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無意識 / Unconsciousness내가 알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생각하지 않는 모든 것. 한때 나에게 의식되었지만 지금은 망각된 모든 것. 나의 감각에 의하여 인지되지만 내 의식에서 유의되지 않는 모든 것. 내가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며 기억하고 원하고 행하는 모든 것. 내 내면에서는 준비되지만 나중에야 비로소 의식으로 표출되는 미래의 모든 것. 이 모든 것들이 무의식의 내용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1]
카를 구스타프 융[1]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저절로 행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신의 행동이나 지각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인간 본연의 충동(리비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는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쓰인다.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의 무의식의 철학,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성적 충동으로서의 해석과 칼 구스타프 융의 집단 무의식에 대한 연구가 주요한 연구다.
2. 내용
현대 심리학에서는 프로이트의 이 개념이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여 중시되지 않으며 무의식의 존재에 대하여 학자간의 의견차이가 분분한 영역이다.[2]넓은 의미에서 무의식의 존재 자체는 과학적, 경험적으로 명백히 입증된다. 무의식이란 의식이라는 매커니즘이 진화하기 전부터 생명체에게 내제된 DNA에 의해 구현되는 매커니즘이다. 아래에서도 거론된 호흡 등 불수의적인 생리활동은 물론, 스포츠나 위급상황 시의 반사적인 행동, 특정 상황에서의 왠지 모를 위화감 캐치 등등이 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좁은 의미의 무의식이다. 사실 의식과 무의식을 분간하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다. 애초에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의 정의 자체가 의식(=자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니 만큼 이것을 찾아낼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이 자신의 무의식을 찾아냈다고 공표하는 순간 자신은 물론 만인이 알게 되니 자신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라캉철학에서는 철학에 인식론 부분에서 이 개념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유럽의 주된 철학 사조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영역이다. 현재 유럽 철학의 양대 사조는 현상학과 과학철학이며, 물론 칼 구스타프 융의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이 현대 철학 사조의 인식론적 부분에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하나, 결국은 의식의 개념 안에서 해석하고 있다.
현상학에서는 무의식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러한 부분도 의식의 작용으로 해석하여 기술하고자 하고 있으며, 과학철학 분야에서도 이러한 소위 무의식이라 불리는 활동을 인간 본연의 상상력의 작용으로 보고 있다.
3. 여담
- 철학적인 무의식, 완전한 좁은 의미의 무의식은 본문 설명에 나왔듯 애매하기 때문에 거의 넓은 의미의 무의식의 의미로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숨쉬기나 괄약근에 힘주기, 수면 상태도 일상적으로 무의식이라고 하나 엄밀하게 다가가면 인간이 살아있는 한 뇌는 정지하지 않기 때문에 무의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의견이 분분해 일상적인 뜻으로 무의식을 말한다.
- 넓은 의미의 무의식에서 대부분 생물체가 항상 하고 있는게 있다면 바로 숨 쉬는 것과 괄약근에 힘 주는 것이다. 호흡은 심장박동 등과 같은 다른 불수의적 생리활동과 차이가 하나 있는데, 무의식적으로도 가능하고 의식적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숨은 참을 수 있지만, 심장 박동이나 위장의 소화 운동을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 의도적인 호흡을 통한 심신이완의 방법이 민간에서든 임상에서든 흔히 사용된다. 수면중에서도 우리는 늘 숨을 쉬며, 죽지 않는 한 괄약근에 힘을 주고 있어 다이렉트로 똥을 싸지 않는다.
- 셀 수 없을 만큼 반복된 행동은 흔히 몸에 밴다고들 하는데,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무의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은 독수리 타법이 아닌 이상(...) 어떤 활자를 칠지 일일이 보고 치는 게 아니라 그냥 생각하면 손가락이 저절로 가는 느낌이 들 것이다. 다만 독수리 타법이라고 해도 글을 많이 쓰면 일반적인 사람보다 더 빨리 치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다.
- 예술가에게는 의식과 무의식은 자신의 예술을 승화시키는 힘이라고 하며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4. 매체에서
- 드래곤볼에선 무의식의 극의라는 무의식의 한계를 돌파하는 힘이 나온다.[4] 이에 대비되는 베지터의 변신으로 자의식의 극의가 있다. 무의식은 원문에서 '미캇테'이고 자의식은 원문에서 '와가마마'이다. 둘다 제멋대로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이고, 뉘앙스만 약간 다른데 한국 팬덤에서는 초월번역으로 불린다.
- 외모지상주의에서도 특성으로 등장한다. 무의식을 발동 시킬 수 있는 인물로는 박형석, 박종건, 양국자가 있다. 자세한 것은 무의식(박태준 유니버스) 참조.
5. 같이보기
[1] 저서 <무의식의 역동성>(Die Dynamik des Unbewussten)에 나오는 구절이다.[2] 다만 인정하는 쪽은 주로 '적응 무의식'이라고 해서, 실험, 관찰을 통해 통계적으로 검증가능한 무의식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는 쪽도 있다. 여기선 개별 사례연구 같은 방법론은 극도로 비판적이고, 생리학이나 뇌과학 등과 열심히 접목해 보려고 한다.[3] 김창남,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드라마 주인공은 왜 사투리를 쓰지 않을까?」 . 철수와 영희. 69-70p.[4] 물론 원래 명칭은 제멋대로의 극의이다. 이걸 적당하게 번역할 방법이 없다보니 무의식의 극의라고 번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