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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9 17:08:51

목갈라나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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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지혜제일 사리풋다
(사리불)
2대 신통제일 마하목갈라나
(대목건련)
3대 두타제일 마하카사파
(대가섭)
4대 해공제일 수부티
(수보리)
5대 설법제일 푸르나
(부루나)
6대 논의제일 마하카트야야나
(대가전연)
7대 천안제일 아니룻다
(아나율)
8대 지계제일 우팔리
(우바리)
9대 밀행제일 라훌라
(라후라)
10대 다문제일 아난다
(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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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석굴암 목건련.jpg
“나는 지금 가지가 없는 큰 나무와 같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가 열반에 든 것은 큰 나무에 가지가 잘려나간 것 같다. 대중들을 살펴보니 마치 텅 빈 것 같구나. 그들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두 사람이 있었으면 이렇게 쓸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증일아함 18권 사의단품(四意斷品) 제9경
"부처님께서는 그가 제자 중에 신력(神力)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능히 발가락 하나로 제석천(天帝釋)의 최승법당(最勝法堂)을 움직이게 했으며, 또 능히 난타(難陀)[1]와 우바난타(優波難陀)[2] 두 용왕을 항복받았습니다.
우파급다 존자가 아쇼카 대왕에게 목갈라나의 사리탑을 소개하면서, 『아육왕경』 2권(ABC, K1013 v30, p.357a01)

석가모니십대제자 중 한 명. 한역 명칭은 '목건련(目犍連)'이다. 더 줄여서 ‘목련존자’라 하기도 한다.

같이 10대 제자의 필두였던 사리뿟따(사리불)와 죽마고우로, 라자가하의 북쪽에 위치한 코리타 마을의 브라만 가문 출신이다. 16세에 사리뿟따와 함께 축제를 구경하다 문득 '화려한 축제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끝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리풋다도 이에 동의하여 산자야라는 수행자의 교단(육사외도 참조)에 들어가 수행을 시작했다. 그러다 후에 '아사지'라는 비구를 통해 석가모니의 얘기를 듣고 부처님을 배알하니, 부처님은 단번에 그들을 반기며 먼저 제자가 된 깟사빠(가섭)보다도 중하게 대우하였다.

10대제자 중에서 '신통제일'로 불릴 정도로, 신통력과 일부러 거리를 둘 정도였던 불교 교단[3]에서 유독 신통력으로 유명했다. 과거 데바닷타가 일부 비구들을 데리고 교단을 이탈할 적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신통력을 발휘해 사리풋다의 설득을 도왔다거나, 엄지발가락을 움직여 천상의 궁전을 흔들었다는 등 설화가 있다. 그 외에 효성이 지극하여 지옥에 떨어진 모친을 구했다는 설화도 있다.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여러편 만들어졌다.[4]

그러나 석가모니는 목갈라나에게 신통력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목갈라나는 그러한 신통력 때문에 불교 교단을 견제하던 다른 수행자나 교단의 시기를 한몸에 받았고, 반대파들의 집요한 추격에 쫓기다[5] 결국 붙잡혀 집단 린치를 당하였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잠시 뒤에 사리풋다도 입멸하니 석가모니는 두 제자의 죽음을 매우 아쉬워하였다.

불경의 해석에 따르면 목갈라나는 과거 전생에서 부모를 죽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죄업으로 지옥에 떨어져 몇 겁이나 고통을 받다가 겨우 사람으로 환생했는데, 지옥에서 벌을 받았던 영향으로 피부색이 좀 검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방불교 쪽에서는 목갈라나의 피부를 검게, 또는 검푸르스름하게 묘사하곤 한다. 석가모니의 말에 따르면 목갈라나가 이미 아라한이 되고도 적대자들에게 살해된 것 또한 전생에 부모를 죽인 악업으로 인한 과보였다고...


[1] 팔대용왕(八大龍王)으로 발난타(跋難陁) 용왕과 형제이다. 난타(難陁)라고도 쓴다.[2]대운륜청우경(大雲輪請雨經)』이라는 불경에 따르면 부처에게 염부제에 비를 내려 줄 것을 청하였던 용왕이라고 나온다. 대운륜청우경은 후대에 이 경전을 읽어 강우를 기원하는 청우경법(請雨経法)이라는 불교식 기우제의 유래가 된 경전이기도 하다.[3] '수낙캇따'라고 하는 사람이 석가모니에게 귀의했으나 석가모니가 신통력 하나 보여주지 않는 것에 실망해 다른 교단으로 갈아탄 뒤 석가모니를 단지 논설가라며 비방했는데, 석가모니는 이를 두고 "그는 날 비방하는 게 아니라 칭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4] 석가모니에게 자문을 구해 비구 16명에게 공양하여 그 공덕으로 지옥에 있는 어머니를 구했다고 한다.[5] 계속 신통력을 발휘해 피할 수 있었으나 이대로 끝이 없을 것을 알고 피하기를 포기하고 받아들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