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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구인
2. 축구 선수
자세한 내용은 박준혁(축구선수) 문서 참고하십시오.3. 배구 선수
자세한 내용은 박준혁(배구선수) 문서 참고하십시오.4. 배우
- 박준혁(1975): 1975년생. 본명 박형재.
- 박준혁(1991년 9월): 1991년생
5.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자세한 내용은 박준혁(프로게이머) 문서 참고하십시오.6.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자세한 내용은 박준혁(스타크래프트) 문서 참고하십시오.7. 가수
본명이 박준혁인 가수에 대한 내용은 차준혁 문서 참고하십시오.
8. 유튜버
본명이 박준혁인 유튜버에 대한 내용은 팡킥 문서 참고하십시오.
9.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마지막 생존자
1997년 4월 ~ ([age(1997-04-01)]세)
사고 당시 2학년 5반. 공식적으로 확인된 세월호의 마지막 구조자이자 75번째 탈출자, 그리고 단원고 생존자 75명 중 한 명. 그에게는 단짝친구인 임경빈, 이장환(6반), 서현섭(7반), 김기수(7반)를 잃었다. 선체가 아예 기울어지자 갑자기 물이 차올랐는데 그 수위가 쇄골까지 올라왔었다. 높은 수위로 인해 수백명의 머리들만 보였고 '살려달라'는 소리가 밀실이었던 탓에 더 잘 들렸다. 더하여 산소가 부족해서 숨쉬기도 힘들었다.
그는 복도에서 포인트맨으로 선 채 이해봉 선생님, 100여 명의 친구들하고 일반인 승객들하고 필사의 탈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친 물살이 그들을 덮쳐서 김수정하고 단 둘이 남았다. 이후 물살이 더 강해지면서 수정이를 놓치고 말았다.[1] 김수정이 떠내려간 후 잠겨있는 출구 앞에 도달하자 잠수를 하는 판단을 했다. 본인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서 잠수하기에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억지로 해서 출입구 밖으로 나갔다. 이후 벽을 밀치고 떠오르고를 반복하다가 빛이 서서히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물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10시 24분에 박준혁만이 겨우 세월호 안에서 탈출하였다. 사지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그는 탈출 당시 수정이의 시점에서 꿈을 꾼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뒤, 졸업식에 2명의 와동중 동창 여학생들과 2년 전 못갔던 수학여행을 갔다. 그리고 지금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세월호를 알리고 있다. 사학과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며, 단원고 특별전형으로 2016년 3월에 경기도 모 대학의 사학과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EBS 다큐 '감정시대'에 따르면 박준혁은 선배들이나 또래 여자 아이들과는 왕성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데 반해 또래 남자 아이들과는 새로운 친구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고 한다. 어머니와 인터뷰한 결과 고락을 함께 했던 같은 학교 친구들을 대부분 잃은 것에 대한 상실감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같다.
세월호 참사에서 단원고 학생 생존자 75명 중 오전 10시 21분경 마지막으로 탈출한 생존자.
[1] 준혁이의 입장에서 수정이는 ’이름만 아는 사이‘ 혹은 ‘얼굴만 아는 사이’ 정도였고 사고 이후 사진으로 더 많이 봤다고 한다.