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라마 선덕여왕의 등장인물
미실파 악역 시절 | 관군 장수 박의 & 덕충 (최종화) |
초반에는 보종, 석품, 덕충과 미실파 패거리로서 유신의 용화향도를 괴롭혔다. 그나마 천명공주는 대놓고 적대하지는 않았지만 덕만이 천명의 뒤를 이은 이후로는 미실, 칠숙, 보종 등의 명을 받들어 덕충과 함께 다니며 어두운 일들을 많이 수행하였다. 소화를 암살하려다 문노가 나타나는 바람에 덕충과 함께 제대로 탈탈 털리기도 한다.
덕만이 공주 신분을 얻어서 입궁 후 열린 15대 풍월주를 뽑는 비재에선, 하필 1회전 상대가 4강[2] 중 하나인 김유신이어서 1회전 패배의 굴욕을 겪었다. 이후엔 결승전이 김유신을 상대로 일부러 져 주면서 승부조작을 하려 한 비담의 부정행위로 인해 무효화되고 이로 인해 김유신은 칠숙을 상대로 결승전을 다시 치뤄야 하는 극한의 난관에 부딪히자, 미실파 화랑인 만큼 결승전까지 올라오느라 만신창이가 된 김유신이 칠숙을 상대로 버텨낼 리가 만무하다며, 보종이 풍월주가 될 수 있겠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김유신이 칠숙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당할 정도로 계속 당하면서도 엄청난 근성으로 9번째 공격까지 받아내고[3] 또 일어서려는 의지를 보이자 서로 대립하는 계파이긴 하지만 그 역시 화랑이다 보니 김유신의 투지에 점점 감회되어 가며 동요하다가, 급기야는 김유신과 대립하는 미실파 화랑의 1인자인 보종마저 같은 기분을 느끼고 김유신을 큰소리쳐 응원하자, 이를 시작으로 그 역시 김유신을 함께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김유신이 칠숙을 상대로 회심의 반격을 가하고 마지막 공격을 받으며 쓰러졌지만, 그 반격으로 인해 칠숙이 자신의 패배를 선언 후 김유신의 비재 우승을 선언하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김유신의 우승을 기뻐했다.
그러나 미실파의 매점매석 사건 때 대귀족이 아닌 중소귀족이었던 그의 가문은 큰 손해를 보고, 이후 덕만과 대립하면서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는 미실에 대한 신뢰를 점점 잃어가다, 이는 미실의 군사정변에서 임계점에 달해서 결국 48화에서 문노로 위장한 비담의 선동에 호응하여 덕충, 임종 등과 함께 덕만에게 가담하며 왕실파로 전향한다.
선덕여왕 즉위 후로는 김유신의 사람이 되었고, 덕만이 유신에게 쌀쌀맞게 대할 때도 유신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담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병부의 일원으로서 반란군과 싸우는데, 비담을 쫓다 산탁을 활로 쏘아 죽였다. 한때 같은 미실파였던 만큼 박의도 산탁이 사람 자체는 좋다는 건 알았겠지만 어쨌든 역적 비담의 마지막 남은 부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부분. 마지막 전투에서는 덕충, 월야, 임종과 함께 넷이서 비담을 막으러 나섰지만 다 털려버렸다. 이것도 비담이 막판 주연 보정을 팍팍 받았고 작중에서 손꼽히는 무력을 가져서 어쩔 수 없긴 했다.
무기는 월도이며 주로 덕충과 파트너로 움직인다. 10화랑 중에서 특히 기마술이 뛰어나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담당배우 장희웅이 실제로 말을 잘 타기 때문이다.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마상무예협회를 찾아가 한 달간 숙식을 함께하며 배웠고 드라마 촬영이 마무리된 2010년엔 한국마상무예협회로부터 자격증을 발급받고 '국제기사대회'를 비롯해 매년 열리는 여러 국제 대회나 기마무술 시연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체대에 볼링선수 출신으로 마상무예 수련하기 전부터 운동신경이 좋은 배우였다. 이 때문인지 사극에 무사 역으로 많이 출연했고(주몽, 이산, 선덕여왕, 계백) 무거워서 칼보다 다루기 까다로운 장병기를 다루는 장면이 많다.
덕충과 함께 라인을 타이밍에 맞춰 아주 잘 탄다. 미실파가 강성할 때는 그 밑에서 나쁜 짓은 다 하다가 쿠데타 후에는 덕만에게로 전향해서 정권의 공신이 되었다. 그리고는 유신과 함께 전쟁터를 누비면서 입지를 굳히고 비담의 난에도 가담하지 않아 명예까지 지킨다.[4][5]
그래서 10화랑들 중 덕충과 함께 가장 순탄하게 살아오고 결말도 가장 좋은 인물이다. 유신, 알천, 월야는 덕만파 때(특히 유신, 알천은 고문을 받기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고 임종 또한 홀로 황실파에서 외로운 싸움을 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석품, 대남보는 미실의 난 이후에 바로 사망하였고 호재, 필탄, 왕윤, 선열은 덕만파로 돌아서 활약했으나 후에 비담의 난에 가담하여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박의, 덕충은 미실파에서 나름 순탄하게 살아왔고 심경의 변화를 느껴 덕만파로 전향한 후 끝까지 유신파에서 활약하여 비담의 난도 진압하는 등 활약을 하며 끝까지 좋은 결말로 남았다.
2. 고려 말기의 반란자 朴儀
?~1361년독로강 만호(禿魯江萬戶)로 공민왕 때인 1361년 10월 고려를 배반하고 천호 임자부(任子富)와 김천룡(金天龍)을 죽였다. 공민왕은 형부상서 김진(金璡)에게 명해 이를 토벌하게 했으나 김진이 이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자 당시 동북면 상만호 이성계로 하여금 김진을 지원하도록 지시했다.
이 때 이성계는 1500명의 가병을 거느리고 출진했는데, 박의는 이미 강계로 도망갔으나 이성계의 추격을 받아 박의 이하 그 세력은 궤멸되었다.
기록상 남아 있는 장수로써 이성계의 첫 출진이 바로 박의를 토벌한 이 전역이다.
[1] 이전에 사다함이 이끌었던 화랑도이다.[2] 김유신, 알천, 보종, 비담[3] 10회의 공격을 버텨내면 김유신의 비재 우승이 인정되는 것이었기 때문.[4] 다만 무조건 라인을 나쁘게 탄다고는 볼 수 없다. 미실파에 있었을 때는 덕충과 더불어 미실이 대의를 위해 일을 하니 따랐던 것이고 무리수를 두자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또한 왕실파 때도 비담의 난이 좋지 않음을 알고 가담하지 않는 걸 보면 알고 보면 이해타산이 제일 없고 대의에 충직한 두 인물이다.[5] 단, 위에서 언급한 대로 미실의 어두운 면을 수행하다 보니 비열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를테면 소화를 죽이는 일 같은 경우는 실어증에 컨디션 역시 비정상인 사람을 상관의 명이라고 죽이려고 했던 것이 그 예이다. 물론 대체적으로 상급자인 설원과 미실이 표면적으로는 대의를 위한 것처럼 행동했고, 또한 이들 역시 굳이 그런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기에 적당히 넘어가지는 부분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