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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05 19:27:02

무함마드 알리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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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알리 왕조
الأسرة العلوية
파일:Coat_of_arms_of_the_Khedive_of_Egypt.svg 파일:왕실 깃발 무함마드 알리.png
케디브 시기 문장 [1867~1914] 현행 왕실 문장
창립일 1805년
창립자 무함마드 알리 파샤
현재 수장 푸아드 2세
국가 이집트 속주
이집트 케디브국
이집트 술탄국
이집트 왕국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작위3. 국기 및 문장4. 역대 군주5. 가계도6. 제위 계승법7. 여담

1. 개요

1805년~1953년에 걸쳐 한세기 반동안 이집트를 통치한 무함마드 알리 파샤(메흐메드 알리)의 왕가. 알리/알라위/알라위야 가문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집트 외에도 수단(1820-85)[2], 히자즈(1812-40), 네지드(1818-24, 1836-40), 시리아(1832-40) 등지를 통치했다. 사우드 왕조와 마찬가지로 같은 왕조가 여러 차례 국호 및 작위를 바꿨지만[3], 존속 기간 동안 끊김 없이 이어져 덜 복잡한 편이다.

명목상으로 1805년~1914년간 오스만 제국의 제후국이었지만[4] 대부분의 시기 사실상 독립된 상태였다. 실질적으로 따지면 1805년 (혹은 1832년)~1882년간 독립국이었고, 1882년~1953년(혹은 1922년)에는 영국의 보호령 내지는 식민지였다. 따라서 11명의 군주들 중 독립 군주로 평가받는 이는 무함마드 알리 파샤, 이브라힘 파샤, 아바스 힐미 1세, 사이드 파샤, 이스마일 파샤의 5인 뿐이다.

2. 작위

3. 국기 및 문장

3차례 정치체(국호 및 작위)가 바뀌며 4개의 다른 국기와 왕실 문장을 지녔다.
파일:이집트 국기(1844-1867).svg 파일:Coat_of_arms_of_the_Wāli_of_Egypt.svg
이집트 속주 시절 (1805~1867). 이때도 케디브를 자칭하긴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왈리' 칭호로만 인정되었다.

파일:이집트 헤디브국 국기.svg 파일:Coat_of_arms_of_the_Khedive_of_Egypt.svg.png
이집트 케디브국 시절 (1867~1914). 이스마일 파샤크레타 반란 진압을 돕고 연공을 증대하는 대가로 술탄-칼리파 압뒬아지즈에게 페르시아어 계통인 케디브 (헤디브) 칭호를 인정 받았다. 그 지위는 술탄 아래, 그랜드 바지르 (대재상) 위였다.

파일:이집트 국기(1882-1922).svg 파일:이집트 술탄국 국장.svg
이집트 술탄국 시절 (1914~1922). 1차 대전 발발 후 영국의 영향력 하에 오스만 제국에게서 독립을 선포, 그와 대등한 술탄국을 선포하며 새 국기와 문장이 제정되었다. 다만 표면상으로는 독립국이었지만 결국은 이전보다도 못한 영국의 속국이었다.

파일:이집트 왕국 국기.svg 파일:이집트 왕국 국장.svg
이집트 왕국 시절 (1922~1953). 민족주의 여론이 독립을 요구한 1919년 이집트 혁명 후 영국이 자치권을 좀 더 부여한 이집트 왕국 시절의 깃발로, 오스만 제국 및 영국이 연상되는 적색 계통 대신 아랍을 상징하는 녹색 계통으로 제정했다.

4. 역대 군주

5. 가계도

파일:이집트 왕실 족보.png 파일:무함마드 알리 가계.jpg

6. 제위 계승법

왕조 초기에는 대부분의 아랍 왕실들이 그렇듯이 연장자 상속제였다. 따라서 무함마드 알리의 사후 그 아들들 사이에서 형제간 혹은 숙질 간 계승이 이루어졌다. 그러다 1866년 (무함마드 알리의 장손) 이스마일 파샤는 장자 상속제로 전환했고, 1879년 그가 영국에 의해 폐위된 후에도 장남 테우피크 파샤가 옹립되었다. 다만 1914년 테우피크 파샤의 장남 아바스 힐미 2세가 폐위된 후 영국은 후자의 장남 모하메드 압델 모네임을 옹립하지 않고 아바스 힐미 2세의 동생 후세인 카멜을 옹립했다. 그리고 1917년 후세인 카멜의 암살 후 영국은 그의 아들 카멜에딘 (카말 앗 딘)을 옹립하려 했으나 후자가 거부하자 후세인 카멜의 동생 푸아드 1세를 옹립하며 뜻하지 형제 상속이 이어졌다. 그나마 푸아드 1세에서 시작된 이집트 왕국기에는 장자 상속이 정착하나 싶었으나 3대만에 왕정이 폐지되고 말았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파일:아미르 사이드.png
아미르 앗 사이드의 깃발

