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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23 03:34:56

민족의 죄인

1. 개요2. 줄거리3. 평가
3.1. 윤 군3.2. 작가 본인과의 관계
3.2.1. 다른 인물과 비교

1. 개요

채만식이 1948~1949년 발표한 중편소설.

2. 줄거리

광복이 된 어느 날 주인공은 친구 김 군이 경영하는 신문사를 방문했다 윤 군을 만난다. 윤 군은 주인공이 친일 행위를 한 것을 경멸하며 비난한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지만, 김 군이 대신 나서 윤 군의 말에 반박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농민들 대부분이 일제에 잘 보이기 위해 공물을 낸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강제와 협박에 못이겨 공물을 낸 것처럼, 자신과 같은 대다수의 글쟁이 또한 그런 일제의 등쌀에 못 이겨 그런 것이다. 그것이 죄는 죄이지만, 자발적으로 일제에 충성하려고 달려들었던 이들과는 다르게 봐야 할 것이며, 친일파를 처단하는 것에 있어서도 전후사정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3. 평가

3.1. 윤 군

친일 행위를 한 주인공을 비난하는 윤 군의 묘사가 독자들에게 좀 반감을 주는 면이 있다. 가령 윤 군은 친일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더러운 꼴 안 보고 거기 안 굽히고 살아도 될 정도의 상황이 된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는 걸 세상 좀 살아 본 사람들은 알기 때문에 윤 군의 모습이 마냥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하는 소리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채만식이 이 글을 쓴 이유가 반성인지 변명인지가 더 모호해지는 문제도 있다.

3.2. 작가 본인과의 관계

자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의 과거를 반성하고 있는 최초의 소설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이 소설의 평가 역시 작가의 친일 행적과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채만식은 이 소설을 통하여 일제 치하에 활동했던 지식인들의 고뇌를 그렸고 자신 같은 지식인들이 어쩔 수 없이 일제에게 협력했다고 변명하였다. 하지만 친일 행위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마치 수렁 같았다고 묘사하면서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 그런 행위를 하면서 심중에서 일어나는 자괴감을 작중에서 일관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이광수처럼 반성을 빙자한 자기합리화나 한다고 비판받지는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잘못을 계속 의식하면서도 자신을 찾아온 조카에게 무관심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작중 화자의 모습을 보면 변명만은 아니라고 보는 평가가 많다.

사실 농민들이 어쩔 수 없이 공물을 낸 것처럼,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벼운 친일을 한 것도 비난만 할 수는 없는 것은 맞다. 문제는 악질 친일파들이 자기합리화를 하려고 이런 논리를 끌어 써서 문제이다.

3.2.1. 다른 인물과 비교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대놓고 '나 친일했소 잘못했소'하고 공개적으로 나선 인물은 채만식이 거의 유일하다고 보면 된다. 반성조차 한 이가 드물다.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친일 행각을 숨기려고 했을 때, 채만식은 오히려 양심선언을 한 격이다. 그 이외의 사례라면 다음과 같은 인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