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羋月传, ruby=mǐyuèchuán)] (2015) 미월전 | Legend of Miyue | |
시청 등급 | 15세 이상 시청가 |
방송 시간 | <colbgcolor=#fff,#191919> 매일 밤 7시 30분 매주 월~금 밤 10시 |
방송 기간 | 2015년 11월 30일 ~ 2016년 1월 9일 |
방송 횟수 | 81부작 |
제작 | 조평 |
제작사 | 러시화얼영상 |
채널 | 둥팡위성TV, BTV |
장르 | 중화권 사극 |
연출 | 정효룡 |
극본 | 장성남 |
출연 | 손려, 황헌, 유도, 고운상 外 |
링크 | 공식 웨이보 Asia N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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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러시화얼영상에서 제작한 81부작 드라마로 손려 주연, 11월 30일에 둥팡위성TV와 BTV(북경방송)에서 처음 방영을 시작했다. 중국 최초의 태후이자 혜문왕의 후궁, 소양왕의 어머니, 그리고 시황제의 고조모인 선태후로 불리게 되는 초나라의 공주 미월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옹정황제의 여인의 정효룡(郑晓龙) 감독의 작품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시아N을 통해 편성되어 있어 중국 정통 퓨전 사극 드라마라는 의미가 있다.
편성 국가는 한국, 중국 말고 다른 나라도 있다. 미국은 주로 LA에 있는 KSCI 계열 중국어 섹션 전문 채널인 KSCI LA18 TV에서 편성했었고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까지 전부 편성시켰던 것으로 보이지만 추후 일본과 몽골에도 미월전을 편성할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다.
2. 등장인물
2.1. 주요인물
이 드라마의 주인공. 해당 항목 참조.미월의 이복언니로 훗날 혜문왕의 정후가 된다. 해당 항목 참조.
- 진혜문왕 영사
- 춘신군 황헐
- 의거왕 적려
2.2. 초나라(楚)
2.2.1. 왕족들
미월, 미주의 아버지이자 초나라의 군주.초위왕의 정실왕후로 미주, 초회왕의 어머니.
초위왕과 정실왕후 사이의 아들로 이름은 미괴이다.
초위왕과 제나라 공주사이에서 태어난 공주.
- 미융
2.2.2. 후궁들
- 향부인
미월의 친모로 거희를 모시던 시녀였으나 초위왕의 승은을 입고 회임한다. 패성의 예언으로 인해 부인으로 올려졌으며 초위후의 위협에 시달리나 거희의 도움을 받아 피한다. 그러나 태어난 것은 여자아이. 이로 인해 위왕에게 냉대를 받고 갓 태어난 자식을 위후로 인해 빼앗겨 미친 듯이 헤메다가 물가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자식을 발견하고 안도한다. 그리고 4년이 지나 많은 이들에게 잊혀져가던 중 딸 미월이 위왕을 만나면서 다시금 총애를 얻고 아들 미융을 낳아 비가 된다.
그러나 위왕이 출정한 틈을 노린 위후의 음모[2]에 빠져 병에 걸렸다는 모함에 의해 궁에서 쫒겨나고 위씨에게 겁탈당하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후 3년 동안 위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위염을 낳고 힘든 상황을 이어가던 중 위왕이 돌아오면서 다시 회궁한다. 위후가 준 옷을 의심없이 입었던 댓가를 뼈에 사무치도록 느낀 그녀는 3명의 자식들을 생각하며 버텨왔고 위후가 있는 한 자신과 자식들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해 입궁하자마자 거희에게 자식을 부탁하고 스스로 위후의 눈앞에서 독을 마시고야 만다. 그 자리에 뒤늦게 도착한 위왕에게 위후가 배후임을 고하며 숨을 거두고 미월, 미융과는 결국 재회하지 못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위후를 치려고 했던 계획은 위왕이 갑자기 죽으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설령 살아 있었더라도 좋은 꼴은 못 봤을 확률이 높다.
배우는 손천, 옹정황제의 여인에서는 견환의 심복이었던 최근석 역이었다.
원어 표기는 向氏로, 向은 씨로는 상으로 읽어서 '상씨'라고 하는 것이 옳으나 아시아앤에서는 향씨로 방영했다.
초위왕의 후궁. 항목 참조.
- 남후, 정수
미주가 쩌리 신세가 되고 미월이 태후가 되자 초회왕 옆에 찰싹 달라붙어 근상을 진으로 보낸다. 미월이 근상에게 많은 재물을 주자 미융을 진으로 보내게 해준다. 선악을 떠나 이래저래 미월에게 도움이 되는 인물인 셈. 초회왕의 후궁인 조미인을 질투하여 괴롭히고 공주를 영직의 왕후로 시집보내고 태자 횡을 인질로 보낸다. 미월이 연에서 인질로 고생한 적이 있어 태자 횡에게 편의를 봐주고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자,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앉을 가능성이 낮아져 근상과 머리를 굴린다. 하지만 그것이 역효과가 되어 황헐이 근상과 정수를 치고 태자 횡이 왕위에 오르고 초회왕은 상왕으로 물러나게 된다. 그 이후 등장하지 않지만 태자를 몰아내려고 애를 썼던 이력을 생각하면 제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위미인
魏美人.
위나라의 공주로 한창 합종책을 논하던 정세로 인해 초회왕에게 바쳐진다. 청초한 인상의 미인으로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인지라 초나라의 분위기에 쉽사리 적응을 못하고 정처없이 산책을 하던 중 미주와 혜문왕의 일로 월화대에 연금 중이던 미월과 만나게 된다. 연금 중임에도 낙천적이고 궁궐 여인 같지 않은 미월의 모습에 호감을 느낀 그녀는 미월과 의자매를 맺게 되고, 이후 미월이 중독되어 운신이 힘들 정도로 상태가 나빠지자 그녀가 가르쳐주는 대로 해독이 가능한 뿌리를 구해다 준다.[3] 나중에는 해독에 좋은 녹두탕을 챙겨주면서 미월에게 내가 이렇게 애썼으니까 반드시 건강해져야 해?라는 응원의 말을 던진다. 그러나 회왕의 총애를 받는 것을 고깝게 여긴 정수의 온갖 감언이설과 코가 약간 비뚤어졌으니 부채나 꽃 등으로 코를 가리면 예뻐보일 거란 거짓 충고를 받아들여 회왕을 볼 때마다 코를 가렸는데, 문제는 회왕이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가졌기에 그녀의 행동은 영락없이 냄새 때문에 코를 가린 것으로 보이기 딱 좋았다. 결국 오해한 회왕의 분노 때문에 코를 잘리는 끔찍한 처벌을 받고 절망한 나머지 냉궁에서 자살한다.
그녀의 죽음으로 위나라는 합종책에서 발을 빼게 된다. 나중에 연금에서 풀려나 그녀의 행방을 찾던 미월과 장의의 대화를 통해 정수에게 계책을 알려준 건 장의였고 그녀는 이용당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피리 연주가 특기로 미월에게도 연주를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그녀 사후 미월이 그 피리를 발견해 훗날 태후 시절까지 간직하는 소중한 물건이 된다.[4]
2.2.3. 신하들
해당 항목 참조.간신배로 후궁 정수와 결탁하여 초왕의 눈을 어지럽힌다. 진나라 저리자로부터 뒷돈을 받아 일부러 진 혜문왕과 회왕이 만나도록 주장하고 분위기를 몬다. 뿐만 아니라 돈만 있으면 나라까지 팔아먹을 기세로 미월이 태후가 된 후 근상에게 뒷돈을 주어 미융을 진으로 보내고 무려 한 나라의 태자를 인질로 보내는 미친 짓을 한다. 초회왕이 진나라에 잡히고서 대신들이 새 왕을 추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수의 아들 미란을 추천하나 굴원과 소양, 황헐이 태자 미횡을 제나라에서 데려와 왕위에 앉힌다. 이후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싶었는데 간신배 짓을 톡톡히 하여 미횡이 근상의 말을 믿고 굴원을 쳐낸다.
