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혁의 연도별 시즌 일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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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전
오재원이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밝히기로는, 21시즌에 주장을 맡는다. 그로인해 빡캡(박캡)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나 강산기자에 의하면 오재원이 다시 주장을 맡기로 결정을 하였다. #2. 페넌트레이스
2.1. 4~5월
개막전에서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김재호와 박건우를 제외하면 타자들이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4월 6일 삼성전에서 8회초 1사 3:1로 앞서는 상황에서 박해민의 도루를 저지해냈고, 8회말에는 오승환을 상대로 2타점 적시타를 쳐내며 시즌 첫 안타이자 쐐기타점을 기록했다.
그 후 한동안 1할대 타율에 한 자릿수 wRC+를 기록하며 부진을 겪고 있었다.
4월 16일 LG와의 경기에서 안타 하나 사사구 2개로 어느정도 페이스를 끌어 올리는 듯 했으나, 8회 초 김대유의 패스트볼에 얼굴을 맞고 심한 부상을 입었다, 일반 헬멧 대비 조금 더 보호력을 갖춘 검투사 헬멧을 쓰고 있었으나 하필 헬멧으로 보호가 되지 않는 눈 근처에 공을 맞아 쓰러졌고,[1] 응급처치 이후에 구급차로 이송되었다. 눈 주위가 시퍼렇게 부어오르고 피를 흘릴 정도의 심각한 부상.[2] 공에 맞는 순간부터가 공이 헬멧에 맞는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날 정도였고 박세혁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중계 방송을 통해 또렷이 들릴 정도로 타격이 컸다. 영상 그리고 정밀검진 결과 안와골절 판정을 받으며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다. 수술과 재활에만 아무리 빨라야 최소 한 달 이상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전반기에는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3]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부상 이후 찾아올 수 있는 시력 저하 문제다. 조성환 코치도 부상 치료 이후 시력이 계속 떨어지며 선수 생활에 지장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나 포수는 투수가 던진 공을 어떻게든 잘 받아야 하고 투수의 볼을 빠뜨리지 않고 잘 받아내려면 공에서 눈을 떼서는 안되는 포지션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력이 저하된다면 포수의 캐칭 부분에서부터 문제가 될 수 있고 이 문제가 심화되면 포수가 아닌 다른 포지션으로 전향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일단 현재 두산 구단 측에서는 재활 기간 포함해 약 한 달 이상 결장할 것으로 잡고 있다고 한다. 박세혁이 빠지는 동안 기존 백업이던 장승현과 최용제가 돌아가며 포수를 맡을 예정.
4월 23일에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4월 26일 복시 현상을 겪고 있지만 빠르게 회복 중이며 5월 안으로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
2.2. 6월
몸상태를 회복하여 6월 1일 한화 2군과의 경기부터 시작해 퓨처스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4경기를 뛰며 13타수 5안타로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6월 9일 롯데전에서 1군에 복귀했다. 시력 보호를 위해 고글을 착용한 상태로 출전 중이다. 1군 복귀 첫날 경기는 2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 6회까지 마스크를 썼고, 10일 경기는 9회까지 포수 수비를 소화하며 2타수 2안타에 9회초 희생플라이로 1타점을 올렸다.
6월 22일 키움전 4타수 2안타 2타점 1볼넷을 기록했다.
6월 23일 키움전 3타수 1안타 1득점 1볼넷을 기록했다.
6월 24일 키움전 4타수 2안타 1삼진을 기록했다.
6월 25일 롯데전 2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고, 6회말 대타 장승현과 교체되었다.
6월 30일 한화전 3타수 1안타 2볼넷을 기록했다.
2.3. 7월
7월 2일 KIA전에 대타로 나왔으나 두 타석 모두 삼진을 당했다.7월 4일 KIA전에서 2타수 1볼넷 1삼진을 기록한 뒤 장승현으로 교체되었다.
7월 7일 NC전 7번 포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무안타 1삼진으로 침묵했다.
2.4. 8월
8월 11일 삼성전에서 2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8월 15일 키움전에서 3타수 무안타 1삼진으로 침묵했다.
8월 22일 한화전에서 2타수 무안타 1볼넷으로 침묵했고, 1회부터 안일한 볼배합으로 이영하의 눈썩는 제구에 초를 꽂더니 김태연에게 바깥쪽 공을 유도하다가 체크되어 투런, 4회에 하주석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하면서 한 경기 6점 대량 실점을 가져오는 가 하면 홈 송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4회에 포일까지 저지르면서 이영하에게 신경질 부리는 모습이 포착되는 등 수비적으로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며 초에 불을 붙이며 게임을 제대로 터뜨렸다. 이 날 경기를 기점으로 8월 월간 타율이 .065로 0할대를 찍었다.
