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52484><colcolor=#fff>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 박성오 朴成五 | Park sung oh | |
출생 | 1977년 1월 31일 ([age(1977-01-31)]세) |
충청남도 홍성군 | |
거주지 | 서울시 광진구 아차산로 70길 61 현대아파트 |
현직 |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기획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 건국대학교 수의학과 겸임교수 광진동물의료센터 원장 |
서명 | |
가족 | 배우자, 아들, 딸 |
학력 | 홍성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학 / 학사) |
병역 | 육군 제21보병사단 병장 만기전역 (2000년 11월 13일 ~ 2003년 1월 12일) |
신체 | B형 |
소속 정당 | |
약력 |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제19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 후보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 본부 대한민국 국회 오영훈 의원실 비서관 제19대 대통령선거 민주통합당 직능본부 수의정책위원회 위원 대한수의사회 정무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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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검찰개혁은 박성오"
건국대학교 수의학과,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 출신의
정치인이자 수의사
現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기획위원장이자
22대 국회의원 선거 더불어민주당 광진구 갑 국회의원 예비후보이다.
2. 생애
2.1. 초년기
1977년, 충남 홍성군에서 축산농장을 경영하는 한 농가의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고향 집 마당에는 늘 반려견 겸 농장을 지키는 파수꾼 강아지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동물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 동물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생겨났다고 한다. 농장 경영을 위해 기르는 동물들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다치거나 죽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유년시절부터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품었으며 훗날 수의사의 진로를 정하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중고등학교 시절은 큰 사건 없이 조용하고 성실하게 학업을 수행한 편이었고, 고등학교 시절 집이 있는 홍성군 광천읍에서 홍북읍 홍성고등학교까지 통학했는데, 버스로 한시간 넘는 통학 시간 때문에 입시 준비 할 때에는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이후 건국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하며 수의사가 되고자 했던 어린 시절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섰다.
2.2. 대학 생활
대학에 입학하기 전 고교 시절까지는 참 열심히 공부했지만, 대학에 입학하자 '공부 빼고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다'고 자평할 만큼 많은 체험을 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한다. '동아리'보다는 '서클' 이라는 이름으로 선배들이 신입생의 손을 잡아 이끌던 일반적이었던 시절, 스스로 기웃거리면서 찾아갔던 서클만 예닐곱 군데가 되었는데 그 중 '청진분재'라는 동아리에 가입해 분재를 키우는 일에 빠지기도 했다.'학보사' 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대학 언론에 들어가고 싶어 직접 찾아갔으나.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는 학보사의 특성상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의학과 학생의 가입을 부담스러워 해서 가입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박성오는 이에 굴하지 않고 학보사의 “들어오려면 학과장의 동의를 받아오라”는 사실상 완곡한 거절 표현에 맞서 학과장의 동의를 받으려 했지만 학과장이 당연히 가입에 반대해 좌절되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서클들에서 조금씩 활동을 하다가 수의과대학 밴드 '바이러스'에 들어가 2년동안 드럼 파트로 밴드 활동에 푹 빠져서 활동했다.
대학 재학중 학생회나 운동권에 소속되어 열성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집회가 있으면 학생의 일원으로서 어김없이 참여했고, 신입생일 땐 깃발을 들고 앞장을 서기도 했다. 그러나 전경에게 잡혀간 적은 없는데, 본인의 이야기로는 워낙 잘 도망쳐서 쫓아와 잡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한 번은 붙잡히지 않으려고 도망가는 과정에서 깃발을 놓아버려서 선배들에게 크게 혼난 적도 있다고 한다.