초나라의 대신으로 근상 정도의 간신배는 아니나 속이 좁다. 자신의 집에 있던 화씨벽이 장의가 온 후 사라지자 장의를 때리다가 장의가 도망간다. 자신의 질녀를 진나라 잉시로 보내고 화씨벽으로 진 궁을 한번 뒤집어놓는다. 이후 진나라 인질로 갔다가 제나라 인질이 된 태자 미횡을 국서를 보내 데려온다.
2.2.4. 심복들
- 대모
초위후를 모시던 상궁으로, 야명주 사건 때 직접 미월의 따귀를 때린 게 이 사람이다. 적들이 넘쳐나는 진으로 시집가게 된 미주를 걱정한 위후에 의해 미주를 따라 진으로 향하게 되고 여차할 경우 미월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충고도 덤으로 들었다. 그렇기에 진으로 향하는 여정 내내 미월의 행동에 사사건건 토를 달지만 미주에 대한 충심과 걱정은 진심이기에 미주에 대한 일에 대해선 미월과 의견이 합쳐지는 경우도 있다.
미주가 무사히 진의 왕후가 된 이후 걸핏하면 미월을 까면서 이간질을 시도하지만 우애가 두터운 미주에 의해 번번히 면박을 듣는다. 미월이 남동생 위염의 일로 긴급히 미주를 찾자 늘 그랬듯이 미월을 박대하고 문까지 걸어 잠그는데, 이에 방법이 없던 미월이 결국 대왕을 찾아가면서 의도치않게 미월이 후궁이 되는 결과를 낳는다. 미월이 대왕의 총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던 그녀는 미주가 총애를 잃은 반면 미월이 회임을 하자 사고를 친다. 미월이 만삭이 되자 미주도 모르게 약을 달이는 상궁에게 사주해 미월의 약에 낙태약을 섞고 이 때문에 미월이 난산을 하게 된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새벽에 진통이 시작되는 바람에 미월의 상궁인 규고와 나인들이 왕후의 처소에 달려와 태의를 불러달라고 했을 때 독단으로 이를 저지하면서 규고를 가둬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5] 그러나 이 때문에 나인 한 명이 울면서 궁을 돌아다니다가 대전 내시와 마주쳐 태의가 미월에게 가고. 미주는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혜왕과 후궁들보다도 늦게 미월의 처소에 가게 되어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는데, 이 때 미주 대신 나서다가 혜왕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결국 미월에게 한 짓이 밝혀져 목이 잘리고 궁에 걸린다.
* 규고
규상궁. 미월의 유모로 미월의 옆에서 정신적 멘토가 되어준다. 어린 시절부터 미월 남매와 항상 함께 했고 향씨가 궁 밖으로 쫒겨났을 때 몰래 미월과 만나게 한 적이 있다. 초위왕 사후 미월 남매가 능을 지키기 위해 궁 밖으로 내쳐졌을 때 같이 생활하다가 능에 제사를 온 위후의 트집 때문에 곤장을 맞는 고초를 겪기도 한다. 길가에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던 장의를 직접 간호했기 때문에 이에 고마움을 느낀 장의에게 많은 보답을 받았다. 물론 미월의 진나라 행에도 함께 했으며 여러모로 힘들어하는 미월을 위해 좋은 말을 많이 해준다. 미월과 영직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했기에 미월도 그녀를 많이 의지한다. 미주의 음모로 영직이 벌에 쏘일 뻔할 때 몸을 던져 자신이 대신 쏘이는 등 매우 충직하다. 이후 미월이 연나라로 쫓겨났을 때도 함께 따라가서 고생을 한다. 미인의 계략으로 처소에 불이 났을 때 영직의 몇 안 되는 좋은 옷을 건지기 위해 다시 불길에 들어가 옷은 건지지만 자신은 죽게 된다.
여러모로 미월의 어머니 같은 존재. 어렸을 때부터 보살핌을 받았으며 미월의 동생들도 그녀를 어머니처럼 대한다. 영직도 규고를 친할머니처럼 대한다. 그러나 고생 끝에 사망하고, 이때 미월은 이제까지 중에 가장 크게 멘탈이 붕괴되어 절규를 한다. 미월이 태후가 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작중 내내 고생만 하다가 죽은 인물.
- 지부인
초의 여의녀로 패왕을 임신한 향씨를 보살핀다. 향씨가 눈엣가시인 위후는 지부인의 아들을 인질 삼아 낙태시키라고 협박한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는 왕자가 아닌 공주로 지부인은 아이를 그대로 받고 미월은 무사히 태어난다. 미주 자매가 시집갈 때 진으로 같이 동행했다. 미월이 임신했을 때에 미월을 돌보았으며, 임신 사실이 알려지기 전 저잣거리를 나가다가 황헐과 만나게 된다. 황헐이 편지를 주며 미월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끝내 불태워버린다. 추후 미월에게 황헐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게 된다. 미월의 출산을 도우며 벌에 쏘인 규고와 영탕을 살린다. 이후 혜후에 의해 죽게 된다.
2.3. 진나라(秦)
2.3.1. 왕족들
- 영부인
혜문왕의 누나로 혜문왕이 흉금을 터놓을 정도로 막역한 관계다. 용예와는 그렇고 그런사이. 미월이 동부절[6] 사건으로 위부인을 고발했다가 증거가 없어 도리어 혜왕에게 혼났을 당시 그 동부절을 입수하여 직접 혜왕에게 위부인의 동부절을 보여준다. 혜왕의 대공주 맹영을 직접 키웠는데 맹영이 직접 소개한 미월에게 관심을 두고 미월에게 후궁의 도리를 언급하며 많은 것을 가르치고 친하게 지낸다.
맹영이 연나라로 시집가는 것을 거부하고 단식투쟁을 하자 그녀를 불러 공주로서의 의무와 여인의 한계를 일러 설득시켜 시집보냈다. 이 때 그녀의 과거가 드러나는데 본래 위나라 태자에게 시집을 갔으나 위와 진이 전쟁을 벌일 때 혜문왕의 요구에 의해 위의 정보를 낱낱히 전해줌으로써 부군을 배신했다는 멸시를 받으며 위나라에서 참수를 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진에서 성 5개를 반환해주는 조건으로 영부인을 살려줄 것을 요구해 살아서 진으로 돌아왔다고.
대왕은 태자 문제로 죽기 직전까지 고심하고 결국 누나인 영부인에게 성지를 남긴다. 혜왕 사후엔 조용히 지냈으나 혜문왕이 성지를 남긴 것에 불안감을 느낀 혜후가 성지를 빼앗으려 괴롭히고 돈을 너무 많이 쓴다며 모든 물자를 끊어버린다. 이에 영부인은 혜후가 자기를 찾아오는 것을 바라는 것이라며 그렇게 해줄 수 없다며 말년에 직접 농사를 짓다가 골병이 든다. 진 무왕이 갑작스레 죽고 나라가 개판 5분 전에 이르자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연국의 인질상태인 미월과 영직을 불러와야 할 필요성을 느껴 용예를 미월 쪽에 보낸다.[7] 겨우 미월과 재회한 후 선왕의 밀지가 숨겨진 비녀를 미월에게 건네고 미주의 추격이 다가오자 미월 일행을 비밀 통로로 도망치게 한다.
선왕의 유서를 찾으러 미주가 궁을 포위하고 밀지를 내놓으라고 협박하자 자신은 줄 수 없고 너 같은 것에게 주지 않는다며 당당하게 말한다. 결국 그 곳에 도착한 미주 때문에 산 채로 불타는 궁에 갇히지만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 맹영 공주
혜문왕의 대공주로 영부인의 아래에서 자랐으며 말을 타는 곳에서 만난 미월에게 호감을 느끼고 영부인과도 연결시켜준다. 이후 그녀를 견제한 위부인파에 의해 연국의 왕후로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그 상대가 태자가 아니라 나이가 50이 넘고 다리까지 저는 연왕이란 사실에 혼사를 거부하며 단식투쟁까지 한다. 그러나 본인의 입장과 의무를 자각하라는 영부인의 눈물어린 충고에 정신을 차리고 미월의 응원을 받으며 연국으로 향한다.
진이 여러 나라와 대치 상태에 놓이자 혜문왕은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2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아들을 낳았으나 연왕이 세상을 떠나고 연의 태자가 새로 연왕에 오른 후 나라는 개판이 된다.
