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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6 23:00:00

무인지대

1. 개요2. 상세3. 현재

1. 개요

파일:lVOGg8r.jpg

No Man's Land
무인지대
無人地帶

제1차 세계 대전 중 벌어진 참호전에서 양측 참호선 사이의 지대를 일컫던 말. 분쟁 중에 있으나, 서로에 대한 공포와 불확실성 때문에 아직 아무도 차지하지 못한 지역을 비유적으로 의미하는 말로도 쓰인다.

2. 상세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슐리펜 계획을 통해 벨기에를 관통하여 프랑스를 단기간에 점령하겠다는 독일 제국군의 계획은 마른 전투제1차 이프르 전투에서 독일군이 연합군에 연달아 패배하면서 좌절되었다. 독일군은 동부전선의 러시아군을 격퇴하기 위해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빼내야 했고, 서부전선에서 전선의 유지를 위해 대대적인 참호 공사를 시작하였다. 독일군이 기나긴 참호를 파자 연합군도 따라서 참호를 파게 되었고, 이것이 1차 대전을 상징하는 참호전의 시작이었다.

참호의 개념이야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것이었지만, 참호가 전쟁의 향방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은 이 전쟁이 거의 유일했다.[1] 냉병기로 전쟁을 하던 시대에는 당연히 참호를 돌파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총기가 등장하여 참호의 효율이 매우 높아진 이후에도 공격자 측이 많은 병력을 투입한다면 충분히 참호선을 돌파하는 것이 가능했다. 화기의 발사속도가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물밀듯이 병력을 집어넣는다면 뚫지 못할 것도 없었다. 기병 역시 훌륭한 기동전의 수단으로 계속 기능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기관총이라는 병기가 등장하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아무리 많은 병력이라도 기관총 앞에서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관총 앞에서 보병과 기병은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였고, 참호를 파고 기관총을 배치하자 참호를 향해 돌격하던 병력들은 말 그대로 녹아내렸다. 물론 기관총이 전쟁에 투입된 것은 1차 대전 이전부터였으나, 아직까지는 이러한 대규모의 공방전이 벌어졌던 전례가 없었기에 양측 수뇌부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전략전술에 매몰되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이러한 지휘부의 오판 속에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이 참호 사이에서 사라졌다.

이로 인해 참호와 참호 사이는 말 그대로 현세에 강림한 지옥과도 같이 변했다. 죽은 자들의 시체만이 가득한 이 공간을 사람들은 무인지대(No Man's Land)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차 대전 당시의 포격은 기술의 미비로 인해 부정확했기에 아무리 포탄을 퍼부어도 상대방의 참호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했고, 따라서 참호 밖으로 나온 병사들은 적의 기관총 세례와 소총사격을 정면으로 받아내야 했다. 여기에 참호와 참호 사이에는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철조망이 설치되고 지뢰가 매설되어 더 많은 사람을 죽였고, 무분별한 포격으로 인해 생긴 구덩이들은 이동을 방해하여 공격에 노출되는 시간을 더욱 늘렸다.

이 구덩이들은 철조망과 함께 1차 대전의 무인지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조물이다. 구덩이는 진격하는 병사들이 기관총 세례를 피할 수 있는 일종의 엄폐물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비가 오면 물이 잔뜩 고이고, 안에는 미처 수습되지 못한 시체와 썩다 남은 그 시체 부스러기들이 가득했다. 구덩이가 깊을 경우 이 구덩이에 빠진 병사가 익사하기도 했으며, 공기보다 무거운 독가스가 구덩이 안에 고여있는 경우가 많아 이 독가스로 인해 목숨을 잃는 병사도 속출했다.[2]

물론 구덩이 외부라고 해서 별로 나을 것은 없었다. 공세를 하지 않는 대치상황에도 저격수의 존재로 인해 양측은 참호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국 무인지대에서는 사방에 널브러진 수많은 사체들이 포격으로 계속 산산조각나며 썩어들어갔다. 그러나 양측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고, 병사들은 시체를 밟고 진격하다 그 시체 위에 다시 쓰러져 죽어갔다.

무인지대의 시체들이 썩는 냄새는 상상을 초월했고, 온갖 벌레와 짐승들이 꼬였으며 전염병도 창궐했다. 무엇보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바로 이 시체를 먹고 거대해진 들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쥐들이 시체를 파먹고 크기가 엄청 커져 어떤 쥐들은 크기가 고양이만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참호에 틀어박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에 시달리던 병사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무인지대라고 하지만 가시성이 떨어지는 밤이 되면 병사들이 활동했다. 적 참호로 주기적으로 정찰을 떠나고, 철조망 등을 다시 정비하였으며, 신음하고 있는 부상병을 회수해 오기도 하였다. 또 저격수들은 보통 동틀 무렵 무인지대로 올라가 무인지대를 기어다니며 저격활동을 수행하였다.

2.1. 예외: 크리스마스 정전

이처럼 감히 누구도 올라올 생각을 하지 못하던 무인지대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이 웃음꽃을 피우고 시체를 수습할 수 있었던 기간이 바로 크리스마스 정전 기간이었다. 연합군과 독일군이 일시적으로 교전을 중단하고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념한 이 기간동안 양측은 무인지대에서 서로 만나 교류하고 무인지대에 널린 전사자들의 시체를 수습하여 장례를 치러줄 수 있었다.

3. 현재

전쟁이 끝난지 10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무인지대의 흔적이 서유럽 곳곳에서 발견되곤 한다. 이곳에서는 1차대전 당시의 불발탄이나 지뢰, 전사자의 유해 등이 발굴된다고 한다. 현재도 일부 지역은 앞서 말한 불발탄,지뢰 등 여러 문제로 출입이 금지 된 데도 있다.



[1] 물론 이후에도 이란-이라크 전쟁과 같은 사례가 있기는 하다.[2] 이 구덩이의 끔찍한 모습은 영화 1917에서 매우 잘 묘사된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죽음늪 등도 J.R.R. 톨킨솜 전투에서 본 광경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