8월 26일 더블헤더 1차전에서 3타수 1안타 1타점 1볼넷 2삼진을 기록했다.
더블헤더 2차전에서 대타로 나왔으나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출장 경기수로 인해 반비례된 타율이 점차 심각한 부진으로 인해 떨어져가면서 월간 타율 .026이라는 블랙홀 저 너머의 기록까지 떨어졌다. 7월 이후 OPS가 .282이다. 출루율이나 장타율 기록이 아니라 이 둘을 합친 기록이다!
2.5. 9월
9월 1일 더블헤더 1차전 8번 포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9월 1일 더블헤더 2차전 대수비로 나와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부상 복귀 후 타격 부진은 여전하고, 투수 리드를 두고도 잡음이 있다. 중후반기 들어서는 장승현과 교대로 나오고 있다가 9월 중순 들어 주전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9월 말부터는 꾸준히 주전 포수로 출전하고 있으나 공수 모두 전혀 나아지지 않는 최악의 모습으로 인해 팬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안와골절 부상 후유증을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으며 실제로 생명에도 지장을 줄 수 있는 큰 중상이지만 지속적인 부상 발언으로 인해 부진을 가리기 위한 핑계거리가 아니냐며 팬들의 반응은 지속적으로 싸늘해지고 있다. 오히려 후반기 들어서는 박세혁보단 장승현을 찾는 두산팬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이미 팬들의 신뢰는 바닥까지 주저앉은 상태다. 또한 매 경기마다 포일과 실책이 한 번씩 나오면서 명색이 리그 상위권 수비형 포수라는 용어까지 받아가놓고서 정작 수비마저도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있다.
9월 21일 NC전에서 멀티히트를 달성했다.
9월 24일 KIA전 9번 포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9월 26일 어김없이 주전으로 나왔다. 1회부터 최정원을 도루저지하긴 했지만, 파울팁 미스와 대국민 볼배합을 펼쳤고 타석에서도 2타수 2삼진으로 침묵하며 경기는 3:5로 이겼지만 별 활약이 없었다. wRC+는 16.8을 기록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기록이 음수다. 근데 정확히 말하자면 16.8이나 -16.8이나 둘 다 그냥 심각한 기록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볼 수 있다.
9월 29일 kt전에서 4타수 1안타 2타점 1득점 1삼진을 기록했다.
9월 30일 LG전에서 1타수 2타점을 기록했다.
타격에 있어서 정말로 도움이 안되고 있으며, 리드 또한 박바깥모드로 계속 일관하고 있어 엄청나게 까이고 있다. 두산이 9월 들어 엄청난 화력으로 순위 싸움을 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 혼자서만 부진에 빠져있다. WAR는 -0.02, wRC+는 4.5로 상승했다.
2.6. 10월
10월 3일 삼성전은 정말 끔찍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득점권 기회가 3번이나 있었으나 2루수 땅볼-1루수 땅볼-포수 파울 플라이로 물러나는 참담한 타격으로 릴레이 플레이를 죄다 끊어먹으며 패배에 일조했고 팬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런 참담한 성적 탓에 팀 타선이 무려 15안타 6볼넷을 얻어내며 1회부터 9점 차로 시작해서 4점 차까지 쫒아가며 거의 이길 뻔한 겅기를 13:9로 패배하게 만든 원흉이 되었다. 이 날 경기에서 순위 경쟁 하고있는 팀 분위기에다 찬물 뿌리고 삽질한 규모로만 따지자면 유희관 다음 가는 역적이었다.10월 6일 한화전에서는 수비 실책까지 나오며 한화에게 추가 득점 리드를 허용했고 김인태의 9회초 역전 쓰리런이 없었다면 얄짤없이 역적으로 전락할 뻔 했다.
10월 7일 서스펜디드 경기 8회에 대타로 나와 2루타를 때려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롯데전에서는 4회 만루 찬스에서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고, 홍건희가 다음 이닝에서 만루홈런 포함 5실점을 하면서 경기는 졌다.