맹영 모자의 목숨이 위협받을 상황까지 이르자 진에 서신을 넣었다.[8][9] 전쟁 중이라 병력이 부족한 마당에 혜문왕은 선뜻 나서지 못하지만 미월이 적은 병력으로 한의 인질로 가 있는 맹영을 구해올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모자를 구하기 위해 위염을 보내지만 중간에 공격을 받아 아들과 헤어지고 끝내 맹영만 구출된다. 맹영은 혜문왕에게 아들을 구해달라고 간청하지만 거부당한다.[10][11] 맹영은 자신을 구해준 소진을 연모해 소진이 진나라 조정에 등용되기를 원하는데, 이를 알아챈 미주가 미월이 대왕에게 잘 말해줄 거라면서 둘을 이간질시킨다.[12] 소진이 진나라를 떠나려 할 때 맹영의 아들 직아를 꺼내올 방법을 이야기해주고 맹영은 그대로 혜문왕에게 가서 이야기한다. 이에 혜문왕은 미주에게 소진이 장의와 같은 생각을 해냈다며 소진을 등용할 생각을 내비치나 미주는 이전에 미월이 혼잣말로 얘기한 그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이야기하여 소진의 등용을 막는다. 그리고 맹영은 소진이 중용되지 못한 것이 미월 때문이라 생각하고 소진이 진국을 떠나는 상황이 되자 미월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한다. 5국 연맹이 깨지고 연나라가 공격받아 연왕이 죽자 맹영의 아들이 왕이 되었고 맹영은 역후가 되어 돌아가게 된다.
미월 모자가 연국에 인질로 있을 당시 맹영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하나[13] 중간에 서신을 가로챈 미인에 의해 실패한다. 소진을 통해 자신이 미월을 오해했으며 미월 일행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된 후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중개상인 오할머니를 보낸다. 오할머니는 도이라는 사람이 미월의 책을 원한다며 미월 일행에게 거액의 선금과 보상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조차 미인에 의해 망한다. 미인이 미월을 공격하려고 군까지 이끌고 가는데 이후 연락이 닿아 연국을 탈출하려고 미인 측의 추격대와 맞짱을 뜨려던 타이밍에 나타난다. 맹영은 미월을 빨리 돕지 못한 것에 사과하고 곽외와 이야기하여 미월을 진나라로 보내려한다.[14]
- 무왕 영탕
혜문왕와 미주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혜왕의 유일한 적통 공자이기 때문에 위치로만 따지면 어렸을 때부터 유력한 태자 후보로 점쳐졌다.
그러나 미주가 너무 오냐오냐 키운 탓에 어렸을 때부터 제멋대로에 싹수가 노란 게 보이는데, 수 틀리면 궁녀를 장난감으로 때리고 더 커서는 자신의 칼집으로 내관들을 패며 다른 왕자들을 무시하고 때리고 다닌다. 심지어 왕의 장자인 영화까지도 무시한다. 혜문왕의 눈에 들기 위해 미주가 시킨것으로 보이는 병법시연을 하려던 중, 편을 가르기 위해 던진 공이 깊은 구덩이로 빠지자 대왕 앞에서 내관들을 패다가 오히려 미주가 다른 후궁들에게 비웃음을 받고 영직을 돋보이게 하는 역효과를 냈다.
감무와 저리질에게 교육을 받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직아가 똑똑해 총애를 받자 미주는 일부러 직아를 공부 친구로 두는데 이는 또다시 역효과만 낸다. 무술 훈련한다고 숙제를 하지 않고 튄 것, 그리고 한나라와 파나라 전쟁에서 줏대없는 모습을 보인다. 영직이 부왕의 눈에 띄자 은근히 견제하지만 천성이 악독하고 머리도 무식하니 화내는 것 말고는 별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게다가 모친인 미주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는데, 벌집 사건 때도 궁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궁인들 몰래 기어이 탈출하여 술까지 퍼 마시고 술 냄새를 좋아하는 벌에 가장 호되게 당한다. 성인이 되어 미주는 아들의 배필로 초나라 공주를 염두에 두는데 이에 시큰둥한 모습을 보이고 이후 하필이면 위부인 조카를 마음에 담는다. 나이가 들어서는 아예 무뢰배 패거리들을 궁에서 몰고 다니며 번소사의 아들을 두들겨 패 끝내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부친을 모시는 목감에게까지 함부로 구는 등 그야말로 개막장 인간쓰레기. 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빡친 혜왕의 질책에도 되려 씩씩거리는 등 그야말로 노답스런 행태를 보인다.
항상 자신이 적통 공자임을 주장하고 형인 영화에게도 무지막지하게 대든다. 위부인 조카 위이에게 반하여 찝적거린다. 모친은 초나라 공주와의 혼사를 추진했으나 본인이 대들면서 완강하게 거절했다. 대왕을 찾아가 한나라는 힘이없고 연과 초하고는 이미 혼인을 맺었고 공손연이 위를 떠난 지금 위와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이유로 혼인을 요청하고 허락받는다. 영통과 영직을 시도때도 없이 괴롭히다가 태자가 된 이후로는 동네 북이 되어버린 영통을 더 심하게 괴롭힌다. 결국 그 괴롭힘이 지나쳐 영통이 자살하게 되고 태자 때문에 미주가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이 일로 엄청나게 빡친 혜문왕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서 쓰러지게 된다. 즉위 후 나랏일을 너무 못해 저리질을 개빡치게한다. 특히 장군으로서 엄청난 공을 세운 위염을 파직하고 못된 3인방에게 쳐맞게 하기까지 해 사마착이 이에 빡쳐 사직한다. 무려 주요 장군 2명이 사직하는 개막장상태로 치닫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백기가 빡돌아서 의거로 돌아오고 진나라 국경을 신나게 공격하는데 저리질이 의거를 때려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나 무왕이 그깟 의거가 무슨 대수냐면서 씹는다. 병신 3인방과 함께 한나라를 공격하고 수도까지 쳐들어가자 저리질이 기겁하고 안 그래도 초와 연이 연맹을 맺고 이전 혜문왕 시절 5국 연맹에 진땀뺐던 기억이 나지 않는지 오히려 주나라에서 힘자랑을 하겠다고 솥을 들어올리다 뒤로 넘어져 코에서 피를 쏟고 어이없게 사망한다. 병신 3인방은 말리지 않았다며 미주가 빡쳐 다 죽여버리고 구족을 멸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실제 역사에서는 아버지와 이복동생에 가려진 명군이다. 최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승상 제도를 최초로 도입하고 진나라의 영토를 넓히고 감무를 등용하는 등 진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 소양왕 영직
어린시절 | |
성인 |
배우는 드라마 진혼으로 유명한 주일룡.
혜문왕과 미월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가장 혜문왕에게 총애를 받는다. 적자인 영탕과 대조적으로 어린 나이임에도 굉장히 총명하다. 어린 나이에 영탕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밀쳐서 넘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심하면 뺨도 맞았다. 미월에게 교육을 잘 받아서 영특하다. 사방관에서 파나라와의 전쟁을 고르는데 혜문왕이 그 이유를 묻자, 다수가 생각한 것은 남들이 다 알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일 이후로 혜문왕은 영직이 태자가 될 재목이라고 생각하나 미월이 적통 공자인 영탕과 엮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이 일로 멀어진다. 그래도 금방 회복되나 여전히 혜문왕은 직아를 태자로 생각하나 결국 영탕이 태자가 되고 그 이후로도 괴롭힘만 심해진다. 특히 집중 공격을 당한 영통과 동병상련을 느끼고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영통이 자살하고 크게 슬퍼한다. 결국 혜문왕 사후 미월과 함께 연나라로 가게되면서 어린 나이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15] 의거왕의 도움으로 진으로 돌아오게 되고 왕의 자리에 오른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모후인 미월과 함께 정치를 한다. 황헐에겐 친근감을 느끼는 반면 모친의 애인인 의거왕은 어릴 때는 홧김에 칼로 팔을 베는 등 적대감을 느끼고 있으며[16]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라 모친이 의거왕과 혼인했다는 소식에는 불같이 분노하는 등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성인이 된 이후로 왕비를 맞아들여 혼인하는데 하필이면 그 시기에 미월이 의거왕의 아이를 가진다. 미월이 출산할 때 밖에서 기다리고 아이를 무사히 낳았다는 것과 아들을 낳았다는 것에 뒤돌아서 가버린다.
