로 세계 1위를 점했던 기업이었다.현재는 휴대전화 제조 사업부가 모토로라 모빌리티로 분할되어 구글에 매각되었고, 후에 레노버에 재매각되었다. 무전기, 위성통신 등 B2B 사업부는 모토로라 솔루션으로 분할되었다.
2. 역사
모토로라는 1928년 폴 갤빈(Paul Galvin)[2]과 조셉 갤빈(Joseph Galvin)[3]형제가 설립하였다. 갤빈은 총 자본금 565달러[4], 종업원 다섯 명과 함께 시카고에 갤빈제조회사를 설립하고 당시 큼지막한 배터리로만 작동하던 라디오를 가정용 전기로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류기(Ac/Dc rectifier)를 생산하여 제품으로 내놓았다. 배터리를 매번 살 필요 없이 코드를 꽂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1930년대에는 최초의 차량용 무전기[5]를 개발하여 '모토로라'라는 상표로 판매하였고 이 이름은 1947년부터 회사의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였다.[6]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사 통신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최초의 휴대용 무선통신기기인 SCR-300과 SCR-536 등을 개발해 연합군의 승리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때부터 라디오를 중심으로 한 무선통신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교통경찰들의 농담으로 "제아무리 도주 운전자가 빨라봤자 우리가 쓰는 모토로라에 비하면 느리다"라는 것도 있다.
1955년에는 모토로라를 상징하는 M자를 펼친 로고를 제키 지너가 디자인하여 공식 채용되었다. 이듬해인 1956년에는 최초의 삐삐를 개발하여 병원의 의료인들을 중심으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이후로 병원에서 일하다 말고 삐삐를 들여다보는 것이 TV 쇼 등에서 클리셰로 나오게 된다.
1960년에는 최초의 무선 휴대용 텔레비전을 개발하였으며 63년에는 최초의 직각 컬러 브라운관을 개발한다. TV 사업부는 1974년에 파나소닉에 매각.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 때 "이것은 인간의 작은 발걸음 하나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라고 말한 닐 암스트롱 선장의 생생한 육성이 지구에 전달된 것은 바로 모토로라가 개발한 우주 통신용 무전기를 통해서였다.
1973년에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휴대폰을 개발했으며, 1983년 모토로라 다이나텍 8000X는 최초의 상업용 휴대전화로 승인받았다.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반도체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80~90년대 모토로라의 680x0 시리즈 CPU는 인텔의 80x86과 쌍벽을 이루었던 CPU로 Macintosh, 아미가 등의 고성능 컴퓨터에 사용된 바 있으며 그 중에서도 68000은 왠지 게임 산업 쪽에서 대히트, CPS나 MVS 같은 아케이드 기판, 메가드라이브 같은 가정용 게임기에 들어가며 장수한 제품이다. 1984년 최초의 32비트 프로세서인 MC68020을 내놓았다. MC68xx 시리즈 CPU 등은 초저전력으로 낮은 스펙임에도 Palm OS 등에선 나름 오래 버텼다. 2004년 반도체 생산 부문은 프리스케일이라는 독립된 회사로 분리되었다.
2006년에는 심볼 테크놀로지(Symbol Technologics)를 39억 달러($)에 인수하여 기업용(SOHO) AP와 바코드 스캐너 등 기기 제조에도 뛰어들었다.[7]
1990년대 이후에는 무선통신 분야를 선도하였다. 1996년에 최초의 플립형 초경량 휴대폰 스타택을 개발하여 공전절후의 히트를 치게 된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리듐 계획 같은 거창한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이리듐 계획의 서비스 자체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다지만 90년대 후반경에 경제지나 시사 주간지, 월간지 등을 탐독했던 사람이라면 꾸준히 게재되었던 이리듐 계획의 광고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는 아니었으므로, IT 기술 분야에 웬만큼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결과적으로 이리듐 계획은 당초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이런저런 통신사들을 제법 끌어모은 거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SK텔레콤도 여기 지분을 투자했었다) 의외로 모토로라가 직접 입은 손해는 모토로라가 가진 돈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나중에 계획 자체를 통째로 미군에 넘기면서 또 얼마를 건져서 결국엔 별 금전적인 손실 없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1998년에는 노키아의 출현으로 휴대전화 분야에서는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주게 되지만, 이후에도 RAZR와 같은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내었다. iPhone이 출시되기 전까지 4년 동안 약 1억 3000만 대가 팔렸으며 폴더형 폰 중에서는 가장 많이 팔렸다.
1999년에는 웹 브라우징과 이메일 송수신이 가능한 스마트폰 아이덴 i1000을 내놓았다.
제품 공정에 식스 시그마를 도입한 최초의 기업이다. 식스 시그마란 쉽게 말해서 1,000,000개의 생산 제품 중 3개에서 4개 정도의 불량품만 허용하는 것으로 불량 제품을 거의 없애겠다는 경영 혁신 기법. 최근에는 제로 디펙트(Zero defect)라고 해서 불량률 '0'을 달성하겠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획기적이면서도 도전적인 경영 방침이었다.
2011년 1월 4일부로 '모토로라 모빌리티'와 '모토로라 솔루션'으로 나뉘었다. 휴대폰 관련 사업부를 모토로라 모빌리티로 분사하였고 모토로라 솔루션은 RFID, 산업용 관련을 맡고 있다. 이 중 모토로라 모빌리티는 같은 해 8월 15일에 구글에 인수되어 구글의 자회사였지만, 2014년 1월에 레노버에 재매각됐다.
3. 모토로라 모빌리티
자세한 내용은 모토로라 모빌리티 문서 참고하십시오.4. 모토로라 솔루션
자세한 내용은 모토로라 솔루션 문서 참고하십시오.[1] 초창기에는 "모토로라 반도체통신 주식회사"였으나, 차후엔 반도체통신이라는 수식어를 제외한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생산시기별 기기 라벨에서도 드러난다.[2] 1895년에 태어나 1959년에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3] 1899년에 태어나 1944년에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4] 현재 가치로 대략 $8,500.[5] 당시 차량용 무전기는 경찰만 가질 수 있었다.[6] motor+ola(접미사)링크[7] 아직도 심볼 시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영업을 시작한 지 좀 오래된 롯데마트에 가보면 심볼의 무선 AP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일부 가게나 마트 등에서 심볼 로고가 부착되어 있는 바코드 스캐너도 종종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