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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9 20:33:25

박고석

박고석
朴古石 | Park Go-seok
<colbgcolor=#7a5543> 출생 1917년 2월 25일, 평안남도 평양
사망 2002년 5월 23일 (향년 85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직업 화가, 영화 미술감독, 영화 제화 디자이너, 판화가, 조각가
학력 평안남도 평양 숭실중학교 (졸업)
니혼 고등상업학교 전문학사
니혼 대학교 예술학과 학사
배우자 김순자[1]
자녀 3남 1녀[2]

1. 개요2. 생애3. 작품
3.1. 범일동 풍경3.2. 도봉산3.3. 외설악3.4. 쌍계사 길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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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화가. 강렬한 색채 대비와 두텁고 격정적인 붓 터치로, 토속적 생명력을 뿜어내는 산을 잘 그려내서 '산의 화가'로 불린다.

2. 생애

박고석은 목사 집안의 아들로 평양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요셉이다.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닐 때 자신의 이름을 고석(古石)으로 개명했다.
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일본에 건너가 1939년 니혼대학 예술학부를 졸업하였다. 박고석은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40년에 대학 동창들로 구성된 ‘격조전(格調展)’에 참여하면서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3년에는 도쿄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뒤 쇼치쿠(松竹) 영화사의 만화영화제작부에서 일했다. 한 10년 일본에 머무르며 초기 화풍을 다졌는데, 도쿄가 폭격을 당하면서 그 시절 작품들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평양으로 돌아왔으나 곧 서울로 내려와 서울타임스 기자를 거쳐 배화여고와 대광중고에서 미술교사를 담당하였다. 약혼녀 김순자와 결혼식을 잡은 날에 6.25 전쟁이 일어나서 무산되었고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해 부산공고 미술교사로 취직했다. 공동묘지 근처인 범일동에 자리잡고선, 부산공고의 서쪽 담벼락을 끼고 동천에 말뚝을 박아 10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 판잣집을 지었다. 부엌과 작업실 그리고 3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방이 전부였다. 하지만 판잣집이긴 했으나 목재는 고급이었고 거기다 흰색 페인트칠을 해서 어수선한 주변과 대비되어 고상한 아우라를 발산했다고 한다. 이 때 박고석은 국제시장에서 시계를 팔기도 하고 부인과 함께 카레라이스 장사를 하기도 했다. 엉뚱하게도 이중섭이 동업을 선언했는데, 며칠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갑자기 나타나선 카레라이스 서너 그릇을 먹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고 한다.

이 시절 부산은 당대의 예술인들의 집합지였다. 박고석은 동인 활동의 중심에 있었다. 이중섭·이봉상 등과 함께 광복동 르네상스 다방에서 열었던 ‘기조전(1952년)’은 피난 시기의 몇 안되는 그룹전으로 미술사에 기록됐다. 1956년 결성된 ‘모던아트협회’를 통해 유영국, 한묵, 황염수, 문신, 천경자 등과 교류했다.

전쟁이 끝나고 박고석은 서울로 올라와 1955년 정릉에 자리를 잡았다. 부산 피난 시절, 박고석과 삼총사를 이루었던 독신의 이중섭, 한묵이 이웃이었다. 북한산 청수장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따라 김병기, 김대현, 최정희, 박경리, 금수현 등 수많은 문인, 예술가들이 정릉에 집터를 잡았다. 이중섭이 죽자 화장된 유골은 3등분 되었다. 일부는 일본의 그의 부인에게로 또 일부는 미아리의 묘소로 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박고석이 보관하다가 정릉에 수목장으로 묻었다.

박고석은 1950년대까지는 자연주의적 모티브에 야수주의, 표현주의 경향의 화풍을 드러내는 작품을 제작하였으나, 모던아트협회 참여를 계기로 1961~62년경에는 추상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곧 추상회화에 회의를 느끼며 한동안 작품을 중단하였다.

1967년 이봉상 등과 함께 ‘구상전(具象展)’을 창립하면서 다시 창작을 재개하였다. 이 무렵부터 산행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북한산, 설악산, 백양산, 지리산 등 전국의 명산을 여행하면서 산의 사계절을 그림으로 남겼다.1970~80년대에 그린 산 그림은 원근법을 무시한 공간, 두터운 유화물감의 질감, 힘과 탄력이 넘치는 필치, 강렬한 색채대비를 통해 산의 감동을 표현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부드러운 필치로 잔잔한 여운이 감도는 소박한 풍경을 그렸다.
홍익대, 중앙대, 세종대 교수와 국전추천작가, 한국미술협회 고문 등을 지냈으며,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하고, 1987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3. 작품

3.1. 범일동 풍경

3.2. 도봉산

3.3. 외설악

3.4. 쌍계사 길

4. 여담



[1] 김순자는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건축가 김수근의 누나이다.[2] 장남은 건축가 박기태, 차남은 건축디자이너 박기준, 삼남은 사진가 박기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