다만 효심은 매우 깊어서 미월에게 항의하다가도 모자지간의 정을 이야기하면 마음이 약해지며, 의거왕 사후 폐인처럼 된 모친을 보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다.
- 영화
혜문왕과 위염(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아들 중 제일 연장자. 모친이 미월의 동생 소염을 인질 삼아 미월을 협박해 위나라 하인과 혼인시키려 할 때 미월을 내쫒는 건 너무하지 않냐며 미월의 편을 드는 것은 물론이고 지체 높은 공주인 미월을 자신과 혼인시키는 게 낫지 않냐며 말해서 모친을 빡치게 만든 걸 보면 미월에게 연애 감정이 있던 모양(...) 물론 입장상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선봉으로 서 공을 세운다. 뿐만아니라 갑옷을 발전시켜 부왕에게 칭찬을 받는 듯 하지만 위부인이 화씨벽 사건에 개입했다 하여 은근히 냉대한다. 모친인 위부인과 달리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며 특히 영탕이 다른 서자들에게 패악질을 부릴 때 나타나 따귀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결국 미주가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만들기 위해 직접 왕에게 공자들에게 분봉을 해 줄 것을 건의하여 회양군으로 책봉되고 함양을 떠나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도인 함양과 가깝다는 점.. 혜문왕이 번장사 고발사건으로 태자를 폐위하려 했으나 그대로 죽으면서 위부인의 바람이 완전히 끝장났으나 운좋게 무왕이 4년 재위밖에 못하고 죽으면서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온다. 위이는 가짜 임신을 꾸미고 화는 그것을 알고 9족을 멸할 죄라면서 위험하다고 하나 위부인이 때에 맞춰 밖에서 사내아이를 데려오고 화가 왕위에 오를 거라고 계획을 세우자 동참한다. 미주가 감무와 꾸미고 모든 공자들을 선실전으로 부르는데 복숭아를 가지고 하나는 저리질에 하나는 자기가 먹었고 또다른 하나를 누구를 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공자들끼리 싸움을 부추기고 미주가 왕으로 밀고 있는 공자 회를 칼로 찔러 죽여버린다. 그리고 공자 화가 선실전 주변을 자신의 군대로 둘러싸고 장악해버려 미주의 계획이 틀어진다.
부왕의 유서로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위부인은 미월의 정권에 불만이 가진 사람이 많다며 따로 진나라 안에 다른 정권을 만들고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한다. 하지만 화가 서자 출신이라 정실부인인 혜후의 인장 없이 왕이 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위부인은 혜후 쪽으로 달라붙고 혜후는 화가 있는 궁으로 도망간다. 모친인 위부인 때문에 태후가 된 미월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처형된다.
- 영장
- 영회
- 영통
번소사의 아들로 역시나 영탕에게 맞고 산다. 심지어 영탕이 강아지까지 죽였다. 번소사는 왕후의 아들에게 대들 수 없다고 말하고 그 소식을 들은 미월은 번소사에게 새를 한마리 보내준다. 영탕이 하도 영통과 영직을 때려 보다 못한 영화가 영탕에게 싸대기를 날려줬다. 추후 미주 쪽이 양봉을 옮기는 것을 목격했고 번소사에게 말해줬다. 왕자들을 제후로 책봉하여 밖으로 내보낸다고 하자 번소사는 자신의 아들이 걸릴까봐 걱정했으나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궁에서 살게 되는데 영탕이 태자로 책봉된 이후 괴롭힘이 더 심해져 아예 끌고 가서 다굴로 때린다. 얼굴에 많은 상처를 입고 어머니 번장사에게 왔지만 억울하기만 할 뿐 말을 할 수가 없다. 번장사는 큰 마음 먹고 왕후를 찾아가지만 왕후가 막장부모라 말해도 씨알도 안먹힌다. 번장사가 나간 뒤 영통은 천장을 한 번 바라보더니 자살했다. 이 일로 번장사가 흑화되어 소복 차림으로 혜문왕을 찾아간다.
- 위이 공주, 무왕후
드라마 50회 근처에서 등장하며 위부인의 조카다. 미주가 왕자들에게 땅을 나눠주어 함양을 떠나게 하려고 하자(황제국이라 생각한다면 친왕의 직위를 주어 내보내는 것) 위이가 대왕에게 영화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해 주어 화를 내보내지 못하게 하도록 일조한다. 위부인은 내심 위이가 대왕의 후궁이 되는 것을 바라나 영탕이 그녀를 마음에 품자 계획을 바꾼다. 영탕이 태자에 오르자 위이가 왕후로 간택된다. 위부인은 혜왕의 후궁으로 밀었지만 본인이 욕심이 있어 영탕이 태자로 될 것 같자 욕심을 낸다. 본인도 아주 탕아에 대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영탕이 주에 가 솥을 들다가 급사해버리자 과부가 되어버린다. 위부인과 함께 가짜 임신을 계획하여 시어머니 미주를 속이고 진을 위로 넘기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돌아온 미월에 의해 가짜 임신이 밝혀지고 위부인과 함께 뒷방늙은이가 되나 아버지 위왕이 다시 위로 돌아오라고 하여 돌아간다.[18] 영화의 난으로 위부인이 죽고 영화가 처형당한다.
- 미요공주
- 영불
2.3.2. 후궁들
- 위부인
배우는 마소. 위나라 공주로 죽은 전 혜문후의 여동생, 혜문왕의 총애를 받고 있으며 부인의 지위에 올랐다. 언니 사후 자신이 왕후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아들인 영화를 태자로 올릴 계획이었기에 초나라에서 왕후로 온 미주와 미월을 눈엣가시로 여겨 미주가 진나라로 넘어오기 전에 없애 버리려고 음식에 약을 타도록 했으나 미월 쪽이 눈치채서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동부절을 맡겼기에 나중에 자신의 동부절을 공손연에게 찾지 못해 안절부절했는데 공교롭게도 미월이 자신을 고발하려다 헛다리를 짚는 바람에 한숨 돌린다.[19]
미월의 남동생 소염에게 도둑 누명을 씌워놓고 미월에게 동생을 구하고 싶다면 자신의 하인과 혼인하라며 협박했으나 도리어 미월이 총애를 받기 시작하면서 공손연이 위로 도망가다가 잡히면서 큰 위기를 맞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위소사가 자살하고 혈서를 들고 하루종일 무릎꿇고 빌자 대왕이 적당한 선에서 끝나게 된다.. 이 사건을 발단으로 위와 진이 전쟁을 하게 되자 위부인은 왕에게 상소를 올린다. 바로 공자 화를 전장의 선봉으로 세워달라는 것. 공자 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국을 공격하라고 한다.
미월과 미주의 사이를 이간질하며 자신의 조카가 진으로 와서 같이 생활하던 중, 조카가 미주의 아들 영탕의 눈에 들자 바로 둘을 혼인시키고 미주와 일단은 동맹 관계가 된다. 혜왕 사후 미월은 연국으로 쫒겨 나고 영탕이 대왕에 오르면서 조카는 왕후가 되어 승승장구하나 싶었으나 대왕이 수나라 앞에서 힘자랑 하다가 어이없게 죽게 된다. 위이와 함께 가짜 임신을 꾸미고 화를 왕으로 세우려 한다. 세력을 늘리기 위해 궁 밖에서 머무르며 연을 탈출한 미월을 납치한다. 미월에게 혜문왕의 유서를 보여달라며 직을 왕으로 올리고 화에게 섭정을 시키자며 회유하지만 넘어가지 않자 독을 구해와 중독시킨다.
이후 모국인 위를 위해 진을 위에 넘기려고 계획을 짰으나 미월이 선왕의 성지를 들고 나타나 실패하고 정작 본인이 그토록 노력을 바쳤던 위나라는 그녀와 조카를 버린다. 이후 건강이 나빠진 상태에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반란을 획책했다가 실패하고 자신을 잡으러 온 병사들 앞에서 거의 정줄을 놓고 태후의 지위에 집착하며 결국 피를 토하고 죽는다. 이후 아들도 처형되었으니 그저 망했어요.