2.3. 야학교사 활동
대학 시절 학교 곳곳에 야학 교사를 모집하는 포스터들이 많이 붙어있었는데, 박성오는 학교 밖의 더 넓은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던 와중 '강동야학' 이라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와 직접 찾아갔다. 당시 야학은 어떤 학생들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노동야학', '생활야학' 등으로 구분하는 용어가 있었는데, 박성오가 활동했던 '강동야학' 은 노동자, 학업 중단자, 늦깎이 공부를 시작하신 어르신 등 학생 구성이 다양한 편이었다고 한다.박성오가 진행하는 수업은 일주일에 2회 진행했지만, 특별히 다른 일이 없는 한 매일 야학에 출근했고 주말에도 교사 회의에 참석했다. 처음에는 수학 수업만 하다가, 수의학과생이었기에 생물 과목까지 맡았다고 한다.
대학 3학년에서 4학년까지 박성오는 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했는데, 많은 학생들을 만나며 자신이 거쳐온 학업 과정과 지녔던 보편적인 사고 등의 조건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상황이 아님을 크게 체감했고, 사회의 현실에 눈을 뜨며 배움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불공평한 사회와 자신이 그 동안 지녀왔던 이기적인 사고에 큰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각과 자성의 계기를 맞이했다.
수업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주 대상이었는데, 야학 학생은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러 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피곤하고 바쁜 학생들에게 시험기간에 맞추어 강의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여는 과정에 자신의 노력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보람으로 임했다고 한다.
그 때 수업을 듣던 학생 중 지금까지 박성오가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주 어렸을 때 노동현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로, 일터에서 많은 폭행과 갖은 학대를 받았지만 너무나 어리고 가난했기에 모든 고통을 참아 넘길 수밖에 없는 생활을 했던 학생이다. 그의 소년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소외된 사람이 겪는 참혹한 삶의 고통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공동체 안에서 풀어나가야 할 일이라는 문제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지만 소년공 출신으로 어린 나이로 인해 돈도 떼이고 학대도 받았다는 이재명 대표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그 학생의 얼굴과 사연이 떠올라 이재명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고 한다.
2.4. 대한수의사회 활동
2003년 대한수의사회에 입사해 13년동안 근속했다. 재직 시절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 실무에 참여하며 동물보호법 개정에도 역할을 했는데, 당시 동물보호법은 1991년 제정 후 2007년까지 특별한 개정이 없었기에 2000년대 기준으로 상당히 후진적인 법률이었으며 특히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가정 내 동물이 취미나 애완의 목적에서 '반려'로 인식이 바뀌어갔기에 반려동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문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져 동물보호법을 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이 과정에서 2005년 10월 동물보호단체 합동안을 바탕으로 입법예고가 있었고, 정부 내 입법절차를 거쳐 2006년 9월 정부안으로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되었으며 2008년부터 시행되었다. 박성오는 대한수의사회의 일원으로 농림부, 동물보호단체들과의 오랜 협의, 합의를 거쳐 개정안을 다듬는 실무 과정에 참여했다.
2.5. 국회 비서관 시절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헌화하려고 하는 순간 뛰쳐나와 항의하다 제지당하는 백원우 전 의원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기억을 가지고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준비하던 백원우 캠프에 자원봉사자로 들어갔다. 해당 선거에서 백원우의원은 안타깝게 낙선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선거의 힘든 과정과 도도한 민심 앞에 정치의 무게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그 무렵, 지인과 만난 자리에서 그 사람이 당선자였던 오영훈(현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전 의원에게 사전에 이야기도 없이 박성오를 추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다른지역에서 당선된 초선의원이고 안면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으나, 이후 오영훈 의원이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해 면접처럼 만나게 된 것이 비서관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초선인 오영훈 의원을 보좌하며 '학력·출신학교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재정법 1호 법안으로 내기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성오는 수면 위로 드러난 대한민국을 뒤흔든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2.6. 박근혜 탄핵의 포문을 연 숨은 얼굴
