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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39:35

문남은

성명 문남은(文南恩)
생몰 1875년 6월 28일 ~ 1952년 6월 29일
출생지 전라도 대정현 동좌면 석송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1]
사망지 제주도 남제주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문남은은 1875년 6월 23일 전라도 대정현 동좌면 석송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형 문남규와 함께 평소 법정사(法井寺)에서 승려 김연일(金連日) 등과 교류했고, 김연일로부터 민족의식을 주입받았다. 김연일은 일제의 무단통치로 조선 민중이 고통받는 것에 분노해 독립운동을 벌이기로 결심하고, 1918년 봄에 동료 승려 강창규(姜昌奎), 방동화(房東華)와 함께 항일 비밀결사를 결성한 후 신도들을 널리 포섭하여 조직을 확대했다. 문남은 역시 여기에 가담했고, 1918년 10월 무렵엔 그 숫자가 3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1918년 10월 5일 김연일을 불무황제(佛務皇帝)로 옹위하고 도대장(都大將) 이하 군직(軍職) 체제로 조직을 편성한 뒤, 제주도 내의 일본인 관리를 처단하고 일본인을 제주도에서 내쫓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행동에 앞서 각 면의 이장에게 격문을 배포해 동참할 것을 권유해 400명의 군중을 확보했다. 이후 문남은 등은 일본 경찰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 전선을 절단하여 각 주재소를 고립시킨 뒤 중문 주재소를 습격했으며, 주재소에 감금되었던 13명의 구금자들을 석방하고 일본인 상인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사태의 심각성을 조기에 눈치채고 투입했고, 결국 이틀 만에 문남은를 비롯한 모든 동지들이 체포되었다. 문남은는 이 일로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치청에서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52년 6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문남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후에야 마을 이름이 도순동(道順洞)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