실제 역사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가공인물이다. 사마천의 지은 역사서 사기에 따르면 혜문왕에게는 오직 2명의 부인이 있었다고 서술되는데, 드라마에서 미주의 모티브인 혜문후와 미월의 모티브인 선태후가 그들이다.
- 번소사
위나라 출신 혜문왕의 후궁으로 미주가 왕후가 되었을 당시 회임 중으로, 다소 소심한 성격이라 다른 후궁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온갖 암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한 발 물러서 있는 스탠스를 취한다. 그러나 곽미인과 미주가 싸움이 났을 때 영부인이 등장하자 당황해 자리를 뜨려다 누군가의 발에 걸려 계단을 굴러 넘어지고 이 때문에 아이를 조산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해 혜문왕이 미주를 크게 질책했다. 공자를 낳고 나서 미월이 번소사의 처소를 방문하자 조금 싫어하는 눈치를 보인다. 하지만 미월이 솜씨 좋은 배냇저고리를 선물하자 금세 풀어지고 그 때 당시의 일을 회상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가 발을 걸었다'라는 말을 했다가 금방 말을 바꾼다. 미월이 팔자에 봉해지고 나서 '장사'로 진급한다. 적통공자 영탕이 매번 자신의 아들을 괴롭히는걸 알지만 차마 입 밖에는 꺼내지 못한다.[20] 미주가 왕자들을 제후로 봉하여 밖으로 내쫓자 자신의 아들이 걸릴까봐 걱정한다. 만약 이때 어디든지 봉해져서 나갔더라면 영통이 그렇게 죽지 않았을 텐데 현명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항상 울분을 참고 살고 영통이 10대 중반이 된 나이에도 폭력은 끊이지 않는다. 태자에게 잡혀가 개 패듯이 맞은 후 돌아왔는데 번장사는 치료를 해주면서 자신이 어떻게 해 줄 수 없고 영통은 그런 현실에 화를 낸다. 결국 번장사는 왕후를 찾아가고 태자에 대해 말하지만 언제나 그런 일이 있을 적마다 애들은 그렇게 크는 거라면서 막장부모식 마인드에 통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영통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대왕에게까지 들어간다. 번장사는 야심한 밤에 소복을 입고 왕을 찾아가 이전 일을 언급하며 다 왕후가 한 것이라며 눈물을 쏟으며 고발한다. 허나, 나이도 먹고 쇠약해진 혜문왕이 얼마 못 가 쓰러지고.. 번장사의 운명은(...)
해당 배우는 옹정황제의 여인에서 심미장 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 강직하고, 자존심이 강한 심미장과 소심하기 짝이 없는 번소사와는 굉장히 대조적이다.
- 위소사
위부인과 자매처럼 지내는 인물이다. 위부인이 진나라로 시집올 때 같이 따라왔으며 슬하에 1남이 있다. 태자 자리와는 거리가 머나 위나라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위부인을 도우며 미주와 미월 자매를 싫어한다. 항상 위부인의 처소에 와서 신세 타령을 한다. 추후 미월이 팔자에 봉해지자 자신은 공자를 낳았어도 지금의 나이에 이제서야 장사인데 미월의 직급이 너무 높다며 투덜거린다. 위와 진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위부인이 위기를 맞게 되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21]
- 괵미인
위나라 출신으로 입궁한 지 3일 만에 미인 첩지를 받았다. 미주 자매를 아주 싫어한다. 왕후가 벌을 내리자 분해 하며 위부인이 해 준 이야기[22]를 듣고 자기도 자살 소동을 벌일 생각이었으나 제발로 의자를 차버린 게 문을 막아서(...) 본의 아니게 정말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 위양인
위에서 왔으며 후궁들 중에서 중립을 지키며 궁궐의 소식통, 정보통이다. 미월이 위량인이 음식을 잘한다고 칭찬하였다. 미월에게 호의적으로 대한다. 미월의 동생이 궁형에 당할 위기에 처하자 위량인이 고담을 통해 이를 대왕에게 전한다. 당부인과 같이 어울린다. 하지만, 미주와 미월의 냉전 중에 불똥이 튈까봐 은근히 미월을 멀리 한다. 화씨벽 사건 이후로 미월에게 우호적으로 돌아서며 혜문왕과 미월의 사이가 서먹서먹해지면 징검다리도 놔준다. 미주가 어화원을 새로 꾸밀 준비를 하는데 위량인이 풍수를 언급하며 대왕에게 말한다. 일을 벌인 건 미주이나 정작 해결하는 건 위량인(...) 나중에 미월이 태후가 되었을 때까지 살아있으며 태후에게 좋은 대접을 받는다.
- 당부인
당에서 왔으며 후궁 중에서 대왕을 모신 지 가장 오래 되었다. 미월에게 주려던 파촉 땅을 혜문왕이 당부인 아들에게 하사하는데 하필이면 아들의 성격이 오만방자하여 화를 일으켜 암살당하고 만다. 위량인과 친하게 지내며 미월에게 호의적으로 대한다.
- 맹소씨
배우는 서백훼. 미월과 함께 초에서 온 잉첩으로 아버지가 초의 대신이다. 이간질하는 게 취미로 대모와 함께 매사 미월을 까댄다. 미주가 임신한 후 초 출신이 후궁 정권을 잡게 하기 위해 맹소씨를 대왕에게 추천한다. 맹소씨가 승은을 입긴 했으나 총애는 받지 못한다. 미월을 질투하여 잠깐 출궁했을 때 대왕의 집무실로 일러바치러 갔으나 정작 내막을 알고 있던 혜왕에게 호되게 혼나기만 한다. 나중에 화씨벽을 미주 자매가 풀고 있을 때 미리 안에다가 독을 묻혀 놓아 미월이 독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맨다. 이 사건의 배후로 주목되어 혜문왕이 죽인다.[23]
- 경씨
역시 미월과 함께 잉첩으로 왔다. 미주가 밀어주어 승은을 입게 된다. 맹소씨와는 다르게 미월을 까내리거나 하지 않는다. 화씨벽 때 미주가 초에서 가져온 진귀한 약통을 가지고 있고 해독제를 먹었다는 것을 비밀로 하라고 했으나 떠들고 다닌다. 영탕을 자랑하려고 꾸민 자리에 패륜짓을 벌이자 대놓고 왕후를 비웃는다.
2.3.3. 신하들
- 용예
영부인과 그렇고 그런 사이이며 미월이 진나라로 넘어올 때 미주가 아프자 직접 약재를 사러갔을 때 초나라어를 번역하여 도움을 준다. 미월이 의거국에 인질로 있을 당시 장의와 함께 인질 협상에 나섰으며 혜왕 사후 미월이 연국에 있을 때 영부인의 부탁으로 미월을 찾아 내어 진국의 상황을 전달한다. 고문의 달인이다. 화씨벽 사건 때 중행기를 고문하면서 장의가 거론되자 장의를 의심하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 태자 자리에 영직을 생각하지만 미월이 생각하지 않자 답답해한다. 미월 모자가 연으로 떠나게 되자 안타까움과 동시에 열받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게 용씨 집안이 진나라의 개국공신이기 때문에 미주가 해하지 않을 거라는 점. 영부인 옆에 계속 있고 인맥을 이용하여 영부인의 궁에 들어오고 이것저것 생필품을 가져다주며 도와준다. 무왕 사후 영부인이 미월을 데리고 오라며 연나라로 보낸다.