2016년 7월 말,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사가 TV조선에서 깊이 있는 내용이 아닌 '이러이러한 재단이 생겼다' 수준의 단신으로 처음 나왔다. 다른 언론과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서도 그다지 해당 내용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는데, 박성오 당시 비서관은 매체를 떠나 적극적으로 파봐야 한다고 생각해 문체부에 자료를 요청하고 분석도 하며 '확실한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했고, '그 정도의 큰 돈을 대기업들로부터 이끌어 낸 것을 거대한 힘이 뒤에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오영훈의원실 단독으로 건드릴 수 없고 당 전체의 역량이 투입되어 반드시 파헤쳐야 하는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후 당시 교문위 소속의 다른 의원 보좌진들에게 해당 문제를 정리해 공유했고, 오영훈의원 외 다른 국회의원들까지 힘을 합쳐 동시다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함으로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는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박성오가 이 문제를 다른 의원실 보좌진에 공유하며, 비슷한 시기 자신이 알아낸 문제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를 언론사들에도 공유했는데 그 중 유일하게 한겨레신문이 관심을 표하면서 협력했다고 한다.그 과정을 통해 2016년 9월 20일자 한겨레신문 1면에 K스포츠재단 이사장과 최순실이 직접 연관이 있다는 기사가 헤드라인으로 실렸고 이후 모든 언론사가 최순실을 주목하기 시작해 경쟁적으로 취재를 시작,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된다. 이후 박성오는 많은 국민이 거리로 나온 촛불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제기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를 시발점으로 계곡물이 흘러 강물이 되고 강물이 만나 바다로 향하듯 작은 시작이 전 세계의 모범이 되는 비폭력 평화혁명으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새 정부는 이토록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국민께 눈높이에 맞는 정치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7.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근무
“박성오는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검찰개혁은 박성오입니다. 박성오를 검찰개혁의 도구로 쓰십시오”
- 조국 전 법무부장관, 2023년 12월 16일 '검찰개혁은 박성오' 출판기념회 참석한 자리에서
- 조국 전 법무부장관, 2023년 12월 16일 '검찰개혁은 박성오' 출판기념회 참석한 자리에서
탄핵 이후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박성오는 2017년 1월 문재인 당시 경선후보 캠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상황실 초기 멤버로 합류했고 본 선거에서는 선대본부 상황본부에서 활동하며 정치의 시각이 지역에서 전체로 확대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2017년 6월부터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박성오는 국정과제 중 하나이자 문재인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던 개헌 실무를 담당했다.
정무기획비서관실에서 1년 조금 넘게 근무한 후 2018년 8월부터는 민정수석실로 자리를 옮겨 조국 당시 민정수석을 보좌했고, 문재인정부 임기 동안 근무했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촛불의 민심이 요구했던 가장 큰 변화는 적폐청산'이라는 기조로 권력기구들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정상화하기 위한 제도개선에 나섰고, 조국 장관의 평가로는 박성오 또한 조국 장관과 호흡이 잘 맞았다고 한다.
민정수석의 방향성에 대부분의 기관들은 큰 틀에서 동의했지만, 검찰 권력은 가장 강렬하게 저항해 결국 윤석열검사의 검찰총장 임명에 반대했던 조국 장관의 멸문지화와 윤석열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박성오는 자서전에서 평가했다. 같은 시기 공직기강비서관이었던 최강욱 전 의원과도 함께 일했는데, 재직 시기 기소되어서 청와대를 떠나는 최강욱 공직기강비서관에게 적극적으로 출마를 권유하며 등 떠밀었던 사람도 박성오라고 한다.
박성오는 2022년 문재인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때 까지 총 6명의 민정수석을 보좌하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했다.