한편 이집트 왕국 들어 계승 서열 1위, 즉 왕세자에게는 상이집트의 왕공을 뜻하는 아미르 앗 사이드 (أمير الصعيد) 칭호가 부여되었다. 푸아드 1세가 당시 아가 (장교) 직위에 있던 파루크 1세에게, 다시 파루크 1세가 1952년에 태어난 아들 푸아드 2세에게 부여했다. 공식적으로 아미르 앗 사이드를 역임했던 인물은 마지막 두 군주 뿐이지만, 푸아드 2세 역시 비공식적으로 아들 모하메드 알리에게 부여했다.

7. 여담

11명 군주들의 평균 재위 기간은 약 13.5년이다.

2대 이브라힘 파샤와 11대 푸아드 2세의 경우 재위 기간이 1년도 되지 않아 누락되는 경우도 있다. 그 두 명을 빼고 계산할 경우 평균 재위 기간은 16.3년으로 늘어난다. 최장 기간 재위한 군주는 초대 무함마드 알리로, 무려 43년간 재위했다. 그 다음으로는 아바스 힐미 2세가 22년으로 장기 재위했지만, 영국 치하 이집트의 꼭두각시였기에 주권 군주 중에서는 16년간 재위한 이스마일 파샤가 된다.
알리 왕조 군주들의 퇴위 및 사망 사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자연사 : 무함마드 알리 파샤[초대], 이브라힘 파샤[2대], 테우피크 파샤[6대], 푸아드 1세[9대]
2. 암살 : 아바스 힐미 1세[3대], 사이드 파샤[4대], 후세인 카멜[8대]
3. (비자발적) 퇴위 후 자연사 : 이스마일 파샤[5대], 아바스 힐미 2세[7대], 파루크 1세[10대]
무함마드 알리 왕조의 이집트 왕실은 멸망 과정에 있어 같은 이-로 시작하는 이탈리아 왕실과 유사한 점이 있다. 2차 대전 패전 후 이탈리아 왕국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1946년 5월에 왕정 폐지 여론에 떠밀려 다름 아닌 이집트로 망명했는데, 양위를 받은 아들 움베르토 2세 역시 바로 한 달 후에 국민 투표로 왕정이 폐지되면서 왕위를 잃었다.[18] 1947년 12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망한다. 그런데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망명을 받아주었던 파루크 1세는 불과 4년 8개월 후인 1952년 7월 23일에 자유 장교단의 쿠데타가 벌어지자 3일 후 역으로 본인이 아들 푸아드 2세에게 양위하고 이탈리아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다만 이탈리아의 경우와 달리 당시 푸아드 2세는 생후 6개월의 갓난아기에 불과했기에 정식으로 즉위하지 못하고 같은 날 부친과 함께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집트에서는 푸아드 2세의 6촌인 모하메드 압델 모네임이 섭정을 맡았다가 1953년 6월에 정권을 공화정 군부에 넘겼다.[19]

이집트, 이탈리아 왕실의 멸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두 왕실 모두 실질적 왕정 붕괴 후 망명했다.
2. 두 실질적 마지막 군주들은 모두 망명 직전 아들에게 양위했다.
3. 이탈리아 왕실은 이집트, 이집트 왕실은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4. 두 왕실의 상호간 망명은 6년 사이에 벌어졌다.
파일:모하메드 알리 왕자.jpg
푸아드 2세의 아들이자 자칭 '아미르 앗 사이드'인 모하메드 알리


[1867~1914] [2] 명목상으로는 1899~1953까지도[3] 한국사로 대비하면 같은 전주 이씨 왕조가 조선대한제국의 두 정치체 모두를 통치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4] 따라서 해당 시기의 군주들은 모두 이름에 오스만 제국의 고관에게 주어지는 '파샤' 칭호가 들어간다[5] 파일:이집트 국기(1953-1958).svg[1867] [1922] [초대] [2대] [6대] [9대] [3대] [4대] 공식 발표에서는 병사로 공표됨[8대] [5대] [7대] [10대] 다만 아들 푸아드 2세는 부친의 사인이 이집트 정부의 암살에 의한 것이라 의심한다[18] 움베르토 2세는 부친과 달리 포르투갈로 망명했다[19] 여담으로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왕위를 잃은 팔라비 2세 역시 이집트로 망명해 1년 후에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