10월 10일 NC전에서는 선두 타자로 나올때마다 뜬공과 땅볼을 치면서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10월 16일 기준 타출장 .204/.286/.252라는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으며 wRC+는 2.28, WAR는 -0.07(…)이다. 두산이 상반기~중반기에 계속 부진했던 이유가 온전히 박세혁이 부상을 입고 부상을 입은 뒤에도 지속적으로 부진한 것만을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내년 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얻기에 명분차원에서 2억 6천까지 연봉 인상을 했음에도 그 연봉으로 2군 본즈들보다도 못한 성적을 찍고 있으니 온전히 부상으로 까방권을 주기에는 너무나도 부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수비형 포수인데 안와골절 여파로 포구와 프레이밍 모두 떨어진데다 지속적으로 투수에게 삿대질과 불만을 드러내며 문제많은 리드를 펼치고 있고, 타격에서는 뜬금없이 나오는 중단거리 안타 외에는 중요한 상황에서의 클러치도 못살리고, 강한 스윙으로 컨택해 외야에 타구를 날려도 배트에 완벽하게 닿아 공에 힘을 싣질 못하고 있을 뿐더러 주자 출루가 급선무인 상황에서도 체크 스윙으로 존을 걸치거나 국자스윙으로 땅볼이나 만들면서 추가 득점에 다른 타자들이 죽도록 고생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의 박세혁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공수 모두 나종덕 못지 않게 욕을 먹고 있는 롯데의 정보근을 예비 FA 대우한다고 2억 7천만원의 연봉을 주면서 쓰는 셈이다.
10월 중순 들어서는 타격감이 조금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팀의 막판 순위 싸움에 힘을 보태고 있다.
10월 24일 더블헤더 1차전에서 2타수 1안타 1타점 1삼진을 기록했다.
10월 27일 문학 SSG전에서 4타수 2안타 2득점 1타점으로 멀티히트를 달성하며 체면치례했다.
하지만 이후 더 이상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다시 부진에 빠졌고, 시즌 최종전 한화전에선 3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면서 결국 시즌 타율 .219, 0홈런, OPS .566, wRC+ 57.8이라는 재앙과도 같은 성적으로 정규 시즌을 마쳤다. WAR는 0.24로 간신히 음수 탈출에 성공한 것에 만족해야 하는 수준. 정규 시즌 성적으로 보자면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찬 이후에 가장 부진했을 뿐더러, 사실상 개인 통산 커리어를 통틀어 최악의 커리어 로우 시즌이었다고 종합할 수 있다. 박세혁의 포지션이 포수이고, 시즌 초반에 안와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은 것이 성적 부진의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올해 성적이 굉장히 심각하게 부진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3. 포스트시즌
3.1. 와일드카드 결정전
와일드카드 1차전에서 김혜성의 도루를 저지했고, 안우진의 노히트를 깨는 안타도 쳤으나 이영하의 폭투를 막아내다가 통증을 호소했고, 결국 다음 공격에서 김인태로 교체되었다.그래도 2차전에서 활약한 덕에 와일드카드에서 타율 5할을 찍었다.
3.2. 준플레이오프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번 포수로 출장한다. 좌투수 수아레즈가 나와서 뒤로 뺐다고 한다. 그럼에도 3타수 2안타 1타점 1도루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정규시즌에서는 2019년 주전 자리를 확보한 이후로 가장 저조한 성적[4]을 기록하였지만, 포스트시즌에서 극적으로 부활해 대활약을 펼치는 중이다.
3.3. 플레이오프
11월 9일 플레이오프 1차전 9회초 2사에서 오승환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때려냈다. 페넌트레이스에서 단 하나의 홈런도 없었는데 포스트시즌에서 첫 손맛을 봤다. [5]다음날인 11월 10일 플레이오프 2차전에선 2타수 1안타 2볼넷 1타점 1득점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이대로라면 정규시즌에서의 부진을 다 갚을 수 있었다.
3.4. 한국시리즈
11월 14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다시 시즌 내내 부진하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포수로 선발출장하여 첫번째 타석 병살타, 두번째 타석 2사 2,3루 상황 삼진 아웃 등 타격에서 쿠에바스에게 꽁꽁 묶였고, 7회에는압권은 9회 마지막 타석으로, 1사 상황에서 내야로 공이 떠버렸는데 당연히 잡힐 줄로 알고 뛰다가 중간에 멈췄다. 문제는 이 타구를 3루수 황재균이 놓치며 땅볼이 되었고, 본인 주력으로 전력을 다해 뛰었으면 세이프가 될 수 있었으나 타격하자마자 그냥 들어가버려서 아웃되었다. 이후 허경민과 강승호의 연속안타가 나왔던 걸 생각하면 팀의 추격 기회에 찬물을 끼얹는 패착이었다. 결국 후속타에도 불구하고 팀은 2대4로 패해버리는 결과가 나와버렸다.[6] 팬들은 1차전을 졌다는 것 자체보다 명색이 주전 포수가 경기에 임하는 투지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에, 특히 안재석이 1루를 밟지 않았다가 7-4-3 병살타로 1점을 놓친 일로부터 얼마나 지났다고 저런 황당한 짓을 하냐며 충격을 받고 분노하고 있다.[7] 이후 시리즈의 흐름을 돌이켜보면, 당시의 장면이 사실상 시리즈의 전체 판도를 결정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 되었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도 3:0으로 뒤지던 8회말, 주루플레이에서 또다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선두 타자로 내야안타를 치고 주자가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음 타자 안재석의 뜬공 때 박경수가 넘어져 포구하지 못하는 사이[8] 2루로 뛰지 않은 결과 박경수를 백업한 제라드 호잉의 송구에 포스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그에 따라 무사 1,2루로 올 세이프 될 수 있었던 상황이 안재석의 우익수 앞 땅볼로 뒤바뀌어 1사 1루 상황이 되고 말았고, 이후 후속 적시타가 나와 1점을 추격하는 상황이 나와 더욱 아쉬움이 배가되었다.