2.8. 이후
박성오는 문재인 정부 임기 중 검찰이 개혁에 저항을 시작한 시기부터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까지 검찰이 일관적으로 보이고 있는 반 헌법적 행태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된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의 기획위원장으로서 검찰개혁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광진구 갑 지역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3. 정치적 견해 - 검찰개혁의 방향
3.1. 수사 기소의 완전한 분리
- 현재 남아있는 부패범죄, 경제범죄를 삭제하여 국수본에서 모든 수사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하되 국수본 수사역량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별도의 '중수청'을 신설하는 방안 필요중수청 신설시 중수청은 법무부 산하가 아닌 독립관청으로 하여 수사의 독립성 강화
- 추진방법은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을 개정하는데 현재 법사위원장과 조정훈 의원을 고려할 때 실행방법은 본회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추진하는 것이 가능
3.2. 검찰청의 기소청 전환
- 검찰의 수사 개시권이 모두 삭제되면 검찰은 순수한 기소 여부 판단과 공소 유지 기능을 하게 되어 기능에 맞게 명칭 또한 기소청으로 전환하는 것이 타당(검찰청법 개정시 법률 명칭 변경을 통해 기소청법으로 개정)- 검찰의 정치적이고 작위적인 기소 여부 판단이 계속된다면 영미법계 국가와 같은 기소배심(기소 소배심, 기소 대배심)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추가 검토 필요
3.3. 검찰의 과잉한 처우 축소
- 과거 사법시험제도가 40, 100, 400, 1000명으로 합격자 수를 늘려 왔고 초기의 사시 합격자는 난이도면에서 행시와 현격한 차이가 있던 만큼 5급으로 임관하는 행시 합격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처우를 받아 왔음.그러나 현재 로스쿨 제도하에서 검사의 처우가 행시 합격자에 비해 불균형하게 높은 점은 사회적 형평성과 역할(기소만 담당) 측면에서 조정되어야 할 필요
- 국가공무원법에 새로운 기소직렬과 기소직류를 신설하여 검사를 기소직 공무원으로 직급화하는 것이 타당
- 검사를 5급부터 직급화 할 경우 지방검찰청장은 1급, 대검찰청장은 차관급으로 조정. 3급에 준하는 부장검사가 정무직이 사용하는 정도의 독립 사무실을 차지했던 것을 모두 회수. 중앙부처 과장급(3~4급) 정도로 근무 환경을 조정 가능
3.4. 검사의 불필요한 특활비 폐지
- 현재 검찰에 배정되는 80~100억 정도의 특활비는 수사의 기밀성을 위해 수사 명목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사실상 검찰 내 통치비용(검사장들이 후배 검사 떡값으로 사용)으로 악용되고 있음- 직접수사가 축소 또는 폐지되는 만큼 특활비를 축소시켜야 하고, 국회 결산 심사에서 정확하게 수사 명목으로 사용된 액수를 확인하고 그 외의 증빙되지 않는 예산은 예산 심사에서 전액 삭감할 필요
- 헌법 개정시 헌법에서 "검사"의 명칭을 삭제, "영장청구권 독점"을 "법률로 위임"
- 위의 사항은 들은 개별 법률의 개정으로 가능하나 "검사"의 명칭을 "기소관"으로 바꾸는 것과 "검사의 영장청구권 독점"은 헌법 개정 후 법률 개정을 통해 가능
- 직접수사가 폐지되면 기능과 명칭의 일치를 위해 "기소관"으로 명칭 변경하는 것이 타당
- 이미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제출한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에서 "검사"의 용어를 모두 삭제하였고 영장청구권도 "법률로 정한다"라고 표현한바 있음
4. 저서
박성오 위원장이 가진 열정과 고민이 검찰 개혁을 이루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바로 서는 계기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2023년 12월 16일 '검찰개혁은 박성오' 출판기념회 축전 中
-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이재명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바로 서는 계기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2023년 12월 16일 '검찰개혁은 박성오' 출판기념회 축전 中
-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이재명
사진 설명: '검찰개혁은 박성오' 책 표지
사진 설명: 2023년 12월 16일 '검찰개혁은 박성오 출판기념회' 현장 사진.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5. 소속 정당
<rowcolor=#fff> 소속 | 기간 | 비고 |
| 2022 - 현재 | 정계 입문[1] |
[1] 대통령비서실 퇴직 후 입당 (공무원 당적보유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