이후 미월이 진에 돌아오는 것을 도왔으며 이후로도 마지막까지 미월의 정치적인 아군이 되어준다. 또한 마이페이스적인 면이 있어 태후가 된 미월의 행동에 다른 신하들이 경악할 때도 태평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월이 적려의 아이를 임신하자 해결책을 내놓는다.[24] 초나라 근상과 손을 잡고 초나라 태자인 미횡을 사지에 몰았다. 그리고 근상을 배신하여 초회왕을 가두었고 미월을 찾아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해야 한다며 초와의 전쟁을 권유한다. 미월이 용예의 말을 듣고 예전 혜문왕의 말이 생각나 초 공격을 결정하고 초나라가 반토막이 난다. 추후 저리질이 죽고 나서 승상의 자리를 권유받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 저리질
혜문왕의 형제로 승상의 직위에 있다. 혜문왕이 초에 왔을 때 같이 따라왔다. 혜문왕이 정치적으로 많이 의지하는 존재이다. 화씨벽 사건 때 장의를 의심하였고 사신으로 보내지 말 것을 요청한다. 추후, 태자 자리 다툼에서 적통공자인 영탕을 지지한다. 자신이 직접 가르쳤기 때문에 영탕의 기질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적통'만을 강조한다. 혜문왕이 죽기 직전 영통 자살사건으로 영탕에게 엄청 실망하고 진의 앞날이 걱정되어 영직으로 태자를 바꾸려고 하나 저리질이 적통과 장자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주장에 밀린다. 미주의 성질을 모르고 있다가 혜문왕 사후 미주가 막무가내로 굴자 엄청 놀라워한다. 진의 장수로서 공을 많이 세운 사마착 장군과 위염장군에게 모욕을 주자 엄청 당황해하며 둘을 달래지만 사마착과 위염은 저리질을 증오한다.
위나라 출신으로 극 초반에 초나라에 머문다. 초에서 정수에게 위미인 없애기 프로젝트를 제안해준다. 초에서 진혜왕을 만나고 나서 진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진에 와서 머리에 관을 쓰지 않는다고 공손연이 구박하자 자신의 머리는 천하를 짊어지느라 무거워서 쓸 수 없다고 대답한다. 공자 화를 태자로 만들려는 공손연을 세 치 혀로 공격하여 무마시켰다. 초와의 관계에서 육백리를 넘겨 주기로 한 것에 대왕이 엄청 화를 내고 쫓겨나는데 미월이 진위[26]를 알고 대왕에게 고하여 다시 총애받는 신하가 된다. 황헐이 진나라에 온 것을 보고 미월이 초에서 구박받던 공주가 아니라 총애받는 후궁인 팔자라며 미월을 포기할 것을 종용한다.
초에서 고초를 겪었던 화씨벽이 진에 나타난다.[27] 장의는 미월에게 화씨벽을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어쩔 수 없이 미월이 나선다.[28] 미월이 낙찰받은 후 풀다가 독에 중독되자 사건에 엮인다. 위에 있을 때 중행기와 아는 사이였고 장의를 물고 넘어지자 의심받고 5국 동맹을 깨뜨리기 위한 준비가 지체된다. 결국 혜문왕의 의심에 장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집에 있는 하인들을 전부 물리며 술에 의지한다. 하지만 미월의 도움으로 의심을 풀게 되었고 5국 연맹을 파하려 사신으로 가게 된다.[29] 5국연맹이 다 깨진 후 정복전쟁으로 한나라를 치냐 파나라를 치냐는 문제로 사마착과 대립을 보인다. 혜문왕도 선뜻 누구의 의견을 들어주기가 힘들어 영탕과 영직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고 사방관까지 가게 된다.[30] 사방관에서 직아에게 먹을 것을 주며 한나라를 지지해달라 호소를 하지만 먹던 것을 뱉으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직아는 파나라를 선택하는데 그 이유는 남들이 생각한 것은 다 알기 때문이라고. 영탕은 한나라와의 전쟁을 선택하는데 이유는 다수가 골랐기 때문에. 장의는 미월과 만난 후 파나라와 촉나라를 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다. 혜문왕은 그 이유를 묻고, 자신이 한나라를 치려고 했던 것은 공손연이 그 쪽에 재상으로 있고 과거 악연때문에 악심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만 파, 촉까지 가는 길이 험난한데 장의는 옛 고사를 말하며 파나라 왕에게 금은보화를 하사하면 좋아할 것이며 틈을 노려 공격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혜문왕은 장의의 생각에 동의하고 파, 촉나라가 진나라에 흡수되어 초나라까지 가는 길이 직접적으로 열리게 되었다.[31] 태자 자리로 영직을 생각하나 미월이 생각이 없자 후회하고 착한 미월이 나중에 해를 입게 될 거라고 말한다. 결국 태자 영탕이 왕위를 물려받고 미월 모자가 순장되는 것을 막은 뒤 연으로 떠나는 미월에게 작별인사를 전한다. 미월이 마차에 오르려 하자 자신이 직접 무릎을 꿇어 마차에 오르는 것을 돕는다. 그가 얼마나 미월의 가능성을 믿었는지, 또 떠나는 것에 얼마나 안타까워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 떠나가는 마차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미월 모자가 떠나는 것은 다 촉으로 보내주지 못한 자신에게 있다고 자책하며 떠나기 전 용예에게 언젠가 미월 모자가 돌아오면 명문가인 용가문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달라 청한다. 실제로 용예는 미월이 돌아온 후 든든한 정치적 아군이 되었으니 그의 마지막 청이 이뤄진 셈. 혜문왕이 죽고 사이가 좋지 않던 미주의 아들이 왕에 오르자 자기가 스스로 떠난다. 그리고 고향인 위나라에서 생을 마감한다.
- 위염
미월의 이부동생으로 미월이 진으로 올 때 같이 따라왔다. 위소사 아들의 검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새끼손가락이 잘려나가는 형벌을 받고 군으로 나가게 된다. 진나라가 계속 전쟁의 상황에 놓이자 미월이 걱정한다. 중반부에 성인 배역이 등장한다.[32] 44화에서 혜문왕과 함께 출정해 오누이끼리 대화를 나눌 시간을 얻었는데, 그곳에서 미월을 알아본 소랑이 미월에게 접근해 누나라고 부르며 어릴 때 했던 것 마냥 부비부비 시전하는 모습에 소랑에게 니가 뭔데 누나라고 부르냐면서 화를 내고 내내 툴툴거리더니 둘이 한판 붙기도 했다.
- 공손연
위에서 온 인물로 초와의 국혼을 반대했다. 공자 화를 태자로 만들려고 하였으나 장의 때문에 실패한다. 이후 장의 때문에 입지가 많이 줄어든다. 위의 사신이 위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고 결국 위로 간다. 도중에 저리질에 의해 잡히게 되고 목감이 동부절을 준다. 그리고 금은보화를 하사한다.[36]
진을 떠난 후 단단히 화가 치밀었는지 진을 발라 주겠다며 5국연맹을 만들고 진을 위기에 빠뜨린다. 화씨벽 사건의 주모자이며 장의와 혜문왕 사이를 이간질하고 미월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1석 2조의 효과를 봤다. 위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한나라로 넘어간다.
- 감무
- 사마착
- 몽오
- 미융
2.3.4. 심복들
- 목검
- 목신
- 향아, 혜아
- 산호, 진주
- 풍갑
2.4. 연나라(燕)
- 맹영공주
- 연왕
- 곽외
- 한오
- 조신
- 오할머니
- 정씨
해당 배우는 옹정황제의 여인의 전추 역을 연기했었다.
* 릉아
- 청청
2.5. 의거국
- 소랑, 백기
의거국에 인질로 있던 미월이 만난 소년으로 이른바 늑대소년(야생아)이라 의거국 내에서도 다들 손놓은 상황이었으나 미월이 관심을 두고 돌본 덕에 의거왕과 함께 지내게 된다. 미월과 의남매 사이가 되었으나 그녀가 다시 진으로 돌아가자 무척 아쉬워했다. 이후 무척 성장해서 44회에서 의거국에 혜문왕과 온 미월과 재회했는데 서로 반가워하는 와중에 미월의 남동생 위염과는 티격태격했다.[41] 이후 미월의 부탁으로 함께 진으로 가게된다. 늑대들과 같이 컸기 때문에 소랑이라 불렸지만 발견되었을 때 백이라고 적힌 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백씨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이를 들은 미월이 지어준 이름은 바로... 혜문왕 사후 무왕이 위염을 모독하고 이에 열받은 사마착이 사직하자 의거로 돌아갔다. 적려에게 진을 혼란스럽게 하면 위염이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하자 그런 건 자기가 제일 잘하는 것이라며 진나라 국경을 열심히 괴롭힌다.[42] 미월이 연국에 인질로 있다 구출되어 태후가 된 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군을 통솔할 때는 물론이고 전쟁에서도 큰 공을 세운다. 마지막 적려가 의거인을 이끌고 진 궁을 쳐들어올 때 의거인들에게 태후에게 받은 것, 이미 진나라에 적응한 것 등을 연설하며 사기를 빠지게 한다.