4차전에서도 주전 포수로 출장했으나 4타수 무안타 1삼진으로 침묵했다. 무엇보다도 4:8로 뒤지던 9회말 2사에 김재윤을 상대로 1루 땅볼을 치며 2021 시즌 한국시리즈 마지막 아웃카운트의 당사자가 되었다. kt의 팀 창단 첫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의 역사적 순간을 장식하는 제물로 두고두고 기록에 남게 된 것이다.
4. 총평
정규시즌에서는 주전 자리를 차지한 이래 가장 부진한 성적을 내었고, 안와골절이라는 선수생명에 위협이 갈 수도 있는 심각한 부상을 겪기도 했다. 다행히 빠르게 그라운드로 복귀하는데 성공했지만 답답한 타격과 불평많은 포수리드는 여전했고 포스트시즌에서 만회하는 듯 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연이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다시금 점수가 깎였다.[9] 준우승으로 물러나는 마지막 장면을 본인이 장식하는 불명예는 덤. 한마디로 올해만 본다면 정말 답이 없는 포수였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한심한 리드를 반복한다면 이제 주전자리를 더이상 유지 할 수 없다.[1] 눈 근처조차 가리게 되면 시야가 보이지 않아 의미가 사라진다. 검투사 헬멧 자체가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아예 착용하지 않는 선수도 있고 착용하다가 더 이상 안 쓰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2] 입으로 피가 흐르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포착되었는데, 부상 위치를 생각했을 때 타박이나 골절로 인해 발생한 코피가 입으로도 넘어왔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해설진은 토혈이나 각혈까지 우려했다.[3] 조성환 한화 코치가 현역 시절이던 2009년에 채병용으로부터 왼쪽 광대뼈에 공을 맞아 부상을 당했다가 40일 만에 복귀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의료진의 예측보다 빠른 복귀였다. 만약 박세혁의 부상 회복까지 3개월 이상이 걸린다면 전반기 아웃은 사실상 확정적이게 된다. 조성환 코치도 한때 한솥밥을 먹던 선수인데다(2020년도까지 두산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다.) 이미 본인이 한 번 부상을 당해봐서 남들보다 잘 알고 있고,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에 박세혁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와 조언을 건넸다.[4] 단적인 예로 군에서 복귀한 이후 매년 때려냈던 홈런을 이번 시즌에는 전혀 기록하지 못했다.[5]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2005년 월드 시리즈의 스캇 포세드닉이 있다. 게다가 이 쪽은 끝내기 홈런.[6] 이미 끝난 경기에 만약이란 명제가 무의미하다지만, 이 상황에서 박세혁이 제대로 뛰어 살아있었다면 2대4에서 1아웃이었을 것이고, 김인태가 삼진으로 물러났어도 다음 타자에게 안타가 나온다면 추가 득점을 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다음 타자는 중요 상황에 강한 정수빈이었다.[7] 그리고 중요한 상황에 나온 황재균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때문에 kt 팬들 역시 실망시켰다. 다만 돔구장에서는 조명의 빛이 선수들의 눈으로 들어가서 뜬공 처리를 방해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함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황재균도 조명 빛 때문이라는 제스쳐를 취했다.[8] 이때의 부상으로 박경수는 중간에 교체되었고, 다음날 4차전에도 출장 못했다. 그러나 앞선 경기들에서 펼친 활약들 덕분에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하였다.[9] 사실 전년도에도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한 건 마찬가지 였으나 적어도 2021년 한국시리즈 1차전 같은 황당한 상황이 나온 것은 절대 아닌데다 수비는 준수했고 박세혁보다 훨씬 못한 선수들이 더 많았기에 크게 까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포스트시즌 내내 주전 포수로서 고생했기에 적어도 박세혁의 타격 부진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의견이 더 많았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