- 호위
- 무당 할아버지
3. 역사적 고증 비교
- 우선, 극 중에서 실존인물은 많다. 미팔자, 혜문왕, 초회왕, 정수, 초위왕, 장의, 굴원, 용예, 위염, 미융, 의거왕, 춘신군, 근상 등등이 있다. 후궁들은 암투를 위한 요소로서 가상인물이다.
- 사마천의 사기열전에서 장의는 진혜문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만났다. 장의가 왕위에 오르도록 도와준다.
- 미팔자는 초나라 공주로 아버지가 다른 동생 위염과 아버지가 같은 동생 미융이 있었다.[43]
- 미팔자 선태후의 나이를 추정하면 극에서 스승으로 나온 굴원하고 거의 같은 나이대이다.
- 혜문왕의 정실왕후인 혜문후는 위나라 출신이다. 역사대로라면 극중에서 나온 위부인의 언니 선왕후가 생존해 있어야 하고 초 왕실에서 미주가 시집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기록에서는 초나라 공주라는 것도 있다.
- 춘신군 황헐은 드라마에서 다룬 시대보다 훨씬 이후의 사람이다. 미팔자가 노인이 되었을 때 춘신군은 어린이였다.[44][45]
- 미팔자는 의거왕과 사통하였고 둘 사이에서 아이를 두 명이나 낳는다.[46][47] 진나라 왕궁에서 같이 살았으며 소양왕은 관여하지 않았다. 추후 의거왕을 제거하는데 미팔자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없앤다.
- 미팔자는 무려 36년을 권력을 휘둘렀다. 물론, 소양왕에게 일부 권력을 주었다. 초와 한이 전쟁을 하자 한나라가 진으로 구원병을 요청하였는데 이 때 미팔자가 선왕과의
19금잠자리 이야기를 말한다.. 미팔자가 초 출신으로 한을 별로 돕고 싶어 하지 않은 눈치였으나 소왕이 도와준다.[48] - 극 중에선 위염이 궁형을 당할 뻔하고 대신 새끼손가락이 잘리지만 실제 기록엔 없다. 위염은 진의 장수로 소왕이 양후라는 봉호를 내렸고 전쟁에서 엄청난 공을 세웠다. 사실 소양왕의 대부분 업적은 전부 양후에 의한 업적이다. 양후의 실세가 강했기 때문에 소양왕은 양후를 처단하려고 하고 소양왕 재위 마지막 10여년만이 실질적으로 소양왕이 권력을 휘두른 기간이다.
- 실제 의상과 장식이 화려한데 이는 후궁 암투를 다룬 드라마의 특성상 과장된 것이다. 시대가 기원전 300년 대인데 화장이나 옷의 색감, 금장식이 과하다. 실제로는 주로 어두운 색 계통이나 붉은색 계통을 많이 입었을 것이다. 실제로 진나라의 상징색은 검은색이기도 했고. 게다가 시대적 배경이 기원전인만큼, 아직 염색기술도 극 중 의상의 색깔처럼 화려한 색을 만들 수 있을만큼 발달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제대로 된 고증은 대진제국 참고.[49]
- 영화는 반란을 일으켜서 죽는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 죽는다.
- 사기에 따르면, 감무는 굉장히 똑똑한 사람으로 그의 손주가 진의 통일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소양왕이 굉장히 총애하였다.
- 위염은 전장에서 공을 많이 세웠다. 하지만, 정승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소양왕은 그에게 "양후"라는 호를 준다. 사기의 양후열전에서 상세하게 그의 업적이 나오는데 그 중 백기를 중용하여 진의 통일을 앞당긴다.
- 저리자의 이름은 질로 어머니가 한나라 사람으로 혜문왕과 이복형제다. 지혜와 재주가 많아 사람들은 그를 지혜 주머니란 별명을 붙였다. 태자 무왕이 왕위에 오른 후 장의를 내쫓았고 저리자와 감무가 각각 우승상, 좌승상에 올랐다.
- 진무왕은 실제로 주나라에서 솥을 들다가 죽었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무능한 병신은 아니고, 오히려 감무를 좌승상으로 기용해 한나라의 의양을 정벌해 진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해둔 유능한 군주다.
- 소양왕 등극의 일등공신은 양후이다. 양후가 미팔자의 동생으로 진나라 군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나라 인질로 간 소양왕이 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이미 진무왕이 죽을 당시에 혜후는 죽고 없었고, 무왕후만 있었다. 무왕후가 아들 영장이 있어서 영장이냐, 영직이냐가 문제였는데 영장의 나이가 어린 데다가 나라는 혼란스럽고 양후가 권력이 있었기에 소양왕이 등극했다.
4. 기타
원작자인 장승남이 드라마판 감독인 정효룡의 아내인 왕소평이 각색하여 드라마를 제작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장승남과 왕소평이 트러블을 빚게 되었고, 2015년에 장승남이 왕소평을 저작권 문제로 고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16년에 있었던 1심에서도 패소하였고, 2019년도 항소 기각과 재심청구도 기각되었다.5. 동북공정 및 역사왜곡
원작자(소설원작자이자 드라마 각본도 담당)의 후속작 연운대에서 고려에 대한 심각한 역사왜곡,동북공정으로 논란이 되었다. 해당 작품은 요나라와 고려를 배경으로 하며 고려왕 성종이 등장하고, 성종의 실제 이름인 왕치라는 이름까지 등장하고 성종이 태조왕건의 손자라는 실제 역사에 근거한 설정이 등장하는 등 역사소설의 성격을 지닌다.문제는 이 소설에서 실제 역사와 달리 요나라가 고려를 정복해서 속국으로 삼고, 고려왕이 요나라에 직접 방문해서 속국의 제후로서 충성을 맹세하게 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고려왕이 요의 언어를 가르쳐 달라고 사정하고 요의 왕족과 결혼을 하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요에 직접 방문해 속국으로서의 맹세를 했다고 하는 등 실제역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역사소설인 것처럼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동북공정의 일환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발해에 대해 부정적이고 천시하는 묘사도 등장하는 등 역시 근거 없는 발해 폄하 의도도 엿보인다.
[1] 실제로 미월전을 아시아N에서는 설날 연휴였던 1월 26일부터 1일 15시간씩 종일 편성되었고 1월 25일의 경우 특선 다큐를 연속적으로 편성되는 것 외에도 저녁부터 종일 내내 편성된 바 있다.[2] 위후가 향비가 된 그녀에게 옷 선물을 해주고 향비는 기뻐서 그 옷을 하루 종일 입고 잔다. 알고보니 그 옷에는 옻이 엄청 묻혀 있었고 옻이 온 몸에 오르게 되었다.[3] 땅을 파야 하자 비녀까지 뽑아서 땅을 파고 손톱에 상처가 나는 등 몸사리지 않고 구해다 준다.[4] 바로 이것 [5] 제 아무리 미주를 걱정했다 해도 저 정도로 일을 저질러봐야 미주에게 도움이 될 게 없다. 덕분에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미주에게 가버렸다.[6] 진나라의 명패로 높은 사람에게만 제공되는 통행증서인데 미월 자매가 진나라로 올 때 벌어진 일련의 사건 당시 기억을 되짚어 본 미월이 동부절에 '위'가 쓰여진 것을 기억했다.[7] 용예는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가져왔으니 농사 같은 건 하지 말라고 하고 진나라 상황을 알려준다. 그리고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진을 빠져나가라고 한다.[8] 미월이 책론을 정리하다가 발견하게 된다[9] 해당 서신을 전한 소진이 대왕 앞에 불려가고 대왕은 이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하자 대왕이 맹영공주에게 준 패를 보여 준다.[10] 머리를 정리하지 못한 채 집무실로 달려와 부왕을 외치며 자신이 진을 위해서 많은 희생을 했다면서 간절하게 빌지만 혜문왕은 이미 너에게 많은 병력을 썼다면서 완강하게 거절했다. 맹영은 뒤돌아서며 자신은 장기판의 장기말에 불과했다며 나간다.[11] 위염이 갔을 때 아들 직은 조나라 인질로 잡혀 갔다. 조는 석궁을 쓰고 기마술을 배웠기 때문에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12] 책론을 정리하며 미월은 소진을 높게 평가하나 장의와 비슷한 성향에 고집이 있다며 만약 등용했을 때 장의와 문제가 생기면 누구 편을 들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한다.[13] 소진의 등용 문제로 인한 악감정이 생겨 모른 척 하고 있었다.[14] 맹영이 진으로 돌아오고 진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조에 인질로 있던 맹영의 아들이 연왕이 되는데 이를 빌미로 진과 조가 엄청난 조공을 요구했다. 이에 곽외는 우리가 예전에 얼마나 많이 뜯겼었냐며 직을 진왕으로 세우는 것을 도와 조공을 받자고 한다.[15] 맹영이 자신이 누이이니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도움을 거의 주지 않는다.[16] 사실 이 점은 의거군, 적려의 책임이 크다. 엄연히 대왕인 영직을 걸핏하면 어린아이라며 우습게 보고 장난을 쳤으며 여러모로 평판을 신경써야하는 영직의 입장을 이해할 생각이라곤 전혀 안했기 때문. 오히려 조롱하기까지 한다.[17] 마월은 영화에게 있어서 적모인 미주의 이복동생이니 둘이 이어지면 이모와 조카가 결혼하는 해괴망측한 상황이 발생한다.[18] 위부인은 당황해하며 왜 자신에 대한 언급이 없냐며 미월에게 따지나 자신이 늙어 쓸모 없어 버림을 당한 것이라며 그동안 혜문왕의 총애와 맞바꿔 위나라를 변호했던 자신의 세월이 헛되었음에 절규한다.[19] 미주의 음식에 손을 쓰게 한 주방여인을 미월이 궁에서 목격했다. 그 여인이 정체를 들켰을 당시 규고가 그 여인의 손을 깨물어 버려서 그 흔적을 증좌로 내세우려 했지만 문제는 궁에서 본 사람은 그 장본인이 아닌 그 여자의 쌍둥이 자매(...) 덕분에 고발은 실패.[20] 사실 그녀가 큰 힘이 있던 것도 아니고 왕후가 항상 영탕을 감싸니 별 도리가 없었다. 물론 번소사 본인도 지나치게 몸을 낮춘 탓도 있지만.[21] 공손연이 위 출신으로 진에 와 조정에 있었지만 장의로 인하여 입지가 줄어들고 위의 사신이 조국으로 돌아가자고 꼬드기고 동부절 사건이 엉키면서 위나라로 돌아가려 한다. 이 사건으로 위의 염탐꾼과 공손연과 왕래한 사람들을 잡겠다고 하자 위기감을 느낀 위소사가 위부인 대신 희생한다.[22] 선왕후 시절 당부인이 혼나자 자결하겠다며 소동을 벌여 오히려 선왕후가 혼나고 당부인이 총애를 받았다는 이야기[23] 처음에는 배후로 위부인이 왕후로 지목하여 왕후를 의심하였으나 맹소씨임을 알게된다[24] 사실 용예의 생각보다 황헐의 의견이 다수이다.[25] 밤중에 찾아온 태후를 만나지 않겠다고 버텼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서 아침에 깨고는 기겁해서 나와보니 미월이 문 앞에서 버티고 서 있었다.[26] 실제 육백리가 아니라 장의가 하사받은 6리의 땅의 이름을 '육백'이라 지어서 육백리이다.. 초에 이 6리를 넘겨주면 된다는 사실.[27] 장의가 가난해서 화씨벽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이에 장의는 자신의 혀가 멀쩡하냐고 물었고 멀쩡하면 그만이라고.. 실제 역사서 사기에 벽옥이야기가 나온다.[28] 처음에 맹씨가 화씨벽에 대해 퍼뜨리고 다녔다. 화씨벽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초의 보물인 화씨벽을 사서 초로 돌려줄 생각이었던 미주는 구입 의사를 밝히고 미주와 미월 둘다 뛰어들어 금액이 엄청 뛴다. 결국 미월이 낙찰받는다.[29] 결정적으로 화씨벽이 가짜였다. 미월이 굴원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밝은 곳에 비치면 핏자국이 보이는데 이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잘 세공되었으나 가짜였다. 장의와 미월 모두 위험에 빠뜨리게 한 인물은 공손연이었다. 이전부터 공손연과 장의가 사이가 좋지 않아 악심을 품은 게 원인이었다.[30] 미주는 영직이 무에 대해서는 잘 알아 은근 기대했고 감무와 저리질에게 교육도 받았으나 영직의 말빨에 휘말려 "두 나라 어느 곳을 쳐도 상관없다"는 망언을 해버린다. 나중에 미주에게도 그딴 건 대신들이 할 일이지 왕이 될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냥 조폭이 천직임[31] 이 일로 초회왕은 미주에게 아주 화를 내고 실망했다고 한다.[32] 하도 성장해서 누나를 비롯한 시녀들이 못알아보자 자기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였다.[33] 지금의 왕후는 초나라 공주가 아니라면서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월은 그런 소리 말라며 말린다.[34] 위염과 사마착 둘 다 사직한다.[35] 멍청한 무왕.. 춘추전국시대를 보면 장의는 위나라 출신이고 감무는 초나라 출신으로 국적을 막 바꾸는 모습을 보면.. 두 장수가 국적 바꾸면 진은 끝장이다.[36] 진혜왕이 생각해 본 결과 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공손연이 떠나는 것을 이용해 세상 사람들을 탄복하게 하기 위해서 준 것이다.[37] 미월이 공자 화를 추천한것을 심하게 곡해한다. 화와 탕을 싸우게 해 직을 이득보게 하려는 것이라고.[38] 그 문서는 예전 미주에게 다른 나라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달래기 위해서 미월이 준 5개의 땅보다 더 많은 것을 주자고 주장한 것이었다.[39] 미월이 동부절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은 괵미인이 신나서 왕후에게 일러바쳤다가 망신만 당했다.[40] 왕후 소속으로 바꿔주겠다고 하였다. 대낮에 화씨벽을 훔치다가 독에 중독되어서 죽었다.[41] 둘이 너같은 형제가 어디있냐며 티격태격하더니 나중엔 누가 형님이 될지로 싸운다(...)보다보면 좀 웃기다[42] 저리질이 이에 대해 무왕에게 말했으나 무왕은 그깟 의거 별 거 아니라면서 무시한다.[43] 화양군이라고 불렸다.[44] 그래서 넣은 건지, 아니면 황헐이라는 존재가 미월을 삶의 끝까지 지탱해준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인이 된 미월은 궁에서 황헐과 닮은 공자를 발견해 옆에 데리고 다닌다.[45] 더구나 춘신군은 선태후의 아들인 진 소양왕 영직의 증손자인 진 시황제 영정이 성인일 때까지도 살아 있었다.[46] 사마천의 사기열전에서 흉노열전 앞 부분에서 언급된다.[47] 두 아들은 경양군, 고양군이라 불렸으며 무왕 사후 소양왕을 왕으로 추대하는 데 참여하지 않았다.유일하게 참여한 사람은 친동생 위염 뿐이었다.[48] 이때, 한나라가 소양왕을 찾아가 권력이 왕이 아닌 태후에게 있다면서 자존심을 건드린다.[49]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미월전의 의상감독이었던 천통쉰(陈同勋)은 약 3년 후 미월전과 달리 의상고증이 역대 중국 사극들 중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대진제국 시리즈 4편 대진부의 의상감독을 담당하게 된다. 가히 충격과 공포. 당연히 대진제국 시리즈 드라마답게 대진부의 의상들의 고증도 출중한 편이다. 여담으로 천통쉰은 정효룡 감독의 전작이었던 옹정황제의 여인과 그 후속작인 여의전의 의상감독을 맡기도 했었다. 같은 시대적 배경에 같은 사람이 담당한 의상인데 왜 이렇게 퀄리티가 다른지 다만 미월전의 경우 인턴급 직원들이 대거 의상담당을 했던 반면, 대진부는 본인이 직접 총괄감독을 맡